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7화
“…뭐야 저게?”
TV 화면에 나와 밝게 웃으며 인사하는 사람.
다름 아닌 리본 종합병원의 강 원장이었다.
나는 뜬금없이 보이는 강 원장의 모습에 미간을 찌푸렸고.
“저거 리본 종합병원 강 원장님 맞죠?”
한 대리는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의 말에 나는 머리를 끄덕임으로 답을 대신했다.
한 대리는 내 답에 다시 TV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강 원장님이 뭐… 의사이기는 하시지만. 리본 종합병원이 방송에 나올 정도로 유명한 병원이었나요?”
그는 강 원장의 등장이 의아한 모양.
나 역시 TV 속 그의 모습에 놀랐으니까.
놀란 이유는 한 대리와 다를 바가 없었다.
강 원장이 의사 업계에서 그렇게 유명한 의사도 아니었을뿐더러.
리본 종합병원 역시 서울에서 내로라하는 병원은 아니었다.
그저 지역구에서 이름이 알려질 정도로 그 동네를 대표하는 여러 개의 병원 중 하나였을 뿐.
대체 강 원장이 TV에는 왜 출연한 거지?
그리고 어떻게 출연할 수 있었던 거지?
신소율은 병원의 의사들 얼굴까지는 알 수가 없었기에, 우리의 반응을 보며 궁금한 듯 질문을 던졌다.
“근데 저 방송… 원래 유명한 병원 원장님들만 나오는 방송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강준빈 원장님도 유명한 분은 아니시죠?”
그녀의 말에 한 대리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물었다.
“어? 소율 씨 저 방송 평소에도 보는 거예요?”
“네, 종종이요. 부모님들 건강 프로그램 잘 챙겨 보시잖아요. 그래서 어쩌다가 집에서 엄마 아빠가 보실 때 같이 봤어요.”
신소율의 말에 문지음도 손뼉을 부딪치며 소리쳤다.
“저도요. 엄마 아빠들 원래 저런 프로그램에 진심이시잖아요. 하하.”
“맞아. 그리고 우리가 메디컬에서 근무해서 그런지, 저거 가끔 보면 아는 내용 나오기도 하고. 특히 정형외과 쪽 제품 이야기 나오면 귀가 솔깃하더라고요. 아는 내용이니까.”
그녀들은 흥미롭다는 듯 방송을 바라보았다.
저녁 황금 시간대 방송.
하지만 공중파 방송이 아니었기에, 시청률이 그리 높은 방송은 아니었다.
동 시간대 방송 3사에서는 어머니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드라마가 방영 중이었으니까.
다만 마니아층이 두꺼운 방송임은 틀림없었다.
의학 지식과 건강에 대한 방송이기에, 장수 프로그램으로도 유명했지.
이 프로그램은 MC와 매주 주제에 따라 바뀌는 의사들의 출연으로 내용을 끌어갔다.
오늘의 주제는 정형외과와 관련된 이야기였고, 그래서 강 원장이 출연한 모양.
지금은 김사랑과의 관계로 강 원장과 심적으로 멀어진 상태였지만.
그와 가까웠을 당시, 그는 방송에 출연하는 의사들을 극도로 싫어했었다.
나가서 얼굴을 알려 몸값과 인지도를 올린 후.
개인 병원을 차려 나가기만 하면, 대부분의 환자들은 그 의사를 보고 병원에 찾아오기 마련이었고.
그런 목적을 위해 방송에 출연하는 의사들이 많은 편이었다.
나 또한 그런 이야기에 강 원장을 향해 권유를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방송에 출연하는 의사들은 시간이 많은 의사라고 칭하고는 했었다.
환자가 많은 병원일수록 그 시간을 빼서 방송에 출연하는 게 힘들 테니까.
그래서 그 의사들을 내리깔아 보는 듯한 시선을 내비쳤었다.
강 원장의 말을 가져오자면, 그는 방송에 출연하는 의사들을 ‘의사로서 능력이 부족한 의사’라고 칭했었다.
그 정도로 방송에 출연하는 의사들을 싫어했었지.
그랬던 그가 갑자기 방송에 출연했다는 사실에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나는 TV 속 밝게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강 원장의 모습을 보며 작게 읊조렸다.
“강 원장… 분명 무슨 이유가 있어서 방송에 나온 것 같은데…….”
* * *
한편, 같은 시각.
지이잉.
지이잉.
쉴 새 없이 울리는 휴대전화.
삑―
리모컨으로 TV 전원 버튼을 끄며 강 원장은 머리를 헝클였다.
“하아… 생각보다 더 잘 나왔네.”
그는 뿌듯한 얼굴로 자신의 휴대전화를 바라보았다.
“이래서 매스컴이 무서운 거야. 문자에, 전화에 이러다가 휴대전화 터지겠네. 하하.”
그는 소파에 몸을 추욱 기대고 누워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울리는 휴대전화를 바라보며 수신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강 원장은 호탕한 웃음을 삼켜 내며 전화를 받았고.
“아… 방송 봤어? 아이고. 잘 나오긴 뭘. 에이, 유명해지긴. 하하.”
그는 꺼진 TV 화면에 비치는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
“갑자기 왜 나갔냐고? 왜긴, 그냥 방송국에서 하도 출연해 달라고 하니까 이번에 한 번 나가 본 거지.”
- 인마. 너 그렇게 내가 나가라고 해도 안 나간다고 뻐기더니. 갑자기 무슨 바람이 든 거냐?
“바람은 무슨…….”
- 진짜 이유도 없이 나갔다고?
“뭐… 아무 이유도 없이 나간 건 아니고.”
- 그럼 뭔데?
“이걸 나가서 유명해지면 꼭 하고 싶은 게 있어서.”
- 뭐, 개원?
“아니, 개인 병원으로 개원할 생각은 없다니까.”
- 의사가 방송 나와서 유명해지면 하고 싶은 일이 개원 아니면 또 뭐가 있냐?
친구의 말에 강 원장은 음흉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답했다.
“내 위치의 무서움.”
- 응? 그게 무슨 말이야?
강 원장의 친구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다시금 되물었고.
그는 피식 웃으며 답했다.
“있어. 내가 우선 높은 위치에 올라가야 하거든. 근데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겠더라고.”
- 궁금하게 뭔데.
“나중에 알려 줄게.”
통화를 마친 강 원장은 잔에 담긴 위스키를 들이켜며 인터넷에 자신의 이름을 검색했다.
인터넷에는 그가 근무하는 병원명.
그의 경력들이 돌아다니고 있었고.
강 원장에 대한 질문들과 그의 진료 시간을 묻는 질문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김사랑… 너한테 가는 길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는 한쪽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남은 알코올을 잔뜩 삼켜 냈다.
* * *
“좋은 아침입니다.”
나는 밝게 웃으며 사무실 문을 열었고.
가장 먼저 신소율이 나를 반겼다.
“대표님, 오셨어요?”
“네, 어제는 잘 들어들 갔어요?”
“예. 어제 카드 주셔서, 저희끼리 2차하고 들어갔습니다.”
그녀는 책상 위에 올려 둔 카드와 영수증을 내게 내밀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잘 먹었습니다.”
나는 카드와 영수증을 살펴보지 않은 채, 서둘러 주머니에 꾸깃 접어 집어넣었다.
자고로 회식에서 대표는 짧은 시간을 머물며, 입을 닫고 지갑을 여는 게 직원들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아니에요. 잘 놀다 갔다니까 다행이에요.”
“다음에는 같이 놀아요, 대표님.”
그녀의 말에 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에이. 직원들끼리는 대표를 안주 삼아 회식하는 거 아닌가요? 하하.”
내 말에 그녀는 손사래를 치며 답했다.
“그것도 회사 나름이죠. 다음에는 꼭 같이 회식 끝까지 해요.”
그녀의 계속되는 권유에 나는 결국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네, 그럴게요.”
나는 탁상 달력을 바라보며 화제를 전환시켰다.
“소율 씨. 그리고 우리 이번 달 재고 얼마나 남았죠? 부족할 것 같아서요.”
내 말에 그녀는 서둘러 책상 앞으로 다가가 재고를 확인했다.
타닥타닥―
잠시 그녀의 타자 소리만이 맴돌았고.
이내 그녀는 조금 어두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대표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발주량 맞추고 나면, 재고 다음 달부터 부족해요.”
“하아…….”
우려했던 생산량에 나는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녀는 내게 발주 파일을 건네며 말했다.
“오늘 아침에 퍼펙트 메디컬이랑 NA 바이오에서 발주 메일이 또 왔는데요.”
“네.”
“발주량이 지난주보다 훨씬 많이 늘었어요.”
나는 파일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그러네요. 두 배는 더 늘었네요.”
발주가 늘었음에도 환호가 아닌 한숨이 나오는 게, 굉장히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너무나 행복한 이 순간에 걱정이 앞섰으니까.
신소율은 입술을 잘근 깨물며 내게 물었다.
“수한 메디컬 신 대표님한테 전화 드릴까요?”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지금 공장 밤낮없이 돌리고 있어요. 제가 우선 조치를 취하고, 이야기해 줄게요.”
“네, 그럼 우선 발주 수량은 어떻게 할까요?”
“당장은 재고 있으니까. 이번 납품까지는 그대로 가고. 서둘러서 방안을 찾아볼게요.”
나는 대답과 함께 벗던 재킷을 다시 입으며 말을 이어 갔다.
“저 나갔다 올게요, 소율 씨. 무슨 일 있으면 전화 줘요.”
“아… 네!”
사무실에 출근하자마자 다시 나온 회사.
나는 서둘러 수한 메디컬로 향했다.
영업도 중요했지만, 지금은 거래처를 늘리고 발주를 받아 오는 것보다.
납품을 위한 제품 생산량이 더 중요했으니까.
아무리 물건 발주를 받는다고 해도, 제품 공급을 하지 못하면 거래처가 끊길 터.
수한 메디컬로 향하며 머리를 굴리던 순간.
나는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에, 급히 핸들을 꺾었다.
그러고는 목적지를 변경해 블루 메디컬로 향했다.
“어? 민 대표님.”
블루 메디컬에 도착하자 최 대표가 나를 놀란 눈으로 반겼고.
“최 대표님, 급한 일이라 연락도 없이 찾아왔습니다.”
내 말에 그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예, 무슨 일로……. 우선 앉으시죠.”
“네.”
우리는 서로 마주 보고 자리에 앉았고.
그는 내게 커피 한잔을 내밀며 물었다.
“여기로 출근하신 겁니까?”
나는 테이블 위에 놓인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켠 뒤에야 그를 향해 답했다.
“사무실 갔다가, 최 대표님 만나러 급히 왔습니다.”
“아이고. 연락 주셨으면, 제가 민 대표님 사무실로 갔을 텐데요.”
“아닙니다. 제가 드릴 말씀이 있어서 온 건데요.”
그는 내 말에 눈썹을 들썩이며 나를 바라보았다.
“생분해 제품 때문에 오신 거죠?”
우리가 함께하고 있는 제품은 소모품과 생분해 제품.
두 가지였고, 현재 모든 중심은 생분해 제품에 집중되어 있었기에.
그는 단번에 내가 온 이유의 주제를 알아차렸다.
“예. 지금 수한 메디컬에서 제조하고 있는 생산량 알고 계시죠?”
최 대표는 내 말에 손가락으로 생산량을 세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고.
이내 머리를 흔들었다.
“네. 발주량이 많아서 요즘 밤낮으로 쉬지도 않고 제조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맞아요, 신 대표님이 고생이 많으시죠. 근데 NA 바이오랑 퍼펙트 메디컬에서 영업을 잘했는지… 요즘 발주량이 너무 늘어서 고민입니다.”
내 말이 끝나자 최 대표는 함박웃음을 보이며 답했다.
“이야, 행복한 고민이십니다. 하하.”
하지만 나는 쓰읍 소리를 내며 어색한 미소를 보였다.
“최 대표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발주량 못 맞추기 시작하면, 거래처 뚝뚝 끊긴다는 걸요.”
“하긴. 발주량 부득이하게 못 맞추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그게 몇 차례 반복되면, 신뢰가 깨지는 거니까요.”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서 제가 해결책을 찾고자 이렇게 최 대표님을 찾아왔습니다.”
“어떤 해결책 말씀이십니까?”
최 대표는 흥미롭다는 듯 뒤로 젖혀져 있던 몸을 일으켜 내게로 다가왔고.
눈썹을 들썩이며 말을 이어 갔다.
“뭐든 말씀해 주시면,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돕겠습니다.”
나는 그의 말에 입술을 잘근 깨물며, 마른 침을 크게 삼켰다.
그러고는 최 대표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최 대표님. 저번에 저한테 제안하신 적 있으시죠?”
생분해 제품 제조에 난항을 잠시 겪어 주춤했던 때.
그는 내게 자신이 도움을 줄 수 있다며, 제안을 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제안에 감사를 표하며 곧장 제안을 받았었지.
최 대표 역시 그때를 기억하는지 고개를 잘게 끄덕이며 답했다.
“예, 있었죠.”
“그래서 말씀인데요…….”
내 말에 그는 초롱거리는 눈으로 내게 시선을 고정했고, 나 역시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최 대표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에는 제가 제안을 하나 드리고 싶은데… 들어 보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