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8화
“이번에는 제가 제안을 하나 드리고 싶은데… 들어 보시겠습니까?”
내 말에 최 대표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고.
“네, 민 대표님께서 하시는 제안이라면 뭐든 들어 볼 수 있죠.”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는 그에게 나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저희 생분해 제품이 해외에서 생각보다 더 반응이 뜨겁습니다.”
최 대표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입꼬리를 올렸다.
“맞습니다. 저도 퍼펙트 메디컬에 동료가 아직 남아 있어서 소식을 가끔 듣는데, 독일에서도 인기가 좋다고 하더라고요.”
“네. 너무나 다행히도 인기가 좋아서, 제품 발주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아니, 발주가 날로 상승하고 있는 추세고요.”
최 대표는 입꼬리를 올린 채 어깨를 들썩였다.
“그래서 수한 메디컬 신 대표님이 정신이 없으시지만요.”
그의 말에 나 역시 고개를 주억거렸다.
“네. 요즘 밤낮없이 공장이 돌아가고, 주말도 없이 일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예, 저도 자주 가서 공장 보고 물건도 확인하는데 바쁘다는 말로는 표현이 안 되더라고요. 물론 이렇게 민 대표님 사업이 잘되시니까, 덕분에 신 대표님도 돈을 버시는 거지만요. 하하.”
나는 미소로 화답하며 쓰읍 소리와 함께 화제를 돌렸다.
“그래서 말씀인데요, 최 대표님.”
“예, 편히 말씀하시죠.”
“지금 최 대표님 공장에서 돌리고 있는 설비 라인이 소모품만 있는 건지 여쭤보고 싶어서요.”
그는 내 물음에 공장 쪽으로 시선을 쓰윽 돌리며 머리를 흔들었다.
“그렇죠. 지금 작업은 민 대표님네 스플린트 라인밖에는 없습니다.”
내가 처음 최 대표와 작업을 하게 되었던 게, 파우더 스플린트.
이후 교정용 스플린트도 그와 작업을 했었고.
최 대표의 공장에서 돌아가고 있는 건, 스플린트 생산밖에는 없었다.
그가 한국에서 제조 사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와 함께 일을 시작한 거였으니까.
처음 스플린트 제조를 할 당시, 나는 이곳 블루 메디컬에 출근을 하다시피 매일 왔었고.
그래서 블루 메디컬의 생산 라인, 공장 규모.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텅 비어 있는 한 동의 공장까지도 말이다.
“그래서 말씀인데요, 최 대표님. 저기 하나 비어 있는 공장… 가만히 두시지 말고, 설비 라인을 까시는 건 어떨까 싶어서요.”
내 말에 그는 눈썹을 들썩이며 내게 물었다.
“어떤 설비 라인 말씀이십니까?”
그의 물음에 나는 눈에 힘을 주고 그를 바라보며 답했다.
“생분해 제품 라인이요. 신제품 개발에 열심히 힘써 주셨는데, 제조에서도 같이 돈 버셔야죠.”
내 말에 최 대표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말했다.
“그건 수한 메디컬이 생산 라인을 독점으로 가지고 있는데, 함께 생산을 시작해도 되는 겁니까?”
“애초에 계약은 수한 메디컬이 독점 생산이었지만, 생각보다 밀리는 발주량에 신 대표님께서도 생산량을 버거워하셨습니다.”
최 대표는 미간을 찌푸린 채 내 말에 집중하며, 몸을 앞으로 더 끌어당겼다.
“저 역시 병원, 해외 메디컬에 양해를 구하며 납품을 미룰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최근에 신 대표님과 이미 이야기는 마친 상태입니다.”
“생산 라인을 더 늘리는 걸로 말씀이시죠?”
“맞습니다. 최 대표님도 아시다시피, 밤낮없이 주말도 없이 제조를 해도 부족한 실정이니까요.”
그는 내 말에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나만큼이나 신 대표의 바쁨과 고됨을 충분히 느끼는 그였으니까.
“그래서 신 대표님 공장을 더 증축시켜야 하나, 라는 이야기도 나왔지만. 현재 그렇게 일을 벌일 수가 없는 상황이었고…….”
나는 최 대표에게 수한 메디컬의 상황을 짧게 정리해 설명했고.
그는 아무런 답 없이 고개만을 끄덕이며 내 이야기에 집중했다.
“…그래서 저한테 제안을 주시는 거군요?”
“네. 최 대표님이 생분해 제품을 개발하는 데, 엄청난 힘을 실어 주셨는데.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함께 제품을 생산해 주셨으면 해서요.”
내 말이 끝나자 최 대표는 앞에 놓인 차갑게 식어 버린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다.
그리고는 한참 잔을 입에 가져다 댄 채로 답을 망설였고.
나는 그런 최 대표를 향해 조심스레 말을 이어 갔다.
“제가 이렇게 제안 드리는 건, 최 대표님과 함께 더 높이 성장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빈 공장을 모두 채워 버리시게 된다고 해서, 결코 후회하시는 선택은 아닐 거라고 확신합니다.”
최 대표는 평소 메디컬 제품 개발에 힘을 쓰고 싶어 하는 인물이었다.
그래서 자신이 생산에 시간을 쏟아 바빠지는 것을 걱정하고 있는 듯 보였다.
물론 생분해 제품을 생산하게 되면 돈은 벌겠지만, 자신이 원하는 개발에 쏟을 시간이 부족해질 테니까.
하지만 생분해 제품 설비 라인을 설치하게 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게 너무나 명확했기에.
이 기회를 다른 인물이 아닌, 최 대표에게 먼저 제안하고 싶었던 것이지.
최 대표는 이내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는 시선을 어렴풋이 내게 맞추고 입을 열었다.
“민 대표님.”
“예, 최 대표님. 편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혹시 고민할 시간이 더 필요하시다면…….”
그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목을 가다듬으며 답했다.
“좋은 제안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최 대표는 옅은 미소와 함께 말을 이어 갔다.
“사실 저에게 주신 그 제안을 거절할 리가 있겠습니까.”
“네?”
“아니, 당연히 거절할 수가 없죠. 너무나 제게는 행복한 제안이니까요. 메디컬 개발에만 힘쓰는 것도, 환자들을 위해 일을 하는 것도. 모두 경제적인 요건이 충족되어야만 평생 할 수 있는 거잖습니까.”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맞는 말씀이죠. 아무리 하고 싶은 것만을 한다고 하더라도, 뒷받침이 되어 줄 자금이 필요하니까요.”
“충분히 더 큰 제조 업체에 제안할 수 있는 내용이셨을 텐데. 그 기회를 저에게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는 초롱거리는 눈으로 내게 고마움의 표현을 하는 듯 보였다.
“아닙니다. 항상 제가 최 대표님께 감사하죠.”
“민 대표님께서 아시다시피 공장 한 동 비어 있는 곳에, 설비 라인만 제작된다면 바로 설치 가능합니다. 날짜는 당장 내일이라도 상관없고요.”
최 대표의 말에 나는 손을 뻗었고.
그에게 악수를 청하며 말했다.
“제안 받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내 말에 최 대표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 손을 맞잡았다.
“저야말로 제안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물건 납품 차질 없이 하려면, 한시가 급한데 어서 시작하시죠.”
* * *
몇 주의 시간이 지나갔다.
이제는 차가운 추위가 살갗에 닿는 느낌이 물씬 풍길 무렵.
“다녀오셨어요!”
사무실에 들어오자 나를 맞이하는 신소율과 문지음.
“네, 사무실은 별일 없었어요?”
내 말에 신소율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 답했다.
“없었습니다. 대표님, 밖에 바람 많이 불죠?”
그녀의 말에 나는 팔을 쓸어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제 진짜 겨울이에요. 곧 눈도 내릴 것 같더라고요.”
문지음은 자리에서 쓰윽 일어났고.
잠시 우리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 그녀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를 내게 한 잔 가져다주었다.
“대표님, 이거 드세요.”
그녀가 건네는 커피에 나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잔을 잡았다.
“고마워요. 잘 마실게요.”
“네.”
수줍은 얼굴로 다시 자리로 돌아가는 그녀.
나는 입꼬리를 올린 채, 따뜻한 커피잔에 손을 녹였다.
그러고는 신소율에게로 다가가 눈썹을 들썩였다.
“우리 지금 생분해 제품 재고는 넉넉하죠?”
내 말에 그녀는 몇 달 전과는 달리 고개를 끄덕였다.
“네, 충분해요. 수한 메디컬 제품 재고로 이번 NA 바이오 발주량 납품 완료했고요.”
그녀는 노트를 뒤적이며 말을 이어 갔다.
“그리고 지금 퍼펙트 메디컬이랑 국내 병원들 제품은 블루 메디컬에서 생산한 제품으로 납품하고 있습니다.”
“순탄하게 잘 나가고 있네요.”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재고 이야기만 나오면, 발을 동동 굴렀던 신소율이었지만.
이제는 블루 메디컬에서 함께 생산을 하고 있는 덕에, 재고 부족이라는 불안함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있었다.
그때.
“다녀왔습니다.”
문이 열리고 들어오는 두 사람.
한 대리와 임재민이었다.
“어, 고생했어. 얼른 들어와서 손 좀 녹여.”
꽁꽁 언 두 볼로 사무실에 들어온 그들을 바라보며 나는 히터를 가리켰고.
그들은 고개를 꾸벅 숙이며 다가왔다.
“대표님, 저 드릴 말씀이…….”
한 대리는 손을 녹이며 내게 말을 건넸고.
“어. 뭐 개인적인 이야기야?”
“아니요. 업무 이야기입니다.”
그때, 우리의 대화를 들은 신소율은 시계를 바라보며 물었다.
“대표님, 회의 준비 바로 할까요?”
그녀의 말에 나는 시계를 보며 답했다.
“아,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요.”
그러고는 옆에 있는 한 대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업무 이야기면, 회의 때 해도 되는 내용이야?”
“예, 그때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자. 소율 씨, 바로 회의 준비하죠.”
“네.”
몇십 분 뒤.
우리는 회의실에 모여 앉았다.
일주일에 한 번 있는 회의.
각자 한 주를 마무리하고, 다가올 새로운 주의 계획을 세우는 회의였다.
한데 모여 앉아 다이어리를 펼친 직원들.
나는 신소율이 만든 매출표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우선 이번 주도 다들 고생했어요.”
내 말에 그들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잘게 끄덕였고.
나는 손가락으로 매출 금액을 확인하며 말했다.
“이제 겨울이라, 바빠지기 시작할 거예요. 다들 알다시피, 겨울에는 골절 환자가 많으니까. 그만큼 정형외과에 환자가 많아질 테니까요.”
정형외과 메디컬에서 겨울을 처음 겪는 문지음과 임재민은 입을 동그랗게 모은 채, 고개를 주억거렸다.
“바빠지면 실수가 생기기 마련이니까, 다들 항상 하던 일이라고 해도 한 번씩 더 체크하고.”
“네!”
그들은 합창하듯 입을 모아 소리쳤고.
“우리야 한 번 실수지만, 병원에서는 웃으면서 넘어가지 않으니까. 다들 조금 더 신경 써서 납품할 수 있도록.”
“알겠습니다.”
“그리고 생분해 제품은…….”
나는 매출 목록 페이지를 넘겨, 생분해 제품의 매출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미세하게 줄어드는 매출 금액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소율 씨.”
갑작스런 내 부름에 놀란 신소율은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네?”
“이거 생분해 제품 이번 주 전체 매출 말고, 해외랑 국내로 나뉜 것도 볼 수 있어요?”
그녀는 곧바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고.
“그럼요. 출력만 하면 되니까, 바로 뽑아서 오겠습니다.”
“부탁해요.”
“넵.”
신소율이 회의실을 빠져나간 후.
나는 살짝 줄어든 매출에 미간을 찌푸렸다.
정형외과를 찾는 환자 비율은 여름보다 겨울이 압도적으로 높은 편이었다.
낮은 기온에 몸이 얼어붙고, 쉽게 뼈를 다치기 쉬운 계절이니까.
항간에 나오는 말로는 겨울이 정형외과의 성수기라는 말도 있을 정도.
매출이 물론 매달, 매주 들쑥날쑥할 수는 있지만.
계절감을 감안할 때, 지금은 매출이 줄어들 수 없는 환경이었다.
특히나 생분해 제품은 출시된 지 몇 달이 되지 않았기에.
계속해서 판매량이 급등하는 중이었으니까 말이다.
신소율의 실수로 매출이 누락된 건가?
혹은 발주가 주춤하고 있는 건가?
그렇다면, 주춤하고 있는 발주의 이유를 분석하고 해결해야만 했기에.
나는 온 신경을 집중한 채 턱을 어루만졌다.
그때.
“대표님, 여기 있습니다.”
신소율은 내게 출력해 온 서류를 건넸고.
“고마워요.”
내가 서류를 받아들자, 그녀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해외는 매출이 계속해서 늘어가고, 그리고 지난주부터 엄청나게 급등했습니다.”
그녀의 말에 나는 자료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요. NA 바이오 매출이 쭉 올랐네요.”
신소율은 자리에 앉지 않고 내 옆에 서서 쓰읍 소리를 내며 말했다.
“근데… 국내 병원 매출이…….”
“어?”
그녀의 말과 동시에 확인한 자료.
국내 매출이 하락한 것을 보고 나는 탄식이 터져 나왔다.
“갑자기 국내 매출만 왜 이렇게 떨어진 거야……?”
나는 입술을 잘근 깨물며 매출액을 확인했다.
국내에서 떨어진 매출, 그리고 해외에서는 급등한 매출.
그래서 총 매출은 지난번 매출과 큰 차이가 없이 미세한 것이었다.
하지만 국내에서 매출이 떨어지고 있는 이유를 서둘러 알아내야만 했다.
이건 잠시 주춤한 게 아니라, 분명 이유가 있을 수밖에 없는 수치였다.
그리고 내 표정을 바라본 한 대리가 목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저… 대표님, 매출 때문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맞다. 그래, 할 말 있다고 했지?”
나는 한숨을 삼켜내며 그를 바라보았고.
한 대리는 다소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오늘 병원 세 곳에서 생분해 제품 발주했던 거, 취소해 달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임재민이 손을 스르륵 들었고.
“대표님, 저도… 발주 취소 때문에 그런다고 병원 호출 받았습니다.”
그들의 말에 나는 점점 얼굴이 일그러졌다.
“뭐라고… 발주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