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1. 사냥감과 사냥꾼
“그래서…… 무슨 계획 있어?”
김진승이 몸을 바짝 붙이며 물었다.
거기에 같이 궁금증이 동했는지, 한지수도 딸려 왔다.
“그럼 계획도 없이 너네 둘을 뽑았겠냐? 우선, 내 말 듣고 꼭 따라야 된다. 안 듣기만 해봐 아주.”
그리곤 다른 팀이 들리지 않도록 조용히 내 계획을 속삭였다.
그 계획을 다 듣더니 한지수는 눈치 보면서 눈 굴리는 소리만 들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김진승은…….
“미친 거 아니야?”
아 거참, 내가 그래도 미래에서 왔는데 전략에 불신이 아주 참 많고만.
***
“그럼, 3대3대4 미니 헌터스 리그 게임을 시작합니다! 맵은 공중 시가전, 땅바닥에 닿아도 탈락, 전투 불능이 되어도 탈락입니다. 이번 미션 탈락자 중 프로그램 탈락자가 정해지니, 행운을 빕니다.”
조아라의 그 말을 마지막으로 한 명 한 명, 랜덤 장소로 전송되기 시작했다.
“내 말 명심해! 삐끗하면 그냥 그대로 점수 퍼주는 거니까 삐끗하던가.”
어휴…… 괜히 이 전술을 골랐나 싶기도 하고.
하지만 확실하게 승리하는 데 이만한 전술이 또 없으니깐.
아무튼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나도 랜덤 장소로 이동되었다.
‘이건 진짜 오랜만이네…….’
7대 7 헌터스 리그 정규경기에서는 몇 명 즈음은 모인 채로 시작되지만, 서바이벌 생존 게임에 가까운 미니 헌터스 리그는 무조건 무작위 지역에 리스폰되었기에 생기는 일이었다.
그때, 제일 조심해야 할 때는 바로 리스폰 직후였다.
팀원이 근처에 있어서 바로 합류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반대로 바로 적을 만날 수도 있었기에 조심해야 했다.
그렇기에 숨소리마저 죽이고 내가 리스폰 된 위치를 살폈다.
‘중앙에어리어에서 7시 방향쯤으로 치우쳐진 고층 건물…… 그리고 지금 이 건물엔 아무래도 나뿐인 것 같고…….’
꿰뚫는 눈으로 살펴본 결과 다른 생명 반응은 없었다.
일단은 한 숨 돌릴 수 있으리라. 소리를 내도 상관없고.
“다들 어디야?”
착용된 팀 전용 이어폰으로 김진승과 한지수에게 물었다.
“난 맵에서 5시 방향.”
“중앙에서 3시 방향으로 중앙이랑 끝 사이에 있어.”
“그럼 우선 아까 계획했던 대로 간다. 합류는 나중으로 미루고 중앙에서 만나. 되도록이면 들키지 말고. 상대를 만나면 교전하지 말고 피하는 방향으로.”
“알겠다.”
그후 다시 적막이 이어졌다.
꿰뚫는 눈으로 먼저 살펴봤기에 역시나 건물의 복도도, 옥상으로 가는 통로까지도 다른 사람은 없었다.
이어폰에서 들리는 소리도 잠잠한 걸 보면. 아직 싸움은 나지 않은 듯 싶었다.
이 전략의 첫 단추는 우선 이런 고요한 교착 상황에 내가 처음으로 이목을 끌면 좋으니, 시작은 그럭저럭 좋달까.
우선은 [마법공학 무기 변환]으로 무기를 총으로 바꾼 채 바깥 옥상에 도착했다.
역시나 아무도 없었다.
맵이 꽤나 넓었기에, 3대3대4. 즉 10명인 상황에서 우연히 마주치기는 힘드리라.
‘그렇기에 적을 직접 끌어낸다.’
그렇게 생각하며 고층건물과 고층건물 사이, 이동하기 위해 만들어져 있는 이질적인 흔들다리를 건넜다.
그때였다.
피슝!
시야의 오른쪽에서 화살이 날아왔다. 아무래도 벌써부터 자리잡은 원거리 딜러가 있는 모양이었다.
“뭐야, 이창현. 습격이야?”
“아니야 상관없어.”
이어폰에서 들리는 당황스러운 듯한 말을 무시하고 다리를 향해 달렸다.
‘그래 봤자 상대도 아직 팀이랑 합류는 못했으니 상관없다.’
어차피 원거리 딜러의 공격은 맞출 수 있는 각을 좁혀 줄 수 있는 근거리 딜러나 서포터가 함께 덮치는 게 아니라면 피할 자신이 있었으니까.
게다가 거리가 거리이니만큼 쉽게 맞추지는 못하는 듯 했다. 아무래도 경력이 부족하기에 맞출 수 있는 것과 맞출 수 없는 것을 구분하지 못해 그 거리에서 쏜 것이겠지.
‘후우……그래도 좋은 징조는 아니야.’
그렇기에 중앙으로 계속해서 뛰었다.
내 목표는 ‘합류’를 우선시하지 않는 전략. 상대들이 아직 우왕좌왕하고 전략이 확립되지 않았을 때야말로 큰 위력을 발휘할 것이기에.
이윽고 손 위의 전자지도를 들여다보자, 순조롭게 세 개의 점이 중앙 쪽으로 모이고 있었다. 우리 팀이 만나기로 한 중앙 쪽에 도달하기까지 교전을 잘 피했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그 점은 중앙에 완전히 도달하지 않고 어느 한 점에 멈춰 섰다.
완전히 중앙 고층 건물에 도달한 것은 이창현뿐.
모이긴 모이되 합류를 하지 않는, ‘의외성’을 노린 전략을 선택한 부분이었다.
“저격 지점 도착.”
“나도 이 정도면 안 들킬 거 같은데?”
둘 다 아무래도 적당한 곳에 숨은 모양이었다.
“바깥은 잘 보여? 나 있는 지점은?”
“그쪽에선 안 보일 텐데 이쪽에선 잘 보여.”
“나도.”
“그럼 시작한다.”
사냥을 시작할 타이밍이었다.
***
떨어져서 서바이벌처럼 시작하게 되는 이 미니 헌터스 리그 프로그램에서는 전략이 크게 두 가지로 갈렸다. 합류를 우선시하여 팀워크에서 오는 플러스효과를 노리던가, 아니면 개인기량을 믿고 각개격파, 혹은 상황에 따라 적당히 분할되어 행동하던가.
보통은 합류를 우선시하는 전술이 기본이었다. 물론 팀 상황과, 경기가 흘러가는 양상에 따라 다른 필요는 있었지만.
그중 이창현이 택한 것은 제3의 선택지. 바로 ‘들키지 않는 합류’였다.
“그럼 시작한다.”
이창현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이어폰을 듣기 전용 모드로 바꿨다. 아무래도 너무 시끄러울 것 같았으므로. 그리곤 하늘을 향해 에테르가 장전된 총을 마구 쏴 갈겼다.
탕 타타탕 타탕!!
중앙에 있는 최고층 건물에서 쏘아진 소리였기에 그 소리는 맵 전역을 향해 퍼졌다.
총성은 한두 번으로 끝나지 않았고, 마치 소리를 듣고 이곳까지 따라오라는 듯. 지속적으로, 그리고 불규칙적으로 울려 퍼졌다. 마치 실제 전투상황인 것처럼.
그리고 에테르에 의해 채워진 한 탄창이 비워질 즈음…… 입질이 왔다.
소음에 이끌려 온, 경기에서 실질적으론 처음 만나는 적이었다.
“…… 선배님 혼자서 뭐하심까?”
이름이…… 진 한이었나.
저번에 와서 잔뜩 시끄럽게 떠든 녀석이었다. 아무래도 교전 중에 끼려는 속셈이었는데 막상 와 보니 혼자서 총을 쏴 갈기고 있자 당황한 듯했다.
그것도 잠시, 기세등등하게 칼날을 세우며 전투태세를 취했다.
“선배밖에 없는 것임까? 하하…… 이걸 행운이라고 해야 할지…… 아무튼 선배님. 잘 부탁드리지 말입니다. 제 첫 상대 말입니다. 아 이거 선배한테 말해야 하는데……”
“이어폰 안 끄고 하두 시끄럽게 굴어서 다 들었어. 상황 설명할 필요 없어. 거기서 시간만 끌어. 해치울 수 있으면 해치우고. 지금 가고 있으니까 무리하지 마라!”
진 한이 낀 이어폰 너머로는 윤한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대로 시간이 끌리면 2:1…… 아니, 증원이 더 올수도 있으니 그 이상의 상황인가.’
한편 진 한은 음흉하게 웃음 지으며 말했다.
“선배님은 팀원들 다 두고 왜 혼자오셨지 말입니까…… 선배가 근접포지션 기동성 시험에서 1등했다는 건 들었습니다만, 1대1에선 제가 자신 있다 이말입니다…… 선배님은 모르시겠지만 스터디까지 짜서 마나 총 대응방법까지 연구한 것입니다…….”
주저리주저리. 싸우지도 않고 말이 많았다.
시간이 끌리면 이창현으로서는 좋았지만, 아무래도 이건 ‘연기’였으니까…… 너무 잡다하게 생각할 시간을 주는 건 좋지 않았다.
“왜 내가 팀원들을 다 두고 왔다고 생각하지?”
“그야, 있었다면 진작에 협공해서 저를 치워 버렸겠지 말입니다…… 어쨌든 없는 건 알았으니 됐습니다. 선배님에겐 미안하지만 윤한결 선배랑 싸웠던 이야기는 끝나고 나서 듣겠다는 것입니다…….”
궁금하지도 않은 말을 혼자 막 내뱉는 게. 아무래도 저 스피커 좀 어떻게 끌 수 없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생각을 끝내기도 전. 녀석은 이빨을 드러냈다.
“하압!”
챙!
기합과 함께 직선적으로 가해진 일격.
‘크…… 역시 힘으로는 스테이터스에서 한참 밀리네…….’
한 번 합을 겨뤄 보니 딱 견적이 나왔다.
아무래도 나는 이번에 포지션을 잘못받아 근접 포지션에 배정되었지만, 원래는 원거리 포지션이기도 하고…… 아직 훈련이 덜 되어 스테이터스 면에서는 많이 밀리기도 하고. 직접적으로 맞붙는 것에선 확실히 밀리는 게 느껴졌다.
‘하…… 이런 기분은 신선하네.’
확실히 만개를 개방했던 회귀 전에는 흔히 있는 일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회귀 전의 짬은 어디로 가는 게 아니었다.
게다가 미리 짜둔 전술도 있었다.
선택할 것은 단연 정해져 있었다.
‘일단은 시간도 끌 겸 뒤로 뺀다.’
“어딜 가심까!”
에어앵커와 에어비트를 다루는 기동성 시험에서의 보여 준 모습은 여과 없이 이 게임에서도 드러났다.
총의 단단한 면으로 칼을 막고 있던 것이 밀림과 동시에 뒤로 팔을 뻗어 에어앵커를 사출했고, 이창현은 시계추처럼 에어앵커에 연결된 마나로프를 타고 뒤로 날아갔다.
“…….”
그런데 이창현이 진 한을 가볍게 봤던 걸까.
진 한 역시 에어비트를 깔아 크게 뛰어오르며 이창현을 공중에서 바짝 추격했다.
“놓치지 않슴다! 제가 근접포지션에서 선배들 공중에 날아가는거 반도 못따라가고 연습했는지 아심까! 그 피와 눈물로 얼룩진 제 훈련의 성과를 직접 상대해보십쇼. 피하지 말고 정정당당하게 붙는 것입니다. 선배도 남잔데 그렇게 쫄보처럼 튀는 건 좋지 않슴다. 그 뭐냐 모 만화에 나오는 대사 중에 그런 거 있잖슴까. ‘엎드려 살지 마라, 일어나 죽는 거다’같은! 선배는 쪽팔리지도 않슴까! 저랑 죽을 때까지 생사결을 하는 검다!”
하여간 공중에서도 저놈의 입은 쉴 날이 없었다.
하지만, 저놈이 뭔 말을 하든 말든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렸기에 기존 작전이 틀어질 행동을 할 일은 없었다.
게다가 공중곡예는 이창현의 영역이었다.
기동성을 강조해서 하체를 단련한 만큼이나, 회귀 전 가장 자신있는 것 중 하나가 에어앵커와 에어비트 활용이었으므로. 그러면서도 동시에 계속 도망치지는 않았다.
이창현은 에어앵커를 공중에 계속 설치하며 스파이터맨처럼 나아가고, 진 한이 그걸 에어 비트를 깔아 뛰어날아 따라가는 가운데.
한번은 이창현이 에어앵커의 마나로프를 계속 잡은 채, 크게 공중으로 한 바퀴 돌아 이창현을 향해 날아오는 진 한의 뒤를 노렸다.
챙!
‘소용없나.’
센스 있는 플레이 였지만, 진 한도 여기선 상위권 플레이어인 만큼 즉석에서 만들어 낸 임기응변에 당할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진 한도 꽤나 재능있는 유망주였던 만큼 총구를 들이밀려는 순간, 빠르게 칼로 쳐냈던 것이다.
‘총으로 견제할 틈이 거의 없다.’
이미 한 번 가까이 붙은 순간 결정된 사항이긴 했다.
헌터의 속도는 일반인이랑 비할 수 없는 부분인 만큼, 한 번 붙은 이상 근접포지션의 무기가 훨씬 유리할 수밖에. 거기에 더해서 진 한은 모르겠지만, 생존 게임 때와 달리 히든피스가 아닌 지금의 에테르는 그리 강력하지 않았다. 그때의 에테르는 맵의 히든피스로서 엄청난 힘이 숨겨져 있었으니까.
‘게다가 마나량이 부족해서 어차피 이 총 위력으론 해치우지도 못 해.’
하지만 그렇게 쫓고 쫓기는 추격전도 잠시.
더 이상 그걸 지속할 수 없어졌다.
“선배! 여김다!”
에어앵커로 계속해서 도망가던 이창현의 뒤쪽 건물에는 어느 샌가 윤한결이 도착해 있었다.
“전력으로 쓰러뜨린다.”
“……”
그리고, 그렇게 말하는 윤한결을 보며 되레 이창현은 이어폰 마이크에 작게 속삭이며 웃었다.
“김진승, 한지수. 준비해.”
이제는 사냥감이 사냥꾼이 될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