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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영업사원이 되었다-333화 (333/339)

333화

【 치킨 게임 】

“다녀오셨어요.”

“네.”

나는 곧장 손목시계를 바라보며 직원들을 향해 말했다.

“곧 퇴근 시간이네요. 할 일 다하셨으면, 정리들하고 퇴근하세요.”

내 말에 직원들의 시선은 일제히 벽에 걸린 커다란 시계로 향했고.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하던 일 마저 하고 퇴근하겠습니다.”

그들에게 미소를 보이며 대표실로 향하던 내 모습을 본 신 주임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대표님.”

“예, 신 주임님?”

“혹시… 무슨 일 있으세요?”

그녀의 말에 나는 한숨을 삼켜 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딱히…….”

“표정이 많이 안 좋아 보이셔서요. 무슨 일 있으신가 싶어서 여쭤봤어요.”

내 표정을 보며 단숨에 내게 무슨 일이 있다는 걸 알아차리는 그녀.

신 주임은 걱정하듯 내게 물었고.

그녀의 말에 직원들 역시 걱정하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자, 나는 황급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에요. 별일 없었습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해요, 신 주임님.”

“네, 그럼 다행이죠.”

신 주임을 바라보며 싱긋 웃으며 대표실로 향하던 나는 발길을 멈춰 세웠다.

“아, 주임님.”

“네?”

“혹시 저 나가 있는 사이에 병원이나 다른 영업 직원들에게서 연락 온 건 없었죠?”

“어떤…….”

나는 그녀의 앞으로 다가가 데시벨을 낮췄다.

“병원에서 단가 관련 이야기가 나온 게 있나 싶어서요.”

신 주임은 쓰읍 소리를 내며 내게 답했다.

“아니요. 단가 관련 이야기로 연락받은 건 없었습니다. 혹시 연락 오게 되면 바로 보고 올리겠습니다.”

“그래요. 혹시 병원에서라도 연락 오면 저한테 바로 말해주세요.”

“네, 근데 단가 때문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요?”

그녀는 심각한 얼굴로 미간을 찌푸린 채 내게 물었고.

나는 입술을 잘근 깨물며 조심스레 말했다.

“음… 아직 확실한 건 아니라, 제가 파악해 보고 신 주임한테 따로 이야기 드릴게요.”

“네, 알겠습니다.”

“마무리하시고 직원분들이랑 퇴근해 보셔도 돼요.”

“넵.”

신 주임은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대표실로 들어와 굳게 문을 닫았다.

코리아 메디컬에서 제품 단가를 우리 회사 단가보다 몇백 원 낮췄다는 사실을 아직 회사 직원들에게 알릴 수는 없었다.

왕십리 종합병원만 확인됐을 뿐.

아직 다른 병원들에서 확인된 바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분명 코리아 메디컬 임 사장이라면, 내가 납품하는 모든 병원에 수를 썼을 것이 뻔했다.

굳이 나와 친한 왕십리 종합병원에만 이러한 수를 썼을 리가 없으니까 말이지.

나는 홀로 빈방에서 이제야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치킨 게임이라…….”

‘치킨 게임’.

일명 ‘겁쟁이 게임’이라고도 불리는 치킨 게임.

1950년대, 미국에서 유행한 자동차 게임의 이름에서 유래된 게임이다.

게임이라는 건, 유쾌하기라도 하지.

이건 게임이라는 말 자체가 붙었다는 게 아이러니할 정도.

당시 미국에서 일어난 이 치킨 게임이라는 건.

두 대의 자동차가 서로 마주 본 채 정면으로 충돌하는 상황에서 속도를 낮추지 않고 달리는 것.

그렇게 서로를 향해 내달린다면, 그 두 대의 차량은 엄청난 굉음을 내며 충돌하게 될 것이다.

그 결과, 두 대의 차량은 사고가 날 터.

하지만 이때, 한 대가 먼저 핸들을 꺾거나 속도를 낮춘다면?

그 사고는 일어나지 않겠지.

다만 사고를 면한 그 차는 상황을 회피했다는 이유로 ‘겁쟁이’가 되며, 게임에서 패배자가 되는 것이다.

즉, 한 문제를 가지고 대립하는 상태에서 서로 양보하지 않는다면.

함께 극한으로 치닫는 상황이 될 것.

코리아 메디컬 임 사장은 지금 자신이 단가를 낮춤으로써, 남는 이윤이 적어질 테고.

그에게 맞서서 나 역시 단가를 낮추기 시작한다면.

그야말로 우리는 서로 남는 것 하나 없이 병원에만 이득이 되는, 저렴한 물건을 판매하게 되겠지.

“임 사장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단가를 낮추는 거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그의 입장에서 생각하려 해도 임 사장의 마음을 알아차릴 수가 없었다.

“단지… 내가 물건을 납품하는 걸 막기 위해서?”

그렇다고 하기에는 자신도 출혈이 있는 이 상황인데, 굳이 단가 경쟁에 나선다는 게 이해가 될 리가 없었지.

나 같으면 자신들만의 강점을 어필하며 판매했을 테니까.

나는 주먹을 불끈 쥐며 읊조렸다.

“이건 그냥 나를 막기 위해서라고밖에 생각되지 않아.”

물건을 팔아 돈을 버는 업계에서는 오히려 반대되는 상황이 더 자주 일어난다.

각자 파는 물건이 같든, 다르든.

담합하여 물건값을 올리는 경우가 훨씬 더 많은 편이지.

그렇게 담합해서 값을 올려야만, 소비 업체에서 어쩔 수 없이 높은 금액으로 발주를 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이런 경우라면…….

내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뿐이다.

코리아 메디컬처럼 단가를 낮추는 것.

그렇지 않는다면 나는 그저 코리아 메디컬에게 거래처를 모두 빼앗기고 말 테니까.

이윤을 적게 남기더라도 그 방법 외에는 다른 방안이 없었다.

애초에 잡았던 이윤과는 다르지만, 현재로서 달리 방법은 찾을 수가 없었다.

임 사장에게 연락을 취해 볼까 생각했지만.

그의 의도가 뻔하기에 굳이 그를 만나 설득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이 게임에서 피하면서 패배자가 되기도 싫었지.

판매를 이제 막 시작한 내 입장에서, 초반에 주춤하며 판매를 중단할 수도 없는 노릇.

우선 함께 단가를 낮추되, 서둘러 다른 방안을 찾아야만 한다.

반드시.

* * *

“아이고. 이제야 막혔던 속이 좀 뚫리는 것 같네.”

호탕한 웃음소리가 사장실을 가득 메웠다.

코리아 메디컬 임 사장은 입꼬리를 잔뜩 올리며 소파에 앉은 임 차장을 향해 물었다.

“그래서 왕십리 종합병원에 납품한 금액. JH 메디컬에서 단가 우리보다 다 낮췄다는 거지?”

“네. 우리보다 100원씩이나 더 낮췄대요.”

임 차장의 답에 임 사장은 입꼬리를 사악하게 올렸고.

그 모습에 임 차장은 미간을 찌푸렸다.

“삼촌.”

“왜?”

임 사장은 기분이 좋은지 삼촌이라는 호칭에도 웃으며 답했고.

“아니, 대체 기분이 왜 좋은 거야?”

“무슨 말이야?”

“그렇잖아. 지금 기분이 좋은 게 말이 돼?”

임 차장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양팔을 허공에 흔들며 사장실 책상으로 다가갔다.

“우리 왕십리 종합병원에 그렇게 낮은 가격으로 견적서 보낸 거. 그거 다 민지훈 물건 빼게 만들려는 거 아니야?”

“맞지.”

“근데 결국 민지훈이 단가 더 낮춰서 우리 제품 하나도 못 넣었잖아. 근데 여기서 왜 삼촌이 좋아하고 있냐고.”

임 차장은 민지훈을 떠올리며 몸을 부르르 떨었고.

입술을 잘근 깨물며 이를 악문 채로 읊조렸다.

“민지훈… 이 자식은 왜 이렇게 항상 알짱거려.”

“승재야.”

“응, 삼촌.”

“너는 내가 이렇게 하나하나 다 알려 줘야 하니?”

임 사장의 찌푸려진 미간에 임 차장은 마른침을 삼켰고.

“너는 왜 한 치 앞밖에 모르냐.”

“그게 무슨 말…….”

그는 임 차장이 한심하다는 듯 한숨을 길게 내쉬며 말을 잘라냈다.

“단순히 내가 민지훈 물건만 빼앗으려고 단가를 낮춰 가면서까지 견적서 넣었다고 생각해?”

임 사장은 앞에 서 있는 임 차장을 빤히 바라보며 물었고.

그의 질문에 잠시 사장실 안은 차가운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이내 임 차장이 탄성을 내지르며 입을 열었다.

“아, 민지훈 단가 때문에!”

임 차장의 말에 임 사장은 한쪽 입꼬리를 옅게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 아니었으면 민지훈 이전 금액으로 돈 벌고 있을 거 아니야. 내가 가격 경쟁시켜서, 피의 게임을 만든 거지.”

“역시… 삼촌답네.”

임 차장은 쓰읍 소리를 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근데 삼촌. 그러다가 민지훈이 가격을 낮추지 않고, 납품 포기를 해 버리면 어떻게 해?”

“어쩌긴. 그럼 우리가 납품하게 되는 거고. 민지훈 그 자식 회사 제품을 우리가 빼앗은 거지.”

“대신 우리도 단가를 낮춘 거잖아. 당연히 그만큼 손해를 보는 거고.”

임 사장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답했다.

“손해는 아니지. 조금 남든 많이 남든, 남는 장사니까 말이야.”

남는 장사라는 말에 임 차장은 고개를 끄덕이기는 했으나.

온전히 임 사장의 마음을 이해하지는 못한 모양.

찝찝한 얼굴로 애써 미소를 지었고.

임 사장은 한숨을 짧게 내쉬며 읊조렸다.

“민지훈… 내 밑에서 내가 키운 자식. 내가 밟지 않으면 누가 밟겠어. 이 업계가 쉬운 곳이 아니라는 걸, 똑똑히 보여 줘야지.”

* * *

병원마다 단가를 낮추며 코리아 메디컬에게 거래처를 빼앗기지 않도록 힘을 썼지만.

이대로 계속 피의 경쟁을 이어 갈 수는 없었다.

내가 단가를 낮춘다고 하더라도, 코리아 메디컬에서 재차 더욱 낮은 단가를 제시하기도 했고.

그렇게 납품 단가가 점점 낮아지면서 병원에 많은 양을 판매해도 남는 게 없을 정도까지 내려가고 있었다.

“이 게임에서 피할 수도… 그렇다고 계속해서 맞설 수도 없는데…….”

밤새 이 치킨 게임에서 승리할 필승법을 찾기 위해 고민했고.

치킨 게임에서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은 ‘버티기’.

버티는 방법 외에는 없었다.

이윤이 많이 남지 않더라도 물러서지 않고 가격을 낮추며 버틸 수 있는 것.

하지만 내게 버티는 것에는 분명 한계가 있을 것이다.

코리아 메디컬이 제조에 무리한 투자를 한다고는 하나, 그럼에도 코리아 메디컬의 규모가 있었으니까.

제조에서 번 수익, 그리고 적게라도 남는 이윤으로 버티면서 다른 방법을 빠르게 모색해야만 했다.

이 필승법 외에 돌파구를 찾아야만 한다는 것.

그렇게 한참 고민에 빠졌던 나는 순간 뇌리를 스치는 한 사람.

나는 갑작스레 떠오른 인물을 생각하며 손가락을 튕겼다.

“맞다,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서둘러 휴대전화를 들고 전화를 걸었다.

- 여보세요?

“서 이사님, 저 지훈입니다.”

- 어, 지훈아.

“이사님, 통화 가능하십니까?”

- 그럼, 가능하지. 이제 막 퇴근하는 길이거든.

“딱 맞춰서 전화했네요. 하하.”

- 그러게. 요즘 잘 지내고 있어?

“네. 항상 똑같죠. 이사님은 잘 지내십니까?”

- 나도 똑같지. 너랑 같이 코리아에 있을 때, 부장으로 지내나… 지금 이사로 지내나 늘 같아.

“에이. 그래도 지금은 코리아 메디컬에 이사님 아니십니까.”

- 이사면 뭐하냐. 회사가 내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는데…….

서 이사의 말끝마다 한숨을 늘어놓았고.

나는 서서히 그에게 전화를 건 본론을 꺼내기 시작했다.

“이사님.”

- 응?

“시간 괜찮으시면 저랑 한 번 만나 주실 수 있으실까요?”

- 아이고. 우리 지훈이 만나는데, 괜찮은 시간이 어디 있어. 무조건 시간 내야지. 근데 무슨 일 있어?

“사실… 제가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내가 서 이사에게 할 말의 주제를 조금도 언급하지 않았지만.

서 이사는 내가 할 말에 대한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마치 예상이라도 간다는 것처럼.

- 지훈이 너는 언제 시간 되는데?

“저는 늘 가능합니다. 이사님 시간 되시면…….”

그는 내 말을 잘라 내며 급히 답했다.

- 그럼 오늘 어떠냐?

“당연히 됩니다.”

- 좋네. 안 그래도 오늘 같은 날, 술이나 딱 한잔하고 싶었는데. 잘됐다.

서 이사는 내게는 말하지 못하지만, 목소리에서는 근심이 가득 묻어 있었고.

나는 서둘러 그를 향해 말했다.

“제가 좋은 곳으로 예약해 두겠습니다. 장소는 바로 문자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 그래, 문자 보내 주면 바로 출발할게.

“네, 거기서 뵙겠습니다. 이사님.”

전화를 끊은 후.

나는 눈을 지그시 감고 생각을 되뇌었다.

서 이사에게 해야 할 말들을.

그리고 피해만 가득한 치킨 게임에서의 돌파구를……!

“내가 찾은 방법은… 서 이사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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