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플레이어의 귀환-2화 (2/270)

002. 시작은 몸 풀기부터

헌터가 될 수 있는 자질, 그니까 각성자 검사는 최첨단 의료기기를 통한 [신체능력 포텐셜]로 판단한다.

각성자인지 아닌지 가장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이 신체능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각성자가 특별한 건 신체능력뿐만이 아니다. 측정되지 않는 일종의 “스킬”이야말로 진짜배기다.

일반적인 각성자는 자신의 “스킬”이 무엇인지, 그 “스킬”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감으로 알아 맞추는 수밖에 없다. 혹은 부정확하면서고 초 고가인 각성자 적성검사를 하던가.

‘꿰뚫는 눈’을 가진 나를 제외하면 보통 다 그렇다.

[스킬]

[꿰뚫는 눈 : B(S+)] : 대상의 본질을 간파합니다.

[마도공학 무기 변환 : A(고정)]

[만개 : E]

[키워드]

[없음]

‘역시나…….’

만개가 E랭크로 돌아와 있었다.

헌터스 리그 루키 발굴 프로젝트는 내년 즈음. 그때까지 할 일이 없는 건 아니다.

우선 가장 급한 건, 그때까지 지금 몸에 적응하는 영점조정뿐.

지금이 그때에 비해 몸이 덜 자라기도 했고, 스킬도 전체적으로 레벨이 낮다.

아직 쌓은 업적이 없어 강점이 도드라질 때 나타나는 만개의 재능개화, [키워드]도 마찬가지고.

그럼 오늘 행선지도 결정된 거나 다름없다.

당분간은 서울시청 근처에 있는 헌터스 리그 가상현실 경기장에서 연습하면 될 것이다.

여기서 난관은 부모님 허락이 필요하다는 건데…….

아마 어렵지 않게 허락받을 수 있을 것이다.

회귀 전엔 무작정 떼를 썼지만, 이젠 부모님이 원하는 게 뭔지 알고 있으니까.

부모님들은 보통 자식이 확고한 결심으로 성과를 낼 테니 믿어 달라고 하면 믿어 줄 수밖에 없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하지 않는가.

***

“엊그제 창현이 각성했다며. 왜 얘기 안 해 줬어.”

“이것저것 생각이 많아서요.”

“뭐 생각할 게 그리 있나? 그니까 까 봐야 아는 거래두.”

“그럼 당신은 그렇게 불확실한 일에 애보고 하라고 밀어붙여요?”

거실이 꽤나 시끄럽다. 생각해 보니 엄마는 반대했지만 아빠는 찬성했었지?

엄마가 헌터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이유가 아빠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우리 삶이 아니라, 창현이 자기 삶이잖아.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해야지.”

“이제 겨우 중학생인 애가 뭘 안다고 그래요. 자꾸 무책임하게 그럴 거예요?”

“그러니까 딱 1년만 지켜보자고 그러니까 뭘 그래~”

“젊은 애 1년이면 우리 나이대 10년만큼 중요한 거 몰라서 그래요?”

확실히 맞는 말이다. 어릴 때일수록 하루하루 무게가 다르긴 하지.

나도 리그 정상에서 떨어지기 전 매일같이 생각했던 적도 있다.

내가 헌터스 리그를 일 년만 더 일찍 시작했으면~ 뭐 그런.

겨우 일 년 먼저 시작하는 게 크게 뭔 차이가 있겠냐고 생각하겠지만, 1년이면 프로로 수십 경기를 더할 수 있고 그건 다 경험이 된다.

업적을 쌓아 특별한 능력치를 얻을 수 있는 만개의 ‘[키워드]’나 운영에 필요한 경험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실제로 내가 일 년만 먼저 시작해서 바로 훈련을 시작했으면, 만개도 C+가 아니라 B등급은 됐겠지.’

그것만으로도 아마 많은 역사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청소년기의 1년은 그만큼 많은 게 휙휙 달라질 수 있는 시간이니까.

회귀하기 전처럼 어물쩡 떼쓰면서 날리기엔 너무나 아까운 시간이다.

그러니 지금 하루라도 빨리 체계적인 연습을 시작해야 한다.

아직까지 여러 가지 말이 오가는 가운데 방문을 열고 나갔다.

아들이 엿듣고 있으리라곤 생각을 못했는지, 엄마와 아빠 사이엔 갑작스레 정적이 흘렀다.

“6개월만 기다려 주세요. 그 안에 증명할게요. 안 그럼 뒤도 안 돌아보고 마음 접을게요."

“후…… 아빠한테 떠밀려서 하는 건 아니지?”

“엄마. 생각 많이 했어요. 어떻게 하면 엄마를 설득할 수 있을지.”

“그래서?”

“엄마가 어떻게 생각할지 알아요. 하지만, 그냥 각성했다니까, 주변에서 띄워 주니까 헌터 해야겠다고 생각한 거 아니에요. 저 원래도 운동 잘했던 거 아시잖아요.”

엄마의 표정은 쉽사리 풀리지 않았다.

6개월 안에 성과를 보여 주지 못하면 마음 접는다고 결심 보여 주면, OK해 주고 넘어갈 거라 생각했는데……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나?

정적이 꽤 길어지는 가운데, 아빠는 엄마의 눈치만 볼 뿐이었다. 가정사라는 게 원래 양육에 있어선 엄마가 주도권을 쥐어서 그런 걸까.

“첫째, 한번이라도 힘든 소리 내면 안 될 것. 둘째, 6개월 안에 프로의 가능성을 전문가에게서 입증받을 것. 셋째, 공부는 하던 대로 계속할 것. 이거 꼭 지켜.”

애간장을 태우더니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더니 결국은 순순히 양보해 줘서 다행이다.

“엄마. 저만 믿으세요.”

“그래, 하고 싶으면 해야지. 실패하고 좌절하는 것도 네 몫이고. 6개월 동안 가는 곳까지 가 봐.”

아빠는 약간 들뜬 표정이었지만, 엄마는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걱정 마세요 어머니. 그 표정은 금방 아들이 어디까지 가는가, 기대감에 물든 표정으로 변할 테니까.

***

기대를 충족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스포츠 스타는 더욱 그렇다. 뛰어난 커리어를 쌓을수록 사람들은 엄격해진다.

평가의 단위가, 시즌단위에서 한경기 단위, 한타 한번 단위로 바뀐다.

모든 사람의 이목이 나를 향한다는 건 그런 의미다.

회귀 전 두 시즌만에 평가가 나락으로 떨어진 것도 그런 이유에서고.

그것에 비해 2인자나 3인자. 이른바 ‘적당한 상위권 선수’의 경우에는 편하다.

평균적으로는 적당히 잘하면서, 원톱이 하루라도 못한 날엔 그 상위권 선수의 이름이 돌아다닌다.

이른바 적당히만 잘해도 욕은 안 먹고 반사이익은 누리는 그런 자리다.

예를 들면 지금 내 앞에 있는 김도준이 딱 그렇다.

“이창현.”

“……누구세요?”

물론 회귀 후엔 전혀 접점이 없으니 아는 척 할 필요는 없다.

회귀하기 전에도 헌터스리그 1부 리그에서 2~3위권 근접 딜러로 계속 활약했던 녀석이다. 그리고 같은 고등학교를 다녔던 녀석. 김도준이다.

“아, 옆 반인데 들어본 적 없어? 김도준이라고, 우리학교 각성자로 꽤 유명하지 않아?”

“아 그래? 난 처음 듣는데…….”

표정이 바로 시무룩해진다. 프로 시절에 있던 관종끼가 벌써부터 새싹이 보인다.

자기 이름이 유명하다며 스스로 어깨를 으쓱하며 묻다니. 역시 얼굴에 철판을 깐 것임이 틀림없다.

“뭐, 처음 들을 수도 있지. 그건 그렇고 여기 있다는 건 서울 헌터 아카데미 유소년 구단 입단시험 보는 거지?”

말하는 게 꽤 기세등등하다. 승리했다는 듯한 저 표정. 뭐, 아마 여기 있는 거 보니 이 나이부터 벌써 아카데미생이었나.

서울 시립 헌터스 리그 경기장에 있다 보니 이런 착각을 하는 것 같다.

근데 여긴 경기장만 있는 게 아니라, 서울시가 가진 기타 헌터시설과 공공 연습시설도 있다.

“시험 안 보는데. 뭐 할 말 있어?”

지금 들릴 곳은 종합 헌터 훈련시설. 김도준이랑 마주칠 일은 아마 더 없을 것이다.

“아니 그냥……지나가다 몇 번 본 적 있으니까 그랬지. 훈련 잘 해.”

원래 이렇게 남한테 말 거는 성격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회귀 전에도 잘 알던 사이는 아니었고.

왜 갑자기 친한 척 말을 걸었는지 싶다. 뭐, 그걸 내가 알 거 아니고.

안내데스크로 가서 볼 일이나 봐야겠다.

“3시에서 6시까지 종합 헌터 훈련시설 대여 가능한가요?”

“신분증은 챙겨 오셨나요?”

여기서 말하는 건 주민등록증 같은 게 아니라, 각성자 등록증이다.

“여기요.”

“아, 미성년자는 보호자 동의가 필요한데…….”

회귀 전에는 성인이라 챙긴 적이 없어 생각을 못했다.

여기서 돌아가면 오늘 연습은 말짱 꽝인데…….

“다른 방법 없을까요?”

“미성년자는 보호자 동의가 필수라 다른 방법은 없어요.”

곤란해 하고 있을 찰나, 다가온 건 김도준이었다.

“아직 안 갔냐?”

“곤란해 보이는데 도와줄까?”

“너도 미성년잔데?”

“서울구단 아카데미생이라 그 정돈 가능하지.”

딱히 왜 호의를 보이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좋은 게 좋은 거지.

회귀 전엔 아무런 연관점도 없었는데 도움을 받으니 기분이 묘하다. 나중에 곤란한 일 생기면 한 번쯤 도와줘야겠다.

“대신 같이 들어갈래? 나도 4시까진 시간 있는데.”

그럼 그렇지. 역시 사람은 아무런 대가없이 무언가 베풀지 않는 법이다.

손해 볼 건 없으니까. 거절할 필요는 없다.

“그래.”

"그럼 서울 헌터스 아카데미 김도준 학생을 보호자로 2인, 입실 신청 넣어드렸습니다. E실로 입실하시면 됩니다."

뭐, 어차피 몸 푸는 건데 좀 보여 준다고 문제 될 만한 것도 없고.

***

“우리 학교에서 헌터 되려는 애들은 별로 없어서 되게 반갑다.”

“나?”

“어. 난 이번에 서울 시립 아카데미 구단 입단했는데, 다 나보다 연상이고 모르는 사람이라 말 트기가 좀 그렇더라고.”

어쩐지. 회귀 전에도 외향적으로 먼저 말 걸고 친구 사귀고 그럴 것 같아 보이진 않았지.

“너도 뭐…… 힘들겠지만 연습해서 서울 시립 아카데미 입단시험도 한번 쳐 봐. 내가 감독님한테 네 이야기 한 번 해 줄 수도 있으니까.”

피식 웃음이 나왔다. 감독이 막 아카데미에 들어온 중학생 꼬마 애 말을 들을지는 둘째 치고, 은근한 자기 자랑과 동시에 외로움이 겹치니 불쾌하지 않고 오히려 귀엽다.

“그러든가.”

“근데 종합 헌터훈련시설은 왜? 이름만 그럴 듯하지 거기서 훈련하는 사람 별로 없던데.”

“그야 그렇겠지. 그건 헌터스 리그보다는 그냥 순수하게 연습하려고 만들어진 곳이니까.”

바로 도착한 종합 헌터훈련시설은 바닥부터 천장까지 입구를 제외하면 완전히 하얗게 물들어 있는 직육면체 형태의 방이었다.

“있어 봤자 재미없을걸? 내 스킬만 몇 개 시험해 보고 체력 단련할 거라.”

“뭐, 같은 학교 친구니까 원하면 단련하는 거 좀 도와줄 수도 있고…….”

딴에는 내가 자기한테 도움을 달라고 하길 바라는 눈치다. 하지만, 사실상 회귀 전 나이까지 치면 수십 년 더 살았는데, 애한테 도와 달라고 할 리가 없지.

- 설정을 진행합니다.

[몬스터 유형 : 탱커 클론 / 발생지점 : 시작지점 / 연습목표 : 없음 / 지형 : 트레이닝룸]

그 말이 끝나자마자 아무것도 없이 휑하기만 했던 훈련시설의 중앙에 갑옷을 입고 거대한 방패를 든 남자가 나타났다.

‘탱커 클론.’

다른 게임으로 비유하자면 자유로운 연습모드에 탱커 허수아비 한 개를 세워 놨다는 게 적절할 것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 탱커 클론의 방어력이 무지막지해서 웬만해선 흠집도 낼 수 없다는 것. 물론 리그에서 가끔 보너스 몹처럼 등장하니 김도준 녀석도 몇 번 상대해 봤을 것이다.

“창현아. 연습하려면 일반 클론으로 해야지. 연습모드라 사실상 허수아비라고 해도 지금 능력치로는 흠집도 안 날걸?”

역시나 반응이 시큰둥하다. 되레 지금 이미 아카데미에 들어가 있기에 나보다 훨씬 경력자라고 생각해선지 훈수를 둔다.

하긴, 내가 쥐고 있는 게 특별한 무기도 아니고 기본적으로 쓰는 근거리 딜러형 창이다. 나라도 별로 추천하지 않았을 것 같다.

“그럼 샌드백이 단단해야지. 너무 무르면 그게 샌드백이냐?”

김도준은 이 말을 듣고는 한번 해볼 테면 해봐라. 같은 표정으로, 약간은 한심한 듯 보며 거만하게 앉아 있었다.

막 각성한 뉴비의 매운 맛을 보여 줄 시간이다.

“네가 약골인 걸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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