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1. 인터뷰
전투에서 우위를 가장 쉽게 점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
훌륭한 무기? 전략 전술? 효율적 인원배치? 아니다.
가장 쉽고 또 효과적인 방법은 인해전술이었다. 많은 인원수로 몰아붙이는 건 가장 쉬우면서도 대처하기 어려운 방법이었으니까.
‘헌터 계에서는 특히 이게 더 도드라지지.’
그리고 능력의 편차가 있다 한들, 개개인이 특유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헌터스 리그는 이런 인원수의 이점이 더 크게 발휘되곤 했다.
상대방에게 모르는 스킬이 있거나, 스킬 연계의 강력함에 고꾸라지기 매우 쉽기 때문에.
그뿐만이 아니었다. 여러 명과 한명이 붙으면 당연히 시야의 사각이 생기고 그런 것들을 신경 쓰면서 전투해야 하기에, 기하급수적으로 상대가 어려워졌다.
그렇기에 지금 이창현이 벌이는 짓은 기행에 가깝다고 볼 수도 있었다.
아무리 에테르를 가지고 있다 한들, 이창현은 뒤에서 중력을 강화시켜 주는 서포터를 제외하면 사실상 단신이었으므로.
‘네가 날고 기어 봤자 단신일 뿐인데. 자…… 어쩔 거냐 이창현.’
***
가장 큰 적. 가장 조심해야 할 적은 눈앞에 있는 윤한결이었다. 검을 다루는 근접딜러이면서도 동시에 원거리 견제가 가능한 일종의 이기어검. 질풍검을 다루고 있었으니까.
‘얘가 1등이란 말이지?‘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것이, 회귀 전 윤한결의 모습은 더 없이 강력했기 때문이었다.
헌터스 리그에서 몇 없는 근거리부터 원거리까지 커버가 가능한 헌터.
여러 개의 이기어검을 사용하며 상대를 몰아붙이는 윤한결.
하지만 지금 그가 다루고 있는 검은 단 하나였다.
‘아직은 루키 수준이라는 거지.’
마음을 가볍게 먹고 윤한결을 돌아봤다.
하지만 윤한결만을 신경 쓸 수는 없었다.
‘……뒤!’
이창현은 재빠르게 옆으로 움직였다.
그 직후 이창현이 있었던 자리에 창이 날아왔다.
앞선 두 명이 별다른 대응도 하지 못한 채 죽은 것을 봤기에, 난투중에서도 가장 위험하다고 생각되는 이창현을 저격한 것이었다.
“이런 분위기…… 오랜만이구만. 너도 이런 적은 처음이지?”
“……무슨 수를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네 것…… 일반적인 무기가 아니더군. 그게 자초한 일일 뿐이다. 원망하지 마라.”
그 말을 마지막으로 윤한결 앞에 둥둥 띄워져 있던 검이 다시 날아왔다.
‘오히려 좋아.’
검을 여러개 다룰 때의 윤한결은 모르겠지만 지금은 검이 하나뿐이기에. 권총을 쐈을 때 막을 방법이 없으리라.
탕! 타탕!
이번에도 착지하는 틈을 노려 총을 쐈지만 아쉽게도 실패였다.
‘검을 날리고 바로 나무 뒤에 숨을 줄이야……. 아직 어린 데도 전략적인 움직임을 조금쯤은 알잖아?‘
회귀 전에서는 힘으로 밀어붙이는 무대뽀 느낌이었는데, 아무래도 어린 시절엔 조금 달랐던 듯 했다.
윤한결도 나무 뒤에 숨었다. 시야가 가려진 이창현을 검으로 쫓을 수 없었기에, 대치 상태가 이어졌다. 하지만, 이창현과 윤한결의 차이가 있다면, 그건 [꿰뚫는 눈]이었다.
아무리 시야가 제한된 숲속 맵에서도 누가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있는 능력.
이 능력이 있었기에, 이창현은 윤한결과 대치중에도 다른 마음을 먹을 수 있었다.
‘윤한결이 몸을 사리는 사이에 다른녀석부터 처리한다. 우선…… 3m뒤 나무 밑동 부분…….’
윤한결이랑 대치하다가 뒤로 빼는 척하다가, 나무 밑동부분의 인영이 드러나는 순간.
눈이 마주치자, 지원자는 굉장히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이창현에게는 모두 예측 된 일. 머뭇거림은 없다.
탕 ㅡ
또 1킬.
윤한결과 떨어져 한결 신경을 덜 쓸 수 있는 지금이 킬 흭득 기회였다.
그리고 그건 꽤나 다수를 상대해야 해도 마찬가지였다.
공터 쪽 엄폐물 뒤에 임시 휴전중인 두 명.
아래로 뚫린 동굴 속, 바위 뒤에 숨은 한 명.
그리고 겁도 없이 이창현 앞에 나타난 한 명.
킬. 킬. 그리고 킬.
에테르로 말도 안 되는 관통력과 연사력, 그에 걸맞는 재능을 가진 이창현과 싸우기에는 아무리 다인전이라고 하더라도 너무 밸런스가 시작부터 깨져 있었다.
순식간에 7킬로 치고 올라오자, 조금 숨을 가다듬은 건지, 혹은 새 전략을 짜온 건지 윤한결이 뒤쪽에서 다시 치고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중거리에서 안 된다는 것은 알았을 텐데…….’
저 정도 되는 헌터가 아무런 생각 없이 돌진할 리는 없었다.
그래서 긴장감을 갖고 견제 사격을 시행했지만…… 윤한결은 도검을 날리지 않은 채로 달려오며 손에 쥐고 에테르탄을 쳐내기 시작했다.
‘마나량이 적어서 탄의 속도가 느리긴 하지만…….’
확실히 정상은 아닌 속도의 반응속도. 온 집중을 쏟아부은 기예라고 할지라도 엄청난 기술이었다.
……하지만.
회귀 전의 기억이 새삼 떠올랐다. 그때도 윤한결은 지금처럼 강력한 무력으로 밀고 들어왔고, 다른 헌터들은 당황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항상 뛰는 놈 위엔 나는 놈이 있기 마련.
그리고 나는 나는 놈이었다.
팅 티팅 ㅡ
하나 둘 튕겨져 나가는 탄들.
그리고 어느 샌가 윤한결은 이창현과 가까워져 있었다.
그때, 흐름을 바꾸는 한 발.
팅 ㅡ
지금까지처럼 튕겨져 나가는 한 발을 향해 다시금 사격이 행해졌다.
그야말로 도탄 이용한 기적적인 변칙 사격.
도탄이었기에 이 일발은 윤한결의 시야의 바깥에서 한순간 벗어나 있었다. 그렇기에 절대 반응하지 못하리라 확신했다.
‘이겼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아쉽게도 운은 내 편이 아니었다.
삐이이익 ㅡ
“최후의 생존자 20인으로 확인! 생존게임이 종료됩니다.!”
***
생존게임이 끝난 후, 생존에 성공한 20명은 다시 메인 홀에 돌아와 있었다. 그리고 다시 열린 무대에서 조아라와 진수혁, 이민석. 세 명의 심사위원이 나왔다.
첫 포문을 연 것은 조아라였다.
“축하합니다. 여러분은 승리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는, 진짜 헌터들입니다. 각성자들 중에서도 헌터가 극소수인 점을 생각하면 정말 굉장하다고 할 수 있죠.”
이민석은 바톤을 이어받아 축하 인삿말을 이어 나갔다.
“헌터의 기본소양은 뭘까요? 누군가는 경기에서 승리하는 것이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헌터는, 꿈꾸는 헌터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인류를 지키고 항상 위기의 최선봉에 서서 던전을 탐사했던 이들. 1세대 헌터 같은 사람들이 아닐까요?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의 생존게임은 여러분의 헌터로서의 소양을 보여 줬으며, 미래를 보여 줬다고 믿습니다.”
“다음 미션은 일주일 후, 다시 이 메인 홀에서 공개됩니다. 이번 생존게임 때 스스로 부족한 점을 많이 알았을 테니 일주일간 열심히 대비해야겠죠? 숙소에서 연습시설은 무제한으로 이용이 가능하니 한번 이용해 보길 바랍니다. 그럼, 남은 20인에게 행운이 깃들길.”
그 말을 마지막으로 심사위원은 모두 나가 버렸고, 남은 건 전광판의 순위표뿐이었다.
[생존게임 순위표]
1등 윤한결 : 17kill
2등 유혜주 : 10kill
3등 한지수 : 8kill
3등 진 한 : 8kill
5등 이창현 : 7kill
5등 김진승 : 7kill
‘겨우 5등인가…….’
아무래도 이번엔 고려하지 못한 변수 때문에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탈락 위험을 감수해서라도 처음부터 전투에 신경 쓰는 것이 순위가 높을 뻔했으니까.
‘물론 성과가 없는 건 아니지만…….’
[과업을 달성했습니다!]
[만개 - 재능개화 : 에테르] : 마나를 이용해 에테르를 간접적으로 구현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대기실에서 서성이면서 생각하고 있는 이창현에게 김도준이 말을 걸어왔다.
“야! 이창현! 5등했다며“
그러고 보니 그동안 생각도 못했는데, 이 녀석도 참가 중이었나…….
회귀 전에는 최상위권 딜러였는데 순위에도 보이지 않은 걸 보면, 탈락한 건가?
“너는? 통과했냐?“
“나야 뭐…… 어떻게든 통과는 했지. 대기실에서 총 쓰는 사람 이야기가 떠들썩하던데 니 얘기 맞냐? 애초에 총은 지급도 안됐는데 어디서 찾았대?“
하여간 만나기만 하면 꽤나 시끄러운 녀석이었다. 좀 치우고 싶은데…….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다행히 구원자가 있었다.
“이창현 씨, 인터뷰 준비해 주세요.”
어느덧 대기실에 카메라맨과 함께 PD가 도착해 있었다.
***
방송을 한다는 건 카메라에 단순히 사람을 찍는 직업이 아니었다.
정확히는 사람을 “담는”직업이었다.
당연히 그 담김새에 따라다르게 보여졌고 그에따라 시청률도 요동쳤다.
PD 이준석은 당연히 이런 면을 잘 알고 있었기에 각 지원자들의 특성과 성격. 보여 준 활약에 따라 분리해 어떻게 포장해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이었다.
첫 인상은 완전히 이상한 놈이었다.
솔직히 뽑힐 줄도 몰랐다.
그도 그럴 게 그 서류심사는 이준석 PD도 취재차원에서 같이 봤었으니까.
갈등관리에 모든 결정을 자신에게 독단적으로 맡기면 된다고? 사는 게 쉬워서 역경이랄 걸 겪어 본 적이 없다고?
최소한의 성의조차 들어가지 않은 듯한 지원서를 쓴 녀석이었으므로 진심으로 응하고 있다고조차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서류심사가 아닌 실전에선 달랐다.
‘서류심사 3번 문항…….’
이건 확실히 처음 요행으로도 볼 수 있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요행도 한번이 아니라 두 번, 세 번 성공하다 보면 실력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가 이번에 보여 줬던 [생존게임]에서 행동도 요행이 아니라 무언가 있다고 느껴지기엔 충분했다.
그렇담 컨셉을 어떻게 잡아야 잘 팔릴까. 그게 이준석 PD가 고민해야 할 거리였다.
수상할 정도로 숨기는 점이 많은, 자신감 넘치는 소년?
마이페이스, 자기만의 길을 걷는 괴짜?
어느 쪽이 되었든 평범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상품성이 있다기엔 애매한데…….
이준석 PD는 그렇기에 새로운 컨셉을 줄수 있을 질문을 고심했다.
일단은 떠 보기 위해 무난한 질문부터 시작했다.
***
대기실에는 나를 기다리는 약간 푸근한 인상의 이준석이라는 PD, 그리고 카메라맨이 준비되어 있었다. 회귀 후에는 인터뷰도 처음이라서 떨린다면 조금 떨렸을까.
하지만 그렇더라도 역시 인터뷰는 많이 해본 기억이 있기 때문에 문제없으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 [Hunters, The Next Generation]에는 어떻게 지원해 주셨나요?”
“저 같은 사람이 지원해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렴. 헌터스 리그에서 우승경력까지 있는 나, 이창현이 지원해 준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건 진짜 솔직한 생각이다.
“아, 그리고 합격 축하드립니다 이창현 헌터. 1차 소감 한 마디 들어보겠습니다.”
“뭐, 생각보단 별로였지만 당연한 결과라.”
솔직한 생각으론 1차는 사실 아슬아슬했다고 생각한다. 그도 그럴게 서류심사가 있었을 줄이야. 이런 인터뷰도 그렇고 그런 질문은 능숙하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내가 지금 보여 주는 기량적으로 평가하면 다 옳은 말이었던 게 아닐까.
“이번 경기로 많은 지원자를 겪어 보셨을 텐데 적수로 생각하시는 분은 없으신가요?”
“네.”
“…….”
“없다구요.”
윤한결이 조금 의식이 되긴 하지만 라이벌로 꼽기엔 좀…… 그도 그럴 게 회귀 전만 하더라도 결승전에서 만났을 때 한 번도 빠짐없이 다 이겼었으니까. 약간 건방지게 보일진 몰라도 이게 사실이다.
한편 이준석은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지원자의 감동적인 서사는 커녕 누구나 있을 법한 흔한 이야기. 일반적인 상품성으로 꼽기엔 무리가 있었으니까. 답도 죄다 단답에다가 더 물어보기도 미묘한 것들뿐.
그래서였을까.
이준석 PD는 약간 공격적인 질문을 내뱉었다.
“적수도 없는데 왜 5등밖에 못했죠.”
“음…… 바로 다 묻어 버리면 재미없으니까?”
물론 현실적인 제약들로 인해 5등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지만, 분명 “만개”를 개방했다면 그런 것 없이도 1위를 충분히 했을 터다. 오만하다면 오만할 수 있겠지만 내 딴엔 모두 사실인 인터뷰였다.
물론 그런 것따윈 모르는 이준석은 생각했다.
‘어지럽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