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 참교육
세간의 인식에서 각성자와 일반인의 차이는 일반인보다 월등히 뛰어난 신체능력이나 스킬이 있지만, 가장 도드라지는 차이는 바로 “재생력”에 대한 차이다.
반응속도 같은 것들은 사실 일반인 중에서도 뛰어난 사람은 각성자에 필적할 수준인 경우도 종종 있다. 하지만, 재생력은 그렇지 않다.
각성자는 일반인과 다르게, 일반적인 상처가 회복되는 속도를 육안으로 확인이 가능할 정도니까.
‘회귀 전에는 경기 외엔 따로 운동을 안 했었는데…….’
효과가 좋다. 근육이 찢어지고, 다시 회복되는 속도도 압도적으로 빠른 각성자이기 때문일까?
물론 그런 것도 있겠지만…… 역시 가장 큰 이유는 이거 때문이겠지.
[만개 : E(미개방)] : 미개방 상태의 [만개]스킬은 개방 전까지 해당 각성자의 성장을 촉진합니다.
개방한 지 너무 오래되어 생각하고 있지 못했던 효과. 성장촉진의 효과가 선명하게 느껴졌다.
저번에 측정했던 신체능력을 재측정하면, 스테이터스 중 힘이 분명 올라갔으리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직은 겨우 오늘 하루정도 운동한 것임에도 말이다.
‘물론 올라가 봤자 0.1 이 안되겠지만…….’
그렇더라도 하루에 조금씩이라도 스테이터스가 올라갔다는 것은 뛰어난 성장 가능성에 대한 입증이었다. 물론 갈수록 아주 조금씩밖에 오르지 않겠지만…… 확실히 회귀 전 알려진 각성자들의 능력치 성장보다 월등히 빠르다.
이 페이스대로 계속 오른다면 회귀 전에 달성한 신체능력 달성까지 별로 오래 걸리지 않을지도.
다시 한번 전에 [만개]를 조기에 개방했었던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물론 그것은 지금 내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기대감을 주는 부분이기도 했지만.
그래서 마음 같으면 연습을 밤까지 꽉꽉 채워서 더 하고 싶지만…….
상주하는 구단도 있고, 아카데미도 있고. 서울 시립 구장의 저녁시간 대여는 애초에 구단 관계자가 아닌 이상 빌릴 수 있는 곳이 거의 없다.
‘혼자서 연습할 수 있는 다른 장소를 찾아야 하나…….’
각성자는 아무 곳에서나 연습할 수 없기에 장소를 찾기가 좀 곤혹이긴 한데…….
그런 생각을 하던 찰나, 휴대폰의 진동이 울렸다.
[김도준 : 아직 경기장 근처에 있어? 저녁 사 줄 테니까 같이 먹을래? ]
오늘 경기장에서 별 것도 아닌 인연으로 꽤나 많은 말이 오가는 것 같다.
서울 시청 근처의 식당가. 음식점 안에는 김도준이 먼저 도착했는지 기다리고 있었다.
“돈 많나 봐?”
“썩어날 정도로 많긴 하지.”
사실 별로 궁금한 사실은 아니었는데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하는 거 보니, 역시 얘는 회귀 전 나르시즘에 빠져 있던 그녀석이 맞구나 싶다.
“가정 형편이 불안정한 사람이 할 만한 직업이 아니긴 하잖아. 헌터 자체가.”
적당히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씁쓸하지만 맞는 말이니까.
각성자가 자신의 스킬과 적성 포지션을 찾기 위해 각종 검사를 하는 것만도 최소 수백 만원에서 천단위의 돈이 필요하다.
거기에서 끝이 아니라, 경기에서 쓰기 위한 각성자 특성에 맞춘 "커스텀 무기"또한 가격이 상상을 초월한다. 다 주문 제작이니까.
그렇다고 자신의 스킬도 모르는 채로, 기본무기만 가지고 다른 각성자들을 이길 리는 만무했다.
‘생각해 보니, 우리 집도 내가 성공하기 전엔 그렇게 돈이 많지는 않았는데…….’
물론 스킬은 다 알아서 검사는 필요 없지만, 무기를 마련할 방법은 따로 생각해 봐야겠다.
“그래서. 왜 부른거야?”
“뭐가?”
“내가 밥 먹을 돈이 없을 거라 생각해서 적선하려고 부른 건 아닐 테고…….”
사실 보나마나 부른 이유가 뻔하긴 하다. 아까 보여 준 탱커클론을 어떻게 부숴 버린 건지.
그게 궁금해서 미칠 것 같겠지. 자기가 설정해 보니 어떻게 해도 안 되니까.
“맞아. 밥은 핑계고 궁금해서 불렀어.”
“탱커 클론?”
“응. 연습해 보니까 생각보다 잘 안되더라고. 혹시 뭐 그때 했던 세팅이나…….”
말은 계속 이어지지 못했다. 김도준은 무언가를 보고 얼굴을 굳힐 뿐이었다.
뭘 보고 표정이 굳었나 싶어 돌아봤지만 별 건 없었다. 있다고 한다면 김도준과 같은 유니폼을 입은 팀원들 정도?
‘싸웠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글쎄, 빡대가리 새끼가 탱커클론을 미스릴검으로 두들기고 있더라니까.”
“무기 강도실험이라도 한 거야?”
“아니 더 웃긴 게 그걸 진지하게 부수려고 그러고 있더라고. 옆에서 헛짓거리 하는데 어이가 없어가지고. 두들기는 소음만 어마어마하게 크고.”
워낙 시끄럽게 떠들면서 킥킥 웃는 게, 안 봐도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 듯했다.
‘혼자 들어가서 나 따라해 봤나 보네.”
반면, 어지간히도 분했던 듯, 그 소리를 들은 김도준은 고개를 떨군 채로 얼굴이 시뻘겋게 변해 있었다.
하지만 마치 김도준 들으라는 듯 소리는 커져만 갔다.
“그래서 왜 그러나 물어봤더니 친구가 하는걸 보여 줬다나 뭐라나. 웃겨가지고. 걔는 뭐 이마에서 레이저라도 나오냐고 물어봤어야 했는데. 킥킥”
“멍청한 녀석끼리 어울리는 거 보는 게 그래도 재밌지 않았어?”
“아쉽게도 그 친구 놈이 자리에 있는 건 아니었어가지고.”
‘제일 무서운 게 책 안 읽은 사람보다 책 한 권 읽고 신념 가진 사람이라더니.’
딱 그쪽이었다. 누가 어리석고 누가 맞는지 모르는 멍청한 녀석.
몇 번이고 정상에 올라 봤기에 우습기만 했지만, 그냥 넘겨주는 것도 성미에 안 맞았다.
회귀 전 이름 한 번 들어본 적 없는 머저리에게 무시당하는 건 더 말이 안됐으니까.
그래서 더 큰 소리로 말했다.
“탱커클론 세팅? 바꿀 필요도 없지. 요령만 있으면 쉽게 무너뜨릴 수 있으니까. 그래도 어떻게 알려고 했다니 기특하긴 하네. 지들이 모르면 다 사기라고 싸잡아 말하는 멍청이들도 있는데.”
정말로 꽤 큰 목소리였다. 가게에 있는 사람들은 잠깐 멈추고 다 바라볼 정도로.
당연히 김도준의 선배 녀석도 마찬가지였다.
멍청이가 아니라면 방금 자신이 한 말에 대한 반박이라는 걸 모를 리 없었으므로.
하지만 나는 그 정적 속에서 말하는 걸 멈추지 않았다. 오랜만의 도전이었기에 즐거웠기 때문일까.
“아카데미엔 그런 거 하나 어떻게 하는지 아는 애가 없나 봐? 도준아. 네 뒤에 저 친구는 뒷돈 찔러 주고 들어갔어?”
“창현아 선배한테 그런 말…….”
“닥치고, 야. 이름이 창현이? 허 참. 각성한 지 얼마 안됐나 하늘같은 아카데미생한테 그러네. 나 같은 각성자한테 맞으면 시체도 안남아 후배 친구야. 3초 준다. 알아서 처신해라.”
저 대사는 뭐지? 어디 영화에서라도 본 건가. 3초 줄 테니 용서를 빌어라 뭐 그런 건가.
물론 당연히 그럴 생각은 하나도 없었다.
대신 그 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탁자를 딛고 일어섰다.
‘기껏 얻어먹는 밥, 아직 반도 못 먹었는데…… 뭐, 밥맛 대신 손맛도 좋지.’
그리고 주어진 3초안에 할 일은…….
‘이런 상황엔 하나뿐이지.’
녀석의 못생긴 면상을 향해 말없이 주먹이 날라 갔다.
빡 ㅡ
***
[S(서울) - 아카데미 한지수]
지금의 나를 지칭하는 신분이었다.
서울 시립 아카데미원생이라는 것. 그건 이미 헌터스 리그, 프로 헌터로서의 가능성을 입증했다는 의미였다. 각성자 최고 수준의 루키라는 것. 그건 누군가 시비를 걸더라도 웃으면서 여유롭게 넘길 수 있게 된다.
내가 각성자이고, 그 능력의 강함을 알게 되면 내가 잘못했더라도 상대가 숙인다.
간혹 자신의 근육을 믿고 으르렁 거리는 녀석도 있었지만 그런 녀석들도 먼저 손을 올리진 않는다.
결국 싸우면 처참히 초죽음이 되리라는 걸 본능적으로 인지하기 때문이다.
“3초 준다. 알아서 처신해라.”
이 말이 나오면 알아서 설설 긴다. 어찌되었든 대화로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으니, 보통 용서를 빈다.
손을 잡고 미안하다고 굽신거리는 경우도 많다.
아마 사과 인사라도 하면서, 각성자인 줄 몰랐다.
너무 미안한데 내가 어떻게 사과해야 할 줄 모르겠다.
그런 말을 하리라.
‘그런다고 그냥 넘어갈 생각은 별로 없지만.’
뒷돈을 찔러 주고 헌터 아카데미를 들어가?
적어도 쉽게 사과를 받아 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였다.
‘어…….’
어느 샌가 눈앞에 주먹이 보였다.
빡 ㅡ
“이 씨발 새끼가!”
전혀 예상치 못한 행동이기에 반응이 늦어 피하지 못했다.
“한지수 선배님. 아니, 도준이한테나 선배지, 나한텐 남남인데. 아무튼 한지수 씨, 깝치지 마세요.”
싸움의 시작을 알리는 이창현의 첫 한대는 느리지만 정확히, 묵직하게 들어갔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싸움은 선빵이 유리했다.
제대로 죽빵이 꽂히자마자, 앞을 보지도 않고 한지수가 주먹을 휘둘렀다.
대단한 반사 신경. 하지만,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때려도 흘려 넘길 이창현에게는 너무나 피하기 쉬운 부정확한 주먹이다.
그런 부정확하고 감정적인 움직임이 큰 주먹엔 당연하게도 많은 허점이 생긴다.
이창현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기왕 손 맛 보기로 한 거, 교육을 제대로 해야지.’
큰 파괴력은 없지만, 빠르고 정확하게 주먹이 뻗어 나갔다. 주먹이 한지수의 품을 파고들어 턱을 뒤흔들었다.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이창현에게 공격이란 물리적 공격만 포함되는 게 아니다.
“사람 때리면 시체도 안 남는 한지수 씨. 근데 사람을 못 때려서 어쩌나?”
과장되게 우스꽝스러운 표정으로 비웃었다.
계속 큰 동작으로 주먹을 휘두르다가 얻어맞는 상황이 반복되자, 한지수는 되레 방어적인 자세를 취했다.
‘학습 능력이 아예 없진 않네. 몇 대 맞고 나니 냉정을 되찾은 건가?’
분노 속에서 계속 주먹을 휘두르지 않고, 한숨을 돌리며 추스르는 것. 그건 분명 적절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이창현은 그렇게 생각한 지 몇 초 있지 않아 그 생각이 틀렸음을 알 수 있었다.
“별 쓰레기 새끼가 주제도 모르고…….”
오히려 한지수는 심한 모멸감과 분노, 수치심을 느끼고 있었다. 상대는 별 것 없어 보이는 허세나 부리는 녀석 같았기에 더더욱 그랬다.
그리고 그 감정에 휩싸인 한지수는 이창현을 눕히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끔 만들었다.
이창현과 한지수가 꽤 거리를 두고 있는 가운데, 한지수가 갑작스레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당연히 팔이 닿을 만한 거리가 아니었기에, 한지수는 엉뚱한 행동을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 새끼가 진짜 미쳤나?’
이창현에겐 보였다. 자신을 중심으로 원 형태로 빨갛게 퍼지는 위험 경고.
스킬 [꿰뚫는 눈]의 경고신호가.
그 즉시 이창현은 옆으로 피했다.
우지끈!
‘중력 공격…….’
피하자마자 이창현의 행동이 옳았음을 증명하는 파괴적인 소리가 났다.
원래 있던 자리의 테이블과 의자 음식은 강력한 무언가에 눌린 듯 바닥에 찌그러져 버렸다.
한순간이었다.
“꺄아악!”
좀 전까지는 웅성거리며 각자의 테이블에서 싸움을 구경하던 손님들은 앞 다투어 밖으로 나갔다.
이런 범위 공격이라면 자기도 휘말릴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으니까.
손님이 다 빠져나가자, 한지수는 더더욱 능력을 아낌없이 쓰기 시작했다.
쾅! 쾅! 쾅!
음식점 내부의 식기와 테이블이 정신없이 박살 났다.
한지수가 지나간 자리는 모두 살벌한 파괴의 현장이었다.
‘적당한 정도로만 패려고 했는데…….’
이건 확실하게 선을 넘는 행보였다. 리그도 아니고, 탑도 아닌 곳에서 사람을 상대로 스킬을 사용?
잘못하면 일반인도 휘말릴 수 있는 공격을 한 것이다.
“야, 한지수 씨. 좀 맞자.”
후배의 애교 정도로 받아 줄 수는 없는 녀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