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6. 격전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이쯤 되면 김도준으로서도 이창현에게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손쉽게 2킬을 만들어 냈다고는 하나, 점령지점에 들어가겠다는 건 나머지 전부를 적으로 맞이하겠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생각을 오래 할 틈도 없었다.
어느덧 이창현과 김도준의 바로 눈앞에 빛나는 점령지점이 있었으니까.
슬금슬금 조용히 걷던 이창현이 뒤따라오던 김도준에게 손짓했다.
멈추라는 지시였다.
그리곤 고개를 내밀어 코너 건너편을 슬그머니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도 없는 모양이었다.
코너를 돌아 문을 열고 들어간 곳은 평범한 사무실처럼 보였다.
중앙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을 제외하곤.
그리고 그 안으로 들어가자, 아니나 다를까.
[이창현,김도준 페어가 점령지점을 차지했습니다.]
[타인이 점령지점에 들어오거나, 점령지점을 나가면 점령 완료 시각이 초기화됩니다.]
[점령 완료시각까지 1:00]
59…… 58……
가상현실에 크게 팝업이 뜨며 모두 볼 수 있도록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이제 시작이다…….’
***
[이창현,김도준 페어가 점령지점을 차지했습니다.]
이창현이 점령지점을 차지하자 전 맵에 이 문구가 울려 퍼졌다.
‘대체 무슨 생각이지? 숨어서 저격만 해도 모자를 판에 녀석이 점령 지점을 차지하다니…….’
유혜주 입장에서는 의아할 수밖에 없는 선택이었다.
무력적으로 봤을 때 절대로 선택할 수 없는 선택사항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건 윤한결의 입장에서도 동의하는 부분이었고.
“설마 이번 맵에서도 히든피스를…….”
“아냐…… 그럴 리 없어.”
유혜주는 단언했다. 이전 생존게임과는 달리 이번 맵은 ‘탑의 던전’같은 걸 재현해 낸 던전 따위가 아니었다. 그야, 이번 무대는 단순한 시가지에 불과했으니까.
하지만 뭔가가 있는 게 틀림없었다.
‘히든피스도 얻었던 게 단순한 운이 아닐 거야…… 무언가 도움이 되는 능력이 있는 거겠지. 그리고 그걸 전략과 섞어 구사하고 있어.’
녀석은 첫 서류심사에서도, 히든피스를 얻은 생존게임에서도, 미니 헌터스 리그 게임에서도.
얼핏 보기엔 건방지고 단순해 보이지만, 실체는 고도의 지능적 플레이가 핵심이었다.
스테이터스와 스킬이 그리 강력해 보이지 않는데도 계속해서 뛰어난 성과를 거두는 이유이리라.
문제는 이번엔 어떤 플레이를 준비했느냐는 것.
“윤한결. 네가 싸워 본 바로는 어땠어? 점령지점에 들어갔다는 건 아예 잡아 달라고 애원하는 꼴인데.”
“생존게임에선 히든피스가 없었더라면 확실히 압살할 수 있었어. 그 정도의 느낌? 물론 순간 집중력이나 기동성은 특출난 것 같지만……”
기동성? 생각해 보니 저번 미니 헌터스 리그 때 놓친 것 중 하나도 그 기동성이긴 했다. 압도적으로 에어앵커와 에어비트를 잘 다루지 않았다면 그런 유인전술에 걸려들지도 않았을 테니.
하지만 점령지점에 들어간다는 건 기동성을 포기한다는 의미나 다름없었다. 건물 안에서는 에어앵커나 에어비트를 써 봤자 극적인 기동효과를 보기는 어려웠으니까.
‘가장 뛰어난 장점 중 하나인 기동성을 포기한다고? 말이 안 된다…… 아니면 아예 점령할 생각이 없는 건가…… 어쩌면 시선만 집중시켜 놓고 중간에 점령지를 알아서 떠날 수도.’
이건 확실히 일리가 있는 방법이었다.
그후 탈락미션 참가자들끼리 싸우면 그때 어부지리를 노리면 되니까.
그리고 실제로 메아리치는 저 카운트다운을 듣고 수많은 탈락미션 참가자들이 달려들고 있었다.
‘이거네.’
유혜주는 확신했다.
“윤한결. 잘 들어. 이창현의 목적을 알았으니까.”
“…….”
“녀석은 실질적으로 무력이 강력하지 않아. 심지어 기동성이 장기인데 그게 발휘될 수 없는 전장이 건물 실내에 있는 점령지점이다. 점령지점을 그대로 지키고 있을 리가 없어.
즉, 점령을 못하게 하려고 모여든 지원자들끼리 싸우게 되었을 때 어부지리를 노리는 것 말곤 없겠지.”
“…….”
윤한결이 눈을 반짝였다.
확실히 근거가 있는 말이었다.
함정이라는 게 무엇일지 모르지만, 어부지리를 노리리라는 건 확실해 보였다.
그렇게 상대의 전략을 읽고 나니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럼 우리는?”
“어차피 점령은 노리지 않을 테니까. 녀석이 깔아 놓은 어부지리 판에서 깽판을 치면 되겠지.”
유혜주가 씨익 웃음 지었다.
난장판이 된 전장에서 메이스로 깽판을 치는 것. 그것이 유혜주의 가장 큰 장기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게만 되면 우리의 승리다.’
어쩌면 모조리 휩쓸어 스포트라이트를 가져가는 것도 어렵지 않으리라.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9]
[38]
카운트가 시작되고 22초 가량.
카운트가 지속되는 것은 둘째 치고, 새로운 정보가 전장에 들려왔다.
[ A팀 김영준 : 전투로 인한 사망]
[ C팀 이형태 : 전투로 인한 사망]
[ C팀 배한수 : 전투로 인한 사망]
‘…….’
벌써 녀석의 어부지리 작전이 시작된 건가?
갑작스레 사망자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물론 카운트는 그런 것이랑은 상관없이 계속해서 지나가고 있었다.
[……3]
[32]
안에서 계속 싸움이 나는데 평온하게 점령지점에서 카운트를 줄여 나가고 있다?
‘뭐지? 안에 들어간 녀석들이 벌써 다 죽었다고?’
어부지리를 노린다면 직접 교전을 하지 않았을 테고, 되도록 많은 녀석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할 텐데…….
이건 무언가가 잘못된 것임이 틀림없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슬슬 어부지리를 취하려는 녀석이 점령을 저지하려는 녀석들을 피해 도망가고, 안쪽은 점령은 커녕, 연이은 전투로 교착상태가 되었어야 옳다.
“유혜주. 이건…….”
윤한결도 뭔가 잘못된 것임을 깨달은 듯했다.
[……1]
[20]
더 이상 시간이 별로 없었다.
20초 남짓만 지나면 아무것도 못하고 게임이 끝나게 생긴 상황이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더 재고 있을 시간이 없다는 것은 확실했다.
계속해서 킬 소식은 더해져 왔고 점령시각마저 짧아져 가고 있었으므로.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냐 이창현…….’
***
건물 안.
이창현은 도망갈 생각 따윈 아예 없었다.
처음부터 여기서 죽을 때까지 다 상대한다는 게 이창현의 생각이었으므로.
‘그게 제대로 될지는 모르겠지만…….’
김도준은 탄식했다.
[……7]
[46]
이창현과 김도준은 각각 점령지점. 그니까 평범한 오피스의 책상 아래에 숨어 있었다.
계획은 단순했다.
이 방에 들어오는 사람이 있다면, 이창현이 저격한다. 그리고 저격을 피한다면 김도준이 달려들고 이창현이 지원사격을 한다.
‘겨우 이걸로 괜찮나?’
김도준은 고민했지만 이내 별다른 방법이 없다는 걸 깨닫고 그 말에 따르고 있었다.
그리고 문 쪽에서 처음으로 소리가 들렸다.
조심스럽게 문고리가 돌아가는 소리가 퍼졌다.
워낙 조용했기에 그 소리를 듣기는 어렵지 않았다.
조심조심 문고리를 돌리는가 했더니, 한순간 문을 확 열었다.
하지만 열린 문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기습을 대비해 문을 열되 한번에 돌입하지는 않은 것이다.
……그리고 예상대로 슬쩍 문 너머를 보는 얼굴이 보인 순간.
타앙!
어김없이 이창현의 총구가 머리를 꿰뚫었다.
[ A팀 김영준 : 전투로 인한 사망]
그러자 저 너머의 남은 상대들은 당황했는지, 더는 문에 고개를 내민다든지 하는 짓은 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저격의 이점은 단 한번이었다.
애초에 문을 연 것도 저격을 예상하고 있지 않았기에 한 행동이었으니까.
‘이제 상대가 내 무기를 모르는 것도 이게 마지막인가.’
이젠 방송으로 보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웬만한 탈락미션 지원자들도 모두 안다고 보고 행동하는 게 맞았다.
그리고 역시나. 벽 뒤에 숨어 있던 남은 녀석들은 쉬운 저격 지점인 문을 통해 들어오지 않았다.
대신, 문을 만들었다.
쩡! 쩌적 ㅡ
이윽고 점령 지점 오피스 한 쪽에 만들어지는 참격이 벽을 갈랐다. 그리고 갈라진 벽을 방패삼아 천천히 전진했다.
꿰뚫는 눈으로 이미 상대의 위치를 보고 있던 이창현은 벽이 갈라진 순간 쏴 봤지만, 허사였다.
마지막 전략을 위해 마나를 최대한 아끼고자, 에테르 탄에 최소한의 마나만 부여하고 있는 이창현의 총으로는 벽까지 뚫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상관없어. 그렇기에 김도준이 존재하는 거니까.’
벽을 엄폐물 삼아 들어오는 상대방에게 숨어 있던 김도준이 급습했다.
그야말로 쾌검.
하지만 암살에 최적화 된 검은 아니었기에 당연히 한번에 상대에게 큰 피해를 입히진 못했다.
‘문제될 건 없어. 넌 그저 잡아 둘 수만 있으면 되니까.’
상대가 두 명이었어도 그랬다.
김도준이 달려든 순간, 한 명은 뒤를 돌아 그의 사각을 노련하게 노렸다.
하지만 김도준이 달려드는 시간동안 이창현도 가만히 있는 게 아니었기에.
‘각이 나왔다.’
위치를 옮긴 이창현에게 상대는 이미 쏘기 적절한 범위 안에 들어와 있었다.
탕ㅡ 타탕!
[ C팀 이형태 : 전투로 인한 사망]
[ C팀 배한수 : 전투로 인한 사망]
녀석들의 능력을 쓸 새도 존재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리 강력한 능력을 지닌 녀석들이 아니기도 했지만.
‘이제 얼마나 남았지?’
[……3]
[32]
남은 시간은 절반 정도. 이 시간만 지나면 온전히 탈락 미션에서 완전히 승리하리라.
하지만 이창현이 바라는 건 단순히 ‘탈락미션 승리’따위가 아니었다.
압도적인 승리를 원했다.
‘목표는 올킬.’
혹은 올킬이 아니더라도, 최다킬. 동시에 점령지점 점령까지. 그게 이창현이 노리는 목표였고 그에 따라 맞춰진 계획이 있었다.
‘자, 와라.’
또 벽 뒤에 다른 녀석들이 보여졌다. 하지만 역시 가장 경계하는 윤한결과 유혜주는 아니었다.
압도적 재능을 가진 수퍼 루키, 그 둘만 아니라면 이창현은 모조리 잔챙이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렇기에 마나를 아끼고 있었고.
그렇게 지속적으로 적당히 교전을 하다 보니 남은 시간은 더더욱 짧아져 있었다.
[……1]
[20]
이젠 진짜로 오지 않으면 적당히 버티기만 해도 점령이 고지에 가까워질 정도였다.
오지 않을 리 없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윤한결과 유혜주가 등장했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그 둘만 있는 건 아니었다.
진 한뿐만 아니라 또 다른 조의 녀석들까지.
이제 진짜로 점령까지 얼마 시간이 남지 않았기에 본격적으로 점령 시도를 저지하려는 것이리라.
그들에게 더 이상 서로는 적이 아니었고, 점령을 목전에 앞둔 이창현과 김도준만이 적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합심해서 만들어 낸 힘은 거대했다.
‘이번엔 네 맘대로 안 될 거야.’
이건 이제 더 이상 전략이 통용되는 전장이 아니었기 때문에.
하지만 동시에 유혜주는 경악하고 있었다.
이미 전장에 왔던 수많은 지원자들이 탈락되었다는 걸 반증하듯, 사무실은 온통 피투성이였기 때문이었다.
‘무력이 그리 강한 녀석은 아니었을 텐데. 어떻게…… 확실히 경악스러워. 어떤 전략을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나 오랫동안 점령을 저지하려는 녀석들에게 점령지를 지켜 낼 줄이야……. 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점이 그게 아니지.’
어찌되었든 녀석들에게 우호적인 상황은 이제 끝났다. 점령이 얼마 남지 않은 나머지 남은 주요인물들이 합심한 듯 녀석들을 합공할 수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였다.
오히려 궁지에 몰린 이창현은 입꼬리를 올리며 웃고 있었다.
마치, 모두 계획대로라는 듯.
하지만 유혜주는 코웃음 칠 수밖에 없었다.
‘네가 살아날 곳은 없어.’
“윤한결!”
그리고 곧이어 윤한결과 유혜주가 가장 앞서 이창현에게로 향했다.
그 때, 이창현의 총구는 놀랍게도 윤한결과 유혜주, 그 누구에게도 향하고 있지 않았다.
그 총구가 가리키는 곳은 그저. 한 구석의 기둥 하나.
그리고 윤한결과 유혜주가 이창현에게 닿기 전.
이창현은 점령지점 오피스의 기둥들에 비축했던 마나를 모아 강력하게 사격했다.
마나를 한번에 소모해 강력하게 쏘는 에테르 탄은 마치 미사일을 연상시켰다.
콰콰콰쾅!!!
“…….”
점령지점으로 정해진 건물이, 무너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