030. 마나장비
“윤한결 선수! 그러면 이 조건에는 어떻습니까. 이만큼 제시하는 곳은 흔치 않은 게 아니라 아예 없을 겁니다. 너무 단호하게 거절할 필요 없이 고려만 해 주셔도 좋습니다.”
“아니…… 저는 이미 서울 아카데미 소속인데 자꾸 그러시지 말라니까요…….”
“계약금 외에 위약금까지 저희가 준비해드리겠습니다. 한번만 믿고 맡겨 주세요.”
“됐습니다. 더 하실 말씀 없으실 거 같으니 저는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윤한결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프라이빗 룸에서 나왔다.
워낙 많은 스카우터들이 와주었기에 그들의 성의를 무시할 수 없어 들어간 것이었는데, 오히려 기회를 줬다 뺐은 거 같아 기분이 더 찜찜했다.
[유혜주 : 그러게 내가 뭐랬어. 아예 얘기도 들어보지 않는 게 서로에게 좋은 거라고 했지?]
어디에서 보고 있기라도 하는 걸까. 유혜주가 보내온 문자에 소름이 돋았다.
하아…… 어찌되었든 틀린 말은 아니었다.
물론 아예 팀을 옮길 생각이 없을 정도로 완고한 건 아니었지만…….
마음에 혹하는 조건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대우도, 특별옵션도 그냥저냥 한 번쯤은 다 생각해 봤던 무난한. 그런 것들.
‘그보다 그 녀석은 어디로 갈까……’
오히려 마음은 다른 곳에 가 있었다.
한국 최초로 헌터리그의 ‘저격수’가 된 거나 다름없는 그 녀석.
이제는 솔직히 인정할 때였다. 냉정하게 그 녀석이 뛰어나다는 것을.
그러자 자연스럽게 같이 뛰어 보고 싶은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건 역시 가장 최근의 일 때문이었다.
‘그 움직이기도 힘든 상황 속에서 그렇게 정확한 사격을 연달아 할 줄이야……’
최근, 점령지점 탈환 탈락미션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을 당했었으니까.
먼지 때문에라도 그런 사격은 못할 줄 알았는데.
스킬이 없었다면 인간의 범주를 넘어선 무언가였고, 스킬이 있다면, 스킬이 적어도 두 개 이상인 최상위권의 자질을 가진 녀석이었다.
그래도 한편으론 다행이기도 했다.
‘그런 녀석한테 졌으니까 수긍하게 된달까.’
처음, 생존게임에서 졌던 것도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자신이 못난 게 아니라 상대가 잘났다고 생각하니 조금 기분이 나아지긴 했다.
마지막에 이르러선 그 녀석이랑 같은 팀이면 어떨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더 높은 곳을 바라보는 윤한결이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리라.
‘그 녀석이 오디션을 끝내고…… 3부. 아니 그 위까지 올라갈 때. 같이 뛸 수 있으면……’
재밌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마음 한 켠에서 그 녀석이 헌터스 리그의 전설을 써 내려가리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었을까.
모르겠다.
***
헌터 연합 훈련시설의 정비소. 스카우팅 데이에서 제안을 받고 나온 이창현과 김도준이 향한 곳이었다.
“갑자기 정비소는 왜? 뭐 고장 난 거라도 있어?”
“뭐……”
이창현이 김도준을 못볼 것이라도 본 마냥 쳐다봤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모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카데미생이라고는 하지만 아마추어니까.
“결승전 때 7대 7하려면 당연히 들려야지. 마나 장비 들고 갈 거 생각 안 해?”
“마나 장비? 에어앵커랑 에어비트만 있으면 되는 거 아니야?”
“하아…… 넌 평소에 프로경기 볼 때 뭘 봤던 거냐 대체…….”
마나 장비는 수업 때 설명을 들어서 알겠지만, 종류가 다양했다. 개인 맞춤형으로 만들어져 소수로 나오는 것들을 제외하고도 아주 여러 종류가 있었다.
상대에 맞춰, 상황에 맞춰 마나 장비를 사용하는 게 실력이라고 할 수도 있을 정도였으니까.
“아무튼. 모르면 너도 나 맞출 때 적당히 보고 맞춰서 들어가.”
“캬~ 그래도 친구 잘 둬서 다행이네. 덕분에 마나 장비도 맞추고.”
스카우트를 진행하는 프라이빗 룸이나 헌터 연합훈련의 정비소나 모두 헌터 연합훈련시설 안에 있었기에 거리는 그다지 멀지 않았다.
이윽고 도착한 곳은 거대한 유리 돔 형태로 디자인 되어 있는 건물. 헌터 연합 훈련시설의 정비소였다.
“와…….”
김도준은 새삼스럽게 신기한 놀이기구를 발견한 아이마냥 놀라고 있었다. 뭐, 나도 회귀 전에 처음 볼 땐 저랬었지. 건물이 꽤나 기하학적으로 이쁜 형태였으니까.
“처음 오신 건가요?”
그리고 그렇게 건물을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을 무렵, 데스크에서 누군가 나와 우리에게 물어왔다. 아무래도 처음 보는 사람들인 만큼 안내를 직접 해 주려는 모양이었다.
“목적이 뭐죠? 마나 장비의 정비? 아니면 무기 수리? 그것도 아니면…… 역시 처음 오신 만큼 마나 장비를 새로 마련하려고 오신 걸까요?”
“맞아요. 후자에요. 여기 마나장비에 대한 상식 하나도 없는 바보도 하나 추가해서요.”
바보라고 하자 김도준은 나를 째려봤지만…… 뭐. 틀린 말이 없는데 어쩔 건데…….
“그럼 고르기에 앞서 기본적인 건 설명해드려야겠군요…… 어디 보자. ‘에어 앵커’나 ‘에어 비트’는 이미 알고 계시겠죠? 워낙 범용성 높게 다들 사용하고 있는 마나장비이니…… 하지만 마나 장비는 그 외에도 아주 다양하게 있답니다.”
안내해 주는 여성은 우리를 진열장이 있는 한 방으로 안내했다.
진열대 안에는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는 마나장비들이 보였다.
“마나 장비는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어요. 공격을 위해 쓰이는 마나장비, 방어를 위해 쓰이는 마나장비, 그리고 에어앵커 같은 기동성을 위한 마나장비가 있죠.”
“그렇게 하면 세 갠데요?”
“나머지 하나는 분류라기보다는…… 분류되지 않는 것들을 묶는 거에 불과한 ‘특질계 마나 장비’가 있어요. 워낙 성능도 다양하고 개인맞춤이 많다 보니 세세하게 설명드리기는 어려운 감이 있네요.”
“오…… 그러면 이번에 특질계 마나장비를 맞추러 온 거야?”
김도준이 설명을 중간에 듣다말고 나를 쳐다봤다.
“……당연히 아니지. 설명 안 들었어? 개인 맞춤이라는 거 자체가 특질계 마나장비는 범용성도 좁고 맞추기도 힘들어. 당연히 제일 많이 쓰이는 것들로 가져가야지.”
“그런가?”
안내인은 그 말을 듣고는 살짝 미소 지었다.
“그 말씀이 맞습니다. 특질계는 경기에 대비해 특별한 전략을 위해 준비하거나, 누군가를 저격해서 대비하기 위해 쓰는 경우도 많죠. 그에 반해 기본 분야의 마나장비는 에어앵커처럼 누구나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요.”
그러곤 바로 앞에 육각형으로 생긴 파란 보석같이 생긴 것을 집어들었다.
“이건 마나 장비 중 마나쉴드. 작동하면 사용자 중심으로 마나 쉴드가 전개되죠.”
“와…… 그럼 이것만 있으면 상대 공격 하나도 안 맞는 거 아니에요? 아닌가…… 그러기엔 경기 볼 때 생각보다 많이 안 보였던 것 같던데 이거.”
“맞아요. 한번 깨지면 복구하는 데 시간이 필요한 실드니까요. 긴급할 때나 사용하는, 그런 거랄까.”
“……너. 진짜로 마나 장비에 대한 이해가 하나도 없구나?”
이 말을 하자 김도준은 머쓱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자기도 잘 모르는 건 알고 있나보다.
“지금까지 써 볼 기회가 있었어야지.”
“우선 그건 주로 원거리 딜러들이 많이 사용하는 거야. 근거리 딜러들은 자기 방어 수단 하나쯤은 다 가지고 있지만, 원거리나 중거리 딜러는 없는 경우도 많으니까. 그걸로 한 타임을 버티면서 역습각을 노리는 거지.”
“오…….”
“원리를 이해해야 해. 어떤 건 어떤 딜러나 특성을 가진 사람에게 어울리는지.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어떻게 연계해서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갈 수 있는지를.”
***
마침 그 후로는 직접 돌아다니면서 하나하나 사용해 볼 수 있었다. 마침 정비소에는 바로 마나장비를 사용할 수 있도록 연습장이 있었기에, 문제는 없었다.
김도준과 함께 마나장비를 한아름 들고 와선 하나씩 실험해 보기로 했다.
“이를테면…… 그래. 이거.”
내가 들어 올린 건 폭발형 마나장비, 마나 봄버였다. 주로 원거리 딜러들이 무기의 폭발력을 높이기 위해 투척물에 부착하는 폭탄과 같은 것이었다.
주머니에 물 채워 넣듯 마나를 충전해 집어던졌다.
콰콰쾅!!
던진 곳에는 폭발로 인해 거대한 홈이 파여져 있었다.
“…….”
“이건 누가 쓰기에 좋을 것 같아?”
“음…… 보니까 어딘가 부착하기 좋게 만들어 둔 것 같은데. 원거리딜러들이 화살 같은 거에 부착해서 터뜨리면 좋지 않을까? 와…… 생각해 보니까 이거 네 총에다 달면 완전 사기 아니야? 그냥 미사일처럼 터질 것 같은데.”
“설마…… 그럴 리가. 적어도 내 총으론 못 쏴. 그렇게 큰 걸 총알에 달 수 있을 리 없잖아?”
“아…… 그렇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새로운 가능성이 떠오르기도 했다.
‘지금 쏘는 건 보통 총알이 아니라, 형태를 바꿀 수 있는 에테르인데…… 혹시…….’
정확하진 않아도 확실히 나중에는 실험해 봐야 할 필요가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터무니없지만 가능하다면 엄청난 무기가 될 수 있었으므로.
“그럼 이건 어디에 쓸 RJ 같아?”
이번에 든 건 기동형 마나 장비. 순식간에 앞으로 점멸할 수 있는 에어대시였다. 마나 소모가 많아서 많이 쓰지는 못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원거리 딜러가 거리를 순간적으로 벌릴 때?”
김도준이 궁리하더니 대답을 내놓았다.
하지만, 그 말이 끝나기가 우습게, 나는 에어대시의 점멸로 김도준에게 순간적으로 붙으며 마법공학 무기변환으로 만들어 낸 권총을 머리에 겨눴다.
“그것도 좋지만 이게 더 좋지.”
순간의 찰나. 그 찰나에 목숨을 빼앗을 정도로 강렬한 비수를 놓는다면 바로 이것이리라.
“마나 쉴드도 사용할 틈 없이 초근접에서 보내 버릴 수 있으니까.”
“와…… 아무튼 별게 다 있네. 이것들 다 바리바리 싸 가면 안 돼?”
“마나의 한계도 있고, 경기에서 제한하는 개수 제한도 있어서 당연히 안 되지. 그래서 보통 자기 포지션이랑 초능력을 고려해서 한두 개 정도 추가하는 편이야.”
“그렇구나…… 아 맞다. 그래서 뭘로 가져갈려고 생각하고 있어? 어쨌든 여기서 다 맞추고 갈 거 아니었어?”
물론 맞는 말이었다. 굳이 다른 곳에 간다고 해서 다른 마나 장비가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내가 가져갈 거야 뻔하지. 너한테 보여 줬던 에어대시. 그거 하나면 충분해.”
“에어앵커랑 에어비트를 그렇게 잘 다루는데 그게 그렇게 필요해?”
확실히 보통은 내가 이미 기동성은 충분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점멸’을 가능케 하는 이 에어대시와 내 전투스타일의 궁합이 딱 맞았기 때문이었다.
그보다…… 지금 중요한건 나보단 김도준 같았다. 나야 회귀 전에 쓰던 마나 장비도 있고, 많이 써 봤으니까 어떨 때 뭘 써야 좋은지 쯤은 감으로 다 익히고 있었기에, 고르는 데 어려움은 없었으니까.
“뭐…… 그거야 난 내 생각이 있는 거고. 네가 쓸 거 고르는 게 더 문제 아니냐?”
“나? 음…… 그렇지. 조금 생각해 봤는데 고르기가 좀 어렵더라고. 원거리 무기도 아니라 마나 쉴드나 마나 봄버 같은 건 필요 없을 것 같은데. 그렇다고 에어대시를 쓰기도 미묘하고.”
확실히 지금까지 소개해 준 것 중엔 김도준이랑 그리 잘 맞는 건 없긴 했다.
에어대시를 쓰기엔 암살 같은 거나 도주를 위해 급격하게 도약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그렇다면, 이건 어떨까.”
내가 마나 장비들 더미에서 다른 한 가지를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