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4. 각성
숙소의 새벽은 고요했다.
처음 몇 일은 꽤나 북적이고 시끌벅적했던 것 같은데, 프로그램이 끝난 데다가 다음날 다수의 인원이 탈락 미션이 예정되어 있었기에 다들 빨리 잠에 들었다.
그 인원엔 물론 나도 포함되어 있었다.
‘물론 탈락 미션 때문은 아니지만…….’
마나 각성석 흡수라는 중대사가 있다는 점에서는 충분히 같았다.
고요한 1인실 침대 위에 앉아, 양손을 모으고 그 위에 마나 각성석을 올려두었다.
[마나 각성석]
가지고 있으면 점진적으로 흡수되며, 마나량을 크게 늘려 줍니다.
단, 저절로 천천히 자연 흡수시키는 것이 아니라 경구 섭취 시, 스킬 랭크를 올릴 수 있습니다.
‘역시…….’
회귀 전에 관찰했던 그대로의 성능이었다.
그랬기에 더 이상 고민하지 않고 입속에 마나 각성석을 넣었다.
회귀 전엔 먹어 본 적 없었기에 처음 느껴 보는 맛이었다.
맛있다기보다는…… 그래, 아무 맛도 안 난달까.
이를테면 우뭇가사리 같은 맛이었다.
그리고 먹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느낌이 오기 시작했다.
마치 멀미한 것처럼 머리가 어질어질하며 헛구역질이 났다.
결코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하지만 마나각성석이 타고 들어간 식도, 그리고 단전에서 충만하게 차오르는 에너지 또한 느껴졌다. 그리고 지금. 분명 스킬 랭크가 올랐으리라 확신할 수 있었다.
마치 새벽에 내려앉은 이슬 같은, 모든 컨디션이 최상인 듯한 청명한 감각이 찾아왔다.
지체하지 않고 스테이터스 창을 띄웠다.
[스킬]
[꿰뚫는 눈 : B->A(S+)]
[마도공학 무기변환 : A]
[만개 : E->D+]
: 만개 스킬레벨의 증가로 스테이터스 성장가속이 이뤄집니다.
: 만개 스킬레벨의 증가로 개화된 키워드 스킬들의 성능이 강화됩니다.
[키워드][만개 - 재능개화 : 말하고 때리는 사람(증강)] : 스킬 명을 외치고 쓰거나, 때리는 곳을 말하고 때리면 파괴력이 증가합니다. 실제 외친 것과 행동한 것이 일치하지 않아도 됩니다.
[만개 - 재능개화 : 에테르(증강)] : 마나를 이용해 에테르를 직접적으로 구현할 수 있습니다.
[힘 : 5.16][반응속도 : 6.1][유연성 : 6.6][지구력 : 5.66][재생력 : 5]
[마나량 : 6.6]
도저히 움직일 줄 모르던 스킬 랭크들이 하나 둘, 올라가 있었다. 꿰뚫는 눈은 B에서 A로, 만개는 E에서 무려 D+까지 올라가 있었다.
스테이터스도 특히 올리기 힘든 마나량이 1씩이나 늘어 있었고.
무엇보다…….
가장 큰 수확은 만개의 설명에 쓰여져 있었다.
[ 만개 스킬레벨의 증가로 개화된 키워드 스킬들의 성능이 강화됩니다. ]
지금까지 만개로 인해 개화했던 ‘키워드’스킬들이 한 번에 모두 강화된 것이다.
이로서 총으로 무기를 변환해도 견제용으로만 사용이 가능했던 에테르도, 살상력을 가질 수 있을 가능성이 크리라.
마치 히든피스를 얻었던 생존게임 때처럼.
‘운이 좋군.’
그 후 각성의 여파였을까. 아니면 긴장감이 해소되어서였을까.
얼마 걸리지 않아 졸음이 쏟아졌다.
***
캄캄한 방 속.
그래. 아마 그건 회귀 전, 각성을 막 하고 난 후의 기억이었다.
하지만 순전히 뒤죽박죽이었다.
마치 어딘가 낙서처럼 잘못 그려진 듯한 동화책처럼.
어린 시절의, 회귀 전 시절의 내가 독백을 하고 있었다.
마치 나를 관중으로 하는 작은 공연처럼.
‘…….’
‘시작은 작은 골방이나 다름없는 시설의 구단이었어. 프로 헌터였지만, 파산 직전의 구단이었으니까.’
‘첫 각성 후 들어간 곳이었지만, 두각을 드러내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래서, 팀을 옮길 기회 또한 많이 주어졌다. 그때 내게 가장 달콤한 제의를 한 것이 LTD의 감독이자 회귀 전 배은망덕하게 나를 내쫓으려고 한 김의중 단장이었다.’
“우리 팀에 들어와라. 내가 키워 주마. 대신, 네가 가지고 있다던 그 스킬. [만개]를 개방해보는 건 어떻겠니. 지금의 네 실력으로는 지금 리그에선 통하지 않을 테니까.”
‘팀에서 제시한 조건이 좋았기 때문일까. 회귀 전의 작은 이창현은 약간 고민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마 그때도 만개의 가치에 대해서 어렴풋이라도 알았기 때문에 더 고민이 되었으리라.’
“지금 개방해버리는 건 좀……아직까지 효과가 조금 미미하다고는 하지만, 조금 더 기다려보고 싶어요.”
‘운이 좋았기 때문일까, 당장 개방시키리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당시에는 조용히 알겠다며 팀에 받아 줄 뿐이었다.’
‘대신 출전 기회는 오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감독의 견제였다. 말을 듣지 않는 녀석은 사용하지 않겠다-라는 일종의 오기였다.’
‘그럼에도 나는 생각했다.’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출전할 수 있어. 지금 딜러들보다 내가 훨씬 잘하니까.’
‘실제로도 연습게임 결과는 내가 뛰어난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기에. 아니, 생각이 어렸기에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다. 감독이 자신의 말을 들을 때까지 출전시켜 주지 않으리라는 생각은 할 수 없었기에.’
‘하지만 감독의 압박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오히려 더해졌고, 어느 순간 만개에 대한 개방 압박은 점점 더 심해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었다.’
“야, 이창현이. 너 그래서 경기 나갈 수 있을 줄 알아? 이번 실수도 그렇고 그렇게 게임해서 될 만큼 헌터스 리그가 만만하냐고.”
“야. 나가. 그냥 나가라고.”
“선수는 그냥 소모품이야. 네가 지금 고작 연습게임에서 조금 잘 나간다고 뭐라고 되는 줄 알지? 너 여기서 잘리면 그냥 알바나 하다가 노가다나 하겠지 다른 거 더 하겠냐?”
“다신 헌터 한다고 하지 마.”
‘내가 한 실수 한 번은 중대한 죄가 되어 있었고, 어느 샌가 팀에선 구석에 몰려 있었다. 모두 감독이 한 일에 따르지 않아서 일어난 일이 되어 있었다.’
‘그랬기에, 마지막의 마지막. 몰려서 선택한 건 결국 만개의 개방이었다. 순식간에 스테이터스가 올랐으며, 결국 감독은 내게 웃음 짓고 있었다.’
‘결코 좋은 웃음은 아니었다는 기억만은 남아 있다.’
‘물론 만개 개방 후 연이어 승승장구를 해 나갔고, 몇이고 꽤나 많은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전설을 써내려갔지만. 그건 후로 영원히 후회할 선택이었다.’
‘억지로 일찍 만개한 꽃은 필연적으로 너무도 일찍 져 버렸으니까.’
회귀 전 시절의 나는 독백을 멈추더니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곤 지금까지 완전히 속삭이던 것과는 달리 소리 내어 말했다.
“지금의 나는, 어때?”
***
“……헉 ……헉.”
아무래도 마나 각성석을 섭취한 뒤 잠깐 잠든 듯했다. 더 이상 어둑했던 새벽녘이 아닌 완전한 아침의 온기가 돌고 있었다.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기억을…….’
최근 꿈으로도 꾸지 않았었는데 무슨 바람이 불었다고 그런 꿈을 꾼 건지.
이제는 상관도 없는 일인데.
지금은 과거랑 달랐다. 만개도 개방하지 않았고, 누구보다 화려하게 선수생활을 시작할 기반이 마련되어 있었으니까.
팀원을 정하는 것도, 팀을 정하는 것도…… 누가 성공하고 누가 망가지는지 모두 기억하고 있기에 잘 할 자신은 있었다.
그럼에도 불안감이 생겨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최고의 자리라는 건 그만큼 녹록치 않았으니까.
‘내가 원하는 자리는 어중간한 일인자가 아니니까.’
그 자리는 이미 회귀 전에 충분히 경험했다.
자리를 보전하는 데 급급하고, 한 경기 한 경기마다 평가가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그런 자리.
나는 넘볼 수 없는 최강이 되길 바래왔고, 그래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는 하나, 같은 시대의 최고 루키들을 상대로 겨우겨우 승리할 뿐이었다.
만개가 이런 특별한 마나 각성석을 쓰지 않고서는 개방되지 않는 것도 이해가 갔다.
‘위업이랄 만한 것을 이뤄 내지 못했으니까.’
단지 내가 부족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처럼 물렁해서는 될 수 없다.
만개를 더욱 개방해 나가고, 전과는 달리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서.
과거에 일어났던 그런 일은 다시 겪고 싶지 않았기에.
다시금 각오를 다졌다.
“과거따위…… X까.”
어느덧 얼굴에는 근심 따위 남지 않은 채였다.
***
[드디어 시작된 [Hunters, The next generation] 첫 탈락자는 누구?]
[이번 헌터스 리그 프로그램, 헌터협회 협회장도 눈여겨보고 있어.]
ㄴ 이 양반은 할 것도 없나 ㅋㅋ 거의 3부 애들 수준인 경기를 보고 있어 뭔. 중국이나 일본경기나 좀 보고 선수들 좀 챙겨오지.
ㄴ 그래도 이런 분들이 있어서 한국 루키들이 자라나는 건데 말넘심;
ㄴ 전회차에 비하면 그래도 볼 만한 편이지. 참가자들 캐릭터도 뚜렷하고.
ㄴ 유혜주한테 침발라놓는 듯.
ㄴ 씹 ㅋㅋㅋ 그건 PER같은 하위권따리 팀이나 탐내는 거구요~
숙소를 나서며 헌터 리그 게시판을 보니 감각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회귀 전에도 선수시절 이 게시판을 종종 봤었으니까.
‘뭐, 그때야 욕이 워낙 많아서 그만 보려고 하는 편이긴 했지만…….’
오히려 순수한 때로 돌아온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처음부터 시작하는 느낌이랄까.
“그런대로 마음의 준비는 좀 됐어?”
“나? 나야 뭐 몸풀기부터 전략까지 다 마음의 준비 끝났지.”
“전략? 전략을 따로 생각해 놨어?”
“…….”
김도준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네가 시키는 거 하라며.”
그럼 그렇지.
그냥 아무 생각도 없을 게 당연한 녀석에게 나는 왜 물어본 것이었을까.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자 김도준의 반응도 가관이었다.
“뭐야, 너도 아무것도 생각 안 해온 거야?”
말을 말자.
대화를 하면 할수록 말리는 것 같은 게, 안 하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였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탈락 미션을 기다리는 동안 느끼는 감정은 무엇이었나요? 초조? 불안? 혹은…… 기대감? 우리는 지원자들이 어떤 감정을 느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것도 있죠. 아카데미에서 벗어나, 3부 리그라는 ‘진짜’ 프로 리그에 올라올 순간 겪을 장애물과 괴로움이 더 클 것이라는 것이죠.
자, 지원자 여러분. 싸우고 쟁탈하십쇼. 승리만이 앞으로 나아가게 해 줄 것입니다. 앞으로도. 헌터가 되어서도, 더 높은 곳에 올라가서도 승리만이 헌터를 살아 있게 해 줄 것입니다. 그럼, 탈락 미션을 시작합니다!”
관중의 환호가 한동안 이어졌다. 그와 동시에 맵으로 모두 전송이 끝난 후, 30초의 대기시간이 주어졌다.
‘확실히…… 테마에 맞는 말이긴 하네.’
이번 탈락미션은 그야말로 ‘전투를 잘하는 헌터들’을 대놓고 올라오라고 만들어 놓은 격이었으니까.
맵은 특이점이 없는 시가지(A)맵이었다. 그리 높지 않은 건물들이 가득한 시가지.
그리고 맵의 한가운데 빛나는 기둥이 솟구치는 저곳. 저곳에 점령지가 있으리라.
“창현아. 그래서 계획은? 진짜 아무 계획도 없는 건 아니지?”
……그리고 끌고 나가야 하는 짐 덩어리도 하나 있고.
“목표는 정 중앙. 킬 포인트가 아니라 중앙 점령이 목표야. 시작하자마자 눈치 보지 않고 달려서 바로 점령한다.”
“너 제정신이야?”
예상한 반응이긴 했지만, 저리 말할 줄이야.
“상대 중엔 윤한결이랑 유혜주도 있어. 게다가 콤비로. 걔네들에다가 다른 녀석들도 다 점령 못하게 견제할 텐데 우리가 제 발로 호랑이 입에 들어가겠다고?”
“못할 것 같으면 관두던가~”
“아니 내말은 생각을 한 번 더 해 달라는 거지.”
“아 거참 추잡스럽게”
가볍게 김도준의 징징거림을 차단했다.
그리고 그때, 대기시간 30초가 끝나는 소리가 전장에 울려 퍼졌다.
“달려!”
그 때부터 바로 김도준과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
물론, 에어비트와 에어앵커를 제대로 활용할 줄 아는 건 나뿐이었기에 좀 차이가 벌어졌지만. 그마저도 계산된 부분이긴 했다.
‘먼저 도착해서 미리 견제한다.’
점령지점 근처에 미리 도착해 견제하는 것만으로도, 그곳에 다가오는 게 조심스러워 질수밖에 없으니까.
점령하는 동안 상대해야 하는 적이 줄어들 가능성이 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향상된 만개 스킬로 증강된 에테르…… 한번 시험해 봐야겠어.’
미리 업데이트된 스킬의 시험무대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