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영업사원이 되었다-332화 (332/339)

332화

“대표님.”

한 대리는 다이어리를 든 채로 대표실로 들어왔다.

“어, 한 대리.”

“오늘 영업 사원들 동선 말씀드리려고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자신이 다이어리에 쓴 내용을 내게 보고하기 시작했다.

“재민 씨랑 신입 사원들은 오늘도 소모품 영업으로 보냈습니다. 지역은 재민 씨는 강북구 쪽으로 갔고…….”

그의 이야기에 집중한 채, 나 또한 직원들의 동선을 종이에 끄적였다.

“그리고 저는 트라우마 제품들 영업하고 있는데, 오늘은 강남 쪽 병원으로 가 보려고 합니다.”

“강남 쪽에 가면 우리 거래처 원장님들은 다 아시니까, 인공 관절은 어떤 제품 쓰고 계시는지 확인해 보고.”

한 대리는 내 말을 곧장 다이어리에 적었고.

“네, 확인하고 저희 제품 카탈로그 전달하겠습니다.”

“아니야. 제품만 알아 오면 내가 영업하러 가면서 카탈로그 전달할게.”

“예, 알겠습니다.”

한 대리는 내게 보고가 끝났는지 다이어리를 접었고.

나는 그런 한 대리를 바라보며 물었다.

“한 대리.”

“네, 대표님.”

“요즘 좀 어때?”

내 물음에 그는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확실히 판매 쪽도 하기를 잘한 것 같습니다. 저도 역시 영업이 체질이라 그런지, 판매할 물건이 여러 제품이 되니까 활기도 돌고요.”

그는 신이 난 목소리로 말을 이어 갔다.

“게다가 제가 광주에서부터 판매하던 제품들도 있어서, 직원들한테 교육하기도 좋고. 병원들도 JH 메디컬에서 판매하는 제품이면, 다들 호의적인 반응이라 아주 좋습니다. 하하.”

한 대리가 다소 흥분한 목소리로 말을 끝내자, 나는 호탕하게 웃으며 답했다.

“하하하. 아니, 한 대리 요즘 좀 어떠냐고.”

“네?”

그는 내 말에 눈썹을 들썩이며 되물었다.

“한 대리 말이야. 영업할 것도 많이 늘었는데, 회사에 요즘 힘든 일은 없어?”

“아… 저 말씀이신 겁니까?”

“그래. 내가 광주에서부터 데리고 온 놈인데. 당연히 네 걱정을 하지. 회사 걱정은 나 하나로도 충분해.”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미소를 지었다.

“에이. 저야 힘든 것 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회사 걱정은 왜 대표님 혼자 하십니까. 직원들도 다 같이 해야죠.”

“직원들까지 회사 걱정시키는 대표가 어디 있어.”

한 대리는 내 말에 손사래를 치며 답했다.

“하긴. 대표님은 워낙 일이면 일. 회사 직원이면 직원 걱정. 다 해 주시니까, 저희가 회사 걱정할 일이 적긴 합니다.”

그는 손가락을 튕기며 내게 말했다.

“아, 맞다. 대표님, 이번 주 저나 직원들 소모품이랑 트라우마, 외상 수술 재료 영업 시작했잖습니까?”

“그랬지.”

“반응이 진짜 좋습니다. 저희 창고에 있는 물품들 다음 주면 거래처에 재발주 또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한 대리의 말에 나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물었다.

“그 많은 제품을 벌써 재발주한다고?”

“네. 소모품은 말할 것도 없이 발주가 어마어마하게 들어왔습니다. 수술 재료도 마찬가지고요. 제가 오늘 병원 오전에 다녀와서 병원에서 발주한 수량 정리해서 보고 올리겠습니다.”

그의 말에 나는 안도의 숨을 길게 내쉬었다.

“하아… 다행이네.”

“저는 잘 될 줄 알았습니다.”

“그래?”

한 대리는 확신에 찬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죠. 지금 JH 메디컬이 한국 메디컬 회사들 중에서 떠오르는 회사 아닙니까. 더 열심히 뛰고 또 뛰어 보겠습니다.”

“아이고. 우리 태준이가 JH 메디컬 평생 먹여 살리겠네. 하하.”

“넵. JH 메디컬에 뼈를 묻겠습니다!”

그의 말에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한 대리를 광주 메디컬에서 서울로 스카우트해서 데리고 올 때, 나는 확신이 있었다.

JH 메디컬을 한국 최고의 메디컬 회사로 만들 거라는 확신 말이다.

한 대리가 다른 회사도 아니고, 광주 메디컬을 그만두고 올라오게 만들 때.

나는 그가 나를 선택하게 만든 것도.

그리고 나를 믿고 한 대리를 기꺼이 내게 보내 준 광주 메디컬 식구들에게도.

모두 보여 주고 싶었다.

나를 믿었던, 그들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그리고 점점 JH 메디컬이 성장해 가고 있고, 그것을 한 대리도 몸소 깨닫고 있다는 생각에 나는 절로 미소가 번져 왔다.

“하하. 그래. 같이 JH 메디컬에서 뼈를 묻어 보자, 태준아.”

“당연하죠. 평생 대표님과 열심히 하겠습니다.”

“얼른 나가서 일 봐.”

그는 손날을 세워, 이마에 붙였고.

충성하는 포즈와 함께 내게 소리쳤다.

“넵. 열심히 영업하고 오겠습니다!”

한 대리는 그대로 대표실을 빠져나갔고.

나는 매출표를 바라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판매도 이렇게 점점 상승세를 보인다면, 메디컬 제조뿐만 아니라 영업, 판매에서도 업계 1위 금방 찍을 수 있겠는데?”

고개를 돌려 시간을 확인하고 나는 곧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이럴 때가 아니지. 얼른 인공 관절도 영업하러 가야지.”

* * *

사무실에서 카탈로그와 견적서를 가득 든 채로 병원으로 향했다.

인공 관절은 금액 자체가 소모품과 외상 수술 재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큰 편이다.

단 한 번 수술을 하더라도, 몇백만 원의 돈이 훌쩍 넘으니까.

당연히 병원에 판매 후, 회사에 남는 마진도 다른 품목들에 비해 꽤 좋은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공 관절의 영업이 가장 중요했고.

또 병원에서도 인공 관절 발주는 믿을 만한 거래처와 거래를 이어 가고는 했다.

그만큼 정형외과 쪽에서 인공 관절 수술은 금액도 크고, 중요한 수술이었으니까.

그래서 인공 관절만큼은 한 대리도 아닌, 내가 직접 병원에 영업을 갈 수밖에 없었다.

똑똑.

노크 후 문을 열며 허리를 깊게 접었다.

“안녕하십니까, 원장님.”

접었던 허리를 곧게 펴자 나를 보고 반기는 사람.

왕십리 종합병원의 하 원장이었다.

“이게 누구야. 민 대표, 오랜만이야.”

“원장님, 잘 지내셨습니까?”

“아이고. 그럼. 얼른 앉게.”

“네.”

나는 그의 앞에 마련된 환자가 앉는 동그란 의자에 착석했다.

하 원장은 내 옆에 놓인 커다란 가방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새로운 제품 나왔어?”

왕십리 종합병원과는 JH 메디컬을 시작할 때부터 인연이 있었기에.

내가 영업 판매를 시작하면서부터 이곳에 물건을 납품하고 있었다.

이미 소모품, 외상 수술 재료를 발주하여 받고 있는 하 원장은 눈썹을 들썩이며 내게 물었고.

나는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이번에 인공 관절도 괜찮은 제품들로 골라 뒀거든요. 하 원장님은 인공 관절 어느 회사 제품으로 이용하고 계십니까?”

내 말이 끝나자 그는 쓰읍 소리를 내며 답을 망설였다.

뭐지?

소모품, 외상 수술 재료는 JH 메디컬 제품을 사용하지만.

인공 관절까지는 옮기기 힘들다는 건가?

나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고.

하 원장은 내 눈을 피하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민 대표.”

“네, 원장님.”

“내가 민 대표랑은 또 각별하니까. 가감 없이 이야기를 좀 해 주려고.”

그의 말에 나는 자세를 고쳐 앉아 고개를 끄덕였다.

“예, 오히려 그렇게 말씀해 주시는 게 저야 더 감사하죠.”

하 원장은 뜸을 들이며 천천히 이야기를 펼쳐 놓았다.

“저… 우리 지난주부터 받고 있는 소모품이랑 외상 수술 재료 말이야.”

“네. 소모품은 붕대랑 폼 종류 받고 계시잖아요.”

“응. 그게 가격을 좀 조정해 줬으면 좋겠는데…….”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물건을 납품받다가 가격 문제 때문에 컴플레인이 걸리는 경우는 드문 일은 아니다.

당연히 질 좋은 물건을 저렴하게 받고 싶은 게 소비자니까.

단가에 대한 이야기는 물건을 받기 전에 가장 많이 나누고는 한다.

애초에 물건을 받기 전에 견적 금액을 조정하는 게 일반적이니까 말이지.

하지만 물건을 사용하며, 단가에 대한 불만이 쌓이는 경우도 종종 일어나기도 한다.

그래서 단가를 낮춰 달라는 이야기를 하기는 하지만.

이렇게 물건 단가를 정하고, 납품받기 시작한 지 일주일 만에 단가를 인하해 달라니.

불과 일주일 전에 서로 조율한 금액인데…….

나는 이해할 수 없는 하 원장의 말에 조심스레 질문을 던졌다.

“금액은 원장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최대한 낮춰서 견적 금액 맞춘 건데. 갑자기 금액이 문제라고 하시니…….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 건가요?”

내 물음에 그는 목을 가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민 대표니까 내가 솔직히 다 말할게. 코리아 메디컬에서 민 대표가 납품하는 제품들과 같은 품목들 영업을 하러 왔더라고.”

“코리아 메디컬이요?”

“응. 딱 내가 민 대표한테 받고 있는 물건들과 같은 것들이더라고.”

나는 뜬금없는 ‘코리아 메디컬’의 언급에 미간을 찌푸렸고.

“제품도 똑같은 겁니까?”

“같은 브랜드 제품도 있고. 다른 브랜드인데, 기능만 같은 제품도 있고.”

“아… 그런데 단가가 저랑 다른 겁니까?”

내 말에 그는 입술을 움찔거리며 머리를 흔들었다.

“응. 전 품목 다 민 대표가 넣어 주는 단가보다 몇백 원은 저렴하더라고.”

“…….”

“솔직히 내가 민 대표 믿으니까 다 이야기해 주는 거야. 다른 메디컬이었으면, 얄짤 없이 민 대표네 제품 뺐을 거고.”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당연한 말이었다.

단가가 몇백 원이나 저렴한데, 굳이 비싼 제품을 받아 쓸 필요는 없으니까.

내게 말을 하지 않고도, 물건을 모두 반품해도 이상하지 않을 터.

하 원장은 나와의 친분.

그리고 나를 생각해 이 모든 이야기를 솔직히 털어놔 준 것이고.

나는 그런 하 원장에게 고마움과 동시에 미안함이 올라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그럼요.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이제 막 이야기를 들은 터라, 확인 좀 해 보고 다시 연락드려도 되겠습니까?”

“응. 그렇게 해.”

“혹시… 코리아 메디컬에서 받은 품목과 금액 좀 알려 주실 수 있을까요?”

그는 눈썹을 들썩이며 서랍 속 서류 하나를 내게 내밀었다.

“그래도 이게 코리아 메디컬 서류니까. 내가 줄 수는 없고, 잠깐만 봐.”

“네, 감사합니다.”

굳이 서류를 가져가지 않아도 충분했다.

빼곡하게 글자로만 적혀 있는 품목들이어도, 한눈에 어떤 제품들인지.

나보다 얼마나 저렴하게 판매하는지 알아차릴 수 있었으니까.

나는 코리아 메디컬의 견적서를 빠르게 눈에 담았고.

이내 서류를 그에게 내밀며 답했다.

“우선 왕십리 종합병원에 납품되는 품목들 단가는 다시 조정해서 연락드리겠습니다.”

“코리아 메디컬보다 저렴하게 해 줄 수 있는 건가?”

그의 말에 내게 선택권은 없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코리아 메디컬 견적서보다 단가를 낮추지 않으면.

나는 왕십리 종합병원에 단 한 품목도 납품을 할 수 없을 테니까.

하지만 단숨에 웃으며 그렇다고 할 수도 없었다.

그건 이렇게 낮출 수 있는 금액임에도, 기존에 비싸게 제품을 넣었다는 꼴이 될 터.

나는 한숨을 겨우 삼켜 내며 하 원장을 향해 말했다.

“사실… 저는 최대한 마진을 남기지 않고 원장님께 견적을 드린 겁니다. 그런데 코리아 메디컬에서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낮은 금액을 제시한 건지 잘 이해가 되지 않네요.”

그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고.

그런 하 원장을 보며 말을 이어 갔다.

“돈도 돈이지만, 저는 하 원장님과의 인연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내 말에 그는 눈썹을 들썩였고.

“마진이 어떻게 됐든, 저를 믿고 발주해 주신 하 원장님께는 저희 물건으로 계속 수술을 하시게 도움 드리고 싶습니다. 원장님만 괜찮으시다면, 저희 제품을 사용해 주시면 감사할 것 같습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내게 답했다.

“당연하지. 나야 민 대표랑 일하는 게 훨씬 편하지. 근데 단가 차이가 워낙 많이 나니까… 민 대표가 단가만 맞춰 준다면 당연히 JH 메디컬 제품을 쓰지.”

“감사합니다.”

하 원장은 쓰읍 소리를 내며 내 쪽으로 몸을 끌어당겼다.

“그리고 다른 병원들도 좀 알아봐. 나한테 와서 이 제품들로 영업하는 거로 봐서는 아마도 JH 메디컬이 넣는 물건을 견제하는 것 같아. 분명 민 대표가 납품하는 다른 병원에도 이 견적서가 갔을 것 같고.”

“네. 솔직하게 알려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원장님.”

왕십리 종합병원에서 나오자마자 가방을 쥔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꽉 쥔 주먹이 부르르 떨릴 정도.

누가 봐도 JH 메디컬, 그리고 나를 저격한 코리아 메디컬.

우연이라도 이렇게 내가 영업하는 물건과 그들의 견적서의 품목이 완전히 겹칠 수가 없었다.

이건 분명 다분히 의도적인 견적서였고.

코리아 메디컬의 임 사장을 떠올리며 분노가 끓어올랐다.

“지금 나랑 치킨 게임 하자는 거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