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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영업사원이 되었다-295화 (295/339)

295화

【 어떤 이의 과거 】

“교정용 스플린트 제작이 이번 달 안에…….”

탁상용 달력을 바라보고 사업 계획을 세우고 있던 그때.

똑똑.

대표실 문에 노크 소리가 들려왔고.

“네, 들어와요.”

내 목소리에 문이 스르륵 열렸다.

“대표님, 바쁘세요?”

신소율은 고개를 빼꼼 내민 채 밝은 얼굴로 내게 물었고.

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바빠도 충분히 이야기할 시간은 있죠. 들어와요.”

내 말에 그녀는 그제야 몸까지 대표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녀의 손에 들린 책 한 권.

익숙한 표지가 내 시선을 사로잡았고.

조금씩 가까워지는 그녀를 바라보며 그 책이 무엇인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설마… 벌써 잡지 나왔어요?”

내 말에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머리를 흔들었다.

“네. 대표님 사진도 엄청 멋있게 나오셨던데요?”

신소율은 입꼬리를 올리며 내게 말했고.

나는 멋쩍은 미소와 함께 손을 휘이 저었다.

“에이. 멋있긴요. 사람답게만 나왔으면 다행이에요.”

“아니에요. 이것 좀 보세요. 진짜 잘 나왔어요. 내용도 좋고요!”

그녀는 내게 내가 실린 잡지 페이지를 펼쳐 내밀었고.

나는 다소 민망했지만, 서둘러 시선을 그 잡지 페이지로 옮겼다.

“오오…….”

내 사진을 보고 감탄을 쏟아 낸 건 아니었다.

사실 잡지 인터뷰를 할 때까지만 해도 내가 잡지에 실린다는 실감은 나지를 않았었다.

그저 사업에 대한 질의응답을 하는 느낌이었지.

하지만 내 사진과 함께 실린 JH 메디컬.

그리고 내 첫 제조 제품인 파우더 스플린트의 사진과 인터뷰 내용을 바라보자, 그제야 잡지에 내가 기재되었다는 게 믿기기 시작했다.

몇 년 전, 메디컬 업계에 들어오면서 봤던 잡지에 내가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될 줄이야.

상상은 물론 전혀 예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다.

그걸 내 이름을 건 제조사를 차린 지 1년이 채 되지 않았음에도 했다는 게 놀라웠다.

잡지를 쥐고 있는 내 팔에 소름이 촤악 돋아났고.

감격스러움에 나는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누군가가 보면, 그저 매달 발간되는 잡지 하나일 뿐이지만.

이 업계에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일이 얼마나 대단하고 놀라운 일이라는 걸 잘 알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감격에 젖은 채 잡지에 시선을 고정한 나를 본 신소율은 입술을 꾹 닫고, 조용히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러고는 살금살금 대표실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홀로 남은 대표실.

나는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온전히 잡지에 집중했다.

“정형외과 메디컬만으로도 이 정도 올라왔는데… 나중에는 한국 메디컬을 대표하는 회사로 메인에 걸리면 정말 눈물이라도 날 것 같은데?”

점점 더 성장할 JH 메디컬을 상상하며, 입꼬리를 길게 올렸고.

나는 의지를 불태운 채, 내가 나온 잡지 페이지를 가장 시선이 잘 가는 책상 위에 올려 두었다.

고된 업무에 지치거나 힘들 때 한 번씩 바라보며 의지를 불태울 수 있도록 말이다.

“자, 이제 다시 시작해 보자!”

* * *

“형. 그래서 이번 주에 촬영 가는 건가?”

진희성은 차 시트에 몸을 푸욱 기댄 채 운전을 하고 있는 매니저 김 실장에게 물었고.

그는 룸미러를 통해 진희성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이번 주에 드라마 촬영하고, 다음 주가 예능에 드라마 홍보로 나가는 스케줄.”

빡빡한 스케줄에 진희성은 피곤한 듯 입을 쩌억 벌리며 하품을 뱉어 냈고.

그는 잠이 들지 않기 위해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었다.

그 모습을 본 김 실장은 안쓰러운 듯 입을 열었다.

“희성아, 가는 데 한 시간 정도 남았어. 피곤하면 눈 좀 붙일래?”

김 실장의 말에 진희성은 한숨을 짧게 내쉬며 답했다.

“오늘 보이는 라디오였지?”

“맞아.”

“하아… 그럼 얼굴 팅팅 부으니까 자면 안 되겠네.”

진희성은 잠이 들지 않기 위해 자신의 양 볼을 손으로 툭툭 치며 혼잣말을 뱉었다.

“그럼 잠깐 카페 들려서 커피 좀 사서 가자.”

“나는 괜찮은데… 나 때문에 가는 거면 바로 가도 괜찮아.”

평소 매니저에게 갑질 따위는 하지 않던 그였기에.

김 실장을 배려해 말했고, 그런 진희성의 행실을 너무나도 잘 아는 매니저는 눈썹을 들썩이며 답했다.

“나도 마시고 싶어서 그래. 한 시간 운전해야 하니까, 커피 사서 가자.”

“그래. 형도 마실 거면 들리자.”

“응. 한 십 분 정도 가면 되겠다.”

진희성은 고개를 끄덕였고, 그의 눈에는 여전히 졸음이 한가득 쌓여 있었다.

그때.

김 실장은 손가락을 튕기며 소리쳤다.

“맞다, 이거 너한테 보여 준다는 게……!”

“뭔데?”

그는 무거운 눈꺼풀을 뜨고 김 실장에게 물었고.

김 실장은 턱으로 진희성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거기 옆에 시트에 뭐 하나 꽂혀 있는 거 보여?”

진희성은 몸을 앞으로 당겨 좌석 앞에 꽂힌 책 한 권을 꺼내 들었다.

“응. 책 한 권 있는데, 이달의… 메디컬?”

“어. 거기에 너 언급이 됐더라. 그래서 보여 주려고 챙겨 놨는데, 졸리면 그거라도 보라고.”

“오오. 메디컬 잡지에 내가 왜 언급이 됐지?”

김 실장의 이야기대로 진희성의 얼굴에 피로는 달아난 지 오래였다.

흥미로운 얼굴로 잡지를 펼쳐 들었고.

김 실장의 말대로 한 페이지에 진희성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

“어? 진짜로 내 이야기가 있네?”

진희성은 어느새 반짝이는 눈망울로 잡지에 시선을 고정했고.

이내 그는 입을 떡 벌린 채 손으로 벌어진 입을 막았다.

“헐… 이 사람……!”

그의 말에 김 실장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물었다.

“뭐야, 너 아는 사람이야?”

“형, 나 파우더 스플린트 했던 거 기억나지?”

“당연하지. 그거 엄청 좋았다고 했잖아.”

진희성은 다소 흥분한 목소리로 몸을 운전석까지 당겨 갔다.

“어. 여기서 나 언급한 사람이 그 파우더 스플린트 회사 대표야.”

“정말?”

그는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며 말했다.

“응. 나한테 고맙다고 하더니, 정말 고마웠나 봐. 잡지 인터뷰에서까지 나를 언급했어.”

김 실장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에게 물었다.

“뭐야, 이미 고맙다고 이야기를 했었어? 만난 적이라도 있어?”

방송국에서 만날 당시, 차를 빼러 갔던 김 실장.

그래서 진희성 홀로 방송국 로비에서 민지훈과 만났던 것이다.

“응. 저번에 KTS 방송국 로비에서…….”

진희성은 그날의 일을 김 실장에게 흥미롭다는 듯 털어놓았고.

김 실장 역시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이야기를 들었다.

“이야. 신기하네. 그럼 그날이 저 잡지 인터뷰 오신 날이었겠네.”

“그러게. 그리고 나한테 보답하고 싶다고, 밥 한번 사겠다고 하셨어.”

“근데 회사 대표면 나이도 많을 거 아니야. 불편하지 않겠어?”

진희성은 서둘러 잡지에 나온 민지훈의 얼굴을 보여 주며 말했다.

“이거 봐. 진짜 젊지?”

잠시 신호에 걸린 차.

김 실장은 곁눈질로 민지훈의 사진을 보며 입을 오므리고 머리를 흔들었다.

“오오. 그러네. 저 업계 대표치고는 꽤 젊다.”

“응. 많아 봤자 나보다 3, 4살 정도 많을 거 같더라. 계속 보답하시겠다고 연락 달라고 했는데…….”

“연락해 보게?”

“음… 처음에는 생각이 없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나도 뭐 이런 기업 대표랑 친분 생겨서 나쁠 건 없을 거 같아.”

김 실장은 입술을 움찔거리며 걱정스러운 마음을 담아 말했다.

“그러기에는 대표도 젊은 거 보니까, 너무 작은 회사 아니야?”

“아니야, 형. 내가 보기에는 단순한 작은 회사는 아닐 것 같아. 성장 가능성이 보인다는 뜻이지.”

“그래?”

“어. 잡지 내용 봤어? 파우더 스플린트가 그 대표의 첫 제조품이래. 근데 형도 알잖아. 그 제품 내가 써 본 것 중에 가장 좋았던 거.”

김 실장은 눈동자를 빠르게 굴리더니 이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지. 그렇게 많은 제품을 사용해 봤는데, 네가 마음에 든다고 계속 차고 있던 건 처음이었지.”

“난 저 회사 엄청나게 클 거라고 예상해. 아니, 확신해. 그리고 교정용 스플린트도 만든다고 했던 것 같은데.”

“안 그래도 네가 교정용으로 그거 차고 다녔잖아.”

“응. 근데 나는 그냥 치료용을 교정하려고 찬 건데, 진짜로 교정용을 만든다고 하더라고. 대박이지?”

김 실장은 눈썹을 치켜올린 채 말했다.

“그러게. 하긴, 사람이라는 게 언제 어디서 도움이 될 줄 모르니까. 여러 분야의 사람들과 인연을 맺어 두는 것도 좋지.”

“맞아. 내가 이렇게 회사 대표랑 알게 되어서 언제 어떻게 내게 도움이 될 줄은 모르겠지만. 형 말대로 사람 일이라는 게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거니까.”

진희성은 다시금 의자에 몸을 기대앉았고.

눈을 가늘게 뜨고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그때 JH 메디컬 대표가 줬던 명함이 어디 있더라……?”

* * *

“안녕하십니까.”

블루 메디컬에 도착하자, 나를 환하게 반기는 최 대표의 모습.

“아이고, 민 대표님 오셨습니까.”

우리는 서로 악수를 나누며 인사했고.

손을 빼자마자 나는 그에게 엄지를 치켜들었다.

“아니, 대표님. 저랑 그날 이야기하시고, 잠도 안 주무시고 일하신 거 아닙니까?”

그는 내 말에 호탕하게 웃으며 답했다.

“서울까지 소문이 났나요? 하하.”

“그럼요. 대체 어떻게 벌써 교정용 스플린트가 나올 수 있습니까. 진짜 대단하십니다.”

파우더 스플린트와 비슷한 구조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쓰임 자체가 다른 제품이다 보니, 제조하는 데 수월하지만은 않았을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 대표는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끌어올려 제품을 만들어 냈다.

아직 그가 만든 샘플은 보지 못했지만.

그의 실력을 믿어 의심치 않았지.

최 대표가 내게 제안을 하거나, 그가 만든 제품은 늘 나를 만족시켰고.

내가 생각했던 그 이상을 보여 줬으니까.

“얼른 좋은 제품 출시해서 한국에 저희 제품 쫘악 깔아야죠.”

“하하. 맞습니다.”

“민 대표님 아이디어와 제 제조 실력이 합쳐지면, 저희가 한국 메디컬 다 씹어 먹을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최 대표는 장난기 가득한 얼굴과 말투로 내게 말했고.

우리는 그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제품을 보러 향했다.

“이렇게 실력이 좋으신 분을 왜 이제야 만났는지 모르겠습니다. 하긴, 생각해 보면 최 대표님 형님분도 관절 로봇을 만드신 분이었는데, 최씨 가문에는 엄청나신 분들만 있나 봐요.”

내 말에 그는 쑥스럽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아이고. 저희 형한테 전달하면, 또 어깨가 한껏 올라가겠네요.”

“꼭 좀 전해 주십시오. 대단하시다고. 그리고 우리 블루 메디컬 최 대표님도 소개시켜 주셔서 감사하다고요. 제가 또 따로 찾아뵙고 크게 한턱내야겠습니다.”

대화를 나누며 걷다 보니, 어느새 제조 건물에 도착했고.

최 대표는 내게 샘플 여러 개를 내밀었다.

“여기서부터 팔, 다리, 허리 교정용 스플린트입니다.”

“와아. 벌써 종류별로 만드신 겁니까?”

“크게 부위 별로는 만들어 봤는데, 롱암, 숏암 등 세분화 작업은 아직 덜 됐습니다.”

그는 제품을 보자, 언제 장난기 섞인 얼굴을 보였냐는 듯.

한껏 진중한 태도로 임했다.

“우선 이 스플린트를 보시면…….”

최 대표는 내게 제품을 상세하게 설명하기 시작했고.

나 역시 화기애애하던 분위기는 전부 털어 낸 채, 제품에 빠져 미간을 찌푸리고 집중했다.

한참 이야기를 나눈 후.

최 대표가 잠시 자리를 비운 지금.

나는 샘플을 만지작거리며, 테스트를 하기 위해 몸에 착용했다.

그때.

지이잉.

주머니 속 휴대전화가 울렸고.

발신인은 처음 보는 번호였다.

하지만 항상 모르는 번호로 오는 전화가 익숙했던 나는 서슴없이 수신 버튼을 클릭했다.

“네, JH 메디컬 민지훈입니다.”

- 저… 혹시 민지훈 대표님 맞으신가요?

“예, 그런데요. 어디서 전화 주셨을까요?”

수화기 너머의 남성 주변은 이상하리만큼 고요했고.

나는 마른 침을 삼키며, 수화기의 볼륨을 최대한으로 올렸다.

“…여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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