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7화
♬♪―
잔잔한 음악과 함께 일렁이는 고운 입자의 거품.
그 거품은 욕조 안의 물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넘실거리고 있었다.
출렁―
욕조에 몸을 담그자 목욕물은 욕조 바깥으로 넘쳐흘렀고.
음악에 맞춰 와인 잔을 뱅그르르 흔드는 사람.
강준빈이었다.
“흐음…….”
그는 콧노래를 부르며 와인을 한 모금 들이켰고.
욕조 옆으로 보이는 작은 창.
그 창밖에는 저 멀리에서 남산이 보이고 있었다.
“여기로 이사 오길 잘했어. 역시 사람은 돈을 잘 벌고 봐야 해.”
강준빈은 스스로를 칭찬하듯 어깨를 으쓱이며 따뜻한 욕조에 몸을 조금 더 기대 누웠다.
“크으… 너무 좋다.”
그는 눈을 스르르 감고 흘러나오는 음악에 집중하며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병원 진료는 일주일에 두 번만 하고, 이제 방송으로 스케줄 다 돌렸으니까… 돈 몇 배로 버는 건 이제 식은 죽 먹기네.”
강준빈은 상상만으로도 행복한지 눈을 번쩍 뜨고는 소리쳤다.
“아니지. 지금 진료도 굳이 일주일에 두 번이나 할 필요 있나?”
그의 입꼬리는 의뭉스레 휘어지고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이나 2주일에 한 번 진료해야 오히려 사람들이 더 목을 매고 기다리지. 그리고 나머지는 방송에 더 매진해서 돈이나 쓸어 모으자. 하하.”
강준빈의 신남을 느끼기라도 한 듯, 흘러나오는 음악은 조금 더 빠른 BPM으로 바뀌고.
그는 강한 비트의 음악에 호탕한 웃음을 보내며, 와인을 연거푸 들이켰다.
“인생이 이렇게 쉬워서 어쩌면 좋지. 조만간 민지훈, 그 새끼부터 손 좀 봐줘야겠다. 개자식…….”
성공의 향에 취하기라도 한 듯.
강준빈은 살짝 풀어진 눈빛으로 창밖을 응시했고.
그때.
♬……!
흘러나오던 음악이 뚝뚝 끊기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뭐지, 블루투스 연결이 끊겼나?”
그의 말에 대답이라도 하는 듯이 음악은 다시 흘러나왔다.
하지만 재차 음악은 끊겼다 재생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뭐야, 휴대전화 알람 때문인가?”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이내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눈빛으로 다시 욕조에 등을 기대었지만.
재차 끊기는 음악에 강준빈은 미간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첨벙―
그의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물은 욕조 밖으로 잔뜩 흘러넘쳤고.
욕실 끝에 있는 세면대로 걸어가 재빨리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그리고 휴대전화를 확인한 강준빈의 얼굴은 한순간에 일그러졌다.
“미친… 이게 다 뭐야?”
그의 휴대전화는 불이라도 난 것처럼 수십 통의 문자가 오고 있었고.
그 문자들은 모두 대전의 강한 정형외과.
강준빈의 아버지가 병원장으로 있는 병원에 대한 걱정이 담긴 문자였다.
- 준빈아, TV에 너네 아버지 병원 나온 것 같은데 맞아?
- 야, 큰일 났어. 강한 정형외과 보험 사기 연루됐다는데.
- 강준빈, 괜찮냐?
- 준빈 씨. 저 박 PD입니다. 방송에 나온 병원이 강 원장님 아버지라는 이야기가 있던데, 사실 여부 좀 여쭙고자 연락드렸습니다. 확인하시고, 연락 주세요.
- 준빈아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냐. 빨리 TV 좀 봐.
쏟아지는 문자.
그의 몸에서는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고.
“이런 미친……!”
강준빈은 서둘러 손에 잡히는 수건으로 몸의 물기만을 겨우 닦아 낸 채, 재빨리 거실로 발길을 옮겼다.
지인들에게서 온 문자를 보고 TV를 틀자 방송에서는 대전 G모 정형외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미친… 저렇게 모자이크하면 뭐해. 누가 봐도 강한 정형외과인 게 다 보이잖아.”
리모컨을 들고 있는 그의 손은 자연스레 주먹이 쥐어졌고.
그는 잠시 TV에 집중해 빠르게 내용을 파악했다.
“아빠가… 보험 사기에 가담한 의사라고?”
강준빈은 서둘러 휴대전화를 들고 인터넷에 접속해 여론을 확인했고.
방송을 보고 있는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는 듯한 댓글이 쏟아지고 있었다.
더불어 기사들 역시 병원에 대한 욕으로 가득했고.
서둘러 병원 조사를 실시하고, 제대로 된 법적 공방을 펼쳐야 한다는 여론이 가득했다.
강준빈은 이를 꽉 물더니, 이내 불안하던 눈빛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그는 독기를 품은 듯한 얼굴로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내가 아빠 때문에 여기서 무너질 수는 없지…….”
강준빈은 보고 있던 휴대전화 화면을 꺼 버렸고.
“내가… 여기까지 어떻게 올라왔는데, 고작 아빠가 저지른 일 때문에 나까지 나락 갈 수는 없어. 아빠야 뭐… 연락 안 하고 살았다고 둘러대면 되는 거니까.”
그는 자신의 아버지와 의절하고 지냈다고 세뇌를 하듯 되뇌기 시작했다.
“그리고 뭐 저런 개 같은 방송이 다 있어?”
강준빈은 TV 화면을 못마땅한 눈빛으로 흘긋거렸고.
“아빠가 안 해도 어차피 어디선가 브로커 통해서 보험 사기 치고 돈 벌 건데, 누가 저딴 제보를 하고 난리야!”
그는 와인 냉장고에서 마시던 와인을 병째로 꺼내 들이붓기 시작했다.
벌컥벌컥.
입가로 흐른 와인을 팔로 대충 훔치며, 시선은 TV에 고정하고 있었고.
“하여간 못 배운 것들이 꼭 남이 잘되는 거 보고, 배 아파서 난리지.”
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아빠랑 나는 각자 다른 인생이니까. 이쯤에서 잘라 내 버리면 돼…….”
그때.
TV에 화면이 전환되며 연우현의 얼굴이 잡혔다.
- 진희성 배우가 연예계 생활 이후, 용기를 내어 고백하는 이야기가 과연 무엇일지… 시청자 여러분 채널 고정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광고 후, 2부에서 뵙겠습니다.
화면에는 광고가 나오고 있었고.
TV를 바라보던 강준빈의 동공이 빠르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뭐야… 진희성?”
그는 마른침을 삼키며 소파에 몸을 털썩 기대앉았고.
광고가 나오는 동안 강준빈은 불안한 태도로 입술을 연거푸 깨물었다.
“대체 갑자기 뭘 고백하겠다는 거야. 저 자식은 연기도 못하는데, 왜 자꾸 TV에 기어 나오는 거야…….”
2부가 시작되기 전.
그는 무언가 생각이 나는지 불안한 표정으로 와인을 들이켰고.
어느새 동나 버린 와인 병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설마… 이제 와서 이야기하는 건 아니겠지…….”
몇 분 뒤.
다리를 떨며 초조하게 TV를 보는 강준빈에게 보라는 듯.
진희성의 얼굴로 시작된 2부.
강준빈은 손톱을 물어뜯으며 방송에 집중했고.
그때, 그의 모든 행동을 얼어붙게 만드는 진희성의 멘트가 흘러나왔다.
- 제가 무명 시절에 겪었던 일입니다. 촬영을 하다가 손목을 다치게 되었고, 곧장 한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화면에는 진희성의 얼굴이 아닌, 손목이 잡혔고.
강준빈은 망연자실한 얼굴로 눈꺼풀을 파르르 떨었다.
“X발…….”
진희성은 자신의 손목에 대한 이야기.
트라우마로 자리 잡았던 상처를 빠짐없이 털어놓았고.
그것을 본 강준빈은 거실에 멍하니 서서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떨고 있었다.
“대체 언제 적 이야기를 꺼내는 거야. 각자 잘 살고 있으면 된 거 아니야?”
그의 불안함은 분노로 바뀌었고.
계속되는 진희성의 고백에 강준빈은 한 손에 들고 있던 리모컨을 온 힘을 다해 TV에 집어 던졌다.
쾅―
화면은 파지직 소리를 내며, 진희성의 얼굴이 사라졌고.
검은 화면에 여러 색상이 번갈아 나와 깜빡거렸다.
“설마… 정말 그때 일을 기억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하지만 화면만 멈췄을 뿐.
TV 소리는 지직 대며 여전히 흘러나오고 있었다.
- 그렇다면, 그 의사의 이름을 언급하시겠다는 건가요?
- 그 사람이 여전히 의사라는 직업으로 환자를 진료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심지어 현재는 스타 의사로 많은 사람의 이목을 받고 있습니다.
- 스타 의사요?
-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진희성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강준빈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TV 앞으로 달려갔고.
손에 집히는 대로 도구를 들고 TV 화면에 던지기 시작했다.
“아악!”
벽을 가득 메운 TV는 얼마 가지 않아 지직거리며 나오던 화면과 소리가 모두 꺼졌고.
그제야 강준빈은 가쁜 숨을 몰아 내쉬며,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X발, 그때 아프다고 했어야지. 왜 이제 와서… 저 새끼가 뭔데 내 인생을 망치려고 작정해?”
그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는지 물건을 사방으로 집어 던졌고.
“X발……!”
강준빈은 집이 떠나가라 소리쳤다.
그가 진희성에 대한 분개에 차올라 그것을 한참 표출한 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에야 숨을 헐떡이며 이성을 찾는 듯 보였다.
그러고는 눈을 희번덕 뜨며 읊조렸다.
“그래, 스타 의사가 나만 있는 것도 아니고. 나는 그냥 몰랐다고 하면 그만 아니야?”
강준빈은 몸이 젖을 정도로 흐른 땀을 손으로 훔쳐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술을 들이켜며 한숨을 잘게 쪼개듯 내쉬었다.
“하아… 하아…….”
그리고 동시에 울리기 시작한 휴대전화.
강준빈은 떨리는 손으로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고.
미친 듯이 울리는 휴대전화의 알람을 하나씩 읽어 내려갔다.
-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설마… 아니지?
- 안녕하세요, 강준빈 원장님. 최 PD입니다. 죄송하지만, 내일 방송 출연이 취소돼서 전화 드렸는데…….
- 손 PD입니다. 방송 출연 취소로 전화 드렸는데…….
- 박소은 작가입니다. 방송 출연 취소로…….
문자를 읽던 강준빈은 가쁜 숨을 몰아 내쉬며, 결국 휴대전화를 보이지 않는 곳으로 집어 던지고 말았다.
“…미친.”
* * *
‘팩트, X 파일’이 생방송으로 방송되자마자 인터넷은 기다렸다는 것처럼 난리가 나기 시작했다.
1부가 방송되면서 대전의 G모 병원은 곧바로 ‘강한 정형외과’임이 밝혀졌고.
강한철 병원장이 서류를 조작할 틈도 없이, 대전에서는 병원 조사가 시작됐다고 한다.
나는 방송의 어마어마한 영향력에 혀를 내둘렀다.
그리고 2부가 끝남과 동시에 세상은 발칵 뒤집히기라도 한 듯 소란스러워졌다.
“대한민국 사람들의 정보력… 장난 아니네.”
나는 인터넷에 올라오는 댓글, 기사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살폈고.
방송이 끝나자마자 한 시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사람들은 그 스타 의사가 ‘강준빈’이라는 것을 단숨에 알아차렸다.
“하긴… 요즘 유명한 스타 의사가 강준빈밖에 없으니까.”
강한철 병원장의 아들이 강준빈이라는 것도.
수많은 사람들의 정보력으로 찾는 건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기사들은 강씨 집안에 대한 기사로 가득했고.
사람들의 댓글 또한 온통 강한철 병원장과 강준빈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건, 사람들이 강준빈에 대한 폭로를 쏟아내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스타 의사라는 가면에 가려져 묻혔던 이야기들.
그 이야기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었다.
[- 헐. 예전에 강준빈 진료 후기 이상한 거 진짜 많지 않았음?
└맞아. 아프지는 않고 그냥 스타 의사 보러 간 건데, 오진받았다는 글 있었음.
└소름. 그때는 미친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 후기가 진짜였을 수도 있겠네!
- 하… 나 몇 달 전부터 강준빈한테로 옮겨서 진료받았는데ㅠㅠ.
└얼른 내일 다른 병원으로 진료 가 보시길.
└당장 가서 다시 진료받아 보세요.
- 그럼 강준빈이 그동안 TV에서 했던 말도 못 믿을 사실 아닌가?
└그럴 수도. 강준빈이 했던 말은 다 거짓이라고 봐도 무방한 듯.
- 강준빈이 처방해 준 약, 그거 다 제약 회사에서 뒷돈 받은 거라는 것도 님들 몰랐음?
└헐. 진짜로?
└내 친구 제약 회사 다니는데, 강준빈한테 리베이트 주고 자기네 약만 처방해 주라고 했다던데.
└강준빈이 하지 말라고 했던 대로 해야 몸에 좋은 거 아님?ㅋㅋ.
└인정ㅋㅋ. ‘강준빈 반대 운동’.]
강준빈이 방송에 나와 하는 말이라면, 줄곧 따랐던 사람들.
하지만 이제는 그의 말이라면 모두 반대로 해야 한다는 의견이 터져 나왔고.
‘강준빈 반대 운동’이라는 단어까지 생기고 있었다.
[- 진희성이 광고하는 그 제품. 생분해? 그 제품도 강준빈이 쓰지 말라고 했던 제품임. 소름.
└헐, 맞네. 역시 진희성, 안목 오진다ㅋㅋ.
└예전에 강준빈이 환자한테 했던 말. 생분해 제품에 대한 불안함 글 찾아옴. 링크 첨부하겠음.
└‘생분해 제품―JH 메디컬’ 이 제품 강준빈 반대 운동 1번 제품입니다!!
└님들 이 제품 한국 껀데, 한국에서 제일 안 팔리는 거 알고 있었음?
└헐. 다 강준빈 때문이었던 거임? 진짜 강준빈 소름 돋는다.
└JH 메디컬에서 써 달라고 돈을 안 줬었나 봄. 강준빈이 저래도 의사냐?]
스타 의사 강준빈을 치켜올렸던 여론은 금세 뒤집혔고.
그가 추천했던 제품들은 불매 운동을.
그가 반대했던 제품들은 소비 장려 운동이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