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1화
회의가 한창 진행되던 중.
“부산 쪽으로 납품 완료했습니다.”
“고생했어요.”
나는 직원들을 향해 답을 보내고는 고개를 들어 질문을 던졌다.
“그럼 오늘 회의에서 보고할 내용은 모두 끝난 건가요?”
내 물음에 한 대리가 다른 직원들의 반응을 살핀 뒤, 내게 답했다.
“네. 끝난 것 같습니다.”
“그럼 이제 이야기할게요. 우리 회사에서 이제 제조뿐만이 아니라, 영업 판매로도 길을 넓혀 보려고 합니다.”
내 말에 직원들은 놀란 얼굴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영업 판매요?”
“네. 지금까지는 JH 메디컬에서 자체적으로 만든 제품만을 영업하고 판매했는데. 다른 제조사에서 만든 메디컬 품목들도 판매를 하려고 합니다.”
영업 사원들은 바뀌는 회사 체재에 놀란 것 같았지만.
예상이라도 한 듯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한 대리는 오히려 신이 나기까지 해 보였다.
“대표님.”
그의 부름에 고개를 돌리자, 한 대리는 밝은 얼굴로 내게 말했다.
“그럼 판매는 언제부터 시작하는 겁니까?”
“판매는…….”
내가 입을 열려고 하자 영업 사원들의 질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어떤 회사 제품 물건을 받아 오시는 거예요?”
“영업 판매 병원은 기존 병원들로만 시작하시는 겁니까?”
“판매 품목은 어떤 제품들인가요, 소모품인지… 인공 관절인지 궁금합니다.”
직원들의 열띤 질문에 나는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다들 뭡니까. JH 메디컬 제품 외에 다른 제품 판매를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내 말에 영업 사원 중 가장 높은 직책인 한 대리가 손을 번쩍 들고 내게 답했다.
“맞습니다.”
“뭐가 맞다는 거지?”
“저희 회사 제품. 이미 국내, 해외에서 유명하잖아요. 그래서 어느 날부터 국내 병원 어디를 돌아다니더라도, 영업을 할 필요가 없었거든요.”
그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 갔다.
“이미 ‘JH 메디컬 제품’이라는 수식어만으로도 병원은 저희 제품을 선호했어요. 그래서 언젠가부터 영업이 아닌, 납품만 하게 되더라고요.”
한 대리의 말에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랬을 수도 있겠네.”
“네. 대표님도 아시다시피, 신입 직원 외에는 대부분 메디컬 영업 경력이 있는 친구들이다 보니. 영업에 목이 말랐던 것 같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영업에 목이 말랐다라…….”
영업을 하고 싶어 안달 났다는 그의 말.
그리고 한 대리의 말에 긍정을 표하듯 고개를 끄덕이는 직원들.
그들의 반응에 나 역시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용솟음치는 것만 같았다.
나 또한 영업에 목이 말랐던 시절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지금 이렇게 영업, 판매를 제조와 함께하려는 것 역시.
내가 가장 나다웠던, 나다움을 보여 주었던.
‘영업’을 하려는 것이니까 말이다.
직원들의 눈은 평소보다 더 초롱거리는 것 같았고.
나는 다시금 의지를 다졌다.
“JH 메디컬에서 판매할 품목은 소모품, 인공 관절, 외상 수술 재료. 전부 할 겁니다. 시작은…….”
회사 영업 계획에 대해 직원들에게 가감 없이 설명했고.
그들은 여느 때보다 더 높은 집중력을 보여 주었다.
회의가 끝난 후, 돌아온 대표실.
나는 책상 위에 쌓여 있는 수십, 수백 개의 카탈로그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직접 제조한 제품을 판매하는 건 그동안 너무나 자신이 넘쳤었다.
환자에게도 의사에게도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애를 써서 만들었으니까.
그래서 그 제품을 판매하기 위해 병원에 영업 갈 때면,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는 했었다.
누구든 제품을 보고 써 보기만 한다면, 구매할 수밖에 없을 거라 확신했다.
그렇게 이제는 믿고 구매하는 JH 메디컬이 되었지만.
이제는 JH 메디컬에서 제조하지 않은 제품을 판매할 때.
내 안목만을 믿고 구매해 줄 병원들이 있을 수도 있기에.
더욱 제품을 고르는데 신중해야 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무작정 아무 제품이나 가져올 수는 없었다.
그렇게 판매할 품목만을 늘려 경쟁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또 저렴한 가격으로만 승부를 보며, 성공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지.
지금껏 내가 메디컬 업계에서 오랜 생활을 하면서 겪었던 질 좋은 제품.
가격이 저렴하지 않더라도 질이 좋은 제품으로 판매를 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래야 민지훈의 안목, JH 메디컬 자체를 믿고 맡길 수 있을 터.
“우선 인공 관절부터 보면…….”
나는 카탈로그를 종류별로 나눈 뒤, 하나씩 꼼꼼히 살피기 시작했고.
그렇게 앉은 자리에서 해가 뉘엿뉘엿 질 때까지 미동도 하지 않고 집중했다.
* * *
‘김사랑 원장 진료실’.
영업을 위해 찾아온 병원.
오랜만에 느껴지는 감정이었다.
영업 시작 전, 떨리는 심장.
동시에 제품 설명을 하며, 판매를 할 수 있다는 기대와 설렘까지.
그리고 문득 처음으로 병원에 영업을 하러 갔던 시절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보였다.
“참… 그때는 모든 병원에 갈 때마다 벌벌 떨었는데…….”
몇 년 전 모든 것에 미숙했던 시절.
의욕만 앞섰던 그 시절의 감정들을 눌러 내며, 눈앞에 보이는 진료실 문을 두드렸다.
똑똑.
“네, 들어오세요.”
진료실 문밖으로 새어 나오는 김사랑의 목소리.
나는 그녀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문을 벌컥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JH 메디컬에서 왔습니다.”
“뭐야, 자기 왔어?”
그녀는 나를 확인하자마자 휘둥그레진 눈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반겼고.
나는 그런 그녀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오늘은 JH 메디컬 민지훈으로 왔습니다.”
“뭔데. 회사에 무슨 일 있어?”
김사랑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고.
나는 황급히 진료실 문을 닫으며 그녀에게 답했다.
“아니. 저번에 말했던 대로 JH 메디컬도 제품들 판매 시작했거든.”
내 말이 끝나자마자 김사랑은 손뼉을 찰싹 부딪치며 소리쳤다.
“우와. 이제 시작한 거야?”
“응. 그래서 오늘은 남자친구가 아니라, 제품 영업하러 온 거지.”
“아, 네네. 그럼 영업하시는 제품 카탈로그랑…….”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준비한 자료를 내밀며 답했다.
“네, 원장님. 저희 카탈로그랑 견적서도 같이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내 말에 그녀는 웃음을 터트렸다.
“말하지 않아도 견적서까지. 역시, 민지훈 영업 안 죽었네? 하하.”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서류를 확인했고.
“인공 관절이랑 외상 수술 재료랑 소모품도 다 있네?”
“응. 기존에 회사들 다니면서, 내가 느끼기에. 그리고 병원 원장님들이 가장 선호하시는 스타일 제품들로 추려서 준비했어.”
김사랑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서류를 하나하나 살폈고.
나는 그녀 앞에 놓인 견적서를 가리키며 답했다.
“단가도 최대한 맞췄는데, 확인해 보시고 필요하신 품목 있으시면 연락 주세요. 김사랑 원장님?”
내 말에 그녀는 장난스레 어깨를 으쓱였다.
“뭐… 한번 살펴보기는 할게요.”
“아이고. 한번 살펴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죠. 하하.”
그녀는 피식 웃으며 시계를 바라보았다.
“자기. 온 김에 같이 점심이나 먹고 가.”
“응. 안 그래도 자기랑 같이 점심 먹으려고 시간 맞춰 왔지.”
“잘됐다, 가자.”
우리는 곧장 자리를 식당으로 옮겼고.
그녀와 내 사이의 대화는 자연스레 회사와 병원 이야기로 번져 갔다.
“그래서 자기 영업은 이제 시작한 거야?”
“응. 다음 주부터 병원 영업하려고. 우선 자기한테 제품 보여 주려고 오늘 온 거야.”
“그럼 얼른 우리가 제품 JH 메디컬 거로 바꿔야겠다.”
병원에서 내가 판매할 제품을 확인했던 그녀는 곧장 제품을 바꾸겠다며 내게 말했고.
나는 손사래를 치며 답했다.
“아니야. 단지 여자친구라서 넣어 주지는 마. 합리적인 가격과 좋은 물건이라, 자기가 기존에 사용하던 제품과 비교해 보고 괜찮다 싶으면 발주해.”
나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 갔다.
“그리고 1년이 넘도록 제조에만 매달리면서 메디컬 트렌드는 놓치지 않으려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금액적인 부분이나 제품에 대해서 자기한테 피드백을 받으면 좋을 것 같아서.”
내 말에 그녀는 눈썹을 들썩였다.
“자기가 하루도 메디컬을 놓은 적 없잖아.”
“그건 그렇지.”
“근데 어떻게 자기가 트렌드를 놓친 적이 있겠어.”
“그래도… 내가 한동안은 제조에만 집중했었으니까 말이야.”
김사랑은 앞에 놓인 물컵을 옆으로 밀고, 양팔을 올렸고.
그리고 나를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자기가 제조에 빠져서 만들었던 제품. 그게 지금 국내 메디컬을 들썩이고 있잖아.”
그녀의 말에 나는 씨익 입꼬리를 올렸고.
김사랑은 그런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읊조렸다.
“모르겠어? 자기가 트렌드를 따라가는 게 아니라, 민지훈. 당신이 메디컬 트렌드를 이끌고 있다고.”
그녀의 말에 나는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김사랑의 말이 달콤해서, 내가 듣고 싶었던 위로라서가 아니었다.
내가 선택한 길에 대한 확신을 재차 받는 듯한 느낌에 가슴이 뭉클했고.
그녀를 향해 섣불리 입을 열지 못했다.
“…….”
나를 보던 김사랑은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말을 이어 갔다.
“아빠 말이야. 우리 병원장님. 이미 JH 메디컬에서 판매하는 물건으로 전부 바꾸시겠다고 했었어.”
그녀의 말에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아직 어떤 제품인지도 모르시는 거 아니야?”
“맞지.”
“근데 전 제품을 바꾸신다고?”
김사랑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응. JH 메디컬에 투자하셨던 분이야. 병원장님 자신의 안목을 워낙 믿는 분이고. 그런 병원장님이 투자한 회사가 JH 메디컬, 민지훈 회사잖아. 자기가 판매하는 물건이라면, 뭐든 정답이라고 생각하시는 거지.”
내가 추구하는 바와 같은 생각을 하는 김준수 병원장.
그녀에게 들은 그의 생각에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 * *
쾅―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치는 소리가 사장실에 울려 퍼졌다.
“뭐? 그게 사실이야?”
임 사장의 큰소리에 임 차장은 움찔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오늘 확인하고 왔습니다.”
“임 차장. 너… 확실한 거지?”
평소 자신의 조카인 임 차장에 대한 불안함이 가득했던 임 사장이기에.
이런 보고에도 재차 확인을 하는 그였다.
“당연하죠. 제가 이번에 행복 정형외과에 납품한 거 똑똑히 확인하고 왔다니까요?”
“…미친.”
임 사장은 분에 이기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그는 뜨거운 콧바람을 뿜어내며 창가로 다가갔다.
“김준수 병원장… 원래 내가 담당하던 양반인데. 민지훈 그 자식이 우리 회사에 있을 때, 담당하게 놔두는 게 아니었어.”
“행복 정형외과에서 JH 메디컬 제품을 쓴다는 소식이 곧바로 퍼졌습니다. 행복 정형외과가 워낙 유명한 병원이다 보니, 그 병원 제품을 선망하고 따라 하는 병원들이 많은데… 어쩌죠?”
“그러니까. JH 메디컬은 영업 시작하자마자 가만히 앉아서 행복 정형외과로 광고하는 효과까지 얻게 되는 거잖아!”
그의 말에 임 차장은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저희 제품도… 일부 빠졌는데. 어떻게 할까요, 사장님?”
임 사장의 주먹이 떨려 왔고.
그는 한숨을 길게 내쉬며 읊조렸다.
“어쩌긴. 민지훈 그 자식이 제조가 아니라, 내 영역까지 침범한 걸 가만두고 볼 수는 없지.”
“무슨 좋은 수 있으신가요?”
임 차장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고.
“민지훈이 행복 정형외과에 넣었다는 제품. 아니, 걔들이 판매하는 제품 목록 모조리 알아 와.”
“전부요?”
“응. 분명 우리랑 겹치는 품목이 많을 거야. 내 밑에서 일하면서 제품 골랐던 자식인데, 우리랑 제품이 겹칠 수밖에 없을 테니까.”
임 사장은 한쪽 입꼬리를 사악하게 찢으며 읊조렸다.
“단가를 낮춰서라도 민지훈… 영업 초반에 싹을 잘라 버려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