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2화
메일 가득히 쌓여있는 이력서들.
스크롤을 내리며 이력서를 하나씩 살펴보기 시작했다.
“이 사람은 신입이라서 뽑으면 안 될 것 같고…….”
수십 개의 이력서가 쌓여있었고, 나는 한 사람만 뽑을 생각이었기에.
JH 메디컬에 영업 사원으로 적합하지 않다 싶으면 곧바로 이력서를 꺼버렸다.
이미 서류에서부터 맞지 않는 사람을 뽑아 면접을 본다고 한들, 의미가 없기 때문이지.
“이 사람은 영업 경력이 많기는 한데, 죄다 식품 회사였네… 그럼 메디컬 지식이 하나도 없을 텐데…….”
나는 재차 파일을 껐고.
“메디컬 경력이 있는데, 모든 근무 기간이 6개월을 넘기지 못했다… 이것도 탈락. 우리 회사에서도 이러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으니까.”
좀처럼 면접까지 끌고 갈 이력서가 없었다.
“경력직을 구해서 내가 온전히 회사 영업과 납품을 맡기고 싶은데, 그럴만한 이력서가 하나도 없네. 전부 신입이잖아……?”
경력을 쌓아 온 직원을 구하고 싶었지만.
이력서 절반 이상이 신입 사원이었다.
신입을 뽑아 가르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기는 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신입을 뽑아 가르칠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당장 회사에 인원이 부족해 회사를 굴려야 할 직원이 필요한 것이지.
그저 직원 충원으로 회사를 늘리고 싶은 게 아니었으니까.
“그래. 이 신입 사원들은 조금 더 회사가 안정적으로 자리 잡고 나면, 뽑아서 키워봐야겠다.”
나는 과감히 신입 이력서는 모두 파일을 삭제했다.
“그리고 메디컬 경력이 없는 사람도 탈락…….”
또 한번 파일은 절반이 날아갔고.
이제 남은 이력서는 열 장이 채 남지 않았다.
“여기에 나이가 나보다 적어도 십에서 이십 이상으로 많은 사람들도 탈락. 내가 일을 지시하기에도 불편할 거고, 그분들도 불편할 거야.”
그렇게 하나하나 조건을 따지며, 이력서 파일을 삭제하다 보니.
텅-.
결국, 파일에는 단 하나의 이력서도 남지 않게 되었다.
“이걸 어쩌나… 당장 회사에 인원이 급한데…….”
하지만 급하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뽑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회사에서 영업 사원을 뽑는 건 처음이었고.
그만큼 영업 사원은 메디컬 회사에서 너무나 중요한 역할이었으니까.
물론, 제조 쪽 사원, 사무 사원 역시 각자의 역할에서 중요하지만.
영업 사원이 제대로 일을 따오지 않는다면, 사무실의 직원들이 할 일이 없을 것이다.
메디컬 경력도 있고, 영업직에 대한 경력도 있다면 금상첨화일 텐데.
“하아… 생각만큼 직원을 뽑는 게 쉽지가 않네.”
나는 결국 노트북을 닫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아직 주말 더 남았으니까, 차분히 기다려보자.”
나는 휴대전화의 날짜를 확인했다.
내가 서울에서 바쁘게 지내면서도 이번 주말에 본가인 여수에 온 이유.
바로 연달아 쉬는 연휴였기 때문이다.
월요일까지 빨간 날로 지정되어 있었기에, 무려 3일이나 쉬는 날이 생겼고.
이 김에 마음먹고 본가에 온 것이지.
당연히 아버지의 차를 선물하기 위함도 있었지만 말이다.
시기가 잘 맞아 떨어진 것.
그리고 나는 어둑해지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저녁에는 광주에 좀 다녀올까?”
나는 곧장 휴대전화를 들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 * *
북적거리는 술집 거리.
서울에서도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밥집, 술집에 매일같이 가고는 했지만.
몇 년을 지냈던 광주에서의 이 거리는 언제 와도 반갑고 기분이 좋았다.
이 북적거림이 불편한 게 아니라, 반갑고 기분이 업되는 느낌.
나는 절로 미소를 띤 채, 약속 장소로 발길을 옮겼다.
철컥-.
술집의 커다란 문을 열자, 저 멀리 보이는 반가운 얼굴들.
“지훈아, 여기!”
민 대표, 민 과장, 민 대표 등 내 직함이 아닌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
그들은 광주 메디컬의 장홍석 사장과 손지혁 차장이었다.
나는 그들을 발견하자마자 눈이 없어질 정도로 환하게 웃으며 달려갔다.
“사장님, 차장님!”
장 사장과 손 차장은 이산가족을 상봉하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나를 반갑게 맞이했다.
“이야. 이게 얼마 만이냐.”
“그러니까요. 잘 지내셨습니까?”
“우리야 항상 똑같지, 너는 얼굴이 더 좋아진 것 같다?”
손 차장의 말에 나는 얼굴을 쓸어내리며 답했고.
장 사장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게 말했다.
“얼굴이 좋아진 게 아니라, 살이 쪽 빠졌고만. 아, 우선 얼른 앉자.”
“네, 사장님.”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마주 보며 자리에 앉았고.
근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내 술잔에 술이 가득 채워졌다.
챙-.
“오랜만에 만났는데, 한잔해야지.”
“좋죠.”
차디찬 알코올이 식도를 넘어가 가슴을 찌르르하게 울렸다.
턱-.
술잔을 내려놓자마자 장 사장은 나를 바라보며 재차 물었다.
“근데 왜 이렇게 살이 빠졌어?”
“저 살 빠진 것 같습니까?”
“어. 몇 달 전에 얼굴 보러 왔을 때보다 더 빠진 것 같다?”
장 사장과 손 차장은 생각보다 자주 만나는 사이기는 했다.
부모님을 만나러 여수에 올 때면 항상 광주에 들러 이들을 만나기도 했었고.
또 줄기세포 복원 주사의 호남 총판이 광주 메디컬이었기에.
그들과 통화도 자주 하고, 가끔 얼굴을 보기도 했었지.
그런데 그런 장 사장이 내게 살이 빠졌다는 말에 나는 내 얼굴을 만지작거리며 답했다.
“요즘 조금 바빠서 그런 것 같습니다. 하하.”
일이 바빠 살이 빠졌다는 내 말에 질투는커녕, 자신의 일처럼 걱정하는 얼굴로 그가 입을 열었다.
“인마, 아무리 바빠도 밥은 잘 챙겨 먹고 다녀. 그래야 오래 일을 하는 거야.”
“네, 그러겠습니다.”
손 차장은 턱으로 나를 가리키며 물었다.
“요즘 파우더 스플린트랑 교정용 스플린트 때문에 바쁜 거야?”
“예. 그게 잘 되기 시작하면서, 확 바빠지더라고요.”
“하긴, 지금 납품 사원이 없지?”
“네, 그래서 제조사에서 택배를 보내주거나, 사무실 직원들이 보내고 저도 직접 납품을 도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챙-.
퀭한 내 얼굴을 보며, 그들을 술잔을 들었고.
나는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장 사장을 바라보며 물었다.
“사장님.”
“응?”
“광주 메디컬은 어쩜 그렇게 직원을 잘 뽑으십니까?”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한 제스쳐를 취했고.
나는 한숨을 길게 내쉬며 재차 입을 열었다.
“항상 광주 메디컬에 들릴 때마다 신입 직원도 있고, 경력직 직원도 새로 뽑아서 운영하시지 않습니까.”
“그야 이력서 받아서 잘 거르는 거지, 뭐. 취업하는 애들도 회사를 거르고 걸러서 이력서를 제출하지만. 우리도 똑같거든. 수십, 많게는 수백 명의 사람을 하나하나 따져가면서 걸러서 뽑아야 해.”
그의 말에 손 차장은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취업하려는 사람들만 회사를 고르는 게 아니라는 거지. 아무 직원이나 뽑으면, 네가 고생해. 자를 수도 없고, 그렇다고 데리고 가자니 일은 못하고. 월급은 줘야 하고, 아주 골치 아파진다고.”
“맞습니다.”
손 차장은 눈썹을 들썩이며 내게 물었다.
“사람 뽑으려고?”
“네. 도저히 혼자 제조에 영업, 납품까지 할 수가 없겠더라고요. 그래서 공고를 내서 이력서가 많이 들어오기는 했는데… 조건에 맞춰 거르고 걸렀더니 몇 명 남은 줄 아십니까?”
내 말에 장 사장과 손 차장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래, 몇 명 남았는데?”
“한… 열댓 명?”
그들의 말에 나는 눈을 지그시 감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한 명도 안 남았습니다.”
“정말?”
“네. 서울에는 취업하려는 사람이 광주보다는 많아서 구하기 쉬울 줄 알았는데, 막상 그것도 아니더라고요.”
장 사장은 자신의 턱을 어루만지며 물었다.
“조건이 뭔데?”
나는 입술을 잘근 깨물며 답했다.
“크게 바라는 건 없습니다. 메디컬 경력직에 영업 경력도 있으면 좋겠고, 나이는 저보다 어렸으면 합니다. 외에 따로 보는 건 없어요.”
내 말이 끝나자 장 사장은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답했다.
“그렇지. 그게 얼마 안 되는 거 같은데, 막상 그렇게 조건 다 맞추는 사람이 없는 게 문제야.”
“맞습니다.”
그때.
술집 문이 열리고 들어오는 사람.
“민 대표님!”
나를 부르는 커다란 목소리에 나는 몸을 돌려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양손을 뻗어 흔들고 있는 모습.
“어? 태준아!”
한태준이었다.
“민 대표님, 잘 지내셨습니까?”
“그럼. 너도 잘 지냈어?”
“네. 보고 싶었습니다, 민 대표님.”
그는 달려와 와락 나를 안 듯 내 팔을 감쌌고.
여전히 살가운 그의 태도에 나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너는 여전하네.”
“하하. 그렇습니까?”
서서 내게 대답하는 한태준을 보며, 장 사장이 입을 열었다.
“아이고. 우리는 매일 보니까, 반갑지도 않은가보다?”
“아… 아닙니다. 사장님, 차장님. 헤헤.”
그는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고.
“얼른 앉아서 한 잔 마셔, 한 대리.”
“넵.”
나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그에게 물었다.
“뭐야, 태준이 대리 됐습니까?”
“그럼. 대리 단 지가 벌써 몇 개월은 되어 가는 것 같은데?”
나는 함박웃음으로 엄지를 치켜들었다.
“이야… 한 대리. 축하해.”
“하하. 감사합니다.”
한태준은 술병을 들고, 우리의 술잔을 모두 채웠고.
깍듯하고 센스있는 그의 태도에 나는 절로 미소가 번져왔다.
“참… 태준이 같은 애만 있어도 좋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나는 한태준을 바라보며 읊조렸고.
장 사장과 손 차장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맞지. 태준이가 참 잘해. 싹싹하고 예의 바르니까 원장님들도 좋아하시고, 일도 당연히 잘하고 말이야.”
우리의 대화에 한태준은 무슨 말이냐는 듯 눈을 깜빡였다.
“칭찬해 주셔서 감사한데… 무슨 일 있으십니까?”
그의 물음에 손 차장이 혀를 끌끌 차며 답했다.
“지훈이가 회사에 사람을 구하려고 하는데, 너 같은 직원 뽑고 싶은데 안 구해지나 보더라고.”
손 차장의 말에 한태준은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아, 당연하죠. 저 같은 직원 구하는 게 하늘의 별따기 아닙니까? 하하.”
“아이고? 됐어요, 한 대리님. 하하.”
그의 말에 나는 코를 찡긋거리며 웃었지만.
맞는 말이었다.
내가 찾는 직원은 경력도 있고, 나이도 어리고, 메디컬 지식도 가지고 있는 사람.
그게 베이스였다.
거기에 센스와 예의 바름, 깔끔한 외모까지 가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운 직원이었지.
그런 사람이 바로 내 옆에 앉은 한태준이었다.
내가 그렇게 원하는 직원.
한태준을 흘긋 바라보며 나는 한숨을 삼켜냈다.
‘태준이랑 일하면, 지금까지 같이 해 온 세월이 있어서 더 좋기는 할 텐데…….’
그렇게 그를 바라보던 그때.
장 사장이 나를 보며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지훈아, 네가 제조에만 집중하고 싶다면, 직원은 정말 잘 뽑아야 해.”
“맞습니다.”
“네가 믿을 만한 사람을 뽑는 게 쉽지가 않겠지만 말이야. 같이 영업, 납품 일을 한다면 모를까. 온전히 맡기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신중하게 사람 뽑아. 내가 다 경험해보고 하는 말이니까.”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네, 명심하겠습니다.”
비어있는 술잔을 채우는 한태준의 모습.
장 사장과 손 차장, 그리고 한태준과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더욱 탐나는 인재였다.
장 사장이 말하는 가족같이 믿을 만한 사람.
그 누가 새로 JH 메디컬에 온다고 해도 곧바로 믿을만한 사람을 아닐 것이다.
물론 시간이 지나 나와 세월을 보낸다면, 그렇게 될지 몰라도.
적어도 함께하는 세월을 무시할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이제 막 들어온 직원과 그런 신뢰를 가질 수 없는 게 당연했다.
태준이 같은 사람이면 좋겠는데…….
아니, 태준이랑 일하면 좋을 것 같은데…….
하지만 그건 너무나도 내 욕심이었다.
이미 한태준은 광주 메디컬에서 장 사장이 말하는 그가 믿는 사람.
가족 같은 사이가 한태준이었으니까.
한태준을 빤히 바라보고 있다, 그와 눈이 허공에서 마주쳤고.
그는 입꼬리를 환하게 올리며 내게 말했다.
“민 대표님. 열심히 메디컬 업계에서 성공해 주셔야 합니다. 선배님이 늘 제 롤모델이시지 않습니까, 아시죠?”
한태준은 신입 시절부터 나를 잘 따랐고.
항상 나를 추켜세워주고, 배우고 싶어하는 후임이었다.
그의 말에 나는 미소를 지었고.
순간.
한태준의 속마음 소리가 들려왔다.
[지훈 선배랑 같이 일할 때 좋았지. 어차피 서울에 올라갈 거면, 이왕이면 지훈 선배네 회사에서 일하면 안 되나……?]
그의 속마음 소리에 나는 순간 미간이 찌푸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