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1화
“어머… 지훈아, 뭐야?”
어머니는 나를 바라보며 화들짝 놀라 소리쳤고.
나는 그런 어머니와 아버지를 바라보며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
그러는 조수석에 있는 커다란 쇼핑백을 꺼내 어머니에게 다가가 건네드렸다.
“이거 어머니 선물이요.”
“아니, 이렇게 큰 선물이 어디 있어. 이게 대체 뭐야?”
어머니는 내 손에 들린 커다란 쇼핑백을 건네받았고.
아버지와 함께 쇼핑백을 열기도 전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나저나 지훈이 너 차도 바꾼 거야?”
내가 타고 온 차.
그랬다.
부모님이 저 멀리서부터 나를 보고 반기지 않았던 이유.
항상 타고 내려오던 차가 바뀐 것을 보자, 내가 왔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한 모양.
나는 입꼬리를 길게 올리며 아버지를 향해 답했다.
“아버지, 이 차 어때요?”
평소 트럭을 몰고 다니는 아버지.
하지만 아버지는 늘 차에 관심이 많으신 분이었다.
사치를 위해 좋은 차를 타고 싶어 차에 대해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어릴 적부터 차에 유난히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아버지에게는 늘 드림카가 존재했다.
물론 억 단위가 넘어가는 차를 살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말했지만.
마음 한쪽에 늘 담아 두는 것 같았지.
나는 그런 아버지의 드림카가 무엇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항상 그 차를 보며 어린아이처럼 좋아하고는 했으니까.
다만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것이지, 사고 싶지는 않다고 하셨다.
그런데 그런 아버지의 드림카가 지금 그의 눈앞에 서 있었다.
아버지는 연신 눈을 깜빡이며 내게 물었다.
“아들, 정말 이 차로 바꾼 거야?”
“어때요, 차 진짜 멋있죠?”
아버지는 입을 떡 벌린 채 고개를 끄덕였다.
“응. 이야… 우리 아들이 성공해서 이런 차도 몰고 여수에 오고. 아빠 너무 기분이 좋은데?”
그의 말에 어머니는 입술을 모은 채 말했다.
“그래. 이거 네 아버지가 좋아하는 차 맞지?”
“맞아요.”
“이거 여수에 몇 대 없다고, 길 가다가 가끔 이 차 보면 항상 차 주인한테 가서 차가 좋냐는 둥, 승차감은 어떻냐는 둥 물어봤던 차잖아.”
어머니의 말에 아버지는 민망한 듯 손을 허공에 가로저었다.
“아이, 내가 뭘 또 그렇게까지 했다고 그래.”
“맞잖아요, 지훈이 아빠. 이따가 지훈이 네가 아버지 이 차 한 번 좀 태워 드려라.”
아버지는 어머니의 말에도 듣는 시늉도 하지 않은 채, 앞에 놓인 차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아버지의 눈앞으로 다가가 입을 열었다.
“아버지, 그래서 차 어떠냐니까요?”
“뭘 물어. 아버지는 네가 이 차를 탄다는 자체가 너무 대견하고, 멋있다니까?”
“정말요?”
그는 환하게 웃으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그래. 아버지가 항상 멋있다고 생각하던 차를 우리 아들이 이렇게 멋있게 끌고 오니까, 아빠 기분 최고지.”
아버지의 말에는 감격스러움이 뚝뚝 흐르고 있었다.
나를 대견스럽다는 듯 토닥이는 아버지의 모습.
나는 내 어깨에 올려진 아버지의 팔을 쓸어내리며, 아버지의 손을 맞잡았다.
그때.
아버지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나를 바라보았다.
“응? 뭐야, 이게.”
맞잡던 손을 빼내자, 아버지의 손에 들린 차 키.
나는 내 손에 있던 차 키를 아버지의 손에 쥐여 주었고.
아버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게 말했다.
“그냥 태워 줘. 이거 보험도 안 들어 있어서, 아빠가 운전하면 위험하지.”
나는 그런 아버지의 말에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아버지. 이거 아버지 차예요.”
“뭐?”
“이거 아버지 드림카잖아요.”
“그랬지. 근데 이게 왜 내 차…….”
나는 아버지 손에 들린 차 키의 버튼을 눌러 차 문을 닫았고.
차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제 드림카는 이 차가 아니거든요. 아버지가 사고 싶은 차, 제가 선물해 드리고 싶었어요. 이거 아버지 차예요.”
내 말에 아버지는 넋을 놓은 것처럼 입을 떡 벌리고, 눈을 파르르 떨었다.
“아니… 이게 왜…….”
이내 아버지의 입술까지 파르르 떨려 왔다.
“아들. 마음은 정말 고마운데, 아빠는 이렇게 비싼 차 필요 없어. 이 돈으로 너 하고 싶은 거, 사고 싶은 것도 사고…….”
나는 재빨리 아버지의 말을 자르며 답했다.
“아버지는 저 키우느라, 하고 싶은 거 참고, 사고 싶은 거 포기하면서 사신 거잖아요. 제가 보답해 드리고 싶어요. 그냥 받아 주세요.”
평소 내가 주는 선물이라면, 그저 한 번에 받는 법이 없었던 부모님이었다.
용돈을 드려도 늘 쓰지도 않고, 안방에 모아 두시기 일쑤였고.
선물을 드려도 한 번에 고맙다며 받은 적이 없었지.
그래서 늘 몰래 집으로 배송을 시켜야만 어쩔 수 없이 받으시는 부모님이었다.
내 돈을 소중하게 생각해 주는 부모님이라 감사하기는 했지만.
그런 부모님이 내 마음을, 선물을 그저 받아 주시기를 바랐다.
어머니, 아버지에게는 아들 돈이 소중하고 아깝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나는 나를 키우느라 자신들의 세월을 고스란히 보낸 부모님에게 10분의 1, 아니 100분의 1이라도 갚고 싶었으니까.
갚는다는 말이 맞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나는 그만큼 부모님에게 모든 것을 해 드리고 싶었다.
부모님에게 내가 없었다면, 자식이 없었다면?
그들은 더 많은 경제적인 풍요로움을 느꼈을 거라 확신한다.
나를 위해 희생하고 포기한 것이 많은 부모님.
내가 그토록 성공에 목이 말랐던 건.
나 하나 잘살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가족, 부모님, 그리고 미래에 내 가족이 될 여자친구인 김사랑까지.
모두를 위해 돈을 벌고 성공의 길로 향하고 싶었던 것이지.
“그래도 아들 이건…….”
아버지는 역시나 단번에 내 선물을 받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아버지. 이거 이제 제가 서울에서부터 끌고 와서, 당연히 반품도 안 되고요. 그리고 아시잖아요. 차가 반품이 어디 있어요. 이거 아버지가 안 타시면, 바로 중고차로 판매해야 하는 거 아시죠?”
내 말에 그는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그럼 네가 타면 되잖아. 아들도 좋은 차를…….”
“아버지. 이 차는 영 제 스타일이 아니에요. 그리고 저 이제 회사 차린 것도 자리 잡아 가고, 돈도 꽤 벌어요. 하하.”
내 말에 그는 한숨을 삼켜 냈고.
나는 차 키를 들고 있는 아버지의 손을 꽉 붙잡은 채 재차 입을 열었다.
“아버지. 이번에는 제발… 그냥 받아 줘요. 내가 이거 드리고 싶어서 몇 달 동안 얼마나 참았다고요. 네?”
내 말에 그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고.
그 모습을 내게 보이고 싶지 않았는지, 아버지는 얼굴을 손으로 쓸어내리며 말을 돌렸다.
“아휴. 바람이 너무 분다. 얼른 집에 들어가자. 네 엄마가 또 한 상 차려 놨어.”
나는 그런 아버지를 바라보며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
“네, 얼른 밥 먹으러 가요. 이따가 밥 먹고, 바람 좀 덜 불면 제가 차 설명해 드릴게요.”
내 말에 아버지는 미소를 지은 채 내 어깨에 손을 올렸고.
내 귓가에 읊조렸다.
“잘 커 줘서 고맙다, 아들.”
집에 들어서자마자 어머니는 주방으로 향했고.
나는 그런 어머니를 붙잡으며 말했다.
“어머니도 밥 차리기 전에 이것만 보고 가요.”
“그래. 이거 큰 쇼핑백에 대체 뭐가 있는 거야?”
나는 눈썹을 들썩이며 말했다.
“안에 열어 보셔요.”
“이게 다 뭐… 어머!”
큰 쇼핑백 안에 든 명품 가방.
어머니가 비싼 명품 가방을 갖고 싶어 하신 적은 없지만.
그래도 중요한 자리, 사람들을 만나러 갈 때.
좋은 가방을 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다.
자신을 위해 스스로 비싼 가방을 살 어머니가 아니었으니까.
“지훈아, 이거 엄청나게 비싼 거잖아.”
“에이. 그래도 아빠는 저렇게 비싼 차를 선물했는데, 어머니한테도 뭐 하나 드려야지. 안 그래요?”
아버지는 여전히 손에 차 키를 꼭 쥔 채로 입꼬리를 올렸다.
“그렇긴 한데, 우리 아들 이거 돈을 너무 많이 써서… 우리가 받아도 되는지…….”
나는 아버지의 말에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휴. 저 돈 잘 벌고 있어요. 충분히 해 드릴 수 있고요. 어머니, 가방 안에 어떤지 빨리 열어 보세요.”
어머니는 내 말에 울먹이듯 목소리를 떨었다.
“엄마는 이렇게 비싼 가방 들고 나갈 곳도 없고…….”
지퍼를 찌익 연 어머니는 가방 안에 든 것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 소리쳤다.
“어머나, 이게 다 뭐야?”
어머니의 말에 아버지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가방 안을 함께 살폈고.
“지훈아, 뭐야 너 정말 복권이라도 당첨된 거야?”
아버지의 말에 나는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아니요. 아무리 어머니 가방 좋은 걸 사도, 아버지 차 금액에 절반도 안 되더라고요?”
나는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말을 이어 갔다.
“그래서 현금 좀 채워 봤어요. 그건 어머니 혼자 쓰셔야 해요. 알겠죠?”
내 말에 어머니는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아들… 고맙긴 한데, 너도 회사 차리고 서울에서 홀로 일하느라 고생 많은데. 우리한테까지 이렇게 신경 쓰면…….”
그에 나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번갈아 가며 바라보았고.
재빨리 배를 문지르며 소리쳤다.
“아아… 너무 배고프다. 어머니, 저 밥 좀 주세요.”
내 말에 어머니는 눈물을 훔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응. 우선 우리 아들 밥 먹자.”
아버지는 어머니의 자리에 있던 가방을 쓰윽 바라보았고.
어머니는 재빨리 가방을 낚아채며 장난스레 소리쳤다.
“어머. 지훈이 아빠, 이거 다 내 거야. 당신은 넘보지 말아요!”
“그냥 한 번 본 거지. 나도 우리 아들이 준 좋은 차 있거든요?”
부모님의 대화에 나는 웃음을 터트렸고.
내 웃음에 부모님 역시 눈에 머금고 있던 눈물을 털어 내며, 미소를 지었다.
* * *
거하게 밥을 먹은 뒤.
나는 계속해서 울리는 휴대전화 알람에 화면을 바라보았다.
영업 직원을 구하기 위해 문지음이 올려 둔 구인 모집 사이트.
그 사이트의 아이디가 내 휴대전화와 연동이 되어 있었고, 계속해서 이력서가 오는 탓에 휴대전화에 알람이 오고 있던 것이지.
나는 주말이었지만, 지금까지 온 이력서를 한 번 살피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버지, 저 잠깐 컴퓨터 좀 쓸게요.”
“응. 방에 아빠 노트북 쓰면 돼.”
“네.”
나는 아버지가 쓰는 방, 그러니까 아버지가 가끔 컴퓨터도 하고 책도 읽으시는 서재의 문을 열었고.
앞에 보이는 광경에 눈을 휘둥그레 뜨고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항상 내 사진이 걸려 있던 벽면.
그 벽에는 내 어릴 적부터의 성장 과정이 사진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그런데 내가 놀란 이유.
바로 그 옆에 새로운 액자가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 액자에는 JH 메디컬, 그러니까 내 회사와 관련된 뉴스 기사.
인터넷에 올라온 기사들을 모두 프린트해 정리해 둔 액자가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와아… 이거 아버지가 다 뽑아 두신 건가?”
나는 입을 떡 벌린 채 액자 속 내용을 바라보았다.
기부를 했다는 내용, 이달의 메디컬에 실린 내 인터뷰 기사와 사진까지.
작은 기사들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그러니까 내가 보지 못했던 기사들까지도 모두 아버지의 액자에 걸려 있었다.
항상 나를 응원하시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기사를 수집하고 스크랩한 것을 보니.
괜스레 마음이 뭉클해졌다.
그때.
“아들. 노트북 켜면 버퍼링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동시에 방으로 들어오셨고.
액자 앞에 서 있는 나를 보며 말끝을 흐렸다.
아버지는 내게로 다가와 입을 열었다.
“그거 보고 있었어?”
“네, 아버지 이거 다 출력해서 정리하신 거예요?”
“그럼. 우리 아들이 이렇게 좋은 일을 해서 기사까지 났는데, 당연하지.”
“이야… 몰랐네.”
어머니는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우리 이번에 여수 그 보육원에 봉사 활동도 다녀왔어.”
“정말요?”
“응. 우리 아들이 학교 다닐 때, 몇 번 같이 갔었잖아.”
“맞아요.”
“근데 이번에 기사 난 거 보고, 생각나서 네 아빠랑 저번 주말에 오랜만에 봉사 활동 하고 왔지.”
어머니의 말에 나는 미소가 얼굴에 번져 왔다.
“저랑 같이 가시지.”
“너는 서울에서 바쁘잖아. 다음에 시간 되면 또 같이 가면 되지. 우리도 먹고사는 게 바빠서, 그동안 봉사 활동 못 갔는데, 네 덕에 우리도 오랜만에 갔더니 너무 좋았어.”
그녀의 말에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맞아. 이제 우리는 아이들을 볼 일이 없잖아. 우리 아들이 장가가서 손주 보여 주기 전까지는 말이야.”
아버지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웃음을 터트렸다.
“아이고. 우리 아버지도 이제 저한테 슬슬 결혼 압박 주시는 겁니까?”
“아니지. 결혼은 아들이 가고 싶을 때, 좋은 여자가 생기면 가는 거고. 말이 그렇다는 거지. 하하.”
어머니는 옆에서 호호 웃음을 보이며 내게 말했다.
“그래. 가서 아이들 보고 같이 놀고 하니까, 좋더라. 그나저나 우리 아들 만나는 사람은 있나?”
아직 김사랑을 만나는 것에 대해 부모님에게 말을 한 적은 없었다.
모든 아들이 그런 건 아니지만, 대부분 아들이 부모님에게 시시콜콜 모든 걸 이야기하며 수다 떨지는 않으니까.
적어도 나는 그런 아들이었다.
부모님을 항상 신경 쓰지만, 자상한 아들은 아니었다.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시선을 노트북으로 옮긴 채 읊조렸다.
“뭐, 저도 서울에서 연애도 하고 그러고 있어요.”
내 말에 어머니는 화들짝 놀라며 손뼉을 부딪쳤다.
“어머. 어떤 여자인데?”
“좋은 여자예요. 결혼하고 싶은 여자. 제가 아직 준비가 덜 됐다고 생각해서… 나중에 한 번 소개해 드릴게요.”
내 말에 어머니는 궁금함이 가득 담긴 얼굴로 질문을 던졌다.
“뭐 하는 사람이야, 집은 서울이고? 직업은…….”
어머니의 말에 아버지가 말을 잘라 내며 내게 말했다.
“아들. 네가 선택한 사람이면, 어떤 사람이든 상관없어. 지훈 엄마 생각도 그렇지 않아?”
“뭐… 그렇지. 다만 우리 아들이 사랑하는 사람이 어떤 여자인가 궁금해서 그렇지.”
그들의 말에 나는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분명 어머니 아버지도 좋아하실 거예요.”
내 말이 끝나자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래. 다음에 마음의 준비가 다 되면, 보여 줘라. 지훈 엄마 우리 얼른 나가자. 지훈이 할 거 있다고 하던데.”
“그래요.”
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 저 일 하나만 하고 얼른 나갈게요.”
방을 나서는 부모님을 보고, 서둘러 노트북을 열었고.
쌓여 있는 이력서를 하나하나 살펴 갔다.
그리고 나는 이내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하아… 어떻게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