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8. 비밀 던전
새가 지저귀는 소리와 물 흐르는 소리. 산들바람에 수풀이 움직이는 소리가 이창현을 깨웠다.
눈을 떠 보니 한쪽으론 울창한 숲이, 한쪽은 탁 트여 폭포가 떨어지는 절벽이 있었다.
풍경을 구경하기도 잠시, 몇 분이나 지난 걸까. 다른 지원자들이 근처에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여러 가지 생각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그나저나 데스매치라니…….’
헌터스 리그에서 단독작전을 제일 많이 수행하면서 사선을 넘나들었던 이창현으로서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게다가 이번에 무대가 되는 [잃어버린 혼이 잠든 땅]. 회귀 전 이창현으로서는 익숙하다 못해 지겨울 정도의 던전이었다.
‘예전의 결승전 무대가 여기였었나…….’
그런 만큼 치밀하게 연구했기에 실제로 던전의 구조뿐만 아니라 핵심 기믹, 비밀 던전 같은 것들까지 눈을 감고도 꿸 정도였다.
앞으로의 전략은 짜는 것도 쉬웠다.
어떤 맵인지 아는 만큼 유효한 전략을 선택하는 것도 쉬웠으니까.
‘우선 이 맵에서 가장 중요한 건 히든피스.’
[잃어버린 혼이 잠든 땅]인 만큼, 이 맵의 히든기믹인 [잃어버린 혼], 에테르가 있는 히든던전을 찾아내면 그 보상이 어마무시했다.
에테르는 탑 안에 있던 고대 유물 중 하나로, 무슨 무기에든 추가로 장착할 수 있는 무형의 장비였다.
이렇게 말하면 되게 단순하고 별 것 없어보이지만, 그 실물이 공개되었을 때 값어치는 수십억을 호가했다.
검, 도끼, 활. 그 외의 어떤무기에 장착하더라도, 하얀 에테르를 머금으면 마치 다른 무기가 되는 것처럼 강력해졌으니까.
쉽게 막히는 검을 무엇이든 베는 검으로 만들었고, 일반적인 화살에 부여되면 무엇이든 반드시 꿰뚫는 화살이 되었다.
그런 만큼 탐을 낼 수 밖에 없는 무기였다.
‘기억에 의존해서 최우선적으로 히든던전을 찾는다. 그리고 거기서 히든피스를 얻은 다음에 킬 수 상위권을 목표로…….’
그렇게 회귀 전의 기억과 [꿰뚫는 눈] 에 의존해서 찾으러 떠났다.
아마 이 던전이 제대로 구현되었다면 존재할 히든피스가 있는 던전을.
***
‘생존게임’
이는 조아라가 고안했던 내용으로 눈엣가시였던 이창현을 저격한 내용이기도 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편파적으로 시험 주제를 제시한 건 아니지만…….’
실제로 생존게임에서 필요한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뿐만 일까, 헌터로서는 필수적인 것들이기까지 했다.
우선 셀 수 없이 많은 던전 중에서도 랜덤으로 등장한 던전에 대해 알고 있는지. 알지 못하더라도 헌터로서 임기응변 능력으로 생존할 수 있는지.
혹은 남들과는 다른 특수능력 같은 특별한 장점으로 살아남을 기량이 있는지. 기타 등등……
물론 상대방을 빠르게 제거해서 수를 줄여 진출을 노리는 수도 있겠지만, 지원자들 수준이 고만고만할 만큼 쉽지 않을 뿐더러 자신이 탈락할 위험도 너무 컸다.
‘그러니까 결국 기본기…… 헌터로서 전투능력, 그리고 임기응변과 정보 능력. 생존 능력을 보겠다는 건데……’
불성실해 보이는 지원자들은 이런 기초항목에서 크게 미달이 나기 마련이었다. 마치 조아라가 1차 예선에서 보았던 불성실했던 지원자 이창현 같은 사람이.
그런 조아라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진수혁과 이민석은 이번 경기에서 기대되는 지원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번엔 전체적으로 참가자들 수준이 좀 높죠? 서울 시립아카데미에서도 꽤 왔고, 아예 구단차원에서 키우는 선수들도 꽤 왔으니까요.”
“그건 그렇고 생존게임이라……아라가 재밌는 걸 준비했네? 막 각성한 애들이나 헌터로서 기본기 부족한 애들은 이걸로 다 떨어져나가겠어. 좋은 선택이야.”
“생존 말고 전투 지향적으로 해서 상위 5명 안에 드는 지원자는 누가 될 것 같아요?”
그 말에 이민석은 손으로 턱을 쓰다듬더니 생각에 잠겼다.
‘전투 지향적이라…… 전투 지향적으로 하는 사람이 있을까? 굳이 위험을 감수하면서? 어지간히 실력에 자신이 있지 않아서야…….’
물론 그럼에도 전투 지향적으로 하리라 생각되는 지원자가 몇 명 존재하긴 했다.
“우선, LHR구단에서 키우는 윤한결. 워낙 넛튜브에 영상이 많이 올라와서 영상 봤는데 실력이 확실히 준프로급이더라고. 경기 영상 보니까 굉장히 공격적으로 풀어 나가는 것도 있고. 그 외에는 유혜주 정도?”
“달리 기대되는 선수는 없어요?”
‘음…….’
물론 1차 예선 때 꽤나 특이했던, 쌍권총을 쓰던 녀석도 생각났지만 잠깐일 뿐. 머릿속에서 지울 수밖에 없었다.
이번 스테이지는 그때처럼 요행이나 룰의 허점을 비집고 들어오는 방법 따윈 쓸 수 없었으므로. 그보다 사실 그 친구가 살아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써 놓은 걸 보면 그리 준비성이 철저하거나 꼼꼼한 성격도 아닌데…….’
던전은 치밀함이 중요했다. 들어갈 던전에 대한 정보. 나의 전략과 상대방의 전략을 아는 것. 과제에 맞춰 장기적인 전략을 수립할 줄 아는 것 등등. 머리를 굴려야 하는 구석이 많았다.
하지만 1차 서류전형에서 그가 써 놓은 답에서는 별로 진중한 생각이 돋보이지 않았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화면을 모니터링하고 있던 조아라가 다급히 소리쳤다.
“이거 오류난 거 아니에요? 한 지원자가 맵핑되어있는 곳 바깥으로 나가고 있는데요?”
“뭐?”
가상현실경기장에 오류가 생겼다면 그야말로 방송사고였다. 던전인 탑도 아니고, 분명히 정해진 필드만 갈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경기장에서 경기장 이탈이라니.
“화면 빨리 그쪽으로 돌려 주세요.”
진수혁이 다급하게 외쳤다.
그러자 세 명의 심사위원 앞에 있던 수많은 감시카메라 화면이 하나로 통합되어 거대한 하나의 화면을 이루었다.
“……!”
화면에 비춘 맵핑된 곳 바깥으로 나가는 사람은 다름 아닌 이창현이었다. 재미있는 점은 맵핑된 곳 바깥이라고 해서 구현이 안 된 공간은 아니었고, 그저 아주 거대하고 긴, 그리고 복잡한 문양의 돌로 막혀져 있던 동굴일 뿐이었다.
“저긴 어디야? 맵핑이 안되어 있는데 어째서 갈 수 있게 되어 있는 거야?”
이민석이 이번 맵을 담당한 조아라에게 물었다.
하지만 조아라는 곧바로 답하지 못하고 입을 벌린 채로 넋이 나가 있었다.
‘어떻게…… 어떻게 저길…….’
지금 이창현이 가고 있는 곳은 [잃어버린 혼이 잠든 땅]이 공략될 시절, 유물이 잠들어 있던 곳이었다.
동시에 경기장으로는 사용되지 않아 일반인들에게 잊혀진 곳이기도 했다.
즉, 던전이 가상현실로 구현되면서 딸려 나온 과거의 유산이었다.
‘믿을 수 없다…… 저긴 일반인은커녕 일반적인 1부 선수들조차 모르는 장소인데, 일개 지원자가 알 수 있을 리가…….’
조아라는 자신의 눈을 부정했지만, 시간이 지나도 그 사실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정보력도, 성실함도 뒤떨어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조아라 입장에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아라야. 뭔가 알고 있는 거지? 방송사고면 빨리 대응방법을 고민해야 하니까 빨리 말해 줘.”
이민석이 재촉하자 조아라는 더 이상 넋을 놓고 있을 수 없었다.
“방송 사고는…… 아니에요. 저긴…… 존재하는 맵이자, 지원자에겐 존재하지 않는 맵…… 그니까 일종의 비밀 던전이에요.”
“좀 쉽게 풀어서 이야기 해 봐.”
“그니까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이 가상현실은 실제 던전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는 건 아시죠? 그런데 지금 이창현 지원자가 가고 있는 곳은 일반인에게도, 헌터스 리그 선수들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일종의 비밀공간이기에 맵핑이 안되어 있는 거죠.”
이민석은 그 말을 듣고는 표정을 찡그렸다.
“그러니까 가상현실로 구현하는 과정에서 비밀 던전까지 같이 구현했는데, 지원자가 거기에 들어가 버렸다?”
“……네.”
“그럼 문제될 게 있나? 비밀 던전에는 뭐가 있는데?”
이민석은 다행이라는 듯 말했지만 반대로 조아라의 표정은 어두워지기만 했다.
“원래 저 던전의 자리에는 지금도 유명한 유물, [에테르]가 있었다고 해요. 헌터스 리그에서는 너무 사기적이라 금지 판정을 받은 유물이요…….”
“유물 회수는 불가한가?”
“경기를 멈추지 않는 이상에는요. 물론 가상현실에서 구현된 거기에 들고 나오지는 못하겠지만요…… 적어도 이 경기에선 쓸 수 있게 되겠죠.”
‘흠…….’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상황이었다.
생존 게임이 볼 만하려면 지원자들끼리 수준이 비슷해야 하지, 아이템빨로 양민 학살이 나오면 형평성 논란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문득, 이민석의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근데 그렇게 좋은 유물인데 [키퍼]는 없어?”
키퍼란 좋은 유물을 지켰던 몬스터들로, 좋은 유물일수록 강한 키퍼가 있었다. 즉, 저 에테르라는 유물이 아무리 좋은들, 키퍼가 있다면 이창현이 가지지 못할 것이기에 상관이 없다는 뜻이었다.
“키퍼…… 아. 그 생각을 못했네요. 화면 돌려 볼게요.”
이창현이 나아가는 기하학적이고 난해한 무늬가 그려진 길의 끝. 그 끝에는 심사위원진의 생각대로 키퍼가 대기하고 있었다.
‘보통 키퍼가 아니다…….’
일반적으로 키퍼는 강력한 수문장 몬스터로, 흔하게 생각하는 나이트(Knight)류나 장병기를 든 미노타우로스 같은 것들이 있었지만…….
‘어느 것도 아니다…… 저건 대체 뭐지? 키퍼가 맞긴 한가?’
거대한 문을 지키고 서 있는 것은 허공에 붕붕 떠 있는 거대한 큐브. 몬스터인지 아닌지조차 분간이 가지 않는 ‘무언가’였다.
***
이왕 시작한 오디션 프로그램이었다. 그런 만큼 결코 낮은 순위로 턱걸이 할 생각은 없었다.
‘그렇다고 지금 내가 대놓고 센 건 아니지…….’
물론 생각을 그리한다고는 해도 만개가 개방되지도 않은 지금, 한 번에 지원자들을 평정할 만큼 상황은 녹록치 않았다. 아무리 과거의 전투경험과 짬이 있더라도 헌터에겐 엄격히 존재하는 일종의 한계 ‘스탯’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다른 방법을 갈구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마침 히든피스의 존재를 알고 있는 던전이 맵으로 나왔으니까.
‘오래되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못 찾을 건 없었다. 가물가물한 기억을 뒤쫓아 도착한 심산유곡의 한켠. 우거진 덩굴 사이로 흐르는 작은 폭포. 전에 본 것이 데쟈뷰처럼 느껴졌다.
이 뒤엔 분명 동굴이 있다.
스스로 강한 확신이 느껴졌다.
실제로 덩굴을 들춰 폭포 뒤로 가니 거대한 동굴이 나타났다.
‘후…….’
회귀를 했다는 게, 과거의 기억이 진짜라는 게 안심이 되어서였을까.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어두운 동굴 안, 미리 준비해 놓은 횃불을 켜고 앞으로 나아갔다.
뚜벅.뚜벅.
동굴의 불규칙한 돌바닥과 천장의 종유석이 어느 샌가 사라지고, 기하학적이면서 난해한 아름다움을 지닌 문양의 정돈된 바닥이 시작됐다.
‘곧인가…….’
이윽고 들어난 거대한 공동.
그 앞에는 문을 지키는 키퍼가 있었다.
하지만 그 키퍼는 일반적인 키퍼가 아니었다.
[큐브]. 고대 유적 특성의 탑 지역에서만 발견되었던 일종의 오버테크놀로지 컨셉의 키퍼였다.
‘이거, 방송으로 다 나갈 텐데 괜찮으려나.’
적어도 한국에선 1세대 헌터들을 제외하면 깬 적이 없는 기믹으로 무장한 키퍼였기에 그랬다.
무력적으로 강력하긴 하지만 공략 난이도가 높은 이유가 패턴과 기믹의 난해함이었던 만큼 나로서도 돌파하기 쉽지 않을 것 같았다.
‘흠…….’
찰나의 고민이 이어지고.
답을 내리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 답은 단순했다.
선수까지 되어서 자길 숨길 필요가 있을까? 어떤 것이 되었든 성과를 내면 내 자산이 될 텐데.
어찌 보면, 회귀도 스킬이나 스탯처럼 타고난 자산이리라.
‘숨긴다? 일고의 가치도 없는 고민이었네. 그대로 돌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