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4. 원거리딜러에게 필요한 점은
방송이 끝난 대기실에는 적막감만이 돌고 있었다.
재미있는 점은 서로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서류심사에서는 사실상 서로 마주칠 일이 없었고, 생존게임에서는 한정적으로 몇몇만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방송에서는 유망해 보이는 지원자의 활약상 위주로 나오다 보니 이목이 집중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특히 그중에서도 이창현은 따가운 눈총을 느끼고 있었다.
‘정상급 리그도 아니고 겨우 유망주끼리 대결에서 다 묻어 버린다고 한 거 가지고 원.’
여과 없이 불쾌감을 드러내는 녀석도 있었다.
“운 좋게 히든피스를 찾았다고 멋모르고 나대는 녀석.”
물론 대놓고 하는 소리는 아니었지만, 안 들릴 정도는 아닌. 그런 정도였다.
한편으로 서울 시립 아카데미 출신에, 압도적 무력을 보여 주며 정도를 걷는 윤한결은 선망의 대상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암묵적인 신경전이 오가던 중, 모여 있던 대기실에 안내인이 도착했다.
그후 곧바로 근처에 있는 연합 훈련소로 안내했다.
“앞으로 헌터스 리그 프로그램이 떨어지기 전까지. 지원자들은 헌터스 리그 연합 훈련소에서 합숙하게 됩니다. 장소가 장소이니만큼 원하는 종류의 모든 훈련이 기본적으로 지원되며, 그곳에 있는 동안은 특별 개인교습 및 컨설팅 등 혜택 또한 무료로 제공됩니다.”
아직 능력치가 모자라 성장을 빨리 끌어올려야 하는 이창현의 시점에서는 굉장한 기회였다.
“그럼, 지원자 여러분들의 성장을 기원하겠습니다.”
지원자들의 앞엔 마치 대학캠퍼스처럼 펼쳐진 거대한 부지, 돔 형태로 이뤄진 훈련장과 거대한 사무복합시설 등의 건물이 가득한 ‘헌터스 리그 연합 훈련소’가 눈앞에 있었다.
***
헌터스 리그 연합 훈련소. 이는 헌터스 리그에 속해 활동하는 헌터들뿐만 아니라, 정부에서 활약하는 공무직 헌터, 그리고 탑을 관리하는 최전선 헌터들도 사용하는 최신식의, 그리고 최전선의 시설이었다.
‘물론 회귀 전에는 밥 먹듯 드나들었던 곳이지만…….’
이창현이 아닌 김도준으로서는 아직 아카데미생이었기에 처음 이용하는 것이리라.
“언제 와 본 적 있어? 어떻게 시설을 그렇게 잘 알아?”
“나한테 필요한 훈련이 뭔지 아니까 딱 지도 보고 아는 거지. 그보다 너는 왜 자꾸 따라오는 거야. 너도 너대로 훈련해야지. 내가 니 엄마냐? 졸졸 따라오게.”
“시설도 제대로 모르는데 훈련은 제대로 할 수 있겠냐. 그냥 너 따라다니면서 똑같은 훈련 할련다.”
뭐…… 틀린 말은 아니긴 했다.
그렇게 훈련소 부지에 도착한 후, 바로 향한 곳은 종합 체력 단련실이었다.
‘체력 단련실이라고 해서 무식한 단련기구만 있을 것 같지만…….’
이곳은 어디까지나 ‘헌터’들을 위한 시설이었기에 그렇게 단순한 것들만 존재하지 않았다.
단순히 헬스장처럼 체력과 근육을 단련하는 것들도 있었지만, 한 편엔 마나 컨트롤을 단련하는 기구, 그리고 마나량을 증가시키도록 촉진시키는 기구, 무중력상태를 체험할 수 있는 기구 등도 있었다.
그야말로 “헌터의 몸”을 단련하는, 그리고 기초체력이라고 할 수 있는 “기초 능력치”를 늘릴 수 있는 모든 훈련기구가 존재했다.
그렇게 다양하고 현란한 기구들이 많이 있었지만, 이창현이 선택한 기구는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단순하면서도 쉽게 볼 수 있는 하체단련기구였다.
‘지금으로서 제일 중요한 건 하체였으니까.’
물론 해야 할 것은 이것만 있는 게 아니였다. 스킬 “만개”로 인해서 하나 둘 늘어 가고 있는 재능에 대해서도 익숙해질 필요가 있었고, 마나량도 늘릴 필요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스킬적인 부분이나 마나적인 부분은 당장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 없잖아 있었다.
그것들은 쉽게 훈련으로 늘어나지도 않을 뿐더러, 어차피 기초가 탄탄하지 못한 상태에서 스킬만 반짝여 봤자 소용없었기 때문이었다. 즉, 지금 당장은 다재다능함보다 기초적인 파라미터를 다른 녀석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맞춰 줘야 할 때였다.
‘전에 윤한결이랑 싸울 때도 그랬고.’
압도적으로 유리하게 만들어 주는 “에테르”라는 히든피스가 있었음에도 우위를 쉽사리 점하지 못했다. 이는 당연히 전투 경험의 차이라기보다는 순수한 기본기. 즉, 기초 능력치의 차이가 컸기 때문이리라.
만약 이창현의 지구력과 힘이 높아 기동성이 조금만 더 높았더라도 에테르를 이용해 일반적인 견제가 이어졌을 가능성이 컸던 싸움이었다.
반면, 그런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는 김도준으로서는 불만스러운 듯 입이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아니 이런 곳까지 와서 왜 하체만 단련하고 있는 건데?”
“넌 내 포지션이 뭐라고 생각하냐?”
김도준은 뜸을 들일 수밖에 없으리라. 일단 우리나라에선 지금까지 총을 쓰는 헌터가 없었으니까.
“음…… 원거리 딜러?”
통상적인 대답이다.
“그래. 원거리딜러한테 가장 필요한 점이 뭐지?”
“강력한 딜링능력?”
“그리고 또?”
“원거리딜러가 딜만 잘 넣으면 되지 뭐가 또 필요해?”
후…… 나름 한국에서 날고 기는 아카데미인 서울시립아카데미 학생수준이 이러니, 한국이 이 시기에 헌터스 리그 변방국일 수밖에…… 아무리 한국의 헌터계가 탑 공략에 총력을 기울이느라 상위권 헌터가 모조리 죽어 나갔다고 해도 심한 처사였다.
“원거리 딜러한테 그 다음으로 필요한 건 기동성이다.”
김도준의 표정에서 의아함이 드러났다. 보나마나 기동성? 왠 뚱딴지 같은 기동성? 같은 생각 따위를 하고 있겠지.
하위권 팀이거나, 리그의 수준이 낮을수록 도드라지지 않는 특징이었다. 상위권 리그일수록 근접딜러들은 빠른 기동성을 살려 원거리딜러를 위협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점은, 원거리딜러는 원거리 공격과 동시에 끊임없이 자리를 바꾸는 것이었다.
“생존게임 때 봐서 알겠지만 윤한결도 그렇고 상위권 근접딜러로 갈수록 기동성이 뛰어나든, 원거리에서 공격할 수단이 있든 원거리 딜러를 위협할 수 있는 수단이 늘어나. 그렇기에 원거리 딜러임에도 최소한 비슷한 수준이나 그 이상의 기동성이 강요된다는 거야.”
김도준은 여전히 아리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긴, 이런 건 직접 겪지 않으면 머리로 안다고 해도 크게 의미 없는 것이었으니까. 한편 대답은 엉뚱한 곳에서 들려왔다.
“재미있는 관점이군.”
다름 아닌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가 김도준의 바로 옆에서 하체단련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네 말과는 다르게, 한국 헌터스 리그를 보면 원거리 딜러를 노리는 전술은 거의 나오지 않고있는데…… 그것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확실히 맞는 말이긴 했다. 하지만 그건 분명 내 전술이 틀렸다기보다는 한국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이 더 맞는 말이었다.
“지금까지는 그랬죠. 하지만 영국의 ECG 그리고 프랑스의 ALD같은 팀들을 상대하는 팀은 이미 그게 정석이 되어 있습니다. 즉, 상대 원거리 딜러에 따라 강제되는 플레이라는 겁니다. 그런 시점에서 제가 하체를 단련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죠.”
물론 이 영감님은 이렇게 말해도 제대로 공감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긴 했다. 이 시설에 들어와 있는 만큼 평범한 영감은 아니겠지만.
“즉슨 자네는 뛰어난 원거리 딜러로, 상대방의 근거리 딜러들로 하여금 자네만 쫓도록 할 수 있을 만한 플레이를 할 자신이 있는 건가? 크하하. 당돌한 친구로군. 아주 재밌어. 하지만 노파심에서 하는 말이지만, 자만은 자멸을 부르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지. 내 두고 보겠네. 소년.”
뭘 두고 본다는 건지…… 아무튼 그 백발 성성한 노인은 자기 할 말만을 한 채로 떠나 버렸다.
왠지 모르게 찝찝한 결말이었다.
***
‘원거리 딜러…… 원거리 딜러라.’
평소처럼 루틴에 맞춰 하체운동까지 끝낸 백발 성성한 노인, 1세대 헌터이자 헌터협회 협회장인 이근택이 방금 나눈 말을 곱씹고 있었다.
“협회장님. 무슨 고민이라도 있으십니까?”
확실히 평소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매사에 자신감 있고 결단력 있게 빠른 선택을 하는 이근택의 모습이 아니었으니까.
“자네. 내 하나 물어봄세. 원거리 딜링을 맡고 있는 헌터에게 제일 중요한 게 뭐라고 생각하나?”
“음…… 저로선 보조스킬의 유무와 화력의 강력함을 꼽을 것 같군요.”
“에잉 쯧쯔…….”
한편으로는 공감하면서도, 원하는 답이 아니었기에 이근택은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한국 기준으로는 헌터 경력이 빵빵한 편인 이서준 실장까지 이런 대답을 하다니. 실망을 금치 않을 수 없었다.
이는 표정에 다 드러났고 이서준실장은 다소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이기까지 했다.
“그…… 그렇다면 사격의 정확성은 어떻습니까…… 원거리 딜러에겐 여러 가지 덕목이 있겠지만 아무리 강력한 화력이 있어도 못 맞추면 그만…… 역시나 명중률이…….”
“됐네. 됐어. 그만하게.”
이근택은 과거를 회상했다.
자신이 1세대 헌터로 “헌터스 리그”같은 가짜 전장이 아니라 진짜 피가 튀고 사람이 죽어 나가는 탑이라는 전장. 알지 못하는 미지의 존재를 상대로 공략해야 하는 막막함. 그리고 어디가 끝인지 모를 광활함까지.
공략할 때 당시엔 그저 항거할 수 없는 거대한 두려움으로 다가온 적도 있었다.
지금도 눈을 감을 때면 탑에서 맞닥뜨린 압도적인 폭력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그 시절, 탑이 한국에 나타나 세계적으로도 우수했던 한국 헌터가 죽어 나가던 시절의 대화가 생각났다.
“현준아, 너는 왜 맨날 볼 때마다 하체 운동만 하고 있냐? 마나 단련은 안 해?”
“아유 형님. 원거리 딜러가 가장 중요한 건 다른 게 아니라 하체유 하체.”
“하체는 뭔 뜬금없이 하체?”
그때는 이근택도 정확히 공감하지 못하는 이유였다.
“그 탑에 나오는 아그들도 근접전 약한 거 알고 원거리딜러들 먼저 노리잖수. 매번 사격할 때마다 위치를 옮겨야 한단 말이유.”
“겨우 그거 때문에?”
“위치가 드러나면 원거리 딜러는 죽는 거나 다름없수. 형님은 근거리 딜러라 잘 모르겠지만…….”
지금도 정확히는 공감하지 못하는 이유였다.
거 위치가 좀 드러나는 게 어때서. 쏠 때마다 위치를 계속 바꿔 가면서 해야 한다고? 굳이 왜?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그의 말이 맞음을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 둘, 죽어 나가는 원거리 딜러 헌터들 가운데 김현준은 뛰어난 기동성으로 하여금 몬스터들의 공세에도 꾸준히 살아남을 수 있었으니까.
계속해서 다른 방향에서 날아가는 견제가 훨씬 효과적인 것은 덤이었다.
이는 분명 헌터스 리그에 대입될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물론 뛰어난 헌터들이 다 죽어서 변방 리그에 불과한 한국 헌터스 리그에는 현재 통용되지 않는 말이기는 하지만…….’
상위권 헌터스 리그일 수록 그 말은 통용되리라.
아직 한국 헌터스 리그에도 우뚝 서지 못한 소년이 한국리그가 아니라 세계리그를 보고 있다니.
이근택은 아이러니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한편으로는 이근택은 그게 소년의 단순한 만용인지, 아니면 자신의 능력에서 나오는 자신감일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