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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영업사원이 되었다-309화 (309/339)

309화

【 끊이지 않는 연락 】

메일을 클릭하자마자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아났다.

“…대박.”

미국 잡지사 ‘메딕스’에서 온 답 메일.

당연히 답변이 왔으면, 하는 생각으로 메일을 보냈었다.

그것도 매일 하루도 빼먹지 않은 채.

그렇게 몇 주의 시간 동안 보낸 내 메일의 답이 드디어 돌아오게 되었다.

내가 그간 보냈던 메일을 메딕스의 기자가 매번 읽었던 건 아니었다.

초반에 보냈던 메일은 거의 ‘읽지 않음’으로 고정되어 있었지만.

내가 꾸준히 메일을 보내자, 2주일이 넘어가면서부터는 가끔 수신 확인을 한 메일이 있었다.

그러다 결국, 기자에게 답장이 온 것이지.

결과가 어떻게 됐는지 아직 알 수 없었지만, 기자에게 답장이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의지의 한국인이다, 진짜…….”

스스로에게 느껴지는 뿌듯함에 웃으며 메일 내용을 살폈고.

메일의 내용을 해석하며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안녕하세요, 메딕스의 에스더라고 합니다.

그동안 당신이 보내 준 몇 주간, 수십 통의 메일을 이제야 모두 확인했습니다.

먼저 우리 메딕스 잡지를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국의 JH 메디컬, 민지훈 대표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군요.

메일을 전부 확인했는데 단 하나의 메일도 겹치는 내용이 없어서, 아주 놀랐습니다.

그게 우리 메딕스를 움직이게 만들었죠.

제품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질 수밖에 없는 제품이라고 느꼈어요.

당신의 메일만 본다면요.

하지만 세상에는 너무나도 좋은 제품, 환자를 위한 물건들이 매일 새롭게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민지훈 대표의 물건을 직접 보고 판단하고 싶습니다.

우리 메딕스에는 제품에 대해 분석을 자체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자체적으로 제품의 성능과 효능을 확인한 후.

메딕스 잡지에 실을 수 있다는 판단이 떨어진다면, 그제야 잡지에 실을 수가 있습니다.

모든 메디컬의 제품을 기재할 만큼의 잡지는 아니니까요.

그래서 한국에서 제품을 보내 줬으면 합니다.

……

위에 적힌 주소로 제품을 보내 주신다면, 메딕스 내에서 확인하겠습니다.

JH 메디컬의 성공을 빕니다.

감사합니다.]

메딕스 에스더에게서 온 메일 답장.

나는 그 내용을 읽자마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역시나 세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잡지답게, 그들은 아쉬움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결론은 네 물건이 좋다는 건 네 생각이다.

그러니 제품을 보내면 우리가 판단하고,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는 우리가 알아보겠다.

그 후 잡지에 실릴지 말지도 정확히 알 수 없다.

라는 식의 내용이었으니까.

나는 다시금 스크롤을 올려 메일을 정독했고.

이내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읊조렸다.

“제품만을 보고 메딕스에서 판단하는 거라면, 이 제품은 무조건 잡지에 실릴 수밖에 없을 테니까.”

그러고는 옆에 놓인 생분해성 제품의 카탈로그를 바라보며 입꼬리를 길게 올렸다.

“오히려 잘됐네.”

워낙 유명한 잡지다 보니, 아무래도 잡지에 실리려면 입김이 필요하지 않을까란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내 메일을 읽지 않는 건가?

한국의 작은 기업에게는 눈길도 줄 일이 없는 건가?

이와 같은 고민을 하며, 전전긍긍했지만.

메딕스는 오로지 물건만을 보고 판단할 거라는 생각에 나는 되려 자신감이 차올랐다.

내 제품에 대해서는 넘치도록 자부심이 있었으니까.

한국을 넘어 세계를 뒤흔들 만큼의 제품이라 확신했다.

“당장 물건 챙기러 가야겠다.”

* * *

주말 오전.

평소라면 아직 침대 위를 뒹굴거렸을 테지만, 오늘은 평일과 다름없이 정장을 차려입은 채 일찍 집을 나섰다.

여자친구이자 병원 원장인 김사랑이 소속된 행복 정형외과.

한국 정형외과의 대표 병원이다 보니, 1년에 많은 행사가 있는 곳이었다.

기부를 많이 하는 병원으로 유명한 것은 물론.

국내, 해외 봉사 활동도 다른 병원에 비해 자주 하는 병원이었다.

병원도 하나의 기업이기에, 보여지는 사업에 힘을 쓸 수밖에 없었지.

더군다나 김준수 병원장은 병원이 잘되기 전부터 봉사 활동에 많은 시간과 돈을 쏟는 사람이었다.

애초에 의사라는 직업부터 아픈 사람을 위해 봉사를 하는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 의사라는 직업을 통해 경제적인 이득을 취하고는 있지만.

그렇게 환자를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이후 벌어들인 돈의 일부는 항상 기부를 하며 지냈다.

나는 그런 김준수 병원장의 태도를 배우기 위해 그의 행보를 늘 살폈다.

그리고 오늘.

행복 정형외과의 연례행사인 ‘자선 바자회’가 열리는 날.

서울의 주변 병원, 김준수 병원장의 지인들을 초청해 물건을 기부를 받았다.

그리고 그 물건들을 저렴한 금액에 판매해 얻은 수익을 기부하는 행사였지.

이 뜻깊은 행사에 초대장을 받았고.

좋은 뜻으로 가서 물건을 구매만 하는 것이 아니라, 기부에 참여하기 위해 기부금을 함께 챙겼다.

더불어 함께 기부할 물품으로 스플린트 몇 상자를 차에 꽉 눌러 실은 후에야 행복 정형외과로 출발할 수 있었다.

몇십 분 뒤.

행복 정형외과 앞 공터에 주차를 마친 후, 들어서자 행사답게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나를 반겼다.

수많은 사람들은 한데 모여 밝은 웃음과 함께 행사를 이어 가고 있었고.

입구에는 어린 아이들을 위한 ‘행복 정형외과 자선 바자회’라는 문구가 적힌 풍선이 계속해서 부풀어지고 있었다.

“이야…….”

이렇게나 큰 병원 자선 바자회에 직접 참여하게 되는 것은 처음이라, 나는 입을 떡 벌리고 주변을 구경하며 안으로 들어섰다.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였다.

입구부터 들어선 먹거리 부스들.

그리고 다트, 풍선 터트리기, 뽑기 등 놀 거리가 쫙 펼쳐져 있었고.

손에 먹을 것을 하나씩 집어 들고 뛰노는 아이들까지.

이 광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느낌이었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서니, 행복 정형외과의 의사들, 간호사, 직원들 너나 할 것 없이 행사 스태프로 활동 중이었다.

“안녕하십니까.”

너무나도 잘 아는 얼굴들이었기에, 나는 한 걸음을 옮길 때마다 이들을 향해 인사를 보냈다.

“민 대표님 오셨어요?”

그들은 밝게 웃으며 나를 맞이했고.

나는 한 걸음마다 고개를 꾸벅 숙여 가며 안쪽으로 발길을 계속해서 옮겼다.

저렴한 옷가지들부터 책, 커피 머신기, 골동품 등 수많은 물건이 늘어져 있었고.

이들의 물건에는 저렴한 가격표와 함께 누가 물건 기부에 참여했는지도 적혀 있었다.

대부분 행복 정형외과의 스태프들의 것이었지만.

나머지는 근처 병원들 원장, 메디컬과 관련된 사람들이 기부한 물품이 놓여 있었다.

이곳에 오자마자 건넨 스플린트 상자들은 판매가 아닌, 저기 멀리 보이는 기부함에 높게 쌓여 있는 모습.

행사가 끝난 후, 남은 물품과 벌어들인 수익 그리고 나처럼 기부에 참여한 물품과 금액을 한 번에 보낼 예정이라고 했다.

그래서 이곳에는 일반 사람들도 가득했지만.

메디컬과 병원 관계자들도 수없이 많았다.

메디컬에 종사하는 나는 이 많은 이들을 대부분 단번에 알아볼 수가 있었다.

전부 내가 영업하는 병원들의 의사였으니까 말이다.

“안녕하십니까. 원장님도 오셨네요.”

“오오. 민 대표를 여기서 만나네.”

경기도에 위치한 한 정형외과의 원장.

뜻밖의 인물과 만남을 가지게 되기도 했다.

“병원장님, 안녕하십니까!”

나는 가장 안쪽에서 행사에 참여하고 있던 김준수 병원장에게 인사를 건넸고.

“아이고. 민 대표, 와줬구나?”

그가 내민 손을 맞잡아 흔들며 답했다.

“당연하죠. 이 행사에 초대해 주신 것만으로도 영광입니다.”

“듣기로는 기부금이랑 물건도 기부했다면서. 너무 고맙네.”

“아닙니다. 이 기회에 저도 참여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규모가 너무 커서 놀랐습니다. 역시 병원장님 대단하십니다.”

그는 내 말에 호탕하게 웃었고.

“하하. 내가 이 행사는 꼭 일 년에 한 번씩 하거든. 우리 병원 환자들도 이 시기가 되면 늘 물어본다니까?”

“그러실 것 같습니다. 저도 매년 참여하고 싶은데요?”

병원장은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그럼 나야 좋지.”

그러고는 눈썹을 들썩이며 어딘가를 빤히 바라보고 내게 읊조렸다.

“저기 우리 딸내미 있어. 저기로 가 봐.”

병원장이 바라보는 시선 끝에는 김사랑이 있었고.

그녀와 만남을 가지는 것을 알고 있는 그의 아버지이자, 병원장인 김준수는 웃으며 내 등을 밀었다.

“네. 가서 돕고 오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꾸벅 숙인 후, 서둘러 그녀에게 향했다.

“사랑아!”

“뭐야, 언제 왔어?”

“조금 전에 도착해서 병원장님께 인사드리고 오는 길이야.”

물건 판매대에 앉아 응대하던 그녀의 어깨를 주무르며 말했고.

그녀는 자신의 어깨에 올려진 내 손을 만지작거리며 미소를 지었다.

“잘했네. 주말에 데이트도 못 하고…….”

“에이. 오늘 행사 끝나고 저녁에… 아, 저녁에는 회식하겠구나?”

“웅. 내일 아침 일찍부터 만나서 놀자.”

빙그레 웃으며 말하는 김사랑을 보며 나는 배시시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자.”

“이거 얼마예요?”

그때.

지나가던 사람이 우리 앞으로 다가왔고.

그렇게 우리는 사랑의 대화가 아닌, 기부를 위한 대화가 한참 이어졌다.

그렇게 한 시간이 흐를 때쯤.

“자기야. 이제 자기도 다른 데 둘러 보고 놀아요.”

김사랑은 행사장을 바라보며 내게 말했고.

“아니야. 혼자 하면 힘들잖아. 같이 있다가 갈게.”

“나 진짜 괜찮아. 어차피 이거 혼자 했어야 하는 일이잖아. 자기도 가서 구경하고 와.”

그녀는 나를 등 떠밀 듯 부스 밖으로 밀어냈고.

나는 김사랑의 손길에 웃으며 답했다.

“알겠어. 그럼 가서 좋은 물건 좀 사고, 기부도 하고 올까?”

“응. 갔다가 여기로 다시 와.”

“그럴게.”

손을 털며 부스에서 나온 나는 행사장 코스를 따라 발길을 옮겼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저 멀리 보이는 익숙한 얼굴.

“어?”

리본 종합병원의 강 원장이었다.

평소라면 그를 향해 달려가 인사를 했겠지만.

강 원장과 마주쳐도 예전처럼 달가운 마음은 크게 들지 않았다.

그가 김사랑과 예전에 일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된 후.

강 원장과의 친분은 그대로였으나, 그와 더 이상 친분을 깊게 쌓고 싶지는 않았다.

물론 그날 이후 따로 연락을 하거나 얼굴을 본 적도 없었지.

강 원장 또한 내게 연락을 하지 않았었고, 굳이 연락을 취할 일도 없었긴 했지만 말이다.

그저 안부차 전화를 할 수는 있었지만, 김사랑의 옛사랑이라는 사실에 조금 꺼려졌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렇게 마주쳤을 때까지 굳이 그를 피할 마음은 없었다.

그와 사이가 더 깊어지지는 않아도, 멀어지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강 원장에게 분명히 내 여자친구가 김사랑임을 밝혔고, 그 역시 놀란 얼굴로 그 사진을 맞이했었다.

그렇게 일종의 경고를 날린 셈.

그래서 더더욱 그와 멀어지는 건, 내 몫이 아닌 강 원장의 몫이었다.

나는 어깨를 들었다 내리며, 그에게 다가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강 원장님, 안녕하세요.”

내 인사에 강 원장은 화들짝 놀라 몸을 움찔거렸고.

이내 그 표정을 숨겨 내고 내게 말했다.

“어, 민 대표도 왔구나?”

“네, 오신 줄 알았으면 아까 가서 인사할 걸 그랬네요.”

그는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나도 방금 도착했어.”

그리고 강 원장의 옆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 사람.

나는 그를 흘긋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강 원장과 함께 서 있고, 그가 주변을 맴도는 것으로 보아 강 원장과 친밀한 관계라는 건 확실했다.

그리고 이곳에 왔다는 것, 강 원장이 옆에 있다는 건 그 또한 의사라는 것이겠지.

하지만 리본 종합병원에 있는 모든 의사를 내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데.

내가 모르는 사람이기에 리본 종합병원 사람이 아닌 것은 분명했다.

처음 보는 얼굴이니까.

강 원장에 비해 나이가 지긋하게 많은 사람.

누구지?

누구인지 묻고 싶었지만, 나보다 많은 나이라 내가 먼저 물을 수는 없었다.

그때.

“누구셔?”

중년의 남성이 나를 바라보며 강 원장에게 물었고.

강 원장은 입꼬리를 옅게 올리며 답했다.

“아… 여기는 우리 병원에 물건 납품하는 그냥 회사 직원이요.”

그의 말에 나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굳이 저렇게 나를 설명할 필요가 있는 건가?

제조도 아니고, 더군다나 자신의 병원에 납품하는 그냥 직원이라니…….

의도적으로 나를 낮춰 말하는 건지, 그저 넘어가려는 건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당연히 기분이 좋을 리는 없었다.

“아… 우리 아들 병원에 물건 넣는 영업 사원, 아니 그냥 납품 사원이신가?”

그의 말에 나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아들’이라면… 이 사람이 강 원장의 아버지?

게다가 이 병원 행사에 참여했다는 건, 강 원장의 아버지도 의사라는 건가?

나는 의문을 가졌지만.

이내 강 원장이 소개했던 나를 바로잡기 위해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메디컬 제조업으로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JH 메디컬의 민지…….”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강 원장의 아버지가 손뼉을 부딪치며 외쳤다.

“어? JH 메디컬?”

그의 말에 나는 서둘러 안주머니에 있는 명함을 꺼내 그에게 건넸다.

“네. 들어 보셨습니까?”

“아휴. 당연하죠. 파우더 스플린트 그 회사 아닌가?”

“맞습니다.”

그는 내 명함을 받아들고, 반대 손으로 악수를 청했고.

그 모습에 강 원장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아버지, JH 메디컬을 알아요?”

“그럼. 대전에서도 파우더 스플린트가 얼마나 잘나가는데, 거기에 이번에 교정용 스플린트 나온 것도 알고 있어.”

나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그에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저도 명함 좀 받을 수 있을까요?”

내 말에 그는 호탕하게 웃으며 주머니 속 반짝이는 명함 케이스를 꺼내 들었다.

“하하. 그럼요.”

[대전 강한 정형외과.

강한철 병원장.]

강한철 병원장…….

강 원장의 아버지도 역시나 의사였다.

그는 자신의 아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너는 회사 대표한테 납품하는 그냥 직원이 뭐냐?”

강한철 병원장의 말에 그는 입술을 의뭉스럽게 휘며 답했다.

“에이. 그냥 이야기한 거지.”

순간 강 원장과 내 눈이 허공에서 부딪쳤고.

그의 눈빛에는 이전에 나를 보던 눈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 보였다.

뭐지?

저 차가운 눈빛은?

“아버지. 우리 저쪽에 인사하러 가야 해요. 얼른 와요.”

강 원장은 황급히 강한철 병원장의 손을 끌었고.

“민 대표, 우리 갈게.”

“네, 다음에 연락드리겠습니다. 병원장님도 즐겁게 구경하십시오.”

“그래요.”

나 역시 강 원장과 오랜 대화를 나누고 싶은 생각은 없었기에, 그들과 인사를 한 뒤.

강 원장이 움직이는 쪽으로 시선을 따라갔고.

그들이 향하는 곳을 바라보던 내 얼굴은 점점 더 일그러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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