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8. 누가 누굴 교육해?
“그럼 윤한결은 근접 포지션에 넣고…… 그래도 전반적으로 깔끔하게 들어맞는 편이네요. 어중간한 애들은 별로 없는 편이고.”
“아무래도 완전히 아마추어는 아니고 적어도 준 프로는 되는 애들이니까. 자기 포지션 정도는 숙지하고 훈련하는 감이 없잖아 있긴 하지.”
이민석이 말했다.
“응? 근데 얜 왜 여기에 넣어 놨어.”
“이창현이요?”
“당연히 원거리 딜러 쪽 포지션에 넣을 줄 알았는데, 실수한 거 아니야?”
고개를 갸웃하는 이민석의 말에 조아라는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어차피 다양한 무기를 다루기도 하고…… 무엇보다 팀 게임인데, 자기 자신의 에고가 너무 강해요. 자만심에 가까울 정도로…… 그래서 일부러 근접 포지션에 넣었어요. 거기 멘토가 이성진 헌터니까.”
“지금 그러니까, 그래도 아마추어급인 루키를 1부 프로 헌터랑 기싸움이라도 시켜서 기를 꺾겠다. 이 말이야?”
이민석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탄식했다.
“아니…… 가장 어울릴 것 같은 포지션인가를 두고 판단해야지 그렇게 판단하면…….”
“이미 올라간 사항이에요. 그리고 어차피 이 프로그램은 ‘교육’의 의미도 있으니 긍정적으로 생각해 주셨으면 해요.”
조아라는 서류심사 때와 인터뷰 때의 이창현을 떠올렸다.
‘천장 높은 줄 모르고 콧대만 높아지는 루키는…… 한 번쯤은 꺾여 줘야 해.’
이게 솔직한 조아라의 심정이었다.
***
에어앵커, 에어비트를 비롯한 수많은 마나도구들. 그것을 수족처럼 다룰 수 있느냐 없느냐 여부야말로 헌터와 아마추어를 가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이 선수의 급을 나누는 요소 중 하나인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마나장비들의 종류는 수십 가지에 달하는데 그것들을 다 잘 활용할 수 있을 리가…….’
또한 경기에 따라, 상대방에 따라 필요한 마나 장비 또한 다르기 마련이었다. 그렇기에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 경우의 수의 전투가 나왔으며, 마나장비를 다루기에 따라서는 가끔이지만, 절대적인 스테이터스와 스킬의 열세에도 뒤집히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물론 마나 장비 종류 하나하나가 숙련도까지 필요한 점을 고려하면, 그야말로 마나장비야말로 재능이 구린 헌터들에게 블루오션이자, 고행의 길이었다.
“어이! 한국 헌터계의 최고의 루키들이라는 녀석들이 이래서 되겠어? 다시 당장 일어나라. 다른 마나장비도 아니고 에어앵커와, 에어비트를 다루지 못하는 녀석은 헌터가 될 자격조차 없다!”
이성진은 그 사실을 더욱 잘 알고 있었기에 모질게 지원자들을 몰아붙일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말랑말랑하게 가르쳤다간, 앞으로가 더더욱 힘들어지는 건 뻔했으니까.
“3부 리그는 그야말로 신인들의 무덤이다. 너희같이 에어앵커나 에어비트 하나 제대로 못 다루는 녀석을 유린하기에 딱인 리그지. 어이. 거기 굼벵이. 당장 안 일어나나?”
그랬기에 이성진은 더욱 호통을 더해 가며 엄하게 가르쳤다.
‘아이고…… 시끄럽고만…… 뭐 저리 시끄러운지 소음공해가 따로 없네.’
물론 이창현에겐 그저 시끄러운 외침 정도로만 들렸지만.
회귀한 이창현에게 있어서는 역시나 에어 앵커의 사용 정도는 별다른 장애물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어려진 만큼 좀 더 유연하게 움직여지는 느낌까지 들었으니까.
그래서 이창현은 현재 자기 자신의 연습을 하기보다 주변을 관망하고 있었다.
특히, 근접 포지션에 있는 유일한 친구. 김도준을.
‘어휴…….’
다른 애들도 크게 다르지 않긴 했지만, 역시나 감을 전혀 잡지 못하고 있었다.
에어 앵커는 고정시킬 위치와, 마나로프의 길이. 그리고 몸의 무게중심을 움직이는 것. 공중에서 원하는 포즈를 취할 수 있는 유연함과 근력. 그 모든 것이 중요했다.
하지만, 지금 막 배운. 아니, 시도해 보라고 방생당한 입장에서는 어려울 수밖에.
“야야 김도준! 그렇게 하지 말고 이리 와 봐.”
“……왜. 너는 연습 안 하냐? 이따가 이거 테스트해 본댔는데……”
“난 내가 알아서 할 문제고. 넌 그렇게 해서 되겠냐?”
김도준은 혼이 빠진 듯한 모습이었다. 아무리 해도 잘 되지 않는데 팩트 폭력까지 더해지니 넋이 나갈 수밖에.
“그래서…… 뭔 방법이라도 있어?”
“우선 마나로프 길이부터 생각해. 마나를 계속 일정한 강도로 사출하란 말이야. 지금 안 그러니까 자꾸 마나로프 길이가 변해서 자세도 못 잡고 무너지잖아. 그리고 무게중심. 발 아래에 땅이 없는 만큼 몸의 코어를 무게중심으로 삼아야지.”
이창현은 시범을 보이듯, 공중에 바로 에어앵커를 고정시키고는 로프 액션처럼 날아서 공중에서 한 바퀴 돌고는 착지했다.
“이렇게. 코어에 중심을 두면 어디서나 낙법을 펼치거나 자세 바꾸기에 용이해. 마나 사출강도는 항상 신경 쓰고. 우선은 사출강도를 일정하게 하는 것부터.”
김도준이 다시 날아올랐다.
이번에는 종전과 달리 꽤나 안정적이었다. 공중에 사출한 에어앵커가 붙박히듯 정확히 고정되더니 김도준을 안정적으로 끌어올리며 이동시켰다.
“오…… 오! 봤냐? 봤냐구. 그~냥 바로 배워 버리기~ 이게 재능이다. 알겠냐?”
순간 괜히 알려 줬나 싶었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거 보니까 이창현으로서도 저런 시절이 있었던 것 같아 괜스레 민망해지기도 했다.
그렇게 김도준이 더 몇 번의 시도를 하고 이창현이 그걸 지켜보던 찰나였다.
“어이 거기! 뭘 그렇게 편히 앉아 있나. 소풍왔어?”
이성진이 다가오더니 소리쳤다.
“하여간 제대로 뭐 하나 다루지도 못하는 녀석들이 이렇게 빠져서야.”
이성진의 목소리가 꽤나 컸기에 시선이 이리로 집중됐다.
“지원자. 이름이 뭐야.”
“이창현.”
‘한 번 기강 잡으려는 건가. 하필이면 타이밍이 별로 안 좋았네. 뭐, 그래도 크게 상관은 없지만.’
이창현으로서는 한번 기강을 잡으려는 이성진이 이해가 가면서도 대상이 자신이라는 것에 조금이지만 짜증이 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약간은 퉁명스럽게 반응한 면이 있었다.
이성진은 이창현이 존댓말 없이 그냥 자신의 이름만 내뱉자, 더욱 열이 올랐다는 듯, 더 큰소리로 말했다.
“그래, 이창현 지원자. 이창현 지원자는 자신이 있어서 가만히 있었던 거겠지요?”
그것도 지금껏 한 번도 쓰지 않았던 존댓말이었다.
“뭐, 그런 셈이죠.”
하지만 이번엔 그리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뭘 시험할지도 궁금하기도 했고, 회귀 전 경력까지 따지면 어찌되었든 후배일 텐데. 후배 교육은 선배의 몫이 아니겠는가.
이창현의 그런 대답에 이성진은 미간에 주름이 하나 더 늘었다.
아무래도 어지간히 화가 난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시간을 너무 많이 줬나 본데, 그럼 겸사겸사 지금 테스트를 시작하겠다. 다들 준비하도록.”
이성진의 그 말에 이창현을 째려보는 눈길이 늘었다. 자기들이 연습할 시간이 사라진 셈이었기에.
“지금 저기 상공 100미터에 달아 둔 에어 앵커의 닻을 떼어 오면 된다. 그럼. 시작하겠다. 아, 참고로 말하는데 할 줄 안다면서 편히 앉아서 쉬던 녀석이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떨어진다면 헌터의 자격이 없다고 본다만.”
너무 눈에 빤히 보이는 수작이었다. 이번 테스트를 빌미로 [Hunters, The next generation]에서 탈락시키려는 것이리라.
하지만 무언가를 빼앗으려고 한다면, 그와 동등한 가치를 걸어야 하는 법. 그대로 물러서는 건 성미에 안 맞았다.
감히 회귀 전이지만 최고의 선수였던 내게 탈락 미션을 걸었다면 반대의 경우도 무언갈 갚아 줘야 하지 않겠는가?
“좋아요. 근데 제가 닻을 떼어 오면 어쩌실 거죠?”
“그래, 만약 그렇다면 넌 내 수업 때 하고 싶은 대로 마음대로 다 해도 좋다. 닻을 떼 온다면 말이지.”
이성진이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
‘불가능하다.’
이성진은 그렇게 생각했다.
설치해 놓은 닻은 무려 100미터 높이. 에어앵커를 처음 다루는, 아니. 꽤나 다뤄 본 중급자조차도 닿을 수 없는 높이였다.
100미터를 날아오르려면 길어야 몇 미터단위로 설치할 수 있는 에어 앵커를 수십 개나 이어 붙어야 하는 높이였다.
그뿐만인가, 사람은 태생이 땅에 발을 붙이며 사는 동물인지라 하늘에 높이 뜬다는 것 자체가 공포였다.
지금 꽤나 성공적으로 다루는 녀석들도 전혀 공중을 활보하거나 날아다닌다는 개념은 아니었다. 잘 다루는 녀석이 마치 타잔처럼 에어앵커를 시계추처럼 활용해 빠르게 날아다니는 정도일 뿐.
100미터를 날아오르기 위해서라면 완전히 상식, 기존의 개념 자체를 깨야만 가능했다.
‘그럼 그렇지.’
그리고 그런 이성진의 예상은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 시작하자마자 바로 공중으로 에어앵커를 설치하는 녀석은 많았지만, 몇십 미터는 커녕, 10미터의 벽을 돌파한 녀석도 없다시피 했다.
그런데 한 녀석.
‘호오…….’
눈길을 끄는 녀석도 있었다.
비록 에어앵커를 효과적으로 활용해서 올라가는 건 아니지만, 어찌되었든 100미터 위의 닻만 빼오면 상관 없는 것이니 할 수 있는 방식이었다.
‘검을 타고 날아다니다니…… 염력인가? 아니, 그보다 상위의 무언가인가…….’
윤한결은 에어비트를 중간중간에 설치하고 검을 빠르게 날아다니게 하여, 그 모든 것을 발판으로 딛어 공중을 활보했다.
‘에어앵커 활용은 없어서 아쉽지만 저 녀석이라면 100미터를 올라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능력의 사용에 대한 제한을 두지 않았으므로 이성진이 할 말이 없는 상황이기도 했고. 한편으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창현 지원자…… 아까 꽤나 자신이 있어 보이는 듯한 태도였는데, 그도 무언가 능력이 있었던 걸까. 하는 생각이.
아니나 다를까, 윤한결을 보고 있던 도중 반대편에서 오오오…… 하는 탄성 소리가 들려왔다. 이창현이 있었던 곳이었다.
‘아니…… 이건…….’
이창현이 날아오르고 있었다.
그야말로 공중을 활보한다는 표현이 어울렸다.
‘어떻게 저런…….’
한두 개의 에어앵커를 이용하는 것 자체는 충분히 말이 된다. 이창현 옆에 있었던 김도준도 해냈으니. 하지만 저런 건 도저히 처음 다룬다고 볼 수 없는 경지였다.
이창현은 에어비트를 통해 하늘로 크게 점프한 후, 고점에서 약간 떨어지며 에어앵커를 설치했고, 그후 중력을 역이용해 원을 그리며 하늘로 다시 힘차게 돌아 올라갔다. 그렇게 한번에 십 미터에 달하는 높이를 올라간 후, 마치 스파이더맨처럼 이곳 저곳을 에어앵커로 날아다니며 떨어졌다 올라갔다를 반복하며 올라가고 있었다.
‘저 녀석은 떨어진다는 것에 대한 공포가 전혀 없나?’
헌터도 사람인 만큼 큰 충격이 가해지면 반드시 죽었다. 아무리 여기가 가상현실 공간이라고 한들, 감각은 완전히 같게 조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저 녀석은 대체 무엇인가. 마치 상공이 제 놀이터라는 마냥 날아다니고 있지 않은가.
이성진은 차마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였다.
그리고 몇 분 지나지 않아, 이창현은 누구보다 높은 곳. 상공 100미터에 도달해 모두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성진이 달아 놓은 에어앵커를 손에 쥔 채였다.
그리고…….
‘떨어진다…….’
마치 아파트 위에서 뛰어내리려는 사람마냥. 겁이 없는 행보였다.
떨어져도 아무런 느낌을 받지 못한다는 듯. 아니, 오히려 즐긴다는 듯.
어떻게 봐도 두려움이 보이지 않았다.
장비 사용의 어리숙함 따위는 이미 저 멀리 날아간 채였다.
누구보다도 숙련되었으며, 즐길 줄 아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오랜 경력의 헌터가 하늘을 누비며 온 몸의 자유를 즐기듯.
아이같이 즐거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의 마지막.
이창현은 떨어지기 직전, 상공에 에어앵커를 설치했다.
그리고 떨어지는 속도에 의해 에어앵커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몇 바퀴 돌고는. 완벽하게 착지했다.
“시원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