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플레이어의 귀환-6화 (6/270)

006. 기대되는 녀석

헌터스 리그의 미래를 책임질 다음 스타를 찾는다…… 말은 좋은데

‘1차가 서류전형인 거 실화인가?’

회귀 전에는 심사위원 제의를 받아 본 걸 제외하면 거들떠 본 적도 없었기에 몰랐던 사실이다.

단순히 헌터스 리그 경기하듯 죽이고 잡고 제압하면 우승하리라고 생각했거늘……

게다가 문항을 보니 그다지 어필할 수 있는 것도 많지 않아 보였다.

일단 인적사항에 나이나 키, 신체 스테이터스만 적는 것뿐만 아니라, 소속까지 쓸 수 있다.

아카데미 소속인 녀석들만 완전 신나겠구만?

아마추어들 중에서도 검증받은 녀석들이나 다름없으니 어쩔 수 없지만…….

[1번 문항 : 각성자가 되어 헌터에 도전하기까지 어떤 직종에 종사했으며, 그 직종에서 역경을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했는지 서술하시오.]

이 프로그램에는 나이제한이 없었고, 다소 나이가 들었지만 꿈을 위해 참가하는 사람이 꽤 많았기에 있는 문항인 듯했다.

당연히 회귀 후에는 별다른 일도 안했고, 역경? 그런 게 있을 리가…….

[2번 문항 : 그룹 활동을 할 때, 갈등을 겪었던 경험과, 그것을 어떻게 해결했는지에 대해 서술하시오.]

그룹 활동? 회귀 후에 학교에서 그런 활동은 다 째고, 회귀 전에는 팀원이 다 내 오더만 듣도록 조련했는데.

흠…… 아무래도 이건 망한 것 같다. 참가만 하면 무조건 우승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복병이 있을 줄이야…….

하지만 뭐, 좀 이렇게 썼다고 자기들이 어쩔 것인가. 결국 헌터스리그는 말빨로 하는 게 아니라 실력빨로 하는 건데.

아마도 실기가 있을테니 거기에서 만회하면 괜찮으리라.

그런 고민을 하는 가운데, 남은 3번 문항을 바라봤다.

[3번 문항 : 3번 문항은 “이곳“을 눌러 주세요]

이곳…… 하이퍼링크처럼 파란색으로 처리되어 있는데 이게 뭔가 싶다.

원래 이런 식으로 서류전형문서에 하이퍼링크를 달아 두기도 하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3번 문항의 하이퍼링크를 누른 순간,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각성자의 스킬은 보통 각성자 본인의 경험이나, 특이성에 따라 생겨난다.

‘그렇다면 이런 능력은 대체 평소에 뭘 하면 생기는 거지?’

지금 내가 있는 곳은 더 이상 방 안이 아니었다.

파란 밑줄이 그어져 있는 링크를 누른 순간, 풍경이 완전히 하얀 방으로 바뀌었다.

순간이동 아니면 환각. 그런 종류의 것을 일으킬 수 있는 능력인 모양이었다.

다행히 납치나, 습격 같은 종류의 것은 아니었다.

“3번 평가 항목은 일종의 반 실기로 [클론 3분 타임어택]입니다. 3분 동안 끊임없이 발생하는 클론을 잡아 실력을 증명하세요. 무기의 경우, 사용자가 상상한 무기가 그대로 구현됩니다.”

하얀 방 안에 나오는 차분한 기계음성이 룰을 알렸다.

요컨대, 헌터를 평가하는 거니까 스킬이나 전투 센스 같은 건 봐야겠는데, 그걸 다 치르게 해 주기에는 지원자가 너무 많은 모양이다.

아무래도 신이 완전히 날 버리진 않았나 보다.

나는 회귀 전에 [마도공학 무기 변환]으로 자주 사용했던 무기인, 쌍권총을 떠올렸다.

곧이어 생각은 바로 현실이 되어, 손 위에 파란 스파크가 이는가 싶더니 곧 권총의 형태를 띠었다.

거의 쓰이진 않지만, 회귀 전 나의 시그니쳐 무기였던 마나를 탄환으로 쓸 수 있는 권총.

‘상상으로 만든 무긴데 이것도 스킬이 적용되나……’

스킬을 쓰려고 손으로 마나를 흘려 보았지만, 무기엔 변함이 없다.

아무래도 환상 속 무기이기도 하고, 마도공학이 실제로 적용된 것이 아니라 그런가 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찰나, 머리 위에서 다시금 소리가 울려 퍼졌다.

“준비 되셨나요! 평가를 시작합니다. 5- 4-……1! 시작!”

시작을 알리는 경적과 함께 누구의 센스인지 모를 흥겨운 음악이 시작되며 클론이 전방위에서 소환되었다.

클론. 아무 특색이 없는 인간형의 로봇.

한마디로 그냥 달려드는 허수아비정도로 설명 가능하다.

당연히 탱커클론과 다르게 특별히 방어력이 엄청나다던가 그런 설정은 없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지금처럼 한 번에 10개체씩 달려들면 해치우기가 쉽진 않겠지.’

다행히도 클론의 지능수준이 높게 설정되지 않았다는 점.

이에 착안해서 아마 머리 좀 쓴다는 녀석들은 아마 게임에서 몰이사냥하듯 몰아서 잡을 것 같다.

물론 나는 그렇게 할 생각은 없었다.

‘얼핏 보기엔 효율적이겠지만……진짜로 효율적인 건 바로 이거지.’

탕!

간결하게 클론을 향해 쏜 마나탄환이 정확하게 심장부근, 그러니까 클론의 집적회로가 있는 부분을 지나갔다.

가슴의 한 가운데 손가락만 한 구멍이 생긴 클론은 맞자마자 움직임을 멈추곤, 곧이어 형태도 없이 사라졌다.

정확한 약점에 정확한 타격을 하는 것. 그게 이 시험에서 진짜로 효율적인 방법이었다.

아무리 몰아서 큰 타격으로 다 잡는다 한들, 겨우 10개체.

그 개체를 다 잡으면 다시 클론이 소환되고 다시 몰아야 한다.

하지만 이창현은 그런 일체의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탕타타탕탕!

쌍권총의 총구는 식을 줄 모르고 연발했고, 그것들은 정확히 클론의 핀 포인트에 맞았다.

한 개체에 필요한 건 단 한 번의 손가락질이었다.

‘쉽네.’

가만히 서서 천천히 돌며 꿰뚫는 눈을 사용해 쌍권총을 쏘는 것.

이게 바로 회귀 전 이창현을 존재하게 한 이명 [전설의 저격수]와 맞닿아 있는 근간 중 하나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렇게 쉬운 것만 이어지지는 않았다.

계속해서 클론이 생겨나자마자 사라지자, 클론이 한 번에 등장하는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그뿐만 아니라 공격동작이나 움직임이 변하고 있었다.

‘원격으로 난이도를 조정하는 건가?’

아니면 진작에 좀 잘하는 사람은 더 난이도가 올라가도록 조정해 놨을 수도.

물론 그렇다고 해서 크게 변하는 건 없겠지만 말이다.

‘나는 사람 앞에선 걷는 사람이나 뛰는 사람이나 거기서 거기지.’

***

심사위원들은 이번 달부터 쉴 시간 없이 바빠질 수밖에 없었다.

우선 이슈성이 부족한 서류전형 신청자들을 걸렀음에도, 신청자들이 너무 많아 심사위원이 걸러내야 할 지원자만 수천 명에 달했다.

“수혁 씨도 이거 설계에 문제 있었다고 생각 안 해요?”

“확실히 문제 삼으라면 문제 삼을 수는 있겠죠.”

조아라는 지금 평가 중인 한 지원자의 통과에 대해 문제 삼고 있었다.

“이건 저희 측에서 생각한 의도가 아니잖아요.”

각성자의 능력이나 신체능력. 반사신경, 돌발상황 대처능력, 무기를 다루는 능력 등을 보려고 만든 3번 문항이었다.

그런데 이 지원자는 그런 능력들과는 일절 상관없는 방식으로 그걸 해결해 버렸다.

“저렇게 총 들고 막 쏴 대면 누가 클론을 처리 못하겠어. 저건 완전히 반칙이지. 게다가 이 지원자…….”

[1번 문항 : 각성자가 되어 헌터에 도전하기까지 어떤 직종에 종사했으며, 그 직종에서 역경을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했는지 서술하시오.]

[지원자 답변 : 학생. 사는 게 너무 쉬워서 역경이랄 만한 것은 겪어 본 적이 없음.]

[2번 문항 : 그룹 활동을 할 때, 갈등을 겪었던 경험과, 그것을 어떻게 해결했는지에 대해 서술하시오.]

[지원자 답변 : 갈등을 겪지 않도록, 모든 결정을 나한테 맡기면 됨.]

“완전 대충대충이잖아요. 그리고 이 내용이 정상이에요?”

확실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1문항 당 1페이지 이상의 분량으로 성실히 질문에 응답했다.

근데 이 녀석은 분량도 분량이지만, 내용조차 지극히 비정상적이다. 마치 심사위원을 비웃는 듯한 태도와 답변.

이런 녀석을 위로 올려 보낼 수는 없었다. 1차 서류전형에서 100명으로 줄인 후에는 직접 프로그램에 나와 심사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꼼수나 써서 3번 점수를 높게 받고, 헌터로서 대충대충 임하는 녀석이 방송에 나와 봐라.

지원자에 대한 악평은 물론, 이를 뽑은 심사위원도 세트로 욕을 먹을 것이다.

“확실히 아라 말이 맞긴 해.”

“그쵸 민석 선배!”

“애초에 총이라는 무기가 헌터가 쓸 수 있는 무기가 아니니까. 리그에선 당연히 상상도 못하고, 몬스터를 잡을 때도…….”

왜 헌터스 리그에 원거리라고 할 법한 무기가 활이나 석궁 정도뿐인가를 떠올려 보면 간단한 문제였다.

각성자의 신체에서 투사체가 떨어진 순간, 무기를 강력하게 만들도록 조정하던 마나는 다시 흩어진다.

그렇기에 그 파괴력은 미약할 수밖에 없고, 각성자나 몬스터가 마나로 강화한 신체를 뚫어 내지도 못한다.

‘어지간하게 강한 마나를 싣지 않는 이상 도달하기도 전에 투사체에 실린 마나가 흩어지겠지.’

그런 의미에서 연발력이 높은 총은 하나하나 마나를 싣기도, 큰 마나를 싣기에도 힘든 무기였다.

총은 딱 그 내구성이 약한 클론정도한테나 먹히는 “양민학살 전용 무기“라는 것이다.

국내 헌터스 리그에서 쓰인 적도 없고, 애초에 각성자랑은 거리가 있는 무기.

게다가, 딱 보기에 3번 테스트는 개인의 스킬이나 혹은 재능. 신체능력, 무기술 등 헌터로서의 실전적인 능력을 보려는 의도로 만들어진 것.

실제로 써먹을 수 없는 총을 통한 통과는 요행이 맞다.

“근데 난 왜 오히려 이 지원자한테 더 눈이 가지?”

“선배!”

“아라 씨. 저도 민석선배랑 같은 생각이에요. 달리 말하면 룰의 허점을 명확히 꿰뚫어 본 지원자라는 해석도 가능하죠.”

조아라는 전혀 동의하는 기색이 아니자, 진수혁의 말은 점점 더 길어졌다.

“요행이든 아니든, 룰의 허점을 뚫고 명확히 성과를 냈다는 게 중요하죠. 사실 수단이야 상관없을지도 몰라요. 헌터는 결국 결과로 말하는 거니까.”

“그래…… 수혁이 말이 맞지. 어차피 최종선발도 아니니까, 아니다 싶으면 중간에 탈락시켜도 되고.”

사실 심사위원 세 명중 두 명이 동의한 시점에서 이견이 없긴 했다.

“그리고 나는 어쩌면, 지원자의 생각이 우리랑은 좀 다르지 않았을까 싶기도 해.”

“그 지원자의 생각이 뭔데요?”

“글쎄.”

확실하진 않다. 하지만 충분히 가능한 가정이다.

3번 테스트의 의도는 확고하고, 지원자도 쉽게 알 수 있다.

‘이 지원자는 어쩌면 헌터스 리그에서 총을 쓸 수 있으리라 생각해서 그랬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오히려 상대가 단순히 클론이라 총을 헌터세계에서도 쓸 수 있는 무기라는 것을 입증하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너무 나간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이민석은 만약. 정말 만약 진짜로 총을 헌터스 리그에서도 쓸 수 있도록 만드는 스킬이 있다면 어떻게 될지 상상했다.

‘말도 안 되지.’

얼마 안 있어 그 생각을 부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냉병기를 쓰는 원시인들을 상대로 현대인이 총을 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건 일방적인 폭력이었다.

물론 이민석은 일방적인 기우로 끝날 것이라고 생각하긴 했다.

어느 정도 역사가 쌓인 한국 헌터스 리그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선수가 등장한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니까.

‘그래도 역시 뭔가 보여 줬으면 좋겠네.”

마치 꽝일지 1등일지 모를 복권을 산 기분이었다.

“그럼, 이 지원자가 마지막인가? 아라도 너무 기분상하지 말고.”

“아니, 제가 불만이라는 게 아니라…… 이런 사람이 뽑히면 다른 지원자들도 허탈하겠다 싶어서 그랬죠. 뭐, 이젠 다 잊었어요. 그 얘긴 이제 그만.”

조아라는 입을 자크로 채우는 듯한 행동을 취하고는 서류를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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