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영업사원이 되었다-330화 (330/339)

330화

“하아…….”

한숨이 가득한 이곳.

코리아 메디컬 임정준 사장실.

그는 서류를 바라보며 연거푸 한숨만을 내쉬었다.

그때.

똑똑.

“어. 들어와.”

벌컥 문이 열리고 백 이사, 서 이사, 그리고 임 차장까지.

그들은 각자 서류를 한 움큼씩을 가득 안은 채 사장실 안으로 발길을 옮겼다.

“사장님, 회의실로 옮기실까요?”

백 이사의 말에 임 사장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턱으로 앞의 소파를 가리켰다.

“네. 그럼 준비되시면 바로 회의하시죠.”

“그래.”

임 사장의 한마디에 모두 자리에 착석한 뒤.

그들은 미리 약속된 회의의 포문을 열었다.

이사들과 임 사장의 조카인 임 차장까지 하는 회의.

백 이사는 목을 가다듬으며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사장님, 우선 병원 판매 매출은 큰 변화 폭은 없습니다. 다만, 매입처들 대금 결제가…….”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임 사장은 손을 뻗어 서류를 달라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고.

백 이사는 서둘러 그에게 대금 결제 리스트를 건네며 말했다.

“이번 달 결제일이 이번 주라, 결제 확인차 연락이 오는데 어떻게 할까요?”

임 사장은 서류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답을 망설였고.

그런 모습에 백 이사는 재차 질문을 던졌다.

“이번 달에는 결제…하실 거죠?”

“흠흠.”

임 사장은 헛기침으로 백 이사의 말을 잘라 냈고.

펜으로 업체들을 체크한 뒤에야 백 이사를 향해 답했다.

“여기 업체 다섯 곳은 다음 달로 결제 미뤄.”

그의 말에 백 이사는 한숨을 겨우 삼켜 내며 그에게 말했다.

“사장님. 여기 체크해 주신 업체들, 지금 3개월째 대금 결제 미루고 계시는 거 아시죠?”

“알지. 근데 이 업체들은 금액이 워낙 크니까.”

“그러니까요. 업체 사장님들도 저희 직원들한테 전화해서 아주 난리라고 하더라고요. 이번 달에는 꼭 결제해 달라고 앓는 소리들 하시는데.”

“하아…….”

임 사장은 자신의 이마를 짚으며 한탄하듯 소리쳤다.

“우리가 더 죽겠다고 해. 다른 곳도 아니고, 코리아 메디컬이랑 그 회사들. 관계를 맺은 게 벌써 몇 년인데, 꼴랑 3개월 미룬 거 가지고 이해를 못 해 준대?”

그는 오히려 해결하지 못한 백 이사를 나무라듯 말을 이어 갔다.

“그리고 백 이사도 여기서 몇 년을 근무했는데, 결제 하나 컨트롤 못해서 나한테까지 올라오게 만드는 거야. 회사 사정 뻔히 알면서, 알아서 대금 조절 좀 해!”

“…죄송합니다.”

백 이사는 할 말들을 꾹 눌러 내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우리가 줄 돈 말고, 받을 돈은?”

“여기 서류 있습니다.”

백 이사가 다시금 건넨 서류를 보던 임 사장은 재차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뭐야. 이번 달에 받을 돈이 이게 전부야?”

“네. 결제 텀이 있다 보니, 성수기 들어서기 전 매출분 입금이 이번 달이라… 입금액이 적습니다.”

메디컬 업계에서 존재하는 결제 텀.

모든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메디컬 업계에서의 결제 텀은 가지각색이다.

거래처에 맞춰 모든 병원이 같은 개월 수대로 입금을 해 주는 것이 아니다.

통상적으로 병원이 ‘갑’, 메디컬 회사가 ‘을’인 이 업계.

병원에서 요구하는 대로 결제 텀이 정해지기 때문에, 메디컬 회사에서는 거래처의 결제 텀이 들쑥날쑥한 편이지.

짧게는 당월에 판매된 결제 금액이 바로 입금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은 가장 드문 일.

대게 3개월의 결제 텀부터 시작해 길게는 1년에서 1년 반의 결제 텀을 가지고 있는 병원도 허다하다.

그렇기 때문에 받을 돈이 어마어마하게 쌓여 있는 것이지.

더군다나 메디컬에서 가장 바쁘고 장사가 잘되는 겨울.

겨울에 많은 물건을 판매했다고 하더라도, 그 겨울 판매분이 결제 텀에 의해 여름에 입금이 되기도 하고.

혹은 다음 연도 겨울에 입금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걸로는 택도 없는데, 병원 측에 결제 텀 조정은 확인했어?”

“사장님도 아시다시피, 매출 큰 병원에서 결제 텀 조정은 절대 안 된다는 식이라…….”

“그러니까 내가 백 이사한테 이야기한 거지. 누구나 가서 될 거 같으면, 내가 여기 임 차장이나 아랫사람들 시키지. 안 그래?”

“…네. 다시 확인하겠습니다.”

회의는 ‘돈’ 때문에 점점 살얼음판을 걸어가고 있었고.

임 사장은 서 이사에게로 시선을 옮겨 물었다.

“서 이사. 우리 제조에 들어가는 재료 납품은 차질 없이 가능하대?”

그의 물음에 서 이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네. 말씀해 주신 업체 세 군데 확인했고, 그중에 두 곳은 가능하다고 합니다. 더 저렴한 곳이 첫 번째 업체고…….”

제조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자, 임 사장의 얼굴에는 이내 미소가 번져 왔고.

그런 임 사장의 태도에 백 이사와 서 이사의 얼굴은 점점 굳어져 가고 있었다.

“이제는 제조 시대야. 언제까지 우리가 떼 와서 물건 파는 것만 하면서 돈을 벌 거야.”

그는 호탕하게 웃으며 직원들을 향해 말을 이어 갔다.

“지금 우리가 제조에 실패하면서 돈을 버리는 게 아니야. 투자를 하는 거지. 사업가는 한곳에 안주하고 머무르면 안 돼. 급변하는 사회에서 도태당하기에 십상이거든.”

임 사장의 말에 직원들은 고개를 주억거릴 뿐이었다.

그는 제조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펼치며 한참 이야기를 이어 갔고.

이내 시계를 바라보며 외쳤다.

“다들 보고 끝났으면, 나가서 일들 봐.”

“네.”

“아, 임 차장은 남고.”

“알겠습니다.”

백 이사는 사장실에서 나오자마자 서 이사의 어깨를 툭 쳤고.

그들은 눈빛을 주고받으며, 옥상으로 발길을 옮겼다.

“서 이사.”

“네, 백 이사님.”

“우리 이대로 가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싶은데.”

“제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백 이사와 서 이사는 코리아 메디컬의 두 개의 강줄기였다.

둘은 같은 곳을 향해 흘러는 가지만 다른 강줄기라는 것이지.

즉, 코리아 메디컬 내의 라이벌 관계.

서로의 실적을 물고 뜯으며 더 윗자리.

임 사장의 옆자리를 차지하려 했었다.

한결같이 임 사장의 옆자리를 차지하던 사람은 백 이사였지만.

그는 어느 날부터 임 사장의 옆자리를 거부하는 듯 보였다.

“그래도 백 이사님은 임 사장님과 가까우시니, 제조의 뜻을 조금 말려 보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서 이사. 그게 됐으면, 내가 이렇게 자네한테 한탄을 하겠나?”

“하긴… 사장님께서 너무 제조에만 몰두하시니…….”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들의 답답한 한숨은 담배 연기에 함께 담겨 허공으로 흩어졌고.

백 이사는 몸이 흔들리도록 한숨을 내쉬며 읊조렸다.

“이렇게 영업, 판매 파트에서 벌어들인 돈이 고스란히 제조로 빠져나가는데. 이러다가 회사 무너질 수도 있어.”

“네, 판매에서 벌어들인 수익으로 제조에서 마이너스 난 부분 메꿨는데. 이제 슬슬 판매에서 번 수익으로 대금도 버거워지는 거 아닙니까?”

서 이사의 말에 백 이사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답했다.

“이러다가 대금 결제뿐만 아니라, 직원들 월급까지 미뤄질까 봐 슬슬 걱정된다.”

“맞습니다. 저희 이번에 직원들 급여 동결시키시지 않았습니까.”

“그러게. 전 직원 급여 동결은 내가 코리아 메디컬 들어오고 나서 처음이다.”

백 이사는 피우던 담배를 꺼트리며 말했다.

“안 되겠다. 내가 조만간 다시 사장님과 이야기 좀 해 볼게.”

“네, 이사님. 저희 정말 위태롭습니다. 다른 메디컬들에서도 이 사실을 다 알고 있고요. 저희 이 나이에, 이 직책에. 코리아 메디컬 아니면 안 됩니다.”

“알지. 그래도 이 큰 회사가 망하기나 하겠어?”

자신 넘치게 말하는 백 이사였지만, 그의 목소리가 옅게 떨려 왔다.

명실상부 부동의 1위를 하던 기업이기에, 망한다는 건 너무나 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계속 간다면, 언젠가는 회사가 휘청일 거라 확신하는 백 이사였다.

서 이사는 그런 백 이사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고.

라이벌이던 그들이 몇 년 만에 한마음 한뜻이 된 건.

모두 임 사장 때문이었다.

한편.

같은 시각, 사장실.

“임 차장. 아까 할 말 있다고 했지?”

임 사장은 다리를 꼬며 임 차장을 향해 물었고.

“네. 사장님, 저희 이번 달에 제조에 든 돈이 지난달의 두 배를 넘었습니다.”

그의 걱정 가득한 말에도 임 사장은 눈썹을 들썩이며 답했다.

“응. 이제 막바지에 다다르니까 많이 들 거야. 그게 할 말이야?”

“이번에도 영업 판매 매출로 끌어온 돈으로 겨우 막았습니다. 하지만 제조 공장에 확인하니, 다음 달 금액이 더 들 거라고 하던데. 이대로 가면 안 되지 않나 싶어서요.”

임 차장의 말에 임 사장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었고.

“너까지 그러는 거야, 지금? 큰 뜻을 아는 놈이 어떻게 이 회사에 아무도 없냐.”

그의 호통에 임 차장이 숨을 내쉬며 말했다.

“사장님. 아니, 삼촌. 이대로 가다가는 진짜 큰일 날까 걱정돼서…….”

임 사장은 소파에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자신의 책상으로 향했고.

책상 위에 있던 신문을 툭 던지며 소리쳤다.

“이거 봐라. 민지훈 그 새끼가 지금 제조에서 저렇게 떵떵거리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그가 바닥으로 던진 신문에는 ‘JH 메디컬’, ‘메디컬 제조’와 관련된 이야기가 실려 있었고.

“너 이 회사에 처음 일 배우겠다고 왔을 때. 민지훈한테 밀리던 그 시절은 벌써 잊은 게야?”

“…아니. 당연히 나도 민지훈 업계에 발 못 들이게 눌러 버리고 싶지. 근데 걔랑 우리랑은 이제 노선이 다른 거 아니야?”

“같은 메디컬인데 노선이 다른 게 어디 있어!”

임 차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임 사장 앞으로 향했고.

“삼촌. 민지훈 그 자식이 처음에 우리 회사에서 제조에 발을 들이는 게 어떠냐고 할 때, 그때 삼촌이 못 하게 막았잖아. 그래서 걔가 나가서 제조 회사 차린 거고.”

그는 마른침을 삼키며 말을 이어 갔다.

“근데 결국 나가서 성공해서. 그것 때문에 삼촌이 더 제조에 집착하는 거야?”

그의 말에 임 사장은 발끈한 듯 소리쳤다.

“누가 뭐에 집착해?”

쾅―

임 사장은 책상을 내리치며 말했다.

“민지훈 그 자식. 결국은 내가 키운 놈이야. 그 새끼가 지금 메디컬 업계에서 저렇게 흔들고 있는 자체가 용납할 수 없어.”

“그래서 제조에 이러는 거냐고, 삼촌.”

“아니. 말했잖아. 업계 1위라고 여기에만 머물다가는 업계에서 도태된다고. 이제는 그냥 내가 제조에 발을 들인 거야.”

“그래도…….”

“내가 코리아 메디컬을 여기까지 세운 사람이야. 나 임정준, 내가 발을 들인 이상 성공하기 전에 발을 빼는 건 용납할 수가 없는 거고.”

“…….”

그의 말에 임 차장은 입을 꾹 다물었다.

자신의 삼촌, 그러니까 임 사장의 성격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그를 더 이상 말리는 것은 소용이 없다고 생각한 모양.

“너나 나나 이 업계에서 민지훈 같은 자식이 성공한 제조. 이기는 건 껌도 아니야. 별것도 아닌 쪼무래기 새끼가 판치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그는 주먹을 불끈 쥐며 읊조렸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야. 지금 그깟 돈 몇 푼에 벌벌 떨면서 제조를 버릴 때가 아니라고. 오히려 조금 더 과감한 투자가 필요해. 돈 더 끌어올 곳이나 알아 와!”

* * *

끔뻑 끔뻑.

눈을 뜨고 천장을 바라보는데, 머리가 아프지 않은 건 오랜만이었다.

“이게 얼마 만이야…….”

며칠간 엄청난 고민에 잠 못 이루던 날들.

피곤하게 몸을 굴리고 굴려도, 밤만 되면 떠오르는 고민에 온전히 잠을 이뤘던 적이 언젠지 기억도 나지 않았었다.

하지만 드디어 휴식다운 휴식을 취한 뒤.

개운한 몸으로 침대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리고 커튼을 걷자,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고.

나는 난간에 팔을 기댄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가 가장 잘하는 일… 이 업계에서 나다운 일. 영업… 시작하자.”

내가 메디컬에 들어오게 된 처음은 지금처럼 제조가 아닌 ‘영업’이었다.

물론 지금도 제조부터 영업까지는 하고 있지만.

애초에 했던 일은 좋은 메디컬 물건을 의사에게 영업해 판매를 하는 것이었지.

그리고 제조에 뛰어들면서도 내가 가지고 있던 최종적인 목표는 제조 업계 1위가 아닌.

제조도, 판매도 모든 메디컬에서 1위를 하는 것이었다.

단, 그 판매할 물건을 내가 직접 만드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었지.

그래서 모든 것을 걸고 제조에 뛰어든 것이었다.

어떠한 물건이 제일 좋은지, 어떤 점을 개선해야 할지.

영업 판매를 하며 깨우쳤었으니까.

그리고 결국, 내가 그 물건들을 제조해 판매를 하고는 있지만.

회사를 더욱 키우고, 내가 원하는 최종 목표인 ‘업계 1위’에 다다르려면.

이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내가 직접 제조한 물건으로 판매 수익금 1위를 달성하려면, 어마어마한 개수의 제조품이 필요했고.

그건 엄청난 시간과 많은 인력이 필요할 터.

그리고 내가 며칠을 고민하며 생각한 것은.

그 목표에 다다르기 위해, 제조와 다른 회사의 제조 물품을 판매하는 것을 병행하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대로만 내가 제조한 제품, 그것을 판매만 한다면.

그 목표는, 꿈은, 상상으로만 그칠지도 모르니까.

그렇다고 모든 돈을 끌어모으고, 빚을 내면서까지 투자를 하는 건.

너무나 위험 요소가 클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내 아래에 나를 믿고 따라오는 직원들이 한둘이 아니었으니까.

내가 시작했던 ‘영업’으로 돌아가 회사의 몸집을 키워야만 했다.

주먹을 꽉 쥔 채로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메디컬에 발을 들였던 그때. 초심으로 돌아가서 더 높게, 더 멀리 달려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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