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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영업사원이 되었다-324화 (324/339)

324화

쿵쿵.

화장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한 남성의 목소리 또한 점점 내 귓가에 선명히 들려오고 있었지.

“요즘 병원에서는 다들 그런 식으로 한다니까?”

♬♪.

화장실 내에는 클래식 음악이 낮게 깔려 있었고.

그 음악 트랙이 하나 넘어가는 순간.

울리는 피아노 소리에 남성은 발길을 멈춰 세웠다.

“아, 아니야. 여기 음악이 나오는 거라… 계속 통화해도 돼.”

음악 소리 덕분인지, 남성은 하나씩 두드리며 내게로 다가오던 발길을 돌려세운 듯 보였다.

그리도 동시에 남성의 목소리도 내게서 점점 멀어져 갔다.

나는 앞에 닫힌 문 쪽으로 얼굴을 조금 가까이 옮겼고.

나도 모르게 그의 통화 내용에 귀를 쫑긋 세웠다.

“야, 백 과장. 너 그런 식으로 일하면 내 밑에서 오래 일 못 하지. 뭐, 우리 병원만 그런 것 같아? 어떤 병원을 가도 마찬가지야. 뒷돈 안 주면서 일하는 병원이 세상 어디에 있어.”

그의 말에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병원’, ‘뒷돈’.

뭐지, 병원 관계자인 건가?

하지만 과장이라는 직책에게 말을 놓았다는 것으로 보아, 화장실에 있는 남성은 그보다 위의 직책일 터.

의사라도 되는 건가?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병원이라는 말에 조금 더 집중하게 되었다.

“그래. 뒷돈. 아침까지 찾아서 상자에 정리해 놔.”

뒷돈…….

내가 아는 병원과 관계된 뒷돈은 유명한 메디컬 계의 검은돈.

리베이트다.

몇 년 전, 한참 메디컬 계가 떠들썩했던 사건이 있었다.

아니, 메디컬 계의 리베이트는 내가 광주에 있을 때, 기사가 터진 것 외에도.

메디컬에서 빠질 수 없는 단어였다.

광주에 있을 당시, 크게 뉴스를 탔던 리베이트 덕에 최근 잠잠해지기는 한 것 같았다.

예전에나 성행했고, 요즘 시대에는 흔하지는 않다고 하지만.

리베이트의 뿌리가 완전히 뽑히지는 않았다.

물밑에서는 심심찮게 리베이트가 일어나고 있으니까.

물론 나는 예전부터 지금까지 리베이트를 한 적, 비슷하게 뇌물이라도 주고받은 적이 없기에 정확히는 모르지만.

예전보다 메디컬 회사에서 병원에 뒷돈을 주는 방식이 더 치밀해졌다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행위를 반대하는 사람 중 하나가 바로 나이기도 하다.

메디컬 회사에서 리베이트를 한다면, 의사들은 물건의 장단점을 파악해 발주하는 것이 아니라.

돈을 준 메디컬 회사의 제품을 사용할 터.

그렇다면 당연히 우리 회사의 제품이 밀리겠지.

그런 썩어 빠진 관행이 아직 이 업계에 남아 있다는 것에 치를 떨 수밖에 없지.

“아침에 조사 나오면, 트렁크에 상자 실어 주면서 넘어가 달라고 해. 담당자 새끼, 하루 이틀도 아닌데 왜 갑자기 조사를 나오겠다는 거야?”

남성은 흥분한 듯 보였고.

높아지려는 언성을 겨우 눌러 내며 통화를 이어 갔다.

“환자들은 네가 오늘 밤에 돌면서 이야기 싹 다 맞춰 놓고. 뭐? 702호 환자?”

그의 대화에 나는 얼굴이 점점 일그러져만 갔다.

“702호 환자 진단서 서류는 내가 내일 가서 처리할 테니까, 하루만 기다리라고 해. 그래, 브로커한테 몇 개나 받은 환자야. 702호 서류는 건들지 말고.”

브로커… 돈… 서류 조작…….

단순한 리베이트가 아닌 듯 보였다.

분명 병원과 관련된 일임은 확실했고.

나는 입술을 잘근 깨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변기에 물이 내려가는 소리가 화장실에 울려 퍼지자, 남성은 황급히 전화를 끊는 듯했다.

“서류가… 아, 내가 다시 전화할게. 우선 끊어.”

쿵―

나는 문을 벌컥 열고 나왔고.

그는 아직 화장실을 빠져나가지 못한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러고는 세면대 앞에 서서 황급히 물을 틀어 손을 씻기 시작했다.

나 역시 그의 옆으로 다가가 손을 씻었고.

곁눈질로 그를 살펴보자, 그는 나이가 지긋한 중년의 남성이었다.

그는 내게 시선을 돌리지 않기 위해 몸을 나와 반대편으로 돌려 얼굴을 가린 채 손을 씻었고.

거울을 통해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나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말았다.

‘어? 낯이 익는데?’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

분명 내가 아는 사람이었다.

직접 본 사람인지, 혹은 TV나 매체를 통해 아는 사람인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하아…….”

그는 답답한지 한숨을 길게 내쉬었고.

앞에 있는 거울을 통해 그를 바라보던 그 순간.

남성의 속마음 소리가 내 귓가에 또렷이 들려왔다.

[브로커한테 받은 702호 건이 얼마짜린데… 보험 청구 금액 잘 나오게, 빨리 가서 진단서 정리해야겠네.]

그의 속마음을 듣자마자 나는 무엇을 꾸미는 건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남성의 통화 내용과 직업.

모든 퍼즐이 알맞게 맞춰지는 순간이었다.

그는 직업은 의사.

종목은 큰 이변이 없는 한, 정형외과임이 분명했다.

지금까지 그가 통화하던 내용은 뒷돈, 서류 조작, 환자 입막음.

모두 보험 사기와 관련됐다고 하면, 한 번에 풀릴만한 내용이었지.

그러니 그는 의사라는 직업으로 보험 사기에 가담하고 있다는 뜻.

특히 보험으로 사기를 친다는 건, 병원 과목 중 정형외과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런 유의 이야기는 업계에 있으면서 몇 번 들은 적이 있었다.

이 또한 암암리에 정형외과 쪽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내용이었지.

교통사고에서 상해를 입었을 경우, 보험으로 대인 처리를 하고는 한다.

대인 처리를 했을 때는 피해자가 얼마나 다쳤는지 병원에서 진단을 한 후.

그 진단서를 가지고 얼마나 통원 치료를 해야 하는지, 심할 경우 입원을 얼마나 해야 하는지.

환자 상태가 심할 경우에는 장애 진단까지 정해지는 것이지.

모든 것을 확인한 후 진단서가 나오고, 그 진단서를 보험사에서 확인해 보험료가 산정되는 것.

피해자가 치료하면서 드는 병원비, 손해 배상을 모두 물어 주어야 하기에.

그 금액은 적게는 몇백만 원부터 몇천만 원을 넘나든다.

사고를 낸 사람도 그만큼의 큰돈을 물어야 한다는 부담감에, 매달 납부하는 보험료가 있고.

그 보험을 통해 보험사에서 피해자에게 병원비와 합의금을 전달하는 것.

이것이 보험의 순기능이다.

하지만 이것을 악용하는 사례가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아프지도 않음에도 병원에서 환자와 말을 맞춰 진단서를 과도하게 진단해 준다.

그렇게 엄청난 합의금을 거짓으로 받게 되는 것.

그게 바로 ‘보험 사기’인 것이지.

즉, 내 옆에 있는 이 남성은 보험 사기에 가담하고 있는 의사인 셈.

의사는 진단서를 거짓으로 써 준다고 해서 보험사에서 얻어 내는 것은 없다.

다만, 그로 인해 환자가 병원에서 입원하고 치료를 하는 병원비로 이득을 취하는 것이고.

심할 경우, 브로커를 통해 돈을 받고 진단서를 거짓으로 써 주는 것이지.

나는 쓰읍 소리를 내며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분명 이 사람… 어디서 봤는데. 누구더라……?’

그때.

딸깍.

남성은 수도를 잠그고 손을 허공에 탈탈 털었다.

그러고는 내게 눈길도 흘리지 않은 채 화장실을 빠져나갔고.

나 또한 서둘러 손을 닦은 뒤 그의 뒤를 조심스레 따라갔다.

남성이 향하는 방향은 나와 같은 방향이었고.

이내 그의 발걸음이 VIP룸 앞에서 멈춰 섰다.

그의 멈춘 발길에 나는 서둘러 제자리에 멈췄고.

드르륵―

닫혔던 문이 스르르 열리자, 방 안에서 남성을 반기는 사람.

“어? 뭐야…….”

다름 아닌 강 원장이었다.

나는 강 원장의 모습에 입을 틀어막았고.

방 안에 있던 강 원장은 나를 보지 못했는지, 남성을 향해 소리쳤다.

“아이고. 음식 다 식겠어요. 왜 이렇게 늦게 왔어.”

강 원장의 말에 남성은 호탕하게 웃으며 답했다.

“잠깐 병원이랑 통화 좀 하느라. 얼른 먹자.”

“무슨 일 있는 건 아니고?”

“그럼.”

“얼른 앉아, 아빠.”

…….

‘아빠……!’

나는 강 원장이 내뱉은 말에 손가락을 튕겼다.

그래, 강 원장의 아버지.

대전에서 의사로 있는 그의 아버지 강한철이었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하는 ‘강한 정형외과’.

이제야 떠올랐다.

익숙했던 얼굴.

행복 정형외과 자선 바자회에서 만났던 강한철 병원장.

열렸던 강 원장의 룸이 닫히고.

나는 멍하니 그 방을 바라보았다.

대전에서 주름잡는 병원의 병원장이라더니.

보험 사기로 범죄를 저지르고 있었다는 사실에 나는 입을 떡 벌릴 수밖에 없었다.

자기 아빠의 힘을 빌려, 내게 대전부터 JH 메디컬의 물건을 모두 빼고 싶냐고 협박하듯 말했던 강 원장.

그런 강 원장의 믿을 구석이던 그의 아버지 강한철 병원장.

이들을 가만히 두고 볼 수가 없었다.

* * *

“형. 왜 이렇게 늦게 왔어요?”

진희성은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나를 바라보며 물었고.

“미안. 화장실에서 조금 오래 있었네.”

“괜찮아요. 늦었으니까 얼른 한잔해요.”

“하하. 알겠어.”

챙―

술잔을 들이켠 후 진희성을 바라보자, 그는 내가 화장실을 갔을 때 술을 연거푸 마셨는지 볼이 발그레 달아올라 있었다.

나는 그 모습에 테이블 위에 올려진 음식을 가리키며 말했다.

“뭐야, 혼자 술 마시고 있었어? 얼른 안주도 먹어.”

“네. 그냥 자꾸만 생각나서요.”

“응?”

진희성은 한숨을 길게 내뱉으며 내게 말했다.

“형, 사실…….”

“무슨 일 있어?”

그는 자신의 머리를 손으로 꽉 쥔 채 읊조렸다.

“저 팔 아픈 거요. 이거 다… 강준빈 그 자식 때문이거든요.”

“…….”

혼자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던 일.

진희성과 강 원장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게 진희성의 팔과 관련됐을 줄은 몰랐었다.

내게 말을 꺼내고 싶지 않아 했던 그였기에.

갑자기 고백하듯 이야기를 꺼낸 진희성의 말에 나는 집중했다.

“예전에 제가 완전 무명이던 시절, 팔을 다친 적이 있었어요. 그때 찾았던 병원에서 강준빈이 의사로 있었는데. 그때… 뭐,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강준빈이 조치를 똑바로 못한 거죠.”

“너 무명일 때면… 한참 전이겠네?”

그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네. 그때 진단을 똑바로만 했더라면… 치료를 똑바로만 했더라면……. 아니, 제가 다른 병원을 갔더라면 이러지는 않았을 텐데. 내가 왜 하필 거기로 가서…….”

진희성은 당시가 떠오르는지 울먹이는 말투로 이야기했다.

나는 주먹이 터질 듯 꽉 쥔 채로 그에게 답했다.

“희성아, 네 탓을 왜 해. 그냥 강준빈이 잘못한 거지.”

“그렇죠. 그 이후로 후유증처럼 손목에 조금만 무리가 가거나, 부딪쳐도 자주 다쳐요. 제 팬들은 그냥 제가 자주 다친다고만 생각하겠지만요.”

쾅―

그 이야기에 나는 분노에 차올라 테이블 위로 주먹을 내리쳤다.

“그럼 그 당시에 강준빈한테 이야기 안 한 거야?”

“했죠, 당연히 했어요. 제대로 치료가 되고 있는 게 맞냐, 왜 계속 아픈 거냐. 치료를 제대로 해 달라고.”

“그랬는데?”

“근데 강준빈은 오히려 저한테 화를 내더라고요. 내가 의사인데, 네가 뭘 아냐는 식이었어요. 제대로 치료를 하고 있으니까, 똑바로 치료나 받으라면서요.”

나는 이해할 수 없는 당시 상황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럼 다른 병원을 가 보지 그랬어.”

내 말에 진희성은 한숨을 푸욱 내쉬며 답했다.

“그때… 저는 돈도, 백도, 회사도 뭣도 없었던 시절이거든요. 돈을 더 주고 여러 병원을 다녀 보지도 못했고, 그럴 시간도 없었어요. 그리고 의사라고 말하는 그 자식의 말을 그대로 믿었죠.”

그는 입술을 잘근 깨물며 말을 이어 갔다.

“그때는 저도 어려서 세상을 잘 몰랐거든요, 모든 걸……. 게다가 당장 고치고 현장에 나가야만 했어요. 엑스트라로 하루 벌어서 먹고살기 바쁠 때라.”

“하아… 그랬다면, 젊었을 때 더더욱 치료를 제대로 받았어야 했는데.”

그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게요.”

“희성이 네 손목이 그래서 자주 아픈 거였구나. 그래서 우리 교정용 스플린트도 항상 하는 거였고.”

진희성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자신의 손목을 만지작거렸다.

“한겨울만 되면 매일 손목이 시큰거렸어요. 이제는 회사도 생기고, 담당 매니저도 붙고, 제 위치까지 올라갔잖아요. 그리고 병원 다니면서 알게 됐어요. 예전에 강준빈 때문에 손목이 이렇게 됐다는 걸요.”

나는 그의 손목을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고칠 수는 없대?”

“네. 예전에 대체 어떻게 치료를 받은 거냐. 진단이 잘못된 거다, 라고 하더라고요. 이제 와서 뭘 어떻게 할 수가 없대요. 고질병 같은 거죠.”

“그럼 강준빈 찾아가서 보상이라도 받아야지.”

내 말에 그는 코를 찡긋거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형. 이게 트라우마처럼 남아서… 어디 가서 이야기하고 싶지도 않더라고요. 말도 나오지도 않고요. 근데 오늘 강준빈을 보니까, 갑자기 가슴이 불타오르는 기분이었어요.”

그의 말에 나는 한숨을 겨우 삼켜 냈다.

진희성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내게 말했다.

“아, 이제는 왕십리에 하 원장님 만나서 치료 잘 받고 있어요. 믿을 만한 원장님이잖아요.”

그의 말에 나는 애써 미소를 지었다.

세상도 참 좁지…….

그가 믿는 하 원장과 진희성을 저렇게 만든 강 원장이 가까운 사이라는 걸.

진희성은 모를 테니까.

“그렇지. 하 원장님이 워낙 실력이 좋으시니까.”

내 말에 그는 어깨를 들썩이며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사실 형한테도 말할 생각은 없었는데. 아까 로비에서 다투는 걸 보니까, 분명 강 원장이 형한테 잘못을 저질렀을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속 시원하게 털어놨습니다. 하하.”

억지로 웃으며 내게 말하는 그를 보니, 오히려 내 마음이 쓰라린 것만 같았다.

이유는 다르지만, 강 원장에 대한 분노는 나 못지않은 진희성.

강 원장을 무너뜨리고 싶은 마음은 나와 다르지 않은 듯 보였다.

그런 진희성을 바라보며 나는 눈썹을 들썩이며 읊조렸다.

“희성아.”

“네, 형.”

“너… 시사 프로그램에 주제 필요하다고 했었잖아. 내가 좋은 아이디어를 좀 주고 싶은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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