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플레이어의 귀환-12화 (12/270)

012. 첫 방송

오디션 방송 프로그램. 노래나 춤, 랩같은 오디션 방송 프로그램도 잠깐 반짝인 적은 있었지만, 역시 제일 오래간 경쟁 오디션 프로그램은 단연 헌터 리그의[Hunters, The Next Generation]이었다.

일반 헌터 경기와도 다른 색다른 프로그램 구성과, 볼거리가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유망주들의 흥미로운 경쟁 구도와 순위 싸움. 트래쉬토크와 이어지는 랜덤 미션 수행까지.

참가하는 쪽에서는 죽을 맛이지만 보는 쪽에선 흥미로울 수밖에.

확실히 참가해 보니 알 것 같았다. 물론 나는 그 정도까지 죽을 맛은 아니었지만…….

“어우…… 인터뷰에서 묻는 거 대답하는 것도 죽을 맛이네.”

김도준 이 관종 녀석이 대답하는 게 죽을 맛이었다면 대체 뭘 물어봤던 걸까.

“인터뷰에서 뭐 물어봤는데?”

“아니, 껄끄럽게시리, 한지수 선배랑 자꾸 엮어서 뭘 하려고 하는 거야.”

‘……아 확실히.’

그거면 이 녀석도 껄끄럽겠다 싶은 대화 주제겠다 싶었다. 나 같았으면 갈구기만 하던 선배였으면 트래쉬토크라도 했겠지만 저 녀석이 그럴 리는 없겠고.

“그래서 말했지. 내 라이벌은 한지수 선배가 아니라 같은 학교에 다니는 이창현이다. 이렇게.”

아이고. 이건 뒷걸음치다가 무슨 덫 밟은 격인가. 차라리 한지수가 낫지, 정상까지 찍어 본 나랑 라이벌? ……그래도 자기 딴엔 진짜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래서 넌 인터뷰에서 뭐 물어봤어?”

김도준이 말을 멈추곤 다시 돌아보며 말했다.

“뭐…… 누가 우승할 것 같냐 그런 거? 당연히 내가 우승할 것 같다고 이야기했지.”

“아…… 그거 나한테도 물었는데. 나는 윤한결 아니면 유혜주라고 말했었던 듯. 창현이 너도 꽤나 잘나가지만 이번에 1,2등한 둘은 아카데미 1팀에서도 장난 아니야.”

“본 적 있어?”

“걔 둘이면 1팀에서도 넘사벽이지. 완전 프로헌터리그에서 뛰어도 손색없을 정도? 너도 시립아카데미에서 두 사람이 뛰는 거 봤으면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을걸?”

뭐…… 확실히 윤한결의 경우에 아까 본 실력만 해도 임기응변 능력, 무력적인 측면 모두 상당하긴 했다. 막 회귀해서 몸조차 만들어지지 않은 나에 비하면 많이 완성된 편이긴 하지…….

하지만 당연하게도 헌터경력으로 보나 재능으로 보나 내가 딸릴 거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해서도 안 되고. 더해서 어찌되었던 친구란 놈이 저렇게 생각하는 걸 그대로 둬서도 안됐다.

“야. 김도준. 너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었냐?”

“뭐를?”

“그런 식으로 걔네둘이랑 너랑 다른 급이라고 생각하고 나눴냐고. 그런 마인드로는 할 수 있는 것도 못하게 되니까 정신 똑바로 차리는 게 좋을걸?”

“…….”

어린 녀석에게 어투가 좀 세긴 했지만 이 부분은 내가 확실히 옳다고 생각하는 부분이었다. 프로의 계단을 오를 수 있는 녀석들은 사실 아주 일부를 제외하고는 재능도 비슷비슷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빛나는 녀석들이 있는데, 그런 녀석들이 딱 정상만을 바라보는 녀석들이니까.

정말 한끝차이로 승리와 패배, 성공과 실패가 갈리는 전장에서 정신에서부터 갈린다. 자신이 아랫급이라고 깔고 들어가는 건 그만큼 치명적이다.

김도준 녀석도 느낀바가 있었는지 스스로 자아성찰을 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고.

한편으론 대기실에서 떠드는 진 한과 윤한결의 모습도 보였다.

‘같은 아카데미 출신이라더니 친한가 보네.’

내 입장에서는 이시기 한국리그는 변방의 하위 리그이긴 해도 이후에 탑티어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 애들이었으므로, 관찰할 수 있는 기회였기에 그냥 넘기지 않았다.

[윤한결]

[스킬]

[이기어검 : S]

[신속 : A]

[신체능력]

[힘 : 8.3]

[반응속도 : 7.3]

[유연성 : 6.6]

[지구력 : 7.6]

[재생력 : 7.6]

[진 한]

[스킬]

[인력 :B+]

[신체능력]

[힘 :9.3]

[반응속도 :8.3]

[유연성 :6.3]

[지구력 :6.3]

[재생력 :6.3]

전체적으로 무척이나 높은 수치였다.

‘[만개]를 개방하지 않은 나랑 1.5배에서 심하게는 2배 가까이 차이가 나는 스탯도 있군…….’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미 완성되어 있는 것뿐만 아니라 스킬을 통해 전술을 익혀 팀 단위로 성장할 가능성까지 무궁무진했다.

지금 당장은 히든피스를 얻는 특별한 방법이 없고서는 육탄전으로 이기기 힘들 정도의 신체스탯 격차였다.

‘이번 생존게임에서야 히든던전에서 얻은 에테르로 제대로 한방 먹이긴 했지만…… 다음 라운드에선 쉽지 않을 수도.’

그렇게 잠깐 쳐다보는 사이 진 한과 눈이 마주쳤다.

평정을 가장했지만 회귀 전에도 어떤 사람인지도 몰랐고, 다가오는 진 한에게 뭔가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실상은 별건 아니었지만.

“안녕하심까!”

“…….”

“저는 진 한이라고 함다! 아까한결선배랑싸우셨죠?어떠셨음까?싸울만하심까?아카데미에서도항상저랑겨루는데저는한번도이겨본적이없지말임다!아까마지막에꽤싸우시는것같던데비슷한나이대에서한결선배님이랑제대로겨루는건처음봤지말입니다!!엇제가너무제이야기만했슴니까??선배님은존함이뭐심까!!”

“……이름? 이창현. 그래서 본론이 뭐야?”

‘정말이지 정신이 하나도 없네.’

윽박 지르는 듯한 소음이었다. 물론 내용은 그렇지는 않았지만…… 아무튼 간에 시끄러운 사람이라는 인상밖에 남지 않을 정도였다.

“한결선배님이가 이번 생존게임끝나고 잔뜩 분개하셨지말입니다.”

“야! 진한!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와!”

내가 대답할 틈도 없이, 윤한결이 진 한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 선배님! 다음에는 꼭 말해 주시는 거지 말입니다!”

뭘 말해 달라는 건지, 뭔 이야기를 했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폭풍이 지나간 느낌?

그렇게 잠시간 얼이 빠져 있을 사이, 김도준이 휴대폰으로 넛튜브 중계를 틀어 놓은 채 나를 불렀다.

“야야, 창현아 방송 시작한다. 너도 나올걸? 빨리 와 봐.”

오디션 프로그램 방송 1회차의 시작이었다.

***

기술이 발전한 만큼 방송도 발전했기 때문이었을까. [Hunters, The Next Generation]는 1차 서류 심사와 2차 생존게임이 끝난 후 거의 바로 편집이 끝나 방송이 이뤄지고 있었다.

‘뭐…… 내가 회귀하기 전에는 홀로그램 시청까지 목전에 뒀다고 했었던것 같은데…….’

그나저나 회귀 전이나 지금이나 넛튜브를 그리 즐겨 보지는 않기에 굉장히 오랜만의 시청이었다. 그렇게 방송은 번쩍이는 무대. 그리고 심사위원 소개를 시작으로 이뤄졌다.

워낙 이 시기의 유명한 선수였기에 이창현도 다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그렇게 모두들 익히 알고 있는 영상을 끝으로 1차 서류심사 영상이 나오기 시작했다.

‘설마 이것도 촬영분으로 나올 줄이야…….’

나로서는 전혀 생각치 못했던 부분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궁금했다. 생각해 보니 좀 대충대충 썼던 것 같은데 반응이 어땠으려나.

처음으로 나온 사람은 윤한결이었다.

재미있는 점은 이미 심사위원 중 몇몇은 서류를 보기도 전에 윤한결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듯싶었다.

“이 아이가 바로 서울 시립 아카데미에서 키우는…….”

“이번 기수의 슈퍼루키죠.”

조아라와 진수혁의 말이었다.

“그럼 한번, 볼까요?”

그 말을 끝으로 심사위원들 앞에 홀로그램처럼 진수혁의 형상이 나타났다. 마치 진짜로 면접시험을 치는 듯한 모습이었다. 아마도 돈을 좀 써서 CG 그래픽으로 이런식으로 연출을 했으리라.

‘어지간히도 돈을 쓴 모양이군…….’

“한결 씨. 한결 씨는 헌터에 도전하기까지 어떤 역경을 겪었고, 그 역경에 부딪혔을 때 어떻게 극복했나요?”

“저에게 헌터는 어린 시절부터의 꿈이었습니다. 인간으로의 육체의 한계를 뛰어넘어 피가 끓어오르는 결투를 벌이는 것. 어릴 떄부터 그것만을 꿈꿨습니다. 하지만, 그 길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서울시립아카데미 시험이 그 큰 역경 중 하나였습니다.

두 번이나 떨어졌으니깐요. 두 번의 낙방은 힘들고 외로웠습니다만, 저는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배울 수 있었습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고, 계속해서 한 발이라도 더 나아갈 수 있게 해 준다는 걸요. 그 길로 저는 계속 나아가 저 자신과 마주하고 계속해서 성장해 나갔습니다. 역경에 부딪혔을 때 어떻게 극복하는가. 그것은 역시 무한한 노력과 자기정진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와…… 저걸 저런 식으로 대답하네.’

정석이긴 하지만 마치 교과서로 읊어낸 듯한 반듯함. 개인적으로는 하품이 쩍쩍 나오는 대답이었다. 물론, 틀린말은 별로 없긴 하지만…… 시청자들의 반응도 비슷했다.

[sdkddk1214 : 좀 식상하긴 한데…… 이런 캐릭터도 있어야지. 틀린 말도 아니긴 하고. 근데 노력만 강조하는 노력충같아서 좀 별로긴 함. 헌터업계 능력빨이 대부분인 거 세상 사람 다 아는데.]

[바른소년 : 이런 캐릭터 그래도 나쁘지 않음. 능력빨인 건 맞긴 해도 능력 없이도 잘나가는 헌터들 많잖음?]

[이소희 : 일단 겸손하고 조곤조곤 말하는게 참 마음에 드네요…… 겸손한 만큼 좋은 실력 보여주길 바랍니다!!]

“……좋아요. 각오 잘 들었습니다. 그럼 갈등을 겪었던 경험을 물어볼까요? 헌터는 개인이 혼자 움직이지 않습니다. 과거 탑을 답파할 때도 그랬지만, 항상 팀전인 만큼 때로는 적과, 때로는 팀원과 의견충돌이 있을 수밖에 없죠. 그런 갈등을 겪었던 경험에 대해 듣고 싶은데요.”

대답은 바로 나오지 않았다. 약간 숨을 가다듬는 듯, 잠깐 뜸들이더니.

“후우…… 쉽지 않았습니다. 우선 상황 자체가 좋지 않았어요. 저는 두 번이나 낙방한 끝에 붙은 사람이고, 팀원들도 그걸 알고 있었으니까요. 실제로 팀 게임에서도 옳든, 옳지 않든 제 말은 몇 번 묵살당한 적도 있었구요.

처음엔 무척 힘들었습니다. 팀에 스며들어가는 것 자체부터가 난관이었으니까요. 하지만 하루도 빠짐없이 묵묵히……. 묵묵히 모든걸 감내하고 제 자리를 지키다 보니 팀원들이 점점 존중해 주기 시작하는 걸 느꼈습니다.

결국은 개인이 겪은 역경이나 팀 사이에 갈등관리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묵묵히 제 할 일을 따라 나아가는 방법이야말로 가장 빠른 방법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이상이 제 생각입니다.”

“흠…… 그렇군요.”

조아라는 눈을 감고 있었고, 이민석과 진수혁은 답변의 여운을 느끼는 듯 조용히 생각에 잠긴 듯 했다.

‘결국은 평범한 모범생이라는 거네.’

물론 내 입장에서는 그다지 특별하지 않았지만서도. 저런 애들은 사실 프로 리그에 차고 넘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으니까.

저 녀석이 특별할 수 있는건…… 그것보다도 특수능력 때문이었으니까. 시선이 가는 쪽은 아무래도 이 다음이었다.

이창현조차 갑작스럽고 신기하게 느꼈었던 세 번째 문항. [클론 3분 타임어택]

“세 번째 평가로 들어가겠습니다. 그럼!”

마치 면접장 분위기였던 곳이 심사위원의 손바닥 한 번에 둥근 투기장으로 변화했다. 윤한결은 갑자기 심사위원이 보이지 않는 것에 더해 풍경이 바뀌어서인지 깜짝 놀란 듯했다.

‘아무렴…… 산전수전 다 겪은 나도 놀랐었는데.’

하지만 이윽고 클론들이 나타나자 그 대응은 날카로웠다.

바로 메뉴얼에 따라 자신의 애병인 칼을 상상해서 소환해냈으며, 마치 한 몸처럼 휘두른 건 확실히 인상적인 광경이었다. 하지만 역시 압도적이었던 장면은…….

‘저게 이기어검…….’

검술이 단순히 칼을 뻗는 데에서 그치지 않는다. 마치 한 마리의 생명체가 된 듯 손에서 떠나 클론을 자유롭게 베기도 하며, 그와 동시에 본체인 몸도 멈추지 않고 클론들을 체술로 박살 냈다.

심사위원의 반응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완벽하군요.”

“무기의 컨트롤뿐만 아니라, 몸을 다루는 법도 제대로 아는 것 같아요. 그것도 그 두 가지를 동시에 하다니. 헌터스 리그에서 마주치면 상대는 마치 두 명을 상대하는 기분이 들 겁니다.”

심사위원끼리 잠깐 의견을 나누더니, 결과는 만장일치로 통과였다.

한편 대기실 다른 쪽에서도 넛튜브로 이 광경을 보고 있었는지 탄성인지 환호인지 모를 소리들이 들렸다. 그만큼 참가자들에게 충격적이고 탐이 나는 능력이리라.

“한편, 교과서적인 답변을 거부한 참가자도 있습니다.”

넛튜브에서는 막 모든 모습을 보여 준 윤한결 다음으로 내 모습이 비춰지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