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8. 위업
[탈락미션 12킬 올킬 달성 및 점령지점 점령, 헌터스 리그. 무서운 신예가 온다.]
ㄴ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경기이긴 했음. 보니까 놀랍더라.
ㄴ 근데 먼지 구름 일으키는 거 아니었으면 이 정도는 아니었을듯. 날아다니는 헌터 맞추기는 쉽지 않았을 거임. 건물 잔해 떨어지는 거 땜에 발 묶여서 그렇지.
ㄴ 반대로 먼지구름 속에서 맞추는 게 더 헬 난이도라는 생각은 안듦?
ㄴ 캬 한국도 이제 찐 원거리딜러가 나오는구나~
ㄴ ㄹㅇㅋㅋ 내년 3부리그는 다 저렇게만 하면 볼 맛 날듯.
ㄴ 현실: 3부 리그 중계하는데 보는 사람 500명도 채 안됨 ㅋㅋㅋㅋ
커뮤니티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내가 관객이었어도 그랬겠지만…….’
점령지점에서의 겁 없는 건물 폭파. 그리고 두 자릿 수의 탈락미션 참가자들을 총으로 하나 둘 쓰러뜨리기까지.
관객입장에서는 아주 압도적인 관경이었을 테니.
물론 그건 관객 입장에서고 생각보다 압도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우선 전황이 나한테 압도적으로 유리하게 갖춰진 전장이었으니까.’
근접 엄호를 해 줘 사격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해준 김도준. 그리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나만 쏠 수 있는 상황. 건물들의 잔해로 인해 움직임이 제한되어 맞추기가 워낙 쉬운 상황.
모든 것이 사격을 위해 맞춰진 상황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과거에도 비슷한 작전을 썼다는 점도 크게 이점이었고.
건물을 무너뜨리지 않았더라면 정공법으로 절대 올킬은 커녕 반 수도 죽이지 못했으리라. 헌터란 아무리 마나를 쓰더라도 총탄으로 쓰러뜨리기에 녹록한 존재가 아니니까.
물론 위업이라기엔 충분한 업적이긴 했지만.
그래서였을까?
[탈락미션 올 킬 및 점령지점 점령의 위업을 달성했습니다.]
[만개 : D+의 랭크가 만개 : C-로 상승합니다.]
[만개 - 재능개화 : 전설의 저격수] : 장거리 저격의 명중률이 비약적으로 증가합니다. [유도사격(약)] : 약한 정도의 유도사격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만개의 랭크가 상승했다.’
여전히 회귀 전의 힘을 되찾기는 멀었지만, 그래도 뿌듯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난 뿌듯한 와중에 아래에서는 오열하고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잔뜩 있었지만.
아래에서는 한참 프로그램 탈락자로 분위기가 뒤숭숭한 상황이었다.
탈락자는 주로, 초반에 아무것도 보여 주지 못한 채로 내 저격을 맞은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뭐…… 초반에 그렇게 탈락해 버리면, 뭔갈 보여 줄 새도 없었을 테니까…….’
한편으론 미안한 생각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리라.
설렁설렁 임하는 것이야말로 그들을 모욕하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나 이외에도 더 신난 사람이 있기도 했고.
“야 지금까지 숨겨 둔 거였어? 캬…… 사격할 때 그냥 지리겠더라. 총 나도 한번만 만져 봐도 괜찮냐?”
“…….”
“아니~ 마나량이 그렇게 차고 넘쳐서 총으로 싹 쓸어버릴 거면 미리 말을 해 줬어야지~. 내가 너 건물 무너뜨릴 때 얼마나 놀랐는지 아냐? 거기 그 먼지 구름 속에서 다 맞춘 건 또 어떻게 맞춘 거야?”
“감.”
뭐 대충 스킬이 있을 거라고 예상할지라도 내 정보를 굳이 발설하는 게 좋은 건 아니니까.
정보는 항상 힘이고 무기라 쓸데없이 말할 생각은 없었다.
물론, 그런 성의 없는 대답에 김도준의 성토가 쏟아지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
“하나밖에 없는 친구한테 그러기냐? 와…… 이창현 너 그렇게 안 봤는데. 다시 봤다.”
“어떻게 다시 봤는데.”
“쫌생이?”
그보다 하나밖에 없는 친구라고…….
생각해 보니 회귀 후엔 이 녀석 빼고 친구랄 만한 녀석이 없긴 했구나…….
뭐…… 친구 많이 사귀려고 회귀한 건 아니지만 친구 적다는 지적을 받으니, 약간 기분이 묘했다.
‘내 인간관계가 그렇게 좁나?’
그렇게 김도준과 한 쪽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을 사이에, 어느 샌가 탈락 미션 탈락자는 모두 나가 정리되어 있었다.
그리고 어느덧 탈락미션에서 다시금 생존한 참가자들이 보였다.
기분 탓이었을까. 다들 이쪽을 쳐다보는 기분이 들었다.
아무래도 다 나한테 탈락한 만큼 나랑 김도준한테 그리 좋은 기분은 아니겠지만서도.
미션의 생존자는 다들 마지막에 격돌했던 녀석들로, 아는 녀석들이었다.
탈락 미션 참가자중 8명. 그리고 미니 헌터스 리그에서 이겼던 6명까지. 14명이었다.
딱 7대7 헌터스 리그에 맞춰진 인원을 제외하곤 모두 탈락했다.
그리고 대망의 다음미션 발표가 이어졌다.
“모든 사람이 헌터가 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자질이 있느냐 없느냐. 그것이 모든 것을 가릅니다. 어쩌면 냉혹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건 오히려 포기할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매년 각성자 5만여 명이 헌터에 도전합니다. 하지만 1부 리그에 도달하는 신인이 몇이나 될까요? 단연 한 손에 꼽는 수준입니다.
나머지는 오르지 못할 곳에 꿈과 희망을 거두지 못한 채로 2부,3부. 혹은 아마추어리그에서 쓸쓸히 스러져 가죠.
[Hunters, The next generation]는 차세대, 리그의 정상에 서서 이끌어 나갈 인재를 찾기 때문에 더욱 냉혹합니다.
그런 시점에서 여러분은 아직 살아남았고. 아직은 기회가 있다고 할 수 있죠. 축하합니다.”
조아라가 과장되게 박수를 쳤다.
“자, 이제 축포를 터뜨릴까요? 아뇨. 여러분은 이제야 스타트라인에 선 겁니다. 헌터스 리그에 온 것을 축하합니다.”
그 말이 끝나곤 이민석이 나와 말을 이었다.
“짧고 굵게 최고를 가려낸다. 이게 [Hunters, The next generation]죠. 길지 않았지만, 심사위원진은 이미 최고가 될 자격을 지닌 지원자를 어느 정도 선별했습니다.”
이민석의 말에 분위기가 술렁거렸다. 이제 남은 경기 수가 않다고 간접적으로 말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뭐 어차피 그 속에서 최고 선두권을 달리고 있는 건 나라고 다들 예상할 테지만. 심사위원한테 넌지시 그 말을 들으니 기분이 꽤 좋았다.
진짜로 헌터스 리그로 돌아가는 게 이제 곧이라는 것 같아서.
회귀 후 제대로 된 첫 걸음을 내딛은 기분이랄까.
“그렇기에 이번 평가가 결승전. 즉, 마지막 평가가 될 예정입니다. 종목은 당연히 7대7의 정규 헌터스 리그 경기입니다. 오늘 팀을 추첨하여 가른 후, 일주일 후에 경기가 시작됩니다. 그곳에서 우승하는 팀의 MVP가 우승자, 그리고 승리 팀과 무관하게 다음 활약자가 준우승자가 됩니다.”
그 말을 한 직후, 무언가 깜빡했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더니 진수혁이 마이크를 옮겨 잡았다.
“그리고 이번 결승전에는 역대급으로 특별한 분이 출연하시니 기대하시길 바랍니다.”
‘역대급으로 특별한 분?’
딱히 짐작 가는 사람은 없었으나,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어찌되었든 돋보이는 무대를 다시금 보여 줄 자신이 있었으므로.
***
경기장 바깥으로 나오니 저녁시간이었음에도 입구엔 꽤나 많은 인파가 모여 있었다.
그런데 대부분 선수라기보다는…….
‘스카우터…….’
아무래도 본격적으로 영입 전쟁이 시작된 듯했다. 그렇기에 가장 자연스럽게 인파가 모이는 건 내 앞이었다.
“창현선수 LHR 구단의 이한길 스카우터라고 합니다. 잠시 시간 있으시면…….”
“아니 저기요! 제가 먼저 기다리고 있었던 거 안 보이십니까? 창현 선수 저는 팀 PER의 스카우터 이종규라고 합니다.”
몇 명이 동시에 말을 하는 건지 원.
동시에 이구동성으로 말하니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어차피 내가 원하는 조건을 맞춰 줄 팀을 이번에 찾아 두는 게 좋기도 하고…….’
뭣보다 지금 내가 원하는 조건이 꽤나 까다로웠기에 깊은 대화를 나눠야 제대로 팀을 고를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랬기에 나는 헌터 연합 훈련장의 프라이빗 룸을 가리키며 말했다.
“안에서 이야기하죠.”
그 말에 꽤나 많은 스카우터들이 나와함께 우르르 들어갔다.
이번 [Hunters, The next generation]프로그램은 꽤나 핫한 만큼 괜찮은 영입자원으로 뽑히는 유망 선수가 많았기에 스카우터 자체가 꽤 많이 와 있었다.
그리고 그중 반 정도는 나를 찾아왔고.
일반적이라면 스카우터와 1대1 독대를 하면서 조건을 이야기하겠지만…….
보다시피 나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일단, 이렇게 많은 분들이 찾아 주신 만큼. 서로 조건부터 까고 이야기해 보죠.”
몸값도 몸값이지만, 지금 프로그램에서 최고의 흥행성을 가지고 있는 만큼 협상에서 우위를 가질 수 있는 건 나였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 식으로 한번 불러 봐~ 같은 방식은 통하지 않았으리라.
“SMA서울 시립 아카데미팀의 신의철 감독입니다. 그동안의 경기는 잘 봤습니다. 저희 아카데미는 이미 알고 있으시겠지만, 2부 1부. 그리고 원하신다면 해외 진출까지 할 수 있을 정도로 아카데미 국제교류가 되는 편입니다.
저희 아카데미에 들어오신다면, 해외 교류 프로그램으로 외국 리그에서 가르칠 선생을 초청해 전담 코칭을 시켜드리겠습니다.”
뭐…… 이 아저씬 쓸데없는 이야기가 많다. 코칭 같은 건 그리 필요하지 않은데. 이리 두면 말이 길어질 것 같았기에 말을 끊었다.
“죄송한데, 오신 분이 많아요. 다른 팀과 다른 점만 간략히 설명해 주세요.”
신의철 입장에서는 약간 기가 찬 말이었다.
나름 신인을 많이 뽑았던 신의철로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유형이었다.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지수가 맞고 돌아왔을 때 한 번쯤은 컨택해 봤어야 하는 건데…….’
그 때였으면 자신의 가치를 잘 몰라 살살 구슬려 데려올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약금 1억. 연봉은 별도로 2억 드리겠습니다. 어때요 이창현 선수!”
어찌되었건 팀에 꼭 필요한 인재라고 생각했기에 처음부터 부를 수 있는 최대의 돈을 불렀다. 신의철의 기량으로 제시할 수 있는 최대 액수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가 알기로 [Hunters, The next generation] 출신 유망주에 이정도로 지급한 적은 없는 걸로 알고 있었다.
‘프론트에서 한 소리 듣겠지만 녀석이 성공하면 못 감당할 정도는 아니야…….’
신의철 감독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로도 틀린 생각은 전혀 아니었다. 아직 7대 7 헌터스 리그 경기에서 검증되지 않은 유망주 선수에게, 이미 프로인 3부 리거 연봉 이상을 제시한 것이었기에. 객관적으로 아주 후한 조건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신의철 감독의 생각만큼 순탄하게 흘러가지 않았다.
“계약금 3억. 일시불로 지불하겠습니다. 당연히 연봉은 따로 지급이구요. 연봉은 당장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결코 섭하게 드리지 않는다고 약속드릴 수 있습니다. “
옆에 앉아 있던 팀 LHR의 이한길이 신의철 감독을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꽤 규모가 있는 팀이었기에 총알 하나는 두둑히 장전해 온 모양이었다.
‘계약금 3억이라…… 확실히 괜찮은 금액이긴 한데…….’
돈……돈 괜찮지. 하지만 뭔가 다른 중요한 걸 빼먹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이창현은 그게 뭔지 생각해낼 수 있었다.
‘팀원. 팀원을 내 마음대로 구성해야 해.’
헌터스 리그는 7대7 팀게임이었다. 지금은 아직 아마추어에 불과한 유망주들이었기에 올킬이 가능했던 것이지, 리그 수준이 올라가면 올킬은 정말 꿈에서나 나올 정도로 힘들었다.
그리고 이창현은 미래에 어떤 선수가 우승하고, 성공하는지. 대충은 모두 알고 있었다.
‘이거 어쩌면 팀에 들어가지 않는 게 낫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