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 너는 못 할걸?
견고하고, 단단한 것을 무너뜨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가장 단순한 방법은 힘이다. 더 강한 힘은 분명 방어를 무너뜨리는 가장 단순하고 좋은 방법이다.
그리고 회귀 전에는 실제로 자주 썼던 방법이기도 하고.
하지만, 그 쉬운 방법을 누가 모르겠는가. 어떤 이유에서든 힘이 부족한 상황은 있을 수밖에 없다.
지금 내가 처한 상황처럼.
‘지금 능력치로는 좋은 무기를 써 봤자 갑옷에 흠집 내는 정도에서 그치겠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단순하다. 약점을 공격해야 한다.
인간의 경우 머리, 심장, 혹은 관절부.
하지만 탱커에게서 머리와 심장을 노리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방어구가 집중적으로 방어하는 곳이니까.
따라서 노릴 곳은 접히는 관절부분, 즉 구동부인 이음매 부분이 좋다.
이중 삼중으로 된 금고를 절차에 따라 조심스럽게 여는 것처럼, 어깨 구동부의 갑옷의 틈을 찔러 해체시키고 동시에 상단으로 베어 나간다.
이어진 동작은 무장해제된 상단 왼쪽 어깨에서 목으로 이어지는 사선으로 베었다.
보이지 않는 미세한 틈, 갑옷의 이음매로 물 흐르듯 무기가 빨려 들어갔다.
‘마치 무기가 원래 있어야 할 곳에 들어가는 것처럼.’
그리고 이걸로 탱커 클론의 방어력은 사실상 맨몸과 다름없어진다.
스걱 ㅡ
한 동작. 단 한 동작이었다.
왼쪽 어깨부터 목까지 완전히 두 동강 난 탱커 클론이 무너져 내린다.
생각보다 지금 이 몸에 적응기간이 막 많이 필요하고 그렇지는 않나 보다.
‘생각대로 잘 움직이는데…….’
아무래도 키 같은 신체조건이나, 근력, 스테이터스가 차이가 나기에 걱정했는데, 괴리감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아무래도 과거이긴 하더라도 내 몸이기에 그런 것일까.
무엇보다 스킬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꿰뚫는 눈(B) : 대상의 본질을 꿰뚫는다.]
대상의 약점을 간파하는 데에도 쓸 수 있는 일종의 치트키 같은 스킬.
등급이 낮아 정확한 핀포인트가 보이진 않기에 걱정했지만, 여전히 날카롭다.
물론 회귀 전에는 S+등급까지 키워 놨기 때문에 보면 보는 대로 다 약점을 찌를 수 있었는데 아직까진 간극이 크진 않았다.
이렇게 깔끔하게 될 줄 알았으면 녹화라도 켜 두는 건데.
“아 뭐야, 방어력은 최소로 낮춰 놨나 보네. 생각해 보면 그게 맞긴 한데…… 탱커클론 기본 설정으로는 유니크 무기라도 없으면 데미지도 제대로 안 들어가니까.”
“…….”
뭐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서 아예 왜곡해서 생각해 버리는 건가?
“그래도 폼이 깔끔한 게 좋긴 좋네. 검도? 아. 창이니까 창술 같은 건가? 평소에 운동 좀 했나 봐? 나도 이따가 팀 연습하기 전에 한번 탱커 클론으로 연습해 봐야겠다.”
“뭐, 그래라.”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는 없지. 일반인 수준에서는 쉽게 해내면 그게 쉬운 줄 아는 게 당연하니까.
구태여 설명하는 게 모양새가 영 별로기도 하고.
“그럼 난 이제 곧 팀 연습 있어서 먼저 몸 풀러 가 볼게. 연습 수고하고, 나중에 입단시험 볼 거면 꼭 말해라. 내가 감독님한테 우리학교에 싹수 좋은 애 있다고 잘 말해 볼 테니까.”
저쯤 되면 집착인 것 같다. 팀에서 따돌림이라도 당하는 건가?
뭐, 내 알 바는 아니지.
***
헌터스리그를 포함해서 헌터들은 총과 같은 장거리 무기를 그리 많이 사용하지 않는다.
원거리 공격을 보조할 수 있는 특별한 스킬이 없는 이상, 그런 무기보다 평범한 장병기가 더 좋기 때문이다.
체내의 마나를 이용한다거나, 초인적인 힘을 이용하여 괴물을 벤다던가.
현 시대에 가장 강력한 대인 병기가 총이라고 해 봐야, 그게 통하는 건 일반인까지다.
초인적인 방어력과 기동성, 방어 수단을 가지고 있는 각성자에게는 안 먹히는 경우가 많고, 몬스터에게도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기는 어려웠다.
그렇기에 멀리서 상대적으로 약한 총을 쏴 대기보다는 각성자인 헌터가 개인의 무력으로 직접 처치하는 경우가 많다. 헌터는 그래서 창이나 검은 다 평범한 수준으로 다룰 줄 아는 편이다.
물론 활이나 석궁 같은 장병기를 사용하는 원거리딜러도 존재하긴 했지만.
어찌되었든 아까 이창현이 보여 줬던 베기는 한국 각성자 중에서 나름 프로 헌터에 가까운 김도준이 보기에도 꽤나 날카로웠다.
‘아무리 방어력이 최대로 낮게 설정되어 있다고는 해도 말이지……’
사실 아까 그 베기를 보기 전에 자신의 아카데미 입단 시험을 치라는 건 빈말이었다.
서울 시립 헌터스 구단은 한국에서 한 손에 꼽는 상위권 팀이니까. 아카데미 팀이긴 하지만.
하지만 그 베기를 보면, 진짜 팀에 들어올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카데미 팀에서 같은 학교에 다니는 새로운 막내가 하나 생기는 건 나쁘지 않지.’
김도준은 그런 상상을 하면서 부모님이 입단을 축하하며 사 주신 무기인 미스릴 검을 소환했다.
그리고 아까 이창현과 있을 때의 기억을 되살려 탱커 클론에게 달려들었다.
‘대충 이런 느낌이었던 것 같은데…….’
창을 쥐고 어깨부터 목까지 사선으로 쭉 베어 버리는 형태였으니 틀림없다.
김도준은 아까 봤던 이창현의 베기를 재현했다.
깡!
특수 합금으로 이뤄진 미스릴 대거와 탱커 클론의 갑옷이 부딪혀 요란한 깡통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전력을 다해 내려쳐진 미스릴 대거의 충격이 손으로 얼얼하게 전해졌다.
‘아으…… 뭐지? 방어력 설정에 오류가 있었나?”
그런 생각을 하며 다시 설정창을 봤지만, 분명 방어력은 최하로 설정되어 있었다.
분명 이창현이 보여 줬던 대로 했을 텐데…….
몇 번을 다시 시도했지만 여전히 깡통 치는 소리밖에 들을 수 없었다.
무언가 잘못된 게 틀림없었다.
‘아무래도 뭔가 설정을 잘못한 것 같은데…… 다음에 보면 어떻게 설정 셋팅했었는지 좀 물어봐야겠다.’
물론 그건 그거고, 지금은 지금대로 연습 전에 몸을 푼다는 목적에 맞게 탱커클론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준비운동은 오래가지 못했다.
“야, 김도준! 선배들 왔는데 빠릿빠릿하게 인사 안 박냐?”
아카데미 팀의 두 살 선배 한지수였다. 아니 사실, 입단은 같이 했으니 아카데미 선배는 아니지만 어쨌든 나이가 많으니까.
껄렁껄렁거리는 게 서울 시립 명문구단인데도 하는 짓이 영 양아치인 녀석이다.
나름 유복한 가정과 꽤 괜찮은 학군에서 살았던 김도준으로서는 영 껄끄러웠다.
싸우지 않고 그냥저냥 잘 넘어가려면 대충 굽히는 게 맞았다.
“앗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오냐.”
연습을 하다 말고 와서 꾸벅 90도인사를 하니 그제야 만족한 듯 대답했다.
“근데 탱커 클론은 또 왜 치고 있냐?”
뻘짓을 한다는 듯 얼굴에 비웃음이 어려 있다.
“그……잠깐 몸 풀 겸 연습하려구요.”
“몸 푸는 연습하는데 탱커 클론 두고 베기 연습하는 새끼가 어딨냐? 빡대가리 인증하냐?”
“아…… 그게 친구가…….”
김도준이 말하던 도중 한지수가 말을 끊고 선수를 쳤다.
“니 친구가 이민석이라도 되냐? 아니면 최 감독님이라도 돼?”
이민석은 지금 한국 출신으로 유일하게 세계에서 견줄 수 있는 탑 랭커의 헌터로 헌터스리그에서도 활약하고 있는 선수였다. 최 감독님은 한국 헌터스리그 국가대표 감독이었다.
“방어력 설정을 어떻게 하든 탱커 클론에 흠집도 안 날 텐데 쇼를 해라 쇼를 해. 시끄럽기만 오지게 시끄럽고…… 다른 선배님들도 오시는 거 안보이냐? 하여간 하나부터 끝까지 가르쳐 줘야 하네.”
“죄송합니다.”
김도준이 사과하자 선배는 대충 무시하고 탱커 클론을 설정으로 제거시켰다.
그리곤 같이 온 녀석들이랑 빈자리에서 낄낄거리며 사온 군것질거리를 먹으며 대판 어지럽혔다.
김도준은 마음속으로 나지막이 한숨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
종합 헌터 훈련시설에서 김도준이 나간 후, 나는 슬슬 본 게임을 시작했다.
그러니까 실제 헌터스 리그에서 상대하게 될 것들을 소환했다.
필드에 따라 등장하는 다양한 몬스터나, 상대 선수를 대신해서 연습상대를 해 주는 AI헌터가 계속 홀로그램으로 나타났고, 이것들을 상대했다.
‘생각보다 한참 부족한데…….’
아까 전 김도준이랑 있을 때 탱커 클론을 쉽게 해치워서 괜찮다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너무 약하다. 갑옷만 무력화되면 실질적인 방어력은 제로에 가까운 탱커 클론과 달리 기본 신체, 하드웨어 자체가 단단한 몬스터들한텐 무기가 박히지도 않는다.
심지어 꿰뚫는 눈으로 취약지점을 공격해도 그렇다.
‘물론 아직 꿰뚫는 눈이 B급이라 약점을 보는 눈이 부족해서 그런 것도 있긴 하지…….’
그만큼 아직 정확한 약점을 보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S+랭크와 B랭크의 차이는 그만큼 컸다.
거기에 그 문제만 있는 게 아니라서 더 문제다.
[신체능력]
[힘 : 5]
[반응속도 : 6]
[유연성 : 6.6]
[지구력 : 5]
[재생력 : 5]
지금 신체 능력은 사실 운동 좀 잘하는 일반인보다 조금 나은 수준이다.
정확하게 핀포인트를 찔러서 100%의 힘으로 150%의 데미지를 준다고 해봤자, 애초에 힘이 약하다 보니 큰 타격을 주기가 쉽지 않다.
‘물론, 탱커 클론처럼 치명적인 틈이 있는 경우는 그걸 비집고 들어가면 되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엔…….’
아무리 몬스터 공격을 다 피하고 다 맞춰 봤자 지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선 가장 급한 건 강한 한방. 데미지를 확실히 꽂아 넣을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 그게 최우선이다.
물론 기다린다면야 점점 몸이 예전수준으로 자라겠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다른 대책이 필요하다.
‘회귀 전에는 [만개]를 개방했었으니……’
스킬뿐만 아니라 신체능력 전반도 [만개]의 덕을 많이 봤었기 때문에 이번엔 실질적으로 몸을 더 단련해야 한다.
각성자에게 스킬이 중요하다고 해도 결국 그걸 쓰는 건 몸이고, 신체능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거니까.
‘헌터스 리그 루키 발굴 프로그램까지는 완전히 힘에 투자하자.’
그런 생각을 하며 기본 설정으로 구비되어 있는 신체능력 향상 프로그램을 가동시켰다.
종합 헌터훈련시설은 기본적으로 헌터에게 필요한 훈련시설은 모두 제공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탱커 클론 같은 일종의 샌드백이나, 가상 대련상대를 만드는 것부터 체력 증진까지.
[신체능력 향상 프로그램 : 힘(프롤로그 및 사용자 분석) 이 시행됩니다.]
얼핏 생각하면 헬스에서 하는 것처럼 주먹구구식 근력향상 기구 같은 걸 생각할 수 있지만 조금 달랐다. 개인 맞춤형으로 시스템이 맞춰질 뿐만 아니라, 최적화가 아주 잘 되어 있는 특별한 장비였으니까.
‘이 훈련설비의 가격을 생각하면 그런 단순 근력운동에 쓰기엔 말도 안 되기도 하고…….’
[1단계가 시행됩니다.]
흰색으로 원기둥 형태의 타깃이 여럿 나타나 서 있다.
이 타깃을 공격하면 스카우터처럼 피격된 힘의 총량이 숫자로 위에 뜬다.
펀칭머신에 힘을 가해서 때리면 점수가 뜨는 거랑 비슷하다.
‘주먹이 아니라 무기, 스킬을 이용해서 때린다는 게 다르지만…….’
그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때렸을 때, 어떻게 했을 때 점수가 가장 높게 나왔는지.
인체 밸런스에서 어떤 점을 보완하면 더 강력해지는지. 그런 것까지 모두 분석표에 나오게 된다.
2단계는 여기서 이제 저 원기둥이 실전처럼 움직이기 시작하고, 3단계는 몬스터와 사람의 형태로 회피하거나 막기 시작한다.
그후, 해당 프로그램에서 분석한 사용자 분석에 따라 [신체능력 향상 프로그램 : 힘]의 메뉴얼이 인공지능으로 정해지게 된다.
[신체능력 향상 프로그램 : 힘(분석)]
- 사용자의 타점이 키와 비교했을 때, 미묘하게 높은 곳으로 쏠려 있습니다. 최적의 힘을 가하기 위해서 타점을 아래로 내릴 필요가 있습니다.
- 힘을 전달하기 위한 포즈는 최적화가 이루어져 있습니다만, 근육의 성장이 따라오지 못해 그것이 적절한 파괴력으로 변환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근력 트레이닝이 필요합니다.
- 하체근육과 상체근육의 발달이 고르지 않습니다. 하체 운동을 권장합니다.
분석 아래로 추천 훈련 프로그램이 쫙 펼쳐졌다.
굳이 여기서 할 필요 없는 근력 향상 프로그램이 꽤 있고, 하나 꽤 흥미로운 건 타점의 재설정을 위한 맞춤 프로그램이다.
‘어쨌거나 자나 깨나 하체를 조져야 한단 말이지…….’
[만개]를 개방하지 않으면서도 수준을 끌어올리려고 하니 개고생이 따로 없다.
회귀 전엔 운동 같은 거 따로 안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