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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플레이어의 귀환-22화 (22/270)

022. 작은 변화

다소 크지는 않은 키. 평소엔 약간은 양아치처럼 건들건들거린다는 말을 종종 들었다.

그래도 뭐. 내 할일은 잘 챙겨서 하는 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자리를 위협하는 녀석이 나타났다.

그건 바로 아카데미차원에서 참가했던 [Hunters, The next generation]에서 만난 녀석이었다.

‘이창현’

처음에는 존재도 모르는 녀석이었다. 생존게임에서 같은 5위로 올라올 때까지만 해도 그냥 이런 애가 있구나 싶었으니까.

그런데 방송을 보면서 부정적인 쪽으로 생각이 많이 기울었다.

“이번 프로그램이요? 제 위에는 아무도 없죠. 이런 아마추어들이랑 저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 아닐까요?”

대충 이런 의미의 말을 했었던 것 같다. 방송 인터뷰에서 봤던 그 녀석은 참으로 싸가지가 없었다.

생존게임에서 겨우 5등한 것도 히든피스인 ‘에테르’ 덕이 컸으면서도 저모양이다.

그래서였을까. 그 녀석이 지나갈 때 말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에테르빨로 이긴 녀석이 참…….”

그런 의미의 말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실제로 만난 녀석은 꽤나 달랐다.

그걸 조금 느꼈던 것은 바로 첫 대련.

내 도발로 먼저 시작된 경기였다.

예상대로 에테르가 없는 녀석은 그리 강력하지 않았다.

대체 뭘 믿고 인터뷰를 그렇게 했을지 모를 정도로.

그래서 방심했다. 아니, 실력이었던 걸지도 모른다.

염력으로 막아 낸 하나의 비수. 그 뒤에 숨겨져 있을 세 개의 비수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때, 조금은 인식이 바뀌었다.

‘전체적인 능력치 자체는 안 높더라도 싸움은 꽤나 잘하는 녀석.’

센스나 전술적인 면모는 조금씩 엿보였으니까.

그런데 갑자기 내가 이창현에게 지목되어 3대3대3 미니 헌터스 리그 게임 팀에 끼게 된 건 의외였다.

자기 자신이 척 져서 싸운 거나 다름없는 상대를 팀으로 들여온다?

나로선 상상할 수 없었으니까.

게다가 녀석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난 네 능력을 믿고 있어. 난 네가 필요하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그 녀석의 다른 일면을.

녀석은 입술을 꽉 깨물고 있었다. 이겼다고는 하나, 자신을 조롱한 이에게 그런 말을 하는 건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으리라.

스테이터스나 재능이 압도적이지 않지만, 결코 지는 걸 용인할 수 없는. 이기기 위해서라면 그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그런 녀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자신을 뽑았으리라.

그래서. 한 번 걸어 보기로 했다.

녀석이 날 믿고 걸어 본 도박적인 전술 하나를.

***

“김진승! 한지수! 준비해!”

윤한결과 진 한이 이창현을 쫓는 긴박한 형국에 큰 소리로 말을 내질렀다.

“……”

그 말에 진 한과 윤한결은 잠깐 멈칫하면서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페이크였나……”

윤한결은 일순간이지만 시간을 벌기 위해 이창현이 그런 행동을 했다는 데까지 생각이 닿았다. 실제로 멈칫한 사이에 둘 간의 사이가 벌어져 있었으니까.

하지만 윤한결도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조심해야 하는 건 에어앵커와 에어비트를 통해 날아다니는 윤한결과 진 한뿐만이 아니었다.

‘이기어검…….’

윤한결의 스킬, 이기어검[S]를 이용해 뒤에서 이창현의 움직임을 견제하는 검이 날라 왔기 때문이었다.

‘하필이면 진 한이랑 팀을 먹은 게 윤한결이었나. 이게 행운일지 아닐진…… 조금 더 기다려 봐야 하나.’

그리고 그 윤한결의 검이 계속해서 이창현의 공중곡예를 견제하자, 실제로 움직임이 현저하게 느려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이창현은 다시 외쳤다.

“한지수!!”

“이번엔 안 속는다!”

뒤이어 온 진 한과 윤한결의 합공이 이창현을 덮쳤다.

……그리고 무력의 차이가 커 보이는 그 셋의 공격이 마주하려는 순간이었다.

지이잉……

‘……’

윤한결은 공격을 하려다 말고, 한걸음 물러섰다. 그야말로 본능적인 감에 의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합공이었던 만큼, 진 한은 금세 이창현과 칼을 맞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윤한결의 불안한 생각이 맞아떨어졌다.

쩡!

마치 공간이 무너지는 듯한 강력한 압력이 주변을 감쌌고, 거기엔 한걸음 물러선 윤한결도 예외대상은 아니었다.

‘중력공격…….’

한 번 이창현을, 그리고 이창현과 한지수의 콤비를 겪어 봤던 윤한결로서는 알 수 있었다. 이게 한지수의 중력 장판이라는 것을.

하지만 동시에 윤한결은 떠올렸다.

한지수의 중력 장판은 그렇게 섬세하게 운용될 수 없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실제로 땅바닥으로 쳐박히고있던 것에 진 한, 윤한결. 그리고 이창현도 제외는 아니었다.

“자폭공격을 한 거냐!!”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하나뿐. 강력한 우승후보이자, 경쟁자인 자신과 진 한 콤비를 한 번에 보내 버릴 수 있는 한 방을 완벽히 맞출 수 있는 상황까지 기다렸다는 것. 그거 하나뿐이었다.

그렇게, 셋이 속수무책으로 떨어지는 동안, 한번 더 믿을 수 없는 일이 발생했다.

강력한 중력공격이 가해지고 있음에도 압력이 느껴지지 않는 다는 듯, 이창현이 떨어지지 않고 공중에서 멈춰 선 것이다.

“…….”

뭐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처음부터 이 계획을 노렸던 것인지. 이창현은 어떻게 떠 있을 수 있는 것인지. 한지수가 세심한 중력 공격을 조정하는 방법을 익히기라도 한 것인지.

다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당했다…….’

삐익 ㅡ

윤한결과 진 한이 바닥에 떨어짐으로 인해 탈락했다. 첫 탈락이었다.

[탈락]

[ A팀 진 한 : 추락]

[ A팀 윤한결 : 추락]

탈락 부저가 울리고 다시 연결된 이어폰에서 한지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괜찮아? 중력은 버틸 만해?”

“몸이 양쪽에서 조여지는 느낌이라 가히 좋지는 않은데…… 뭐 할만 했어. 진승아 나이스.”

“내 염력으로 이게 커버가 될 줄은 몰랐는데…… 결과적으론 나쁘지 않은 전술이었네.”

“나쁘지 않기는 개뿔. 직접 맞부딪혔으면 전술이고 뭐고 이렇게 쉽게 안 끝났을걸.”

이창현이 모든 어그로를 끌고, 중앙에서 합류하되 만나서 엄호하지는 않는 상황. 모두가 공중에 뜬 순간, 한지수가 중력공격으로 기습하는 게 이창현의 계획이었다.

‘그대로만 했으면 나까지 탈락했겠지만…….’

이창현이 뽑은 인선에는 중력공격과 비슷한 종류의 힘인 염력을 사용가능한 김진승이 끼어 있었다. 한지수가 공중에 뜬 녀석들에게 중력을 가해 광역으로 누르고, 김진승이 내게만 집중해 나를 끌어올린다.

이름하여 이창현 미끼작전이었다.

한 번을 맞춰 볼 시간도, 중력의 힘과 염력의 힘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단지, ‘가능하리라’ 예상했기에 몸을 던져 시험했고. 성공했을 뿐. 결과는 김진승을 믿은 이창현의 승리였다.

“아직 게임 안 끝났으니까 집중해. 남은 애들은 우리가 싸우는 거 보거나, 정보를 들었을지도 모르니까. 이번처럼 한번에 걸려 넘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커.”

그렇게 말하는 순간 의외로 경기의 종료를 알리는 부저가 울려 퍼졌다.

[탈락]

[ A팀 유혜주 : 과다 출혈로 인한 사망]

[탈락]

[ B팀 이해일 : 전투로 인한 사망]

[ B팀 김기주 : 전투로 인한 사망]

[ B팀 차일태 : 전투로 인한 사망]

[ B팀 김기인 : 전투로 인한 사망]

전투 상황을 알리는 전광판에는 묵묵히 그렇게 적혀 있을 뿐이었다.

‘……혼자서 넷을 상대한 건가. 역시 유혜주는…….’

유혜주가 혼자서 B팀 네 명과 싸워 이기고 쓰러진 모양이었다.

어쩐지 허무한 엔딩이었다.

[생존자]

[ C팀 김진승, 이창현, 한지수]

하지만 어찌되었든 결과는 C팀의 압도적인 승리였다.

***

[Hunters, The next generation]특) 엄청 치열해 보이지만, 사실 막상 활약한 선수 상위 리그 올라오면 경기에서 개털림 ㅋㅋ.

ㄴ 응 아니야 이한솔 1부에서 활약하고있어~

ㄴ 그래도 이번에 보면 싹수 좀 보이는 애들 많지 않았냐?

ㄴ 유혜주 영입마렵네 아 ㅋㅋ 내가 단장이었으면 미리 사서 장기계약했음.

ㄴ 확실히 루키중에 압도적이긴했음

ㄴ 네 명 메이스로 뚝배기 깨버리기 ㅋㅋ

ㄴ 이게 팔라딘인가 뭐시긴가 그거냐?

경기를 끝나고 나와 어떻게 된 건지 재빨리 살펴보니, 유혜주가 메이스로 네 명을 각개격파한 모양이었다. 물론 윤한결도 유혜주와 대등하거나 그 이상이긴 했지만 적어도 이번 경기에선 눈에 더 띄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유혜주…….’

윤한결처럼 회귀 전에도 나와 같은 세대 중 가장 이름을 알린 녀석 중 하나인 만큼 확실히 싹수부터 남다른 녀석이었다.

물론 그런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유혜주는 한쪽에서 A팀 다른 녀석들한테 열변을 토하고 있었지만.

“아니 내가 혼자서 B팀을 상대했는데, 어떻게 둘이서 하나 따라가다가 다 추락해서 죽어? 게임 처음하니? 내 참 어이가 없어서.”

아무래도 화가 단단히 난 모양이었다. 나라도 저랬을 것 같긴 한데…… 막상 듣는 팀원은 아무런 데미지도 없는 것 같았다.

“아닙니다 선배님. 저번에 히든피스 찾은 것도 그렇고 저쪽에 있는 이창현 선배님이 윤한결선배님저번에 이겼던 게 뽀록이 아닌 것 같다는 말입니다. 전술적으로 꽤나 예리하고 허를 찔러서 전략 없이 무대뽀로 들이댔던 저희로서는 어쩔 수 없었던 것입니다…… 윤한결 선배님은 그래도 무력으로는 저쪽 애들보다는 더 세지 않습니까? 근데 제 생각에는 윤한결 선배님 자리에 유혜주 선배님이 있어도 결과가 똑같았을 거 같다 이 말입니다. 유혜주 선배님은 저기 이창현 선배님이 얼마나 대단한지 모릅니다. 그야말로 허를 찌르는 전략…….”

진 한은 정말 끝도 없이 말했다. 유혜주는 그걸 보고 더 분통이 터지는지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아니, 할 말이 너무 많아서 오히려 말문이 막히는 것 같았다.

한편 윤한결은 담담하게 사과하는 것 같았다.

“미안하다…… 내 불찰이다. 녀석들의 능력을 한 번 겪어 본 적 있는 만큼 조금 더 경계해야 했어.”

뭐 윤한결은 회귀 전에도 좀 저런 느낌이긴 했다. 좀 작전이 실패하거나 게임에서 지면 축 늘어져선 복기하면서 실수를 기억하고.

능력치 자체는 뛰어난 만큼 조금 뻔뻔해져도 좋을 텐데.

아무튼 경기 반응은 꽤나 좋았다.

- 근데 이번 경기에 꽤나 건진 거 많지 않음? 일단 이창현이었나, 걔 공중에서 입체기동하는 것만 봐도 속이 뻥 뚫리던데. 꽉 막힌 고속도로에서 기어가는 차마냥 움찔거리는 3부리거랑은 비교가 안됨 ㅋㅋ

ㄴ꽉 막힌 고속도로 같은 유맘주들이 평균인 우리나라의 유망주가 맞냐? 가슴이 웅장해진다.

ㄴ나 3부ㄹㅇ 많이 챙겨보는데 이거 맞말임.

ㄴ아직 아마추어 상대니까 저렇게 할 수 있는 거지 보는 눈 수준 ㅈㅈ

ㄴ말하는 거 봐라 혹시 님 PER맘임?

참고로 PER은 꼴등을 밥 먹듯이 하는 팀이었다.

대부분은 짤막하게 경기에 대한 느낌이나 소감, 아마추어적인 시선에서 바라본 경기였지만, 꽤나 날카로운 분석도 껴 있었다.

- 저거 내 생각엔 경기 처음 시작해서 인선할 때부터 미리 생각한 전략인 듯. 중력으로 떨구고, 염력으로 건져낸다? 담력도 담력이고 완전 물건인 듯 .

ㄴ응 아니야. 팀원이 적2명하고 아군1명 교환하면 이득이니까 시도한 건데 운 좋아서 팀에 염력 능력자 있었던 거야.

ㄴ근데 제가 공중 기동할 때 자세히 봤는데 마나로프 살짝 빛나는 거 봐서는 입체기동도 그냥 보통방법으로 하는 게 아니라, 특별한 스킬 같은 거도 있는 듯?

‘마나로프의 탄력을 조절하기 위해 에테르를 흘려 넣긴 했었지…… 그것까지 알아볼 줄이야.’

눈썰미가 많이 날카로웠다.

뭐, 다른 사람이 알더라도 따라할 수 있는 게 아니기에 들켜도 큰 상관은 없지만.

그리고 예상 밖의 일도 하나 있었다.

“야, 전에 심한 말 해서 미안하다.”

“…….”

“아, 기억 안 나면 됐어.”

김진승이 혼자 사과하더니 가 버렸다.

죽어도 사과는 안 할 것처럼 굴더니.

귀여운 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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