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8화
“승재야, 혹시 연락 온 회사 없어?”
임 사장의 물음에 임 차장은 한숨을 깊게 삼켰다.
“응. 오늘도 없었어. 그리고 백 이사님은 다시 출근 안 하시는 거지?”
그의 말에 임 사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됐어. 그렇게 키워 놨더니, 이렇게 힘들 때 떠난 놈 붙잡아서 뭐 해. 그냥 갈 길 가게 놔둬야지. 지도 혼자 회사 키워 보다가 힘들어야 그때, 지금 상황 떠올리면서 땅을 치고 후회할 거야.”
임 사장은 자신이 힘들 때, 떠나간 백 이사를 생각하며 저주를 퍼붓듯 분노를 표출했지만.
그의 마음 깊은 곳에서의 쓰라림이 모두 느껴지고 있었다.
“삼촌… 기존 병원에서 발주 들어오는 건, 어떻게 처리할까?”
직원들이 많이 빠져나간 회사.
임 차장이 그에게 ‘삼촌’이라는 호칭을 써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이제는 삼촌, 조카 간의 관계를 따져 물을 직원도.
임 사장도 그걸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현재 닥친 상황은 사소한 모든 것을 개의치 않게 만들고 있었지.
“우선 발주 들어온 건, 취소되지 않게 납품해 둬. 어느 회사에서 우리 코리아 메디컬 인수하더라도, 거래처가 많이 남아 있어야 값이라도 제대로 받지.”
“알겠어. 납품은 이상 없도록 확인할게.”
“나가 봐.”
임 사장은 자신의 머리를 꾹꾹 누르며, 겨우 숨을 쉬는 듯 보였고.
임 차장은 그런 그를 바라보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삼촌… 그때 민지훈 말이야……. 몇억이라도 얹어 준다고 할 때, 받았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어서…….”
그는 자신이 말을 뱉어 놓고, 서둘러 자신의 입을 툭툭 치며 재차 말했다.
탁, 탁―
“아니다, 아니야.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죽어도 민지훈한테는 주는 게 아니지. 삼촌, 우리 다시 시작하자. 삼촌 쉬지도 못하고 평생 일만 했잖아.”
그의 말에 임 사장은 아무런 답 없이 고개를 들었고.
“몇 년만 푹 쉬었다가 다시 복귀하자. 내가 그동안 열심히 업계에 남아서 감 잃지 않게 일하고 있을게.”
“승재야. 나는 다시 이 업계 못 돌아와.”
“그래도 삼촌이 평생 일했던 게 메디컬인데…….”
“아이고. 머리 아프다, 나 혼자 있게 너도 얼른 퇴근해. 다들 들어갔는데.”
“…알겠어.”
임 차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사장실을 빠져나갔고.
텅 빈 사장실에서 임 사장은 홀로 자리를 지켰다.
몇 시간 뒤.
“하아…….”
사장실에는 여전히 임 사장의 한숨으로만 가득 차 있었다.
사장실에서 보이는 사무실은 모든 불이 꺼져 깜깜했고.
창밖으로도 짙은 어둠이 그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만 같았다.
어두운 사무실에서 임 사장은 홀로 깊은 생각에 잠긴 채.
자신의 회사를 쓰윽 둘러 보았다.
“내가 이러려고 평생을 이렇게 메디컬에 바쳤었나?”
어둠 속에 홀로 있던 임 사장의 두 뺨은 어느새 뜨거운 눈물 한줄기가 주륵 흘렀고.
“하아… X발……. 이게 다 민지훈 그 자식 때문이야.”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책장 아래에 있는 양주 한 병을 꺼냈다.
벌컥, 벌컥.
짙은 알코올 향이 그의 주변을 감쌌고.
임 사장은 알코올이 가득 담긴 긴 숨을 내뱉었다.
“대체 내가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온 거지?”
그는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고.
“코리아 메디컬. 이 회사를 여기까지 올리느라, 내가 죽을 고생을 다 했는데!”
쾅―
임 사장은 손에 집히는 물건을 사장실 문 쪽으로 집어 던졌고.
“민지훈 그 새끼를 막아섰던 그때부터?”
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소리쳤다.
“아니, 제조에 발을 들였던 그때부터인가……. 아니면, 민지훈이 내 밑에서 제조에 발을 담그자고 했을 때부터?”
그의 울부짖음이 사장실에 울려 퍼졌고.
임 사장은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연거푸 양주를 병째 들이켰다.
그러고는 팔로 자신의 입가에 묻은 알코올을 쓰윽 닦아 내며 한숨 섞인 말을 내뱉었다.
“그깟 쥐새끼 하나가 뭐라고 고양이. 아니, 업계 호랑이인 내가 이렇게 무너져야 하는 건데!”
쨍그랑―
임 사장은 손에 들린 양주를 모두 입에 털어 붓고.
그 병을 바닥으로 내동댕이치자, 결국 병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그는 털썩 소파에 주저앉았고.
흐느끼듯 몸을 들썩이며 읊조렸다.
“다시… 살 방법이 없어. 직원들 월급 하나 못 주는 내가… 사장 노릇을 이어 가는 게 의미가 있는 건가…….”
벌컥.
문이 열리고, 빛이 들어오자 임 사장은 눈이 부신지 자신의 눈을 황급히 가렸다.
어쩌면 빛에 눈이 부신 게 아니라, 눈물을 감춰 냈는지도 모른다.
“삼촌!”
임 차장은 손을 더듬어 어두운 사장실에 불을 밝혔고.
“뭐야. 승재 네가 왜 다시 사무실에 왔어?”
“삼촌 이러고 있을 것 같아서 왔지. 불도 다 끄고 뭐 하고 있는 거야.”
불이 켜지자 엉망이 된 사장실이 한눈에 들어왔고.
임 차장은 입을 떡 벌렸지만, 황급히 놀란 얼굴을 감춰 내며 말했다.
“삼촌, 저 독한 양주만 먹으면 속 버려. 안주라도 챙겨 먹던가.”
툭―
그는 가져온 안주가 담긴 봉지를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임 차장은 알고 있었다.
임 사장이 평소에도 사장실에 홀로 남아 양주를 마셨다는 것을 말이다.
출근하면 늘 풍기던 알코올의 냄새.
임 사장이 치웠지만, 흔적이 남아 있던 깨진 술병 조각들.
그런 임 차장의 행동에 임 사장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표정을 바꾸고 자리에 앉았다.
“삼촌, 저녁도 안 먹었잖아. 얼른 한 젓가락 해.”
그의 말에도 임 사장은 미동도 하지 않고,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둘 사이에 정적이 흐르고 있었고.
임 사장은 그를 바라보며 한숨을 삼켜 낸 채 말했다.
“승재야. 세상이 왜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을까…….”
“삼촌, 이제 인수하겠다는 기업 찾아서 얼른 회사 넘기자.”
“…….”
“지금 매일 점점 더 부채만 늘어가고 있잖아. 파산 신청하면, 삼촌 앞으로 재산도 소유 못 하고…….”
그는 진심으로 자신의 삼촌을 걱정하며 말을 쏟아 냈고.
임 사장은 넋이 나간 얼굴로 멍하니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 * *
“오늘도 다들 고생했어요. 야근하지 말고, 일찍들 퇴근합시다!”
내 말에 직원들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대표님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럼 조심히 들어가고, 내일 봅…….”
말을 끝내기도 전에 울리는 전화.
[발신인 : 부동산]
나는 발신인을 확인하자마자 눈을 휘둥그레 뜨며 직원들을 향해 소리쳤다.
“내일 봐요. 저 급한 일이 있어서,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네, 대표님. 들어가세요.”
기다리고 기다리던 연락에 나는 서둘러 수신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 안녕하세요, 부동산이에요.
“네, 안녕하세요. 집… 나온 건가요?”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공인 중개사에게 물었고.
그녀는 미소를 머금은 목소리로 내게 답했다.
- 네. 딱 원하시던 집. 그곳 매물 나왔어요. 언제 보러 오실 수…….
나는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소리쳤다.
“지금 당장 보러 가도 괜찮을까요?”
- 아이고. 많이 급하신 모양이네요. 그럼요, 지금 보러 오셔도 됩니다. 하하.
“네, 바로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도착해서 연락드릴게요.”
전화를 끊자마자 나는 차로 달려가, 급히 그 집을 향해 출발했다.
가는 내내 떨리는 심장.
그 집의 매매 소식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퇴근길이라 꽉 막힌 도로였지만.
나는 설레는 마음을 안은 채, 이 막힌 길에도 내 입가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고 있었다.
몇십 분 뒤.
공인 중개사와 만나 함께 도착한 곳.
“제가 이 집 매물 나왔다는 소식 듣자마자 바로 대표님께 연락드린 거라, 대표님이 처음 보시는 겁니다.”
그녀는 밝게 웃으며 도어락의 번호를 눌렀고.
띡띡띡―
도어락 번호를 누르는 소리에 심장은 점점 쿵쾅대기 시작했다.
“제가 이 집을 엄청 기다렸거든요.”
문이 열리고, 그녀는 손으로 집 안을 가리켰다.
“편히 보시면 됩니다.”
“네.”
나는 곧장 거실로 다가가 넓은 통창 앞에 서서 밖을 바라보았다.
어둠이 깔린 하늘.
그리고 그 아래로 반짝이는 물결.
수많은 차들의 라이트로 반짝이는 도로.
나는 이 광경에 입을 떡 벌렸다.
“이야… 야경 예술이네요.”
내 말에 그녀는 내 옆으로 다가와 입을 열었다.
“저도 이 아파트 올 때마다 감탄이 나오더라고요. 아마 한강이 이렇게 예쁘게 보이는 아파트는 단연컨대 이 아파트가 제일일 거예요.”
“네, 그럴 것 같아요.”
나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자리에 서서 멍하니 야경을 감상했다.
한강이 아름답게 펼쳐진 이곳.
그리고 그제야 뒤를 돌아보자 보이는 집.
아이들이 뛰어놀아도 될 정도로 넓은 거실.
거기에 요리를 좋아하는 이들의 로망을 모두 가져다 담은 것만 같은 주방까지.
“화장실은 어디인가요?”
“화장실은 끝 복도에 하나, 안방에 하나. 그리고 거실에 손님용 화장실 작은 곳 하나까지 있습니다.”
“우와. 화장실이 세 개인가요?”
그녀는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구조도 정말 잘 나온 집이고, 아파트 관리 서비스가…….”
공인중개사는 내게 집에 대한 설명을 늘어놓기 시작했고.
나는 그녀의 말에 경청하고 있었지만.
눈으로는 집 내부를 살피기에 바빴다.
내가 그동안 살면서 봤던 집들 중.
모든 것이 완벽하고 또 완벽한 집이었다.
이 집 한가운데 서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이 물씬 들었고.
마음의 평화가 찾아오는 것만 같았지.
한참 이어진 설명.
“…그래서 인기가 없을 수가 없는 집이죠.”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눈을 반짝이며 외쳤다.
“계약할게요.”
“네, 그런데 혹시 왜 이 호실을 계약하고 싶으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아, 이 집이요?”
“예, 그동안 제가 다른 호실도 나왔었는데. 꼭 이곳으로 계약하고 싶다고 하시길래,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지 궁금해서요.”
나는 그녀의 말에 입꼬리를 올렸다.
돈을 벌고, 자리를 잡았다고 내 소유의 집을 갖고 싶다는 건 아니었다.
내 이름으로 된 집을 꼭 가져야겠다는 마음이 아니라.
무조건 이 집을 가지고 싶었던 것이지.
이 집은 내게 의미가 있는 곳이었으니까.
“여기가 꼭 필요했거든요. 제 행복한 삶을 위해서요.”
나는 곧바로 고개를 들고 이제 내 집이 된 이 공간을 쓰윽 훑어보았다.
* * *
집으로 돌아와 몇 번이고 계약서를 살펴보았다.
“크으… 결국 내가 이 집을 사는구나.”
벅차오르는 마음에 나는 몇 번이고 가쁜 숨을 내쉬었다.
“이런 날. 축배를 들어야지.”
퇴근 후, 집 계약을 마치고 업무 마무리를 짓고 돌아오니.
시간은 자정이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이 행복감을 함께 느끼기 위해 주변 사람들이나 여자친구를 만나 함께 축배를 들 시간이 아니었지.
나는 와인 한 잔을 들고, 눈앞에 놓인 서류를 바라보았다.
[매매 계약서]
“이거면 안주로 충분하지.”
입으로는 와인 한 모금.
눈으로는 꿈에 그리던 아파트 계약서를 바라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열심히 돈 번 보람이 있네.”
행복감에 가득 젖은 밤.
오늘은 그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그저 행복하기만 할 것 같았다.
그때.
지이잉.
울리는 진동에 나는 눈썹을 들썩이며 휴대전화를 찾았다.
현재 시각은 자정이 넘어가고 있었고.
이 시간에 전화가 울릴 리가 없었으니까.
“뭐지, 사랑이도 아까 잔다고 했었는데?”
나는 미간을 찌푸린 채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고.
발신인을 보자마자 입을 떡 벌렸다.
[발신인 : 코리아 메디컬 임정준 사장]
“뭐야, 이 시간에 임 사장이 무슨 일이지?”
나는 그의 이름을 보자마자 미간을 찌푸렸다.
임 사장에게서 연락이 왔다는 자체만으로도 놀라웠는데, 전화가 걸려온 시간은 나를 의문스럽게 만들었다.
“흠흠.”
나는 목을 가다듬으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어… 통화 가능한가?
“네. 이 시간에 무슨 일로 전화하셨습니까?”
내 말에 임 사장은 더듬거리며 뜸을 들였고.
“…사장님?”
재차 그를 부르자 임 사장은 한숨을 삼켜 내는 듯한 소리와 함께 입을 열었다.
- 저… 민 과장. 아니, 민 대표. 그때 내게 했던 제안 말이야. 그 제안, 아직도 유효한가?
임 사장의 말에 나는 한쪽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수화기 너머에 있는 그에게 답했다.
“우선 만나서 이야기하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