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5. 시험무대
‘이창현…….’
이름만 생각해도 이가 갈릴 수밖에 없었다.
미니 헌터스 리그 게임은 나름대로 자신이 있는 종목이었으니까.
“유혜주. 뭘 그렇게 생각해?”
“뭘 생각하긴. 니 이창현한테 처맞고 온 거 생각하지.”
윤한결은 눈을 약간 크게 뜨더니 의기소침해져선 말을 잇지 않았다.
그래도 이런 숫기 없는 모습이 있어도 실력에선 확실한 녀석이라고 생각했는데…….
게다가 1대1도 아니고, 2대1로. 아무리 매복이 존재했다고는 하지만 한방에 당해 버리다니.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상대가 대단하기보다는 우리 측에서 나온 실수라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의기소침해 하지 말고 들어. 이번에만 실수 안 하면 되는 거야.”
“……알아. 근데 그 녀석.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만만하지 않아.”
“누가 모를 줄 알아? 나도 다 생각해 둔 게 있어. 일단은 붙어서 둘이 합공하는 플랜으로 가.”
유혜주는 각오를 단단히 다졌다.
이번 미션에서 저조한 성적을 거두면 바로 탈락이었기에, 어쩔 수 없었지만.
‘상금이나 딴다고 생각하고 나왔는데 이게 뭐야…….’
탈락 미션이나 하고 있고. 도무지 폼이 안 났다.
아카데미생 수준들이라고는 하나, 그 안에서도 수준은 천차만별.
나는 이미 프로수준이라고 봐도 무방했으니까.
이런 데에서 발목 잡힐 때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이번에는 유감없이 실력을 모두 발휘할 생각이었다.
‘미니 헌터스 리그에서도 스킬 일부러 숨기려고 하지만 않았어도 4명 잡고도 살아있었을 텐데…….’
물론 혼자서 남은 이창현의 A팀까지 잡을 수 있었을지는 미지수이긴 했지만.
‘사용할 수 있는 스킬까지 전부 동원해서 잡는다. 여유부리다가 탈락하는 짓은 하지 않아. 객관적으로 봐도 우리 전력이 가장 우세하다. 게다가…… 녀석들은 아직 내 스킬을 몰라.’
암담한 심정 중 우리에게 웃어 주는 포인트였다. 이미 스킬들이 다 알려진 프로헌터들은 쓰지 못하지만, 아직 아마추어 헌터로서 대결은 상대방의 스킬을 아느냐 모르느냐가 크게 작용한다.
그리고 실제로 유혜주의 스킬은 백병전에서는 거의 무적 수준의 효율을 보여 주기도 했고.
‘과연 네가 이걸 견딜 수 있을까?’
그러지 못하리라고 확신했다. 지금 짜 둔 전략. 그리고 스킬의 조합. 상대방에 대한 정보 유무. 이 모든 것이 승부를 가르리라.
“보니까 중거리 딜러인 거 같던데. 일단은 우리 둘이서 근접해서 한 번에 해치우는 걸 기본 베이스로.”
윤한결은 이내 약간 표정을 찡그렸지만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
“아직 멀었어?”
“네가 너무 빨리 가 버려서 그렇잖아.”
김도준은 이어폰에 볼멘소리로 말했다.
“난 먼저 괜찮은 지점에 자리 잡았어. 견제하다가 너만 오면 바로 점령지점으로 들어가자.”
“다른 모든 팀원들 견제를 한 번에 받을 텐데 괜찮겠어?”
“생각이 있어. 아. 그리고 어차피 좀 늦었으니까 그냥 걸어서 와. 에어비트랑 에어앵커 사용하면서 눈에 띄게 이동하다가 다른 팀에 들키지 말고.”
지금은 김도준의 합류보다 나 혼자서 활약하는 게 중요하니까.
그 말을 끝마치자마자, 입질이 왔다.
지금 숨어 있는 건물의 2층. 창문 바깥 도로에 보이는 2인 1조였다.
누구였는지 기억이 안 나는 걸로 봐서는 별로 유망하거나 눈에 띄었던 녀석들은 아니리라.
‘마침 시험대상으로 좋다.’
이창현이 마법공학 무기변환으로 만들어 낸 총구가 번뜩였다.
새롭게 강화된 에테르를 가득 머금은 채였다.
타앙ㅡ !
‘…….’
놀랄 정도로 큰 소리였다. 아마 회귀 전과는 다르게 마나탄이 아니라 에테르 탄을 썼기에 그런 듯했다. 마나탄은 마법공학 무기변환과 궁합이 전반적으로 좋아 이런 면에서 신경 쓸 필요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위력이었다.
[탈락]
[ F팀 이현진 : 전투로 인한 사망]
단 한 방이었다.
‘헤드샷이긴 하지만, 이정도면…… 생존게임에서 히든피스로 얻었던 에테르 수준과 비슷하다…….’
파괴력은 상상을 초과했다. 물론, 회귀 전 마나탄에 비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충분한 살상력을 가질 정도였으니까.
이창현은 장병기로 다투는 구시대에 총을 다루는 현대식 무기를 가지고 뛰어든 거나 다름없게 되리라.
‘에단처럼. 아니, 에단을 뛰어넘었던 과거의 나를 뛰어넘는다.’
앞에는 예상치 못한 일격에 당해 탈락한 팀원을 버리고 도망치는 녀석이 한 명 더 보였다.
저격수에게 이렇게 등을 보이고 도망가는 상대방은 일종의 먹잇감과 같았다.
타앙 ㅡ!
[탈락]
[ F팀 배수현 : 전투로 인한 사망]
단순한 새롭게 강화된 스킬을 시험할 뿐이었는데 그 위력은 무시무시했다.
“방금 앞에서 큰 소리 들렸는데 들었어? 누구 싸우나 본데? 이 방향으로 가는 거 맞아?”
“……그거 내가 낸 소리니까 잔말 말고 계속 그 방향으로 달려와.”
“뭐야. 전투했어?”
김도준은 이어폰으로 계속해서 쫑알댔지만, 이창현은 그럴 시간이 없었다.
되도록이면 소리도 내지 않는 게 이로웠다.
‘오늘 꾼 꿈 때문인가. 계속해서 회귀 전 생각이 나네.’
회귀 전에는 ‘전설의 저격수’라는 칭호를 가지고 있었던 만큼, 이창현이 활약했던 포지션은 주로 최 후방. 원거리 딜러였으니까.
원거리 딜러로서 해야만 하는 것들. 그 교과서적인 움직임이 계속해서 이창현을 이끌었다.
새삼스럽지만, 회귀 전의 기억들이, 전술들이. 했던 업적들이 되살아나는 것만 같았다.
‘저격수는 역시 저격 한번 하면 바로 이동하는 게 정설이지.’
소리도 워낙 크게 났었기에 근접 딜러들에게 추가 교전을 겪게 될 위험이 있었다.
하지만 이창현은 크게 움직일 생각은 없었다.
어디까지나, 점령 포인트 주변에서 킬포인트를 쓸어 담을 생각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이창현은 9시 방향으로 돌며 저격을 위한 장소를 찾기 위해 다른 건물을 도는 정도로 그쳤다.
“원래 오던 방향에서 3블록 9시 방향으로 꺾어. 거기에 파란 유리빌딩 2층에 있을 테니까. 그리로 와.”
***
[한국 플레이어, 최초로 총수 원거리 딜러 등장하나?]
ㄴ지망생들 총 쏘는 거 보고 설레발ㅈㅈㅈㅈㅈㅈ
ㄴ근데 박력이 오지긴 했음. 실시간으로 봤냐? ㅋㅋ
ㄴ저거 이상의 프로헌터 에단을 지닌 프랑스는 어떤 나라일까……
ㄴ창현갓 내가 말했자너~
ㄴ응 아니야 유혜주선에서 다 컷 ㅅㄱ
ㄴ유 > 윤 > 이 딱 이순서 ㅋㅋ 설레발 지리네
ㅡ 저 이창현 형인데 에단이랑 실제로 비슷한 스킬 가지고있음 ㅇㅇ 질문받는다.
ㄴ뭔 스킬인데?
ㄴ기동성 향상능력이랑 마나통 어마무지하게 늘려주는 능력 있다고 함 ㅇㅇ
ㄴ딱 봐도 마나탄 아닌 것 같은데 뇌피셜 오지죠?
ㄴ응 아니야 ~ 내말이 맞아
ㄴPER와서 증명하자 창현아
ㄴPER은 무슨 ㅋㅋ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님 ㅅㄱ
‘이럴수가…….’
조아라는 이제 더 이상 두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전에 보여 주던 원거리 견제정도의 사격이 아니었다. 확실하게 살상력과 킬 캐치능력을 겸비한 무지 막강한 위력의 사격이었다. 즉, 진정한 의미의 ‘총’ 사용자였다.
하지만 게시판의 반응도 그렇고, 실제로 본 것도 그렇고 조아라가 잘못 본 것은 결코 아니리라.
“내가 뭐랬어. 진짜 총 관련 능력 있을 수도 있댔지?”
이민석은 오히려 기세등등해 했다.
진짜 있을 줄은 몰랐다. 이게 정확하리라.
‘진짜 있었다면 쓸 기회는 지금까지 몇 번이고 있었는데…… 아니면 이제 와서 능력이 더 강력해진 건가?’
조아라는 싫더라도 요주의 대상이었기에 이창현이 출전한 경기나 대련을 모두 살펴보았기에 알 수 있었다.
저건 본래는 쓸 수 없었던 것이라는 것을.
“아마…… 제 생각이지만 저건 이제서야 개화된 능력일 가능성이 커요.”
“서류 심사 때부터 총을 그렇게 잘 다뤘는데?”
그건 조아라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긴 했다. 하지만…….
“하지만, 그럴 거면 생존게임에선 히든피스를 굳이 찾으러 갈 필요도 없었고…… 대련에서도 끽해야 견제용 사격정도…… 저렇게 본격적인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제 와서 그렇다는 건…….”
“네 말은 이제 와서 특정 조건을 만족시켜서 개화했다는 거지…… 음…… 그럴 수도 있겠네. 그런데 그게 중요한가? 중요한건 네가 전에 지원자들에게 말했듯 ‘뛰어난 헌터’가 될 수 있느냐 아니냐니까.”
조아라는 고개를 숙였다.
그러다가 상념에서 깨우는 목소리가 들렸다. 진수혁이었다.
“엇…… 회장님?”
조아라가 숙인 고개를 들어 올려다본 뒷편에는 헌텨협회의 회장. 이근택이 서 있었다.
“끌끌…… 이 노부가 뭐라고…… 그렇게 환대해 줄 필요는 없소.”
말은 그러면서도 눈빛이 형형하게 빛나는 게, 마치 아주 흥미로운 보석을 보는 듯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탐나시는 거군요. 협회장님도.”
이민석이 다소 냉소적인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니…… 아닐세…… 이미 한번 거절당했지. 아주 당찬 소년이었어.”
“…….”
거절당했다는 말에 이민석은 다소 놀란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1세대 헌터의 전설이자 헌터 협회장인 이근택이 웬만하게 가벼운 조건을 걸었을 리 없었기 때문이었다. 뭔지는 몰라도 [Hunters, The next generation]에서 우승하는 것보다 배는 값진 무언가를 제시했으리라.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판돈을 더 올렸어야 했는데…….”
“그래서 아쉬우십니까?”
“아니, 지나간 일은 붙잡고 계속 생각하지 않아, 다만 계속 해서 나아갈 방법을 찾을 뿐이지.”
“그 말씀은?”
“앞으로의 프로그램에 날 한 번 끼워 줬으면 하네.”
폭탄 같은 발언이었다. 지금까지 전무후무했던 일이었으니까.
당연하게도 흥행은 보장되겠지만, 이런 전례는 없었다.
“허허…… 너무 갑작스럽나? 하지만 나는 진지하네.”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겠습니다.”
아무리 이민석이 이근택을 그리 달갑지 않아 한다고 하더라도 공과 사는 구별해야 했다. 이는 프로그램, 그리고 지원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일인 건 확실했으니까.
‘능구렁이같은 영감…… 대체 무슨 생각인 거냐…….’
사람 좋은 얼굴로 허허 웃는 이근택의 얼굴이 자꾸만 잊혀지지 않았다.
***
김도준은 계속 달리다 보니 어느덧 이창현이 말했던 파란빌딩 2층에 도착해 있었다.
“도착했어. 어디야?”
“2층 201호라고 써져 있는 곳으로 들어와.”
안으로 들어가니 이창현은 낮은 자세를 취한 후 얼굴 상단부만 들어 바깥을 살피고 있었다.
이창현을 따라 창문 밖을 보니, 빛나는 구역. 즉, 점령지점이 보였다.
‘역시나…… 아무도 없네.’
모르긴 몰라도, 꽤나 많은 사람이 점령지점을 눈앞에 두고 눈치를 살피고 있을 가능성이 크리라. 이런 시점에서 들어간다면 출혈을 감수할 수밖에 없기에.
김도준은 그랬기에 점령지점으로 들어가는 건 그다지 현명한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이미 이창현에게는 2킬이 들어갔기에 몇 명 탈락시킬지는 몰라도, 낮은 순위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되었기에.
“그래서 계획은? 아직도 말 안 해 줄 거야?”
“다른 녀석은 신경 쓸 필요 없어. 윤한결이나 유혜주. 둘 중 한명. 누가 더 쉬워?”
“내가 걔네를 막으라고?”
“잠깐이면 돼.”
심히 못미더웠지만, 그래도 상대가 누군가. 지금까지 어찌되었건 빵빵한 실적을 내온 이창현이었기에 넘어갔다.
“내가 막는 동안은?”
“네가 한명을 막는 동안 내가 점령할 거야.”
“……그게 끝?”
이창현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자 그저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속으로는 ‘나머지 그 많은 사람들은 어쩌고 점령할 건데…….’ 라는 말이 올라왔지만, 한편으론 다른 생각도 들었다.
‘뭔가 숨겨 둔 수가 있는 건가?’
분명 아까 도착하기 전 2킬을 손쉽게 만들어 낸 무언가에 키를 쥐고 있는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