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5. 대련과 가르침
“후욱…… 후욱……”
처음은 가볍게 50kg 그 다음은 70kg……그리고 그 다음은…….
점점 무게를 늘려 가며 들 수 있는 한계 무게에 도달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재미있는 점은, 계속 운동을 하는 도중에도 들 수 있는 무게가 조금씩이지만 더 늘어났다는 점이었다.
“방금 전에 들 때 한계 아니었어? 무게를 거기서 더 늘리게?”
실제로 그 모습에 김도준은 얼떨떨해하기도 했고.
김도준이 이제 더는 무게를 못 늘리겠지? 하는 표정으로 바라보니 더 열내서 무게를 올린 감도 없잖아 있긴 했다.
아무튼 중량을 한계치에서도 끊임없이 늘려 가며 운동했기에 운동시간 자체는 그리 길지 않았다.
그럼에도 꽤나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힘 : 5 + 0.16]
[반응속도 : 6 + 0.1]
[유연성 : 6.6]
[지구력 : 5 + 0.66]
[재생력 : 5]
[마나량 : 5.6]
저번 시험 때랑 체력 훈련까지 더해서 능력치가 적게는 0.1에서 많게는 0.6까지나 늘어 있었다
‘확실히 회귀 전이랑 비교했을 때 성장 수치가 비교도 안 되네…….’
역시 이것도 ‘만개’의 능력 중 하나인 듯했다.
‘만개는 계기, 업적을 쌓았을 때 새로운 초능력이나 다름없는 “재능”을 만들어 주는 능력, 스테이터스 성장을 폭발적으로 도와주는 능력. 이렇게 구체적으로 두 가지 능력인가.’
하나만 있더라도 아주 좋은 능력이었지만, 두 가지를 모아 놓고 보니 또 이만 한 사기도 없다는 능력도 들었다.
게다가 만개를 개방했을 때 폭발적으로 성장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최고의 스킬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로.
물론 지금은 몸이 성장하는 중이기도 하고, 각성을 한 지 얼마 안 되었기에 성장이 더 폭발적인 것이긴 했다.
“그래서. 체력 단련 후엔 또 뭘 할 건데? 나한테 추천할 만한 건 없어?”
가만히 옆에서 같은 운동을 하던 김도준이 말했다.
‘아무래도 김도준은 이미 아카데미에서 기초 체력 정도는 다져서 나처럼 할 필요까진 없긴 하지…….’
“네가 할 만한 거라…… 그러기엔 내가 널 그만큼 잘 알지는 않는데?”
“앗…… 그렇네.”
김도준은 아차 싶었는지 고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이라도 따로 행동을 하며 시설을 더 둘러볼지 아니면 계속 다닐지 고심하는 중이리라.
‘물론 꿰뚫는 눈으로 현재의 모습이건 회귀 전의 모습으로건 많이 살펴봐서 대충 알긴 하지만…….’
쉽게 능력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을 날로 먹여 주면 재미가 없지 않은가.
마침 탱커클론 때도 떠올랐고, 수준차이도 알려 줄 겸 떠오른 것은 역시 대련이었다.
“그럼 나랑 1대1. 한판 어때.”
그 말에 찰나였지만 김도준의 눈도 날카롭게 빛난 듯했다.
“좋아.”
***
헌터 연합 훈련소. 온갖 훈련시설이 갖춰진 만큼 당연히 대련 연습시설도 있었다. 헌터스 리그의 룰에 따르는 7대 7 전장부터, 개인별 연습을 위한 1대 1시설까지.
그중 이창현과 김도준이 찾은 곳은 단연 1대1 시설이었다.
“우와…… 사람 진짜 많다.”
김도준은 새삼 입을 벌리며 감탄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종합 체력단련실과 달리 이곳은 사람들로 북적북적거렸으니까.
“여기서는 단순 1대1 대련만 하는 게 아니야.”
“그러면?”
“여기는 연습시설의 의미를 제외하고, 1대1 랭크전 장소이기도 하니까.”
“아…… 그럼 여기가…… 평소에 넛튜브에서 봤던 랭크전이 촬영되는 곳이구나. 생각해 보니까 비슷하게 생겼네.”
헌터스 리그에는 단순히 7대 7 팀 경기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3대3같은 미니 리그뿐만 아니라, 실제 1세대 헌터들의 탑 공략 환경을 조성해 놓고 행해지는 “던전 돌파”. 그리고 주로 1대 1로 이루어져 단순하게 무용을 다투는 “랭크전”까지.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었다.
“물론 사람이 많은 건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닐걸?”
어느 순간엔가 그 많은 사람들 중 일부는 이창현과 김도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럼?”
“자기 후배 될 만한 애들 중에 싹수 있는 애들 한번 살펴 두는 거지. 팀에 영입 요구를 할 수도 있고, 나중에 경쟁자가 되면 미리 스킬 같은 걸 기억해 둬서 대응할 수도 있고. 그냥 뉴비들 단순 구경의 의미도 있고. 아무래도 혈기 왕성한 뉴비들이 제일 많이 오는 곳이 이 대련장이니까.”
실제로 이미 곳곳에서 오디션 프로그램 참가자들의 대련이 이어지고 있었다. 윤한결이나 유혜주, 진 한 같이 뛰어난 랭크를 거둔 녀석들뿐 아니라, 눈에 크게 띄지 않았던 녀석들까지.
“왜. 사람 많다니까 쫄려?”
그 말에 김도준은 웃음을 짓더니 대답했다.
“너나 망신 안 당하게 조심해야 될걸.”
혼자 멋들어진 퍼포먼스를 보여 줘 다른 사람들에게 박수라도 받는 상상을 한 걸까.
뭔가 꺼림칙한 웃음이었다.
***
검(劍).
장병기의 시대에 만병지왕으로 불렸던 무기. 그 무기는 갑작스레 나타난 탑과 그 공략을 위해 다시금 주류 무기의 반열에 들 수 있었다.
기존 백병전의 최고 무기였던 총은 마나 효율 문제뿐만 아니라, 무기의 소모성이 너무 짙은 나머지 탑 공략에서 주류를 차지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헌터스 리그에서도 마나로 신체를 강화했을 때 기본적인 총탄은 육체를 뚫지 못했기에 순식간에 헌터계에서는 사장되었다.
그때 초신성처럼 등장한 것이 유럽의 원거리 딜러 에단 호크였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마나 보유량으로, 아무리 마나탄을 쏴도 지치지 않았다.
게다가 타고난 마나량은 그 강력함 또한 굉장했기에, 당시의 에단은 거의 중세시대 전투에 뛰어든 현대 군인 같은 위용을 뽐냈었다.
하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에단의 마나량이 인간으로선 비정상적으로 많았기에 가능했을 뿐. 그 후로도 총기를 사용할 수 있는 원거리 딜러는 거의 없었다.
이창현이 총을 썼다고는 하나 그건 히든피스 “에테르”를 사용했을 뿐, 지금 같은 1대1 상황에선 총을 쓰더라도 통상적인 마나량을 생각하면 몇 방이 한계이리라.
그렇기에 김도준은 긴장하지 않고 먼저 탐색전을 벌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 예상은 반쯤은 빗나가지 않았다. 이창현은 총을 들지 않았다. 놀랍게도 검을 뽑아든 것이었다.
‘검이라면 절대 쉽게 안 밀리지…….’
김도준의 마음에 자신감이 솟아올랐다. 언제 쏘아질지 모를 총을 견제하다가 같은 검사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진 것이었다.
그 순간 ㅡ
챙!
선수는 이창현이 먼저였다.
우직했지만 특별함은 없었다. 김도준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랬다.
챙! 챙!
‘…….’
그런데 한 번, 두 번 계속해서 합을 나눌수록 느낄 수밖에 없었다.
검술에 있어선 자신이 우위라고 생각했건만 결코 주도권을 가지지 못한다는 사실을.
“어렸을 때 검도라도 따로 연습한 거냐? 각성한 지도 얼마 안됐으면서.”
“글쎄.”
보통은 각성한 후, 헌터가 되기로 마음먹고 나서야 장병기를 다루는 기술을 연습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각성한 지 얼마 안 된 녀석이 검술을 꽤나 오래 배운 자신과 맞수라면…….
‘재능…… 인가’
김도준은 이를 악물었다. 아무리 예선과 생존게임에서 이창현이 보여 준 게 많다고 해도 여기선 밀리기가 싫었다.
그렇게 다시 호흡을 가다듬고 달려들려는 찰나, 이창현의 무기가 바뀌었다.
‘이번엔 창?’
예상하지 못한 변화였다.
무기가 바뀐 것도 잠시, 이창현은 숨 쉴 틈을 주지 않겠다는 듯, 빠르게 몰아쳤다.
‘창도 숙련도가…… 압도적이다.”
그 증거는 바로 압도적인 거리 감각이었다.
검에는 없는 창의 특별한 장점. 리치가 길다는 장점을 극한으로 활용해 일방적인 공세를 취하고 있었다.
빠르게 내려치는 검을 창의 뒷부분으로 막더니 바로 돌려서 역공.
창을 많이 써 본 사람이 아니라면 결코 할 수 없는 노련함이었다.
‘난 안 닿지만, 이창현만이 닿는 거리…… 제길.’
심지어 다음 순간에 창에서 양손 대검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쯤 되니 놀라움을 넘어서 경악스러울 수밖에.
그렇게 1대1의 대련은 김도준을 유린하듯 무기를 바꾸어 계속되었고, 거듭된 공세에 김도준은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완벽한 패배다…….’
넘어져 있는 김도준에게 이창현은 어느새 다가와 손을 내밀고 있었다.
“어때, 네가 인터뷰에서 라이벌이라고 말한 내 솜씨가.”
물론 죽어도 대답하기 싫었기에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이창현은 계속해서 히죽거렸고, 결국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음…… 그래. 한 수 위네.”
“새끼. 한 수 위는 무슨…… 지금 것도 한참 봐줬구만.”
‘봐줬다고…….’
김도준으로서는 믿기 힘들었지만, 농담을 하는 눈치는 아닌 것 같았기에 마음이 심란했다.
자신이 이 정도로 밀리나 싶은 마음과, 재능이 부족한가 싶은 회의감이 가득 찼다.
하지만 그 마음을 모두 읽었다는 듯, 이창현은 어깨를 툭툭 쳤다.
“네가 왜 졌는지 알아?”
“…….”
대답하기 싫었다.
처음 서울 시립아카데미에서 만났을 때만 하더라도 그냥 친구가 하나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순식간에 보여 준 재능이 워낙 압도적이었기에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창현은 아랑곳하지 않는 듯 말했다.
“넌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어.”
1대1 경기장을 다시 생성하고는 이창현은 다시금 자세를 잡고 있었다. 무기를 변환시켜 김도준이 들었던 칼을 만들고, 그때 취했던 포즈를 흉내 내면서.
이창현이 펼친 검은 전형적인 중검이었다.
무거운 검. 태세 전환이 빠르지 않지만 지긋이 상대의 공격을 보면서 응수에 능한 검이었다.
“이게 네가 펼친 검. 하지만 네 능력을 볼까? 넌 순간 가속 능력과, 거기서 나오는 의외성, 그리고 순간의 임기응변이 뛰어난 편이지. 거기에 중검이 합쳐진다면? 아무런 시너지도 발생하지 않는다.”
김도준으로서는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일이었다.
그냥 가르침을 받으면 받는 대로, 주입식교육으로 검을 배웠기 때문에 일어난 폐해였다.
머리 속이 어지러웠다.
“하지만 네가 가벼운 찌르기 위주의 쾌검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
어느 샌가 이창현이 들었던 검은 마법공학 무기변환으로 마치 펜싱 칼 같은 뾰족한 찌르기용 칼이 되어 있었다.
그러더니 하나, 둘. 가볍게 스텝을 잡더니 샤샥, 하고 가볍게 휘둘렀다.
“네 순간 가속 능력은 하나하나 상대에게 비수로 꽂힐 수 있다.”
정말이지 빠른 속도였지만, 김도준은 그 말에 눈을 빛낼 수밖에 없었다.
검만 달랐을 뿐, 이창현이 취한 행동은 김도준이 대련 도중 중검으로 취한 행동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헌터 리그에 뒤이은 후배가 되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탱커클론 때. 그리고 생존게임, 대련에 이어서 김도준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단 한 번의 대련으로 상대를 마치 꿰뚫듯 습관까지 분석해내는 능력. 그리고 거기에 김도준으로서는 잘 들어보지 못한 스타일의 변화를 꾀해 주기까지…….
물론 그 스타일이 김도준에게 명확히 어울리리라는 보장은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대련하면서 재능의 벽을 느꼈기에, 아니. 이창현의 통찰의 재능과 동작을 봤기에 기대감이 샘솟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저렇게 될 수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