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9화
임 사장과 만나기로 한 장소는 JH 메디컬도.
코리아 메디컬도 아니었다.
회사를 넘기는 입장에 놓인 임 사장은 그 어떤 사람들에게도 이 장면을 보여 주고 싶지 않았던 거겠지.
임 사장과 나는 그 어떤 사무실도 아닌, 인적이 드문 식당에 도착했다.
서로 마주 보고 식사를 할 사이는 아니었지만.
식당에서 자리를 잡은 건, 그저 이야기를 나눌 공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업계 1위였던 회사를 내게 넘기려는 임 사장.
그와 나눌 이야기를 차 안에서, 혹은 시끌벅적한 카페에서 나눌 수는 없었으니까.
프라이빗하게 커다란 룸으로 이루어진 이곳.
옆방에서 어떤 대화가 오고 가는지 전혀 들리지 않는 이곳에서 우리는 서로를 마주했다.
“어, 민 대표 왔어?”
임 사장의 입에서 나온 ‘민 대표’라는 말.
그는 내가 코리아 메디컬에서 퇴사하는 날에도.
내가 JH 메디컬의 대표가 된 이후에도, 내게 줄곧 호칭을 바꾸지 않았었다.
그가 내게 민 대표라고 부르는 건, 단순히 호칭이 바뀐 것을 뜻하지 않는다.
이제 임 사장과 내 사이의 흐름이 바뀐 것이지.
“네, 임 사장님.”
나는 자리에 앉아 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하실 말씀이…….”
내 말에 그는 앞에 놓인 음식을 살피며 말했다.
“이제 막 왔는데, 뭐가 그리 성급해. 음식들 좀 먹으면서 차분히 이야기하자고.”
“저희가 음식 먹으면서 화기애애하게 대화 나눌 사이는 아니지 않습니까.”
임 사장의 동공이 빠르게 흔들렸지만, 이미 부탁을 하는 입장이 되어 버린 그는 한숨을 삼켜 냈다.
“뭐… 그렇기는 하지만. 그럼 바로 본론으로 넘어가자고.”
그는 들고 있던 젓가락을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통화로 말했던 거, 그대로네. 그때 우리 회사로 와서 내게 했던 말. 그거 아직 유효하지?”
전날 통화로 들었던 임 사장의 말.
내가 그에게 했던 제안이 유효하냐는 말, 그 이야기를 한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직접 내 눈을 보며 말하는 그를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자신이 지금껏 쌓아 올린 회사를 자신의 직원이었던 내게 넘기겠다고 말하는 거니까.
감회가 새로울 뿐이지, 그가 안타깝거나 안쓰러워 보이지는 않았다.
이 모든 건 임 사장의 욕심과 이기심에서 이뤄진 결과니까.
메디컬의 여러 기업에서 그의 회사에 눈독을 들이지 않고 있고.
그가 선택할 방법은 ‘JH 메디컬’ 나뿐이라는 걸 나는 잘 알고 있다.
나는 임 사장을 바라보며 되물었다.
“그러니까, 코리아 메디컬을 제게 넘기고 싶다는 말씀이시죠?”
내 물음에 임 사장은 입술을 잘근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에 나는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제가 코리아 메디컬 무너지지 않게, JH 메디컬에서 잘 끌고 가 보겠습니다.”
“…….”
임 사장의 복잡미묘한 표정이 드러났고.
나는 그런 임 사장을 바라보며 읊조렸다.
“코리아 메디컬은 사라지겠지만, 임 사장님께서 함께해 오던 사무실도, 직원들도, 제가 다 포용해서. JH 메디컬 몸집 크게 키워 보겠습니다.”
“…그래. 내 평생을 바쳤던 회사야. 잘 부탁하네…….”
회사가 부도 처리를 하며 사라지는 것보다는 울며 겨자 먹기라도 내게 넘기고 돈을 받는 게, 임 사장의 최선이었을 터.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고.
임 사장은 내게 서류를 하나 내밀었다.
“지금 회사의 부채 금액과 자산 내용. 그리고 지난번에 민 대표가 내게 제안했던 금액…….”
그가 내민 서류에는 코리아 메디컬의 현재 부채에 관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서류 맨 아래.
내가 임 사장에게 처음 제안했던 금액에 대한 이야기가 공란으로 비어 있었다.
코리아 메디컬을 인수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그에게 코리아 메디컬에 대한 인수 금액 외에 돈을 얹어 주려 했었지.
그때는 이 회사를 인수하겠다는 기업들의 이야기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상황을 견줄 수가 없었다.
모든 기업들은 무너져 가는 코리아 메디컬을.
그리고 이 많은 부채를 감당하면서 코리아 메디컬을 인수할 생각이 없었고.
오로지 JH 메디컬, 나만이 코리아 메디컬을 인수하려고 하고 있었으니까.
나는 눈썹을 들썩이며 서류가 아닌, 임 사장을 바라보았다.
“임 사장님. 제가 제안했던 금액 말입니다.”
그는 머리를 흔들며 내 말에 집중했고.
“계산기는 다시 두드려 봐야 할 것 같은데요?”
“…뭐?”
놀란 것보다 충격을 받았다는 듯한 그의 표정.
나는 쓰읍 소리를 내며 종이를 툭툭 건드렸다.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잖습니까.”
“그게 무슨…….”
“항상 저한테 이야기해 주셨잖아요. 장사꾼은 돈 계산을 잘해야 한다고. 이제는 제가 굳이 임 사장님의 노후까지 챙겨드릴 필요가 없는 것 같아서요.”
내 말에 임 사장은 입술을 파르르 떨었고.
분노가 차오르는 듯 보였지만, 임 사장은 내게 쉽사리 소리를 지를 수가 없었다.
그에게는 선택권 같은 건 없었으니까.
“지훈이 너… 이런 식으로 나한테 복수라도 한다는 거야?”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복수라니요. 제대로 된 복수를 하려고 했다면, 제가 코리아 메디컬을 인수조차 안 했겠죠.”
코리아 메디컬에게, 그리고 임 사장에게 복수하려 엄청난 마음을 먹었다면.
나는 코리아 메디컬이 하나씩 무너져 가는 것을 그저 보고만 있었을 것이다.
그 어떤 기업에서 인수도 하지 않는 1위였던 메디컬.
내가 성공하는 것을 막기 위해 모든 수를 쓰며 막았던 임 사장.
그가 점점 무너져 가는 것을 보며 즐거워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뻔한 복수는 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최종 목표는 임 사장에게 복수하고 그를 누르는 것이 아니라.
JH 메디컬이 메디컬 업계 최고가 되는 것이었으니까.
나는 그 수단 중 하나로 코리아 메디컬을 인수하려는 것일 뿐.
어쩌면 이것도 복수라고 볼 수도 있기는 할 테지만.
나는 그저 성공으로 가는 길에서 코리아 메디컬을 발판으로 삼을 뿐이었다.
코리아 메디컬은, 임 사장은 그저 내게 그런 존재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될 수 없는 작은 존재였다.
“제대로 계산기를 두드려 보니, 제가 조금이라도 돈을 얹어 드릴 필요가 없더라고요. 제값에 가져가겠습니다, 코리아 메디컬.”
임 사장은 몸을 부르르 떨었고.
순간 그의 속마음 소리가 내게 들려왔다.
[민지훈 이 자식. 내가 결국, 선택해야 하는 게… 민지훈 이 쥐새끼밖에 없다니…….]
그의 속마음에도 나는 미소로 일관한 채, 그에게 말했다.
“임 사장님도 생각하실 시간이 필요하실 테니까. 깊게 고민해 보시고, 연락 주세요.”
나는 그대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고.
문을 열려던 순간.
손가락을 튕기며 그에게 말했다.
“아, 이 제안도 길게 가지는 않을 테니까. 생각… 오래 걸리시지는 않으셨으면 좋겠네요.”
* * *
모두가 퇴근하고 난 이후.
임 사장은 불이 꺼진 사무실로 터덜터덜 들어왔다.
“하아… X발.”
그는 사장실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었다.
“내 평생을 바친 이 회사를 다른 사람도 아닌 민지훈 그 자식한테……. 헐값에 넘겨야 하는 게 말이 돼?”
쾅―!
그는 손에 집히는 물건을 바닥에 내동댕이쳤고.
“X발!”
임 사장은 사무실이 울리도록 소리쳤다.
울분을 이기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텅 빈 사무실을 바라보며 흐느꼈다.
“하아… 작은 쥐새끼 알짱거리는 거 막으려다가 이게 무슨…….”
사장실 유리창에 비친, 패배감에 무너져 허덕이는 그의 모습.
임 사장은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울부짖었고.
사장실은 절규로 가득 찼다.
그렇게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겨우 진정한 듯 보이는 임 사장은 깜깜하던 사장실에 불을 켰고.
난장판이 된 사장실의 물건을 하나씩 치우기 시작했다.
“그래. 이게 다… 내 업보지…….”
임 사장의 넋 놓은 얼굴.
그는 무언가 결심한 듯 치우던 물건을 내려놓고.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휴대전화에 대고 입을 열었다.
“민 대표, 나야. 코리아 메디컬, 계약하지…….”
* * *
몇 달 뒤.
코리아 메디컬을 인수하고 정신없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주춤하던 코리아 메디컬은 ‘JH 메디컬’의 이름으로 바뀌자마자 날개를 단 듯 다시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회사에 부족하던 직원들은 경력직으로 가득한 코리아 메디컬 직원들로 채워졌고.
기존 JH 메디컬에서 영업하지 못했던 병원들은 코리아 메디컬의 거래처였기에.
그 모든 거래처 병원들은 삽시간에 내 거래처가 되었지.
모든 메디컬 기업에서.
그리고 우리나라의 경제 상황에서도 눈길을 줄 만큼.
JH 메디컬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고.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아, 업계 1위를 당당히 차지했다.
한때는 업계 1위였지만, 급변하는 사회에 밀려 무너져 가는 코리아 메디컬.
그 회사를 떠안았다는 사실만으로도 JH 메디컬은 매일 같이 경제 시장에 오르락내리락했고.
결국, 메디컬 제조 1위.
메디컬 영업 판매 1위, 라는 엄청난 결과를 도래했다는 사실에 JH 메디컬은 유명세를 탈 수밖에 없었다.
임 사장이 그렇게 공을 들이며 돈을 부었던 제조.
그 제조의 부족함을 채워 끝맺음을 지었고.
JH 메디컬의 제조 품목은 날이 갈수록 늘어가고 있었다.
똑똑.
“네, 들어와요.”
대표실의 문이 열리고 들어오는 사람.
신소율 과장이었다.
“대표님!”
신소율은 JH 메디컬의 창립 멤버였고.
그녀는 한 번에 불어난 직원에도 주춤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그 많은 인원을 통솔하며 회사를 이끌었다.
그러니, 그녀의 직책은 빠르게 올라갈 수밖에.
직책은 회사에 얼마나 근무하며 머물렀느냐가 아니라.
능력에 따라 오를 수 있는 것이었으니까.
“네, 신 과장님. 무슨 일이에요?”
“이것 좀 보세요.”
평소와는 달리, 잔뜩 신이 난 얼굴로 다가온 그녀는 내게 파일을 하나 내밀었다.
“이게 뭔데요?”
나는 서둘러 파일을 열었고.
“NA 바이오에서 저희 새로 나온 제조품들 전부 발주하시겠대요.”
그녀의 말에 나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소리쳤다.
“이제 막 출시된 제품을 전부요?”
“네, 이제는 제품이 아니라. JH 메디컬 자체를 믿고 발주하시는 것 같아요.”
신 과장의 말에 나는 입꼬리를 길게 휘었고.
그녀는 입술을 움찔거리며 내게 말했다.
“그거 말고 또 좋은 소식 있는데…….”
“오늘 무슨 날이길래, 이렇게 좋은 소식이 많아요?”
“오늘이 무슨 날인 게 아니라. 대표님께서 매일 좋은 일이 일어날 수 있게, 노력해 두신 거죠.”
신 과장은 씨익 미소를 지으며 양손으로 든 책을 하나 내게 내밀었다.
“여기요!”
예쁘게 포장된 책 한 권.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포장을 풀었고.
“무슨 책이에요?”
“한번 풀어 보세요.”
포장을 풀자, 책 표지에는 내 얼굴이 가득 채워진 잡지가 있었다.
‘메딕스’.
영어가 가득한 메딕스 잡지 표지를 가득 메운 내 얼굴과 JH 메디컬 로고.
나는 입을 떡 벌리며 말했다.
“메딕스 잡지 벌써 발간됐어요?”
“네. 오늘 택배 도착하자마자 첫 번째 잡지 포장해서 가져왔어요.”
그녀는 잡지에 실린 내 얼굴을 보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대표님, 메딕스 잡지 메인에 한국 메디컬이 실린 거. 출간 이래로 처음이라고 하더라고요.”
“정말요?”
“네, 한국 메디컬 회사가 종종 실린 적은 있는데. 메인에 실린 거는 처음이요. 역시, 대표님!”
신 과장의 말에 나는 웃음을 터트렸다.
“이야. 영광이네요.”
국내 잡지사인 ‘이달의 메디컬’.
그 잡지 작은 페이지에 JH 메디컬이 실렸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달의 메디컬의 메인에 실리기도 하고.
이제는 해외 1위 메디컬 잡지인 ‘메딕스’의 잡지 메인까지.
눈앞에 펼쳐진 모든 일이 꿈만 같았다.
잡지 메인에 실리고 싶은 소망이 있었다.
단순히 잡지 메인에 회사가 올라왔으면 좋겠다, 라는 것이 아니었다.
그곳에 내 회사가 실린다는 건 업계 1위, 그 이상의 의미였다.
내가 그토록 바라던 ‘성공’.
나는 그동안 성공을 향해 수많은 것을 포기하며 달리고 또 달려왔다.
힘든 일도 많았고, 부당한 일도 수없이 겪었지만.
단 한 순간도 포기하지 않고 달려온 건.
‘성공’이라는 목표 하나만을 바라보고 달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내가 생각한 메디컬 성공의 지표에 오르게 되었고.
나는 이 벅찬 마음에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잡지 표지에 실린 문구.
-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아시아의 메디컬 ‘JH 메디컬’.
나는 이 문구를 수없이 되뇌며 읊조렸다.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나도 내 앞으로 펼쳐질 일들이 기대돼.”
이제 또 시작될 내 앞으로의 미래를 떠올리며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고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내가 꿈꾸던 성공의 마지막 한 조각.
그것 또한 이루러 가야 했으니까.
* * *
“자기야, 여기.”
나는 내게로 다가오는 김사랑을 보며 손을 흔들었다.
“지훈아, 보고 싶었어.”
“나도.”
그녀는 내게로 달려와 단숨에 나를 꽈악 끌어안았고.
나는 흐뭇하게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품에 안았다.
“오늘도 고생했어.”
“이야. 영광이네요.”
국내 잡지사인 ‘이달의 메디컬’.
그 잡지 작은 페이지에 JH 메디컬이 실렸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달의 메디컬의 메인에 실리기도 하고.
이제는 해외 1위 메디컬 잡지인 ‘메딕스’의 잡지 메인까지.
눈앞에 펼쳐진 모든 일이 꿈만 같았다.
잡지 메인에 실리고 싶은 소망이 있었다.
단순히 잡지 메인에 회사가 올라왔으면 좋겠다, 라는 것이 아니었다.
그곳에 내 회사가 실린다는 건 업계 1위, 그 이상의 의미였다.
내가 그토록 바라던 ‘성공’.
나는 그동안 성공을 향해 수많은 것을 포기하며 달리고 또 달려왔다.
힘든 일도 많았고, 부당한 일도 수없이 겪었지만.
단 한 순간도 포기하지 않고 달려온 건.
‘성공’이라는 목표 하나만을 바라보고 달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내가 생각한 메디컬 성공의 지표에 오르게 되었고.
나는 이 벅찬 마음에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잡지 표지에 실린 문구.
-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아시아의 메디컬 ‘JH 메디컬’.
나는 이 문구를 수없이 되뇌며 읊조렸다.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나도 내 앞으로 펼쳐질 일들이 기대돼.”
이제 또 시작될 내 앞으로의 미래를 떠올리며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고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내가 꿈꾸던 성공의 마지막 한 조각.
그것 또한 이루러 가야 했으니까.
* * *
“자기야, 여기.”
나는 내게로 다가오는 김사랑을 보며 손을 흔들었다.
“지훈아, 보고 싶었어.”
“나도.”
그녀는 내게로 달려와 단숨에 나를 꽈악 끌어안았고.
나는 흐뭇하게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품에 안았다.
“오늘도 고생했어.”
“아니야. 그래도 오늘 자기랑 데이트할 생각에 병원에서도 행복했어.”
그녀의 말에 나는 코를 찡긋거렸다.
“그동안 미안해, 회사 일이 바빠서 자주 만나지도 못하고.”
김사랑은 내 말에 손사래를 치며 답했다.
“에이. 그게 뭐가 미안해. 노는 것도 아니고, 일하느라 못 만난 건데.”
“그래도…….”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주변을 둘러보며 내게 물었다.
“근데 왜 여기서 만나자고 했어?”
김사랑의 말에 나는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
“보여 줄 게 있어서.”
내 말에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기 아파트들밖에 없는데?”
“잠깐 뭐 하나만 보고,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레스토랑 가자.”
“좋아!”
우리는 서로의 손을 꽉 잡은 채, 발길을 옮겼다.
김사랑은 내가 그녀를 데리고 가는 동안에도 내게 질문은 하지 않았다.
어디로 가는지.
무엇을 하러 가는지도.
그저 나와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행복하다는 듯 연신 미소를 짓고 있었고.
그런 그녀의 손을 꽉 잡은 채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지금 이 순간에 가장 긴장한 건, 그녀가 아닌 나였으니까.
엘리베이터는 한 층에 멈춰 섰고.
나는 그녀의 눈을 내 양손으로 가렸다.
“사랑아, 내가 뭐 보여 주고 싶어서. 우선 눈 감고 조심히 와야 해.”
“뭐야. 뭔데 눈을 가려?”
“앞에 발 조심!”
김사랑은 어느새 내게 몸을 맡긴 채 나를 따라 움직였고.
반짝이는 한강이 보이는 창가 앞에서 그녀의 눈을 가리고 있던 손을 떼어 냈다.
김사랑은 눈을 깜빡이며 앞에 보이는 광경에 입을 떡 벌렸고.
나는 주머니 속에서 반지를 꺼내 그녀를 바라보았다.
“사랑아. 우리… 결혼하자.”
내 말에 김사랑은 손으로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고.
“지훈아… 이게 다 뭐야?”
나는 눈동자를 굴려 집 안을 보며 말했다.
“여기. 우리가 결혼해서 함께할 신혼집.”
이 집의 공실을 그토록 기다렸던 이유.
김사랑이 꿈꾸던 집이었기 때문이다.
한강이 아름답게 내려다보이는 이 아파트.
그중 가장 좋은 아파트, 호실로 유명한 이곳을 김사랑은 동경했었다.
“내가… 신혼집으로 살고 싶다던 아파트. 그거 기억하고 여기 구한 거야?”
그녀는 울먹이며 내게 물었고.
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자기가 여기서 시작하고 싶다고 했잖아. 우리, 결혼하자. 여기서 행복하게…….”
김사랑은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울음을 터트리며 외쳤다.
“좋아, 결혼하자.”
그녀의 두 뺨은 눈물로 번졌고.
나는 그 눈물을 손으로 닦아 내며 김사랑을 품에 안았다.
“사랑해.”
“나도, 사랑해.”
이 집을 고집했던 이유.
이 집이 내게 의미가 있었던 이유.
모든 이유는 내가 사랑하는 그녀, 김사랑 때문이었다.
내가 성공에 목말랐던 건, 그녀와의 행복을 그렸기 때문이기도 하니까.
* * *
모든 것을 다 이룬 것만 같았다.
아니, 내가 그리던 모든 것들을 다 이뤄 냈다.
광주에서 시작했던 메디컬 영업사원.
그저 평범했던 영업사원에서 시작해, 광주를 넘어 서울로 진출했고.
이후 내 이름을 건, JH 메디컬이라는 회사를 차렸었다.
원하던 메디컬 제조 회사에서도 1위라는 영광스러운 기록을 남겼고.
내가 잘하던, 영업이라는 분야로 넓혀 메디컬 계의 한 획을 긋게 되었지.
이 모든 순간들이 꿈만 같았다.
너무나 절실했으니까.
성공을 향해 달리고 또 달렸던 지난날들.
이제는 내가 그리던 꿈도, 목표도, 사랑도 모두 다 이뤄 내고 말았다.
어느 날, 불현듯 들려왔던 속마음 소리.
그날이었을 것이다.
내가 인생을 살며, 가장 간절하게 성공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
그런 특별한 능력 덕에 이 자리에 올 수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 능력으로 내가 가장 성장할 수 있었던 건.
속마음을 읽는 기술이 아닌, ‘자신감’이었으니까.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
뭐든지 노력하면 된다는 자신감이 차올랐고.
나는 그렇게 성공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렸었다.
내가 생각했던 성공의 목표에 도착했지만.
나는 여기서 안주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제 또 다른 목표를 세워, 더 높이, 더 멀리 나아가고 싶었다.
천재 영업사원이 되기 위한 걸음은 여기서 멈추지 않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