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6화
“민 대표!”
행복 정형외과 로비에서 나를 부르는 사람은 다름 아닌, 리본 종합병원의 강 원장이었다.
“어?”
그의 등장에 나는 미간을 찌푸렸고.
이내 놀라 눈을 휘둥그레 뜨며 그에게 다가갔다.
“강 원장님이 여기에는 어쩐 일이십니까?”
“아, 나는 여기 잠깐 볼일이 있어서. 그러는 민 대표는 행복 정형외과는 무슨 일이야?”
그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의사인 그가 다른 병원에 온 것보다, 메디컬 업계 종사자인 내가 행복 정형외과에 온 게 더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저야 병원에 오는 게 제 일인데요. 하하.”
내 말에 그는 멋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맞네.”
“원장님은 행복 정형외과에 아시는 분이라도…….”
강 원장은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내게 말했다.
“어, 있지. 과거에… 아니, 내 미래를 위해 왔달까?”
“예? 그게 무슨…….”
그는 내 어깨를 툭툭 치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 게 있어. 아무튼, 곧 보자. 다음 주에 우리 병원 온다고 하지 않았나?”
“네, 맞습니다. 제품 말씀드릴 게 있어서, 한 번 들리겠습니다.”
“그래. 그때 보자고.”
“예.”
강 원장은 밝은 웃음을 보이며 행복 정형외과를 빠져나갔고.
나는 저 멀리 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대개 병원에서 타 병원 원장을 만나는 건 정말 흔치 않은 일이다.
자신의 병원이 영업장인 그들이기에.
다른 병원이라 함은 어떻게 보면, 경쟁사인 것이지.
그런 경쟁 병원에 들러 이렇게 행복한 얼굴로 나간다라…….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과거가 아닌, 미래를 위해 왔다는 그의 말도 무슨 뜻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신경 쓰이던 것이 하나 있었다.
강 원장과 김사랑.
너무나 특이하게도 아메리카노에 휘핑크림을 올려 먹는 커피 레시피가 같은 그들.
그리고 둘의 나이는 나보다 한 살 많은.
그러니까 강 원장과 김사랑은 동갑이었다.
같은 의사라는 직업.
둘은 서로 아는 사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직업에 동갑이면 알 수도 있다는 말이 맞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의사’라는 직업은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이다.
의대가 많지 않을뿐더러, 같은 서울에서 동갑에 의사를 하고 있기 때문에.
같은 대학을 나오지 않더라도 알게 될 확률이 다른 직업에 비해 높은 편이지.
‘둘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을까……?’
나는 떠나 버린 강 원장을 뒤로 한 채, 김사랑의 진료실로 향했다.
똑똑.
“네, 들어오세요.”
김사랑의 맑은 목소리가 문 사이로 새어 나왔다.
나는 그 목소리만큼 밝은 얼굴로 문을 열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사랑아!”
“어? 자기.”
그녀는 환한 얼굴로 나를 반겼고.
서둘러 그녀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김사랑은 휴대전화를 바라보며 내게 물었다.
“주차장에 있겠다고 하지 않았어?”
“그랬는데, 사랑이 보고 싶어서 못 참고 들어왔지.”
“뭐야… 근데 왜 도착하자마자 안 오고, 조금 늦었네?”
그녀는 내가 문자를 보낸 시간을 보고,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보며 물었다.
“아, 바로 앞에서 아는 분을 좀 만나서 잠깐 이야기 좀 나누고 들어 왔지.”
김사랑은 내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리 병원 원장님이 아니라, 아는 사람?”
내가 행복 정형외과에 온 게 하루 이틀이 아니기에.
이 병원의 원장님이나 혹은 간호사를 만났다면, 그들의 이름을 거론했을 터.
아는 분이라는 말에 그녀가 내게 궁금하다는 듯 물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에게 답했다.
“어. 다른 병원 원장님이 여기 오셨더라고.”
내 말에 웃고 있던 김사랑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실시간으로 변하는 그녀의 얼굴을 본 나는 다시금 직감할 수 있었다.
그녀와 강 원장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조금 전, 강 원장이 행복 정형외과에 볼 일이 있어 왔다는 게.
김사랑을 만난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녀는 내 말이 끝났음에도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
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나는 그녀를 향해 재차 입을 열었다.
“강준빈 원장이라고, 리본 종합병원에 나랑 친한 원장님인데, 볼일이 있어서 오셨다더라고?”
내 말에 그녀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친한 원장님이야?”
“뭐, 그렇지? 사석에서도 술도 몇 번 마시고…….”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김사랑은 입을 열었다.
“그렇구나.”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그녀의 표정.
흔들리는 눈빛을 보이는 그녀에게 나는 결국, 먼저 질문을 던졌다.
“강 원장님이랑 사랑이랑 아는 사이야?”
우리가 만남을 가지며, 가장 강조했던 건 단 하나였다.
‘거짓말’.
서로 거짓 없이 진실 되게 만남을 이어 가자는 것이었다.
연인 사이에 거짓이 피어나면, 금방 그 관계가 무너지고 말 테니까.
그래서 내 질문에 김사랑이 조금의 거짓도 없이 답을 해 주기를 원했다.
그 답이 어떤 이야기든 상관없었다.
그저 거짓만 아니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지.
내 물음에 김사랑은 입술을 잘근 깨물며 입을 열었다.
“응. 아는 사이기는 해. 나랑 같은 대학교. 의대 동기야.”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강 원장이 김사랑과 의사라는 직업으로 아는 사이일 거라 예상은 했지만.
정말 대학 동기일 줄이야.
그리고 그녀는 내게 아는 사이라고 거짓 없이 사실을 이야기했다.
“맞다, 자기 일은 다 끝나고 온 거야?”
김사랑은 서둘러 말을 돌렸다.
강 원장에 대한 이야기를 나와 더 나누고 싶지 않다는 느낌을 강하게 풍겼고.
나 역시 그녀에게 이후 강 원장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둘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궁금했지만.
그녀가 이야기를 돌려 버린 것으로 보아, 내게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일 테니까.
김사랑이 내게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면 나 역시 아직은 그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응. 일 다 끝내 두고 온 거지.”
그때.
흔들리는 그녀의 눈빛과 동시에 들려오는 김사랑의 속마음 소리.
[강준빈 그 자식이 지금 나한테 찾아온 걸, 굳이 지훈이한테 알리고 싶지는 않은데… 게다가 다 지나간 풋사랑인데, 뭐. 지훈이가 알아서 기분 좋을 리도 없고…….]
나는 그녀의 속마음 소리를 듣자마자 확신할 수 있었다.
김사랑과 강 원장.
그들은 과거 연인 사이였다는 것을 말이다.
지나간 풋사랑.
그 말은 즉, 그들이 대학 시절 연애를 했을 거라는 말인 듯했다.
과거가 없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생각이 있던 것도 아니었고.
그녀의 과거 남자친구를 알게 되어 김사랑에 대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사라지지는 않았다.
당연히 나를 만나기 전에 김사랑이 연애를 몇 번 했을 거란 생각은 늘 가지고 있었지.
이렇게 예쁘고, 착하고 성실하기까지 한 그녀에게 마음을 표한 남자가 없을 거란 생각은 해 보지도 않았었다.
하지만 그 과거의 남자 중 한 명이 내가 아는 사람이라는 것이 신경 쓰일 뿐.
게다가 강 원장, 나와 친분이 있는 사람이었기에 더더욱 찜찜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녀를 향한 마음은 조금도 변화가 없으니까 말이다.
단지, 강 원장이 오늘 김사랑을 찾아왔다는 것에 미간이 찌푸려졌다.
강 원장이 김사랑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는 건가?
나는 김사랑이 나를 향한 마음이 변할까 걱정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받을 불편함에 심려가 깊어졌다.
* * *
“최 대표님, 여기입니다.”
나는 내게로 다가오는 최 대표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민 대표님, 오래 기다리셨습니까?”
“아닙니다. 저도 방금 왔습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내 앞에 앉았고.
나는 그의 앞에 놓인 빈 잔에 술을 채우며 입을 열었다.
“수한 메디컬 신 대표님도 함께 자리했으면 좋았을 텐데요.”
내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러게요. 미리 선약이 있다고 하셔서요. 곧 생분해 제품 완성되면, 그때 다 같이 한잔하시죠.”
“좋죠. 그때는 거하게 마시죠, 최 대표님.”
“네, 저도 좋습니다.”
챙―
우리는 술잔을 부딪친 후, 술을 입 안에 털어 부었다.
“드디어 끝이 보인다니, 매일 감격스럽습니다.”
나는 술잔을 내려놓으며 최 대표를 향해 말했고.
그 역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저도요. 이렇게 민 대표님과 벌써 세 개째 제품을 만들어 출시하고 있고, 저 또한 꿈을 펼칠 수 있어 기분이 좋습니다.”
“이게 다 최 대표님 덕분입니다. 이리 실력이 좋으신 분이 함께 길을 걸어 주셔서, 영광입니다.”
우리는 호탕하게 웃었고, 분위기는 점점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
“이번 제품 카탈로그를 빨리 빼야겠네요. 영업 시작하시려면요.”
그의 말에 나는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네. 게다가 이번에는 국내랑 해외에도 동시에 출시를 하고자 합니다.”
최 대표는 내 말에 눈썹을 들썩였다.
“오오. 이번에는 해외에도 진출하시는 겁니까?”
“계획입니다. 물론 성공시키려고 노력을 열심히 해야겠지만요. 그래서 판로를 좀 미리 열어 둘까 합니다. 이제 출시가 코앞이니까요.”
“그렇죠. 해외 출시가 쉬운 일이 아니니까, 미리 준비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나는 턱을 어루만지며 읊조렸다.
“그래서 요즘 항상 그 생각뿐입니다. 무슨 좋은 수가 없을까요?”
그는 내 말에 눈을 굴리며 답했다.
“지금 당장 떠오르는 건 학회밖에…….”
“예. 학회도 당연히 나가려고 합니다. 근데 학회가 당장 없어서요. 미국, 독일 등 여러 나라에 판매를 진행하고는 싶은데 말입니다.”
국내에서 메디컬 학회가 열리는 것처럼, 해외에도 세계적인 메디컬 학회가 열린다.
각 나라 별로 크고 작은 학회가 여러 번 열리지만.
메디컬로 유명한 나라들이 전부 참여하는 세계적인 학회는 1년에 많아야 두 번, 적게는 한 번뿐.
그 학회가 열리기까지는 아직 멀어서 그곳에서 생분해 제품을 소개하기에는 다소 시간이 남은 편이었다.
그 전에 제품이 출시될 테니까.
나는 학회 전부터 물건을 해외로 진출시키고 싶었다.
그리고 학회에서 제품을 소개했을 때, 더 널리 알려지기를 바랐었지.
나는 쓰읍 소리를 내며 말했다.
“미국부터 독일 등 나라 별로 무작정 돌면서 유명한 메디컬 회사에 전부 찾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잖습니까. 찾아갈 경제력과 시간도 여유롭지도 않고요.”
“그렇죠. 미리 약속을 잡고 간다고 해도 그건 무모한 일일 테니까요.”
“…네. 그래서 어떤 방법이 좋을지 너무 고민입니다. 모든 유명한 업체에서 알 수 있는, 제 제품을 모두 볼 수 있는 방법이…….”
최 대표와 나는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고민에 빠졌고.
나는 문득 떠오르는 아이디어에 손가락을 튕기며 소리쳤다.
“맞다… 잡지!”
“네?”
최 대표는 내 소리에 놀란 듯 몸을 움찔거렸고.
나는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스플린트가 한국에서 유명해지게 된 건, 처음 진희성 배우 때문이지만. 이후 병원이나 메디컬 업계 사람들에게 유명해진 건, ‘이달의 메디컬’ 잡지 덕이잖아요.”
“예, 그렇죠.”
“최 대표님도 퍼펙트 메디컬에서 근무하실 당시에도 잡지 많이 보셨나요?”
내 말에 그는 눈썹을 들썩이며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유명한 잡지는 거의 다 봤어요. 퍼펙트 메디컬 입사 초부터 의무적으로 여러 잡지사에 실린 제품과 메디컬 트렌드를 읽게 만들었으니까요.”
그의 말에 나는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답했다.
“정답은 잡지네요.”
나는 입술을 잘근 깨물며 그를 향해 재차 말했다.
“최 대표님, ‘메딕스’ 잡지 아시나요?”
내 말에 그는 격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당연하죠. 그게 제일 유명한 메디컬 업계 잡지잖습니까. 제가 퍼펙트 메디컬에서 가장 많이 봤던 잡지기도 하고요.”
‘메딕스’ 잡지는 메디컬에 관련한 잡지가 무려 한 달에 한 권에서 두 권이 나오기도 하는 잡지사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서 한국에서도 많이 보는 잡지지만.
한국에서는 해외에 비해 유명세가 덜한 편이다.
이유는 한국어 번역이 없기 때문이지.
한국에도 영어 잡지로 들어오기 때문에, 메디컬 회사보다는 의사들에게 선호도가 높은 편.
그리고 해외에서는 불티나게 잘 팔리는 메디컬 잡지 부동의 1위.
내가 인터뷰를 했던 ‘이달의 메디컬’ 잡지 역시, ‘메딕스’의 잡지에서 대단한 내용들을 조사해 자신들의 잡지에 새로 싣고는 한다.
그만큼 세계 메디컬의 트렌드를 이끄는 잡지사인 것.
하지만 그 ‘메딕스’ 잡지사에서 한국이라는 나라에 있는 JH 메디컬을 알 리가 만무했다.
나는 한숨을 짧게 내쉬며 읊조렸다.
“대체 내가 그 잡지에 제품이 실리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작은 내 목소리에 최 대표는 미간을 찌푸린 채 한숨을 삼켜 냈다.
“그러게요. 그 잡지에 실리는 게 여간 쉬운 일이 아닐 텐데요.”
최 대표의 말에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불가능에 가까운 일.
나는 앞에 놓인 술잔을 입에 털어 부으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한 번 두드려 보죠,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