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3화
[발신인 : NA 바이오 이태현]
나는 발신인을 확인하자마자 고개를 갸웃거리며 곧장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안녕하세요, 민 대표님. 저 NA 바이오 이태현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습니까?”
- 그럼요. 한국은 지금 저녁일 텐데, 통화 괜찮으십니까?
“네, 언제든 통화 가능하죠. 그런데 무슨 일로…….”
내 말에 이태현은 웃으며 답했다.
- 이번에 민 대표님께 좋은 소식이 있는 것 같아서 연락드렸습니다.
그의 말에 ‘좋은 소식’이라는 것이 내 제조품인 생분해 제품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고.
“아, 잡지 보셨습니까?”
- 당연하죠. 아주 메디컬계가 떠들썩합니다.
“아이고. 띄워주셔서 감사합니다. 하하.”
- 띄워드리는 게 아니라, 정말 핫하더라고요.
그는 침을 한 번 꿀꺽 삼키며 말을 이어 갔다.
- 근데 저한테 왜 먼저 연락 안 하셨습니까?
“네?”
- 제품 나온다고 말씀하셨으면, 저희 측에서 미리 샘플을 요청했을텐데요.
이태현의 말에 나는 허공에 손을 휘이 가로저으며 답했다.
“괜히 부담가지실까 봐 말씀 못 드렸습니다.”
나 역시 물건이 출시되자마자 당연히 NA 바이오에 말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다.
미국에서 내로라하는 메디컬 회사인 NA 바이오.
나는 그들의 줄기세포 복원 주사를 한국 총판으로 하고 있었고.
그래서 나 역시 좋은 제품이 나왔으니, 한 번 봐달라고 이야기를 충분히 할 수는 있었지.
하지만 오히려 내가 그들의 총판을 하고 있다는 이유 때문에, 내 제품에 대해 이야기를 꺼낼 수가 없었다.
아니, 그렇게 하기가 싫었다.
이런 인연 때문에 괜히 내 제품을 좋게 봐달라는 뜻이 될까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다면, 내 제품을 보는 본질 자체가 떨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내 제품에 대해 너무나 자부심이 있었고, 자신감이 있었다.
이 제품만을 온전히 보고 판단해주기만을 바랐던 것이지.
그래서 나는 NA 바이오를 첫 스타트로 잡은 게 아니라, 잡지를 시작으로 하게 된 것이다.
- 부담이라니요. 지금 미국 메디컬 쪽에서도 민 대표님 제품 가지고 궁금해하는 메디컬 엄청나게 많을 겁니다. 저희 역시 그랬으니까요.
“정말요?”
- 네. 저희 오늘 출근하자마자 회의 때, 민 대표님이 제조하신 제품에 대해서 회의를 했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연락도 드린 거고요.
그의 말에 나는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세계를 휘어잡는 메디컬 회사에서 내 제품이 회의 주제가 됐다는 사실만으로도 벅찼으니까.
- 그래서 연락을 드린 건데요. 저희 샘플 좀 받아볼 수 있을까요?
나는 이태현의 말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입을 열었다.
“당연하죠. 제가 내일 바로 샘플이랑 자료 챙겨서 보내겠습니다.”
- 네, 근데 다른 회사들에서는 연락 온 게 없었나요?
“그렇지 않아도 잡지의 힘 때문인지… 해외 여러 회사에서 연락이 꽤 오더라고요.”
내 말에 이태현은 탄성을 내지르며 답했다.
- 그럴 수밖에 없죠. 그게 잡지의 힘이 아니라, 민 대표님께서 만드신 제품의 힘인 거죠.
“아휴.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제품을 만들려고 오래 공을 들였거든요.”
- 너무 획기적인 의료 제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물건을 실제로는 못 봤지만, 많은 자료와 잡지에 실린 내용만으로도 제품을 판단할 수 있잖습니까?
그는 감탄을 쏟아내며 말을 이어갔다.
- 이건 정말 대단해요. 메디컬 업계에 있는 사람들은 한 번씩 그냥 상상만 해봤던 제품일지도 모릅니다. 그게 실제로 제품이 나올 줄이야…….
“하하. 감사합니다.”
- 예전에 민 대표님 뵙고, 이야기 나눴을 때부터 대단한 분이시구나 했는데. 이렇게 엄청난 제품을 출시하시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수화기 너머로 손가락을 튕기는 소리와 함께 이태현이 입을 열었다.
- 그래서 말인데, 민 대표님.
“네?”
- 저희가 샘플을 받아보고 결정을 하기는 할 테지만요. 궁금한 게 하나 있어서요.
“예, 뭐든 물어보십시오.”
- 미국에 지금 많은 메디컬 회사가 있잖습니까. 그 많은 회사에 제품 납품을 하실 생각이십니까?
“음… 우선 제 제품을 필요로 하시는 것만으로도 업체들에 감사하죠. 샘플을 아직 보내지는 않았는데, 요청한 곳에는 보내고자 합니다.”
- 예, 그러셔야죠. 샘플은 그렇다 쳐도 앞으로 납품도 여러 업체에 하실 건지 궁금해서요.
“납품까지는 아직 업체들의 발주가 나오지 않아서, 정확히 어떻게 하겠다 말씀드리기가…….”
- 그렇긴 하죠. 근데 저희 생각에는 아무래도 해외 여러 업체에 납품하시기가 조금 효율이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있어서요.
그의 말에 나는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태현의 말이 내가 하던 고민이었으니까.
해외 진출을 생각하면서부터 걱정하던 부분이었다.
국내에서도 지금 많은 병원, 거래처를 관리하기 위해 나 혼자만으로는 벅찬 편이었다.
그래서 사무실의 직원, 영업 관리 직원을 둘이나 쓰게 되었고.
직접 찾아가서 인사하고, 납품, 제품에 대한 피드백을 하느라 바쁠 수밖에 없지.
그런데 해외에 거래처를 가지게 되면, 이런 관리 과정이 더 힘들 것이다.
미국은 열 시간이 훌쩍 넘는 비행시간과 시차가 존재했고.
그 메디컬 회사들과의 소통도 쉽지가 않은 편.
그런데 그런 업체가 많을수록 당연히 소통은 더욱 힘들 수밖에 없을 터.
물론 평생 해외 거래처에 가지 않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한번씩 거래처와 만나기 위해 해외를 갔을 때도.
모든 거래처를 방문하는 게 쉽지는 않을 일이다.
더군다나 배송과 납품이 더욱 큰 문제였지.
해외에 물건을 보내는 건 요즘 같은 세상에 어려운 일은 절대 아니었다.
다만, 그 비용이 문제인 것이지.
여러 업체로 보내는 것보다 한 업체에 많은 물건을 배송하는 게 저렴할뿐더러.
신경이 훨씬 덜 쓰일 것이다.
거래처를 여러 군데 두는 것보다 한 업체로 선정해 소통하고, 납품하는 편이 신경이 덜 쓰일 테지.
“맞죠. 말씀해주신 대로 거래처를 많이 가지고 있는 게, 저한테는 분명 쉬운 일은 아닐 테니까요.”
내 말에 그는 곧장 답했다.
- 그래서 말인데요.
“네?”
- 저희한테 총판을 주시는 건 어떤가요?
그의 말에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고.
입을 떡 벌린 채, 혹여나 소리가 새어 나갈까 입을 틀어막았다.
내가 생각하던 가장 최고의 시나리오였다.
NA 바이오에 내 제품 총판을 주는 것?
이미 미국에서 메디컬 탑을 찍고 있는 회사.
아니, 세계 메디컬을 휘어잡고 있는 회사.
그토록 한국에서 바라고 바라던 제품을 가지고 있던 메디컬 회사인 NA 바이오.
그곳에서 내 제품의 총판을 가지고 싶다는 건, 단순히 총판을 어느 회사로 지정했다는 것과는 견줄 수가 없는 것이었다.
내게는 이 총판이 최고의 발판이 될 터.
NA 바이오에서는 단순히 내 제품을 필요로 하는 회사에 납품만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세계에서 유명한 회사인만큼,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엄청난 영업을 펼칠 것이다.
내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말이지.
그래야 자기들이 돈을 벌 테니까.
그리고 그렇게 NA 바이오에서 돈을 번다는 건, 나는 가만히 앉아 있어도 돈이 들어온다는 것이지.
이태현의 제안에 나는 고민을 할 것도 없었다.
“그래 주시면, 저야 당연히 좋죠. 제가 거절할 리가 있겠습니까.”
- 그럼 샘플 받아서 판단해보고, 발주하게 된다면. 총판은 저희에게 주셨으면 합니다.
“예. 바로 샘플 보내겠습니다. 충분히 판단해보시고, 연락주십시오.”
나는 자신이 있었다.
그들이 내 제품을 받고 발주를 할 수밖에 없으리라는 것을.
그리고 감정에 호소해 내 제품을 사달라고 할 생각도 추호도 없었지.
정확하게 오랫동안 그들이 꼼꼼하게 따져보고 내 물건을 발주하기를 바랐다.
내 제품에 하자는 없으니까.
* * *
제품 출시를 앞두고, 나는 영업으로 포지션을 바꿔 매일 병원으로 출근을 했다.
“…예, 이러한 제품입니다. 어떠십니까?”
제품에 대한 설명을 마치고, 원장들에게 반응을 물어보면 늘 비슷한 반응이 터져 나왔다.
“이야……. 이거 민 대표 작품이라고?”
“네, 맞습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손뼉을 부딪치며 감탄을 쏟아냈다.
“이걸 어떻게 만들었대. 진짜 획기적인 제품인데?”
“그렇게 생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는 엄지를 치켜들고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진짜 혁신적이야. 수술 이후 제품을 빼내는 리무발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게 얼마나 대단하고, 편한 일이야?”
“맞습니다. 병원에도, 그리고 환자들에게도 좋고 편리한 제품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래. 이렇게 간편할 수가 없지. 수술만 하게 되면 알아서 몸에서 수술 재료가 생분해되니까.”
그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제품을 바라보았고.
자신의 턱을 어루만지며 읊조렸다.
“근데 이게 수술 두 번 할 걸, 한 번으로 줄이니까. 그게 좀 걱정이네…….”
“네?”
“원래는 리무발 수술까지 총 두 번의 수술을 했어야 하는 거잖아.”
나는 그의 표정과 말투를 통해 의도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내가 만든 이 제품은 두 번 수술할 일을 한 번으로 줄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점을 고민거리로 삼는다는 건, 단 하나.
‘돈’ 때문이었다.
두 번 수술을 하게 되면, 수술비부터 입원비를 더 받을 수 있는데.
한 번으로 줄이게 된다면, 돈도 줄어든다고 생각할 테니까.
나는 서둘러 그에게 입을 열었다.
“두 번 수술하고, 입원하는 그 번거로움을 없애기 위해 애초에 한 번의 수술 비용으로 그 두 번의 비용을 다 받으실 수 있는 보험 수가입니다.”
내 말에 그의 눈이 반짝였고.
“그렇다고 터무니없이 비싼 금액은 아닙니다. 환자들이 추후 리무발하고, 입원하는 수고로움을 없애기 위해서는 당연히 기존 제품들보다 조금 비싸도 이걸 원하실 겁니다.”
내가 내민 금액이 마음에 들었는지, 원장은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좋네.”
그리고는 나를 바라보고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물었다.
“그래서 출시가 언제라고?”
해가 뉘엿뉘엿 질쯤까지 이어진 영업.
그리고 마지막으로 찾아온 병원.
강 원장이 있는 곳이었다.
그가 있는 병원에 오고 싶은 마음이 있지는 않았다.
나와 김사랑 사이를 방해하는 이었기에, 그에게 좋은 감정이 있을 수가 없었지.
그래서 굳이 영업을 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그가 예전부터 내 제품을 너무나 원했었고, 이번에도 제품을 받고 싶다는 연락이 왔었다.
나는 진료실 앞에 서서 강 원장의 이름을 바라보며 한숨을 삼켜냈다.
“그래도 공과 사는 구분하자…….”
감정에 휘둘려 공적인 일을 그르치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내가 계속 김사랑 옆에 있고, 그녀와 연애를 하는 것을 강 원장과 그의 아버지에게까지 보여줬으니.
내가 오히려 강 원장을 피할 건 없다고 생각했다.
똑똑.
“네, 들어오세요.”
나는 문을 벌컥 열어 그에게 다가갔다.
“원장님, 안녕하십니까.”
“어, 민 대표 왔어?”
“네.”
나는 그와 사담을 나눌 생각도 없었고, 나누고 싶지도 않았기에.
곧장 본론으로 넘어가 제품에 대한 이야기를 펼쳤다.
“제품 출시일도 정해졌고, 제품은…….”
그 역시 나와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생각은 없었는지.
우리는 한참이나 제품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몇십 분이 흐른 뒤.
“…이렇게 사용하시면 됩니다.”
내 설명이 끝나자 그는 눈썹을 들썩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음… 단가는 여기 표에 있는 거고?”
“네, 맞습니다.”
그 역시 내게 물건 외에 다른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고.
초반에 살짝 어색함이 존재했지만, 우리는 제품 이야기를 통해 그 어색함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딱 비즈니스적으로 그를 대하니, 그 또한 편안하게 내게 질문을 던지고는 했다.
“그럼 이 제품이 기존 제품에 비해서 확연하게 금액이 높은 것도 아니네?”
“맞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기존 제품들과 경쟁성이 없을 테니까요.”
내 말이 끝나고도 그는 카탈로그와 제품을 뚫어지라 오래 바라보았고.
“제품은 괜찮으신 것 같습니까?”
내 물음에 강 원장은 옅은 미소로 고개를 들었다.
“응. 괜찮은데?”
그리고는 씨익 올라가는 입꼬리와 동시에 그의 속마음 소리가 내 귓가에 들려왔다.
[뭐야, 물건 생각했던 것보다 더 괜찮잖아? 이걸 대체 어떻게 트집 잡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