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5화
【 후회 없는 선택 】
“좋은 아침입니다!”
이른 아침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나를 반기는 직원들.
“어? 다들 일찍 왔네요?”
내 말에 그들은 미소를 지으며 내게 답했다.
“네, 대표님. 오늘 제품 출시일이잖아요.”
나 역시 제품 출시일이라, 하루 내내 바쁠 거라 생각해 회사에 일찍 출근한 것이었고.
직원들 또한 나와 같은 마음으로 출근했다는 말에 고마움과 더불어 입꼬리가 올라갔다.
“고마워요. 그럼 다들 정리하고 아침에 회의 좀 시작할까요?”
“네!”
각자 정비를 마친 뒤, 우리는 회의실에 모여 앉았다.
그리고 회의 내용은 오늘 출시될 제품, ‘생분해 제품’에만 초점을 맞췄다.
“오늘 미리 발주했던 병원들에 바로 납품이 시작될 겁니다. 첫 발주라 모든 병원이 발주량이 많지는 않으니까. 큰 병원들부터 차례로 납품하러 갈 거고…….”
내 말에 직원들은 각자 메모를 하기 시작했고.
“한 대리랑 재민 씨가 동선 편하게 정하고, 나한테도 그리고 사무실 직원들한테도 이야기해 줘요. 그래야 서로 동선 파악해 두고, 헷갈리지 않으니까.”
“네.”
“예, 알겠습니다.”
영업 직원들을 바라보던 시선을 옮겨 신소율을 향해 물었다.
“우리 해외 출고는 확인했어요?”
내 말에 신소율은 다이어리를 바라보지도 않고, 곧장 나를 보며 답했다.
“네, NA 바이오는 오늘 도착 예정이고. 퍼펙트 메디컬은 어제 도착했다고 연락받았습니다. 수량은 전부 체크했고, NA 바이오도 받는 즉시 확인하겠습니다.”
“그래요. 소율 씨가 알아서 잘하고 있네요, 역시.”
그녀는 옅은 미소와 함께 내게 물었다.
“대표님.”
“네?”
“저희 지금 서울 말고도 연락 오는 지방 병원들은 어떻게 하면 될까요?”
신소율의 말에 나는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이번 제품은 소모품처럼 단순히 카탈로그와 제품만을 보내면 안 되는 제품이었고.
그렇다고 해서 설명을 하고 영업하기 위해 지방까지 모두 다니는 것은 아직 무리였다.
회사에 영업 사원이 두 명이 되면서, 지방 총판은 따로 생각을 하지 않았었지.
“아직 지방 납품은 힘들어서… 우선 체크만 해서 병원 목록 넘겨줄래요?”
“예, 알겠습니다.”
“서울권 안정화되면 지방으로 출장 가서 한군데씩 영업해 보게, 우선 서울권부터 시작해 봅시다!”
내 말에 직원들은 고개를 들고 소리쳤다.
“네!!”
이내 벽시계의 시곗바늘은 10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나는 시간을 확인하고는 서둘러 회의를 마무리 지었다.
“그럼 얼른 동선 나눠서 납품 시작합시다.”
제품이 출시되기만을 기다렸다는 것처럼 직원들은 다소 흥분된 얼굴로 업무를 시작했다.
자신의 일처럼 설렘이 가득한 표정으로 제품을 다루는 직원들.
나는 그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소리쳤다.
“우리 성공적으로 스타트 끊고, 거하게 회식합시다.”
“오예.”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대표님!”
“저랑 재민 씨는 얼른 나가서 납품하고, 병원 설명드리고 오겠습니다.”
* * *
제품이 출시되고, 며칠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나는 정신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어쩌면 제조업에 뛰어들고 가장 바쁜 며칠을 보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물밀 듯이 들어오는 발주.
발주는 국내뿐 아니라, NA 바이오와 퍼펙트 메디컬에서도 쉴 새 없이 연락이 오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메디컬 시장 자체의 규모가 한국 시장과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큰 곳이었고.
세계적인 규모의 메디컬을 주름잡고 있는 두 업체가 신제품을 판매한다는 소식에, 업체들의 발주가 끊이지 않을 터.
나는 총판을 잘 지정한 탓에 앉아서 돈을 버는 좋은 모양새를 꾸리고 있었다.
애초에 이런 그림을 그리기 위해 해외 총판을 구하려고 한 것이니까.
“하아… 바빠도 행복하네.”
오늘이 며칠인지, 지금이 몇 시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바쁜 생활을 보내고 있었지만.
항상 내 입가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내가 원하던 제품을 출시하기 위해, 누가 보면 무모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게 뛰어나왔던 메디컬 영업직.
그곳에서 나와 제조업을 차린다는 게, 주변에서 찾아보아도 흔치 않은 일이었다.
같은 메디컬을 다루고는 있지만 영업과 제조는 너무나 다른 분야니까.
내가 제조업에 오고자 한 이유는 분명하게 ‘생분해 제품’을 만들고자 한 것이었다.
그리고 끝내 그 제품을 출시했고, 반응은 예상한 것처럼 폭발적이었다.
사실 이렇게 해외까지 난리가 날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나는 꿈같은 현실에 연신 입꼬리가 올라갔고.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얼른 영업하러 가야겠다. 바쁘다, 바빠…….”
한 병원 앞에 멈춰선 차.
나는 트렁크 가득 실린 제품을 카트에 꺼내, 병원으로 향했다.
오늘도 해가 질 때까지, 점심도 먹지 못한 채.
바삐 일을 마쳤다.
내 휴대전화는 충전기를 꼽고 있지 않으면, 금세 배터리가 꺼져 버릴 정도로 쉴 새 없이 메디컬 회사들에서 연락이 쏟아졌다.
한 병원에 들러 제품을 납품하고, 설명을 하고 나오면.
휴대전화에는 부재중 전화가 여러 통 찍혀 있는 게 부지기수.
거기에 아직 읽지 못한 아침의 톡과 문자들까지 가득 쌓여 있었다.
그리고 수많은 메디컬과 병원의 연락 사이에 여자친구인 김사랑의 연락도 있었다.
[자기야, 오늘도 좋은 아침! 나는 이제 병원 도착했어. 힘내고, 이따가 시간 될 때 연락해♡]
[자기~ 나는 오전 진료 마치고, 점심 먹으러 가용. 자기도 바빠도 밥은 거르지 말고 일해야 해!]
[자기, 오늘도 많이 바쁜가 보네. 아침부터 톡을 하나도 안 읽었네ㅠㅠ. 밥은 먹고 일하고 있는 거지?]
[자기, 우리 이번 주 주말에 보기로 했던 뮤지컬 취소할까 봐! 자기 이번 주 내내 제품 출시 때문에 바빴을 텐데, 주말에는 푹 쉬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생각해 보고 말해 줘. 나는 괜찮으니까~]
[지훈아…….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나 퇴근했는데, 걱정된다. 연락 줘!]
김사랑에게서 온 몇 개의 톡.
그리고 몇 통의 전화까지.
나는 톡을 읽고 그녀에게 미안한 마음이 가득했다.
제품 출시 전부터 바빴던 탓에 자주 만나지도 못했을뿐더러, 연락조차 쉽게 되지를 않았었다.
원래 사업하면 바쁘지… 다 이해해, 라고 말해 주는 여자 친구였지만.
그럼에도 항상 미안함과 고마움이 마음 한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여자 친구라고 해서 모든 걸 이해해 주고 참아야만 하는 건 아니니까.
내가 더욱 성공에 갈망하는 이유 중 하나는 김사랑이었기에, 나는 꿋꿋하게 앞만을 보고 달렸던 것 같다.
하루빨리 성공해 내가 그리던 그림, 그 미래를 그녀와 함께 그려 나가고 싶었으니까.
바쁜 것을 알면서도 내 상황을 모두 이해해 주고, 늘 응원해 주는 그녀 덕에 나는 지치더라도 항상 힘을 낼 수 있었고.
힘든 하루 끝에 그녀에게서 온 연락을 보면, 나도 모르게 배시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사랑이 보고 싶네…….”
나는 김사랑에게서 온 귀여운 톡 내용에 웃음을 지으며, 서둘러 그녀에게 전화를 걸기 위해 손가락을 움직였고.
그때.
지이잉.
지이잉.
[발신인 : 블루 메디컬 최대훈 대표]
최 대표에게서 연락이 왔고.
이 연락은 분명 제품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기에, 나는 서둘러 수신 버튼을 눌렀다.
“네, 여보세요?”
- 민 대표님. 통화 괜찮으세요?
“예, 그럼요.”
- 다름이 아니라… 오전에 저랑 말씀하셨던 제품 수량이…….
나는 오늘도 그렇게 출근과 퇴근의 경계 없이 늦은 밤까지 일을 이어 갔다.
* * *
“저 들어가 볼게요.”
“네, 김 원장님 조심히 들어가세요.”
김사랑은 진료실 앞에 있던 간호사들을 향해 인사했고, 서둘러 자신의 휴대전화를 열어 민지훈에게 온 연락이 있는지 확인했다.
“지훈이는 아직 일하고 있나 보네.”
그녀는 텅 빈 휴대전화의 알람을 보며 작게 읊조렸고.
서둘러 주차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터덜터덜―
하루 내내 많은 환자를 만나 진료한 탓에 지친 김사랑은 힘이 없는 발걸음으로 자신의 차 앞으로 향했고.
삐빅―!
잠겼던 차 문을 여는 소리와 동시에 들려오는 소리.
“사랑아!”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어?”
그리고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
지금껏 그녀를 기다렸던 사람은 민지훈이 아닌, 강 원장이었다.
“사랑아, 이제 퇴근했어?”
“뭐야, 네가 왜 여기에 있어?”
온화한 강 원장의 미소에도 김사랑은 얼떨떨함이 가득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고.
“너 퇴근하는 거 기다렸지.”
“네가 왜 나를 기다려?”
“할 말이 있어서… 아니,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우리 커피라도 한잔 마시면서 이야기 좀 하자.”
그의 말에 김사랑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소리야. 내가 왜 너랑 커피를 마셔?”
“우리 같이 좋아했던 아메리카노에 휘핑… 그 카페. 아직 있더라고…….”
그녀는 강 원장의 말을 툭 자르며 답했다.
“그러니까. 내가 거기를 왜 너랑 가냐고.”
“야, 무슨 말을 그렇게 서운하게 하냐? 우리가 보통 인연이겠어?”
강 원장의 휘어지는 입꼬리.
그 표정에 김사랑은 무표정으로 일관했다.
“됐어. 나 그거 안 마시고. 그리고 너랑 커피 마실 생각은 추호도 없어. 대체 왜 찾아온 건데.”
그녀의 말에 강 원장은 마른 침을 삼킨 뒤 손을 주물거리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너랑 진지하게 이야기 좀 하고 싶어서 찾아왔어.”
그의 말에 김사랑은 눈썹이 찌푸려졌다.
예전에 헤어진 그들이 우연히 만난 것도 아니고.
이미 찾아와 추파를 던졌던 강 원장이기에, 김사랑은 그런 그가 탐탁지 않았다.
“너랑 이렇게 과거, 추억 떠올리면서 노닥거릴 시간 없어. 그럴 여유도 없고. 나 남친 있는 거 너도 뻔히 아는데, 이런 식으로 찾아오지 마. 나 불편해.”
그녀는 홱 뒤를 돌아 자신의 차로 한 걸음을 걸어갔고.
강 원장은 그런 그녀의 뒷모습에 소리쳤다.
“잘나셨다는 네 남친. 지금 제품 막 나와서 정신없어서 만나지도 못하지 않나? 얼굴 본 지는 얼마나 됐어?”
그의 말에 김사랑의 동공이 빠르게 흔들렸다.
발길을 멈춘 그녀를 본 강 원장은 한쪽 입꼬리를 옅게 올리며 쏘아붙이듯 말했다.
“봐, 사업가는 만나면 외로워. 너도 잘 알잖아. 우리한테 영업 오는 메디컬 직원들… 의사들 술 사 먹이랴, 영업 뛰랴 늘 바쁜 거. 그러니까 사귀든 결혼하든 외롭고 힘든 건 너뿐일 거라고.”
그의 말에 김사랑은 한숨을 삼켜 내며 다시 뒤를 돌아 강 원장을 바라보았다.
“너 고작 그런 소리나 하려고 여기 찾아온 거야?”
“사랑아, 진지하게 생각해 봐. 우리 예전에 좋았잖아. 바쁘기만 한 사업가 만나서 고생할 거 뻔한 네가 걱정돼서 그래. 우리 같이 의사…….”
“야, 강준빈. 말했지만 나는 지금 과거에 머무르고 싶은 생각이 없어.”
강 원장은 그녀에게 한 걸음 다가가며 미소를 지었다.
“왜 과거라고 생각해. 나는 지금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꿈꾸자는 거야. 좀 넓게 돌아봐, 사랑아.”
“너 진짜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민지훈, 솔직히 말해서 네가 말한 대로 그래. 자수성가해서 자신감 넘치게 일하는 거? 인정이야.”
김사랑은 팔짱을 낀 채, 고개를 사선으로 젖히고 그의 말을 들었고.
강 원장은 열변을 토하듯 말을 이어 갔다.
“근데 아무리 발버둥 쳐도 고작 메디컬이라고. 걔가 상대할 사람은 우리, 너나 나 같은 의사잖아. 항상 민지훈은 을의 입장. 딱 그것밖에 안 된다고.”
그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김사랑을 바라보았다.
“무슨 말인지 알지, 민지훈… 내 한마디면 넙죽 엎드릴 사람이라고.”
그의 입꼬리가 사악하게 찢어졌고.
김사랑은 그의 말에 얼굴이 점점 일그러졌다.
그러고는 꾹 닫고 있던 입술을 결국 떼어 냈다.
“준빈아. 너… 모든 메디컬 회사 대할 때 그런 식이었니?”
“응?”
그녀의 차가운 말에 강 원장은 당황한 듯 턱을 끌어당겼고.
“네 주제도 모르고, 사람 깔보고 무시하는 성격… 진짜 여전하다.”
김사랑의 말에 강 원장의 동공이 빠르게 흔들렸다.
그러고는 입술을 파르르 떨며 그녀에게 소리쳤다.
“김사랑… 너 지금 말 다 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