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4화
“진희성 배우님 맞으시죠?”
나는 KTS 방송국 로비에 서 있는 후광이 나는 남자.
그를 단번에 알아보았다.
그가 진희성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데는 아주 잠깐의 시간이 필요했지만.
한참이나 로비에서 사람들을 보던 내게, 이 남자가 연예인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누가 봐도 연예인스러운 외모와 자태.
그 모습에 나는 시선이 고정되었고, 그가 진희성이라는 것을 알아낼 수 있었다.
내 말에 그는 활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안녕하세요.”
나는 그의 얼굴을 보며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내 인사에 진희성은 내 손에 들린 휴대전화를 쓰윽 바라보며 물었다.
“혹시… 사진이나 사인……?”
평소 진희성에게 다가가 인사를 거는 사람은 당연히 그의 팬이었을 테기에.
진희성은 내 휴대전화를 보며 당연스레 물었고.
나는 그제야 눈을 깜빡이며 답했다.
“아, 그게 아니라… 반가운 마음에 왔습니다.”
“네?”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고.
나는 서둘러 주머니 속 지갑 안의 명함을 한 장 꺼내 그에게 건넸다.
“저는 JH 메디컬의 민지훈이라고 합니다.”
“…예.”
내 명함에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어색한 미소를 짓는 그의 표정.
나는 서둘러 말을 덧붙였다.
“파우더 스플린트를 만들고 판매한 회사입니다.”
그러고는 그의 손에 차고 있는 스플린트를 눈으로 쓰윽 가리켰다.
그러자 진희성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소리쳤다.
“아, 헐! 그게 JH 메디컬이었군요.”
“네, SNS 라이브에서도 많이 말씀해 주셔서 언젠가 혹시 뵙게 되면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었거든요.”
내 말에 그는 스플린트를 차고 있는 손까지 함께 흔들며 답했다.
“아이고. 아닙니다. 감사할 게 있나요.”
“감사하죠. 진희성 배우님 덕분에 저희 제품이 많이 퍼져서 너무나 감사했죠.”
“하하. 제품이 워낙 좋아서 그런걸요. 오히려 이런 제품을 만들어 주셔서 제가 다 감사합니다.”
진희성은 내게 환하게 미소를 보였고.
“덕분에 제가 아이디어도 많이 얻고, 한번은 꼭 진희성 배우님 뵙고 싶었습니다.”
내 말에 그는 내게 악수를 청했고.
우리는 그렇게 손을 마주 잡았다.
“저도 이 제품 만드신 분 한번 뵙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는데, 이렇게 뵙다니 신기하네요. 근데 방송국에는 무슨 일로…….”
그는 방송국 로비를 쓰윽 훑으며 내게 물었다.
“메디컬 잡지 회사에 인터뷰가 있어서 오게 됐는데, 진희성 배우님도 만나고… 오길 잘했네요. 하하.”
“오오. 메디컬 잡지도 있군요? 역시 좋은 제품 만드시는 회사 대표님이라 그러신지, 인터뷰도 하시고 대단하십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손사래를 쳤다.
“아닙니다.”
그때.
지이잉.
[발신인 : 이달의 메디컬 한가람]
잡지사에서 연락이 왔고.
“잠시만요.”
나는 진희성에게 양해를 구한 뒤, 서둘러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대표님, 카페로 왔는데 안 계셔서요. 혹시 다른 곳에 계시나요?
“아, 저 잠깐 로비에 있습니다. 바로 갈게요.”
- 네.
전화를 끊은 뒤.
나는 진희성을 향해 서둘러 입을 열었다.
“잡지사에서 오셔서…….”
“아, 네. 반가웠습니다, 대표님.”
나는 진희성의 손에 들린 내 명함을 바라보며 말했다.
“제가 희성 배우님께 보답을 좀 하고 싶어서요. 파우더 스플린트를 드리기에는 그게 치료 목적인 거라, 드리기도 애매해서 연락을 못 취했었습니다.”
그는 내 말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그리고 보답 안 하셔도 정말 괜찮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이런 일은 또 그냥 넘어갈 수가 없어서요. 다음에 식사라도 대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으면 하는데… 괜찮으실까요?”
진희성은 고민스러운 듯 대답을 망설였다.
하긴, 연예인의 신분으로 갑자기 만난 나와 식사 약속을 잡는 게 어렵기는 할 터.
그의 직업의 특성이 있기에, 나는 그에게 만남을 강요할 생각은 없었다.
그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싶은 일인데 그가 거절한다면 내게는 할 방법이 없었지.
나는 진희성이 곤란한 것을 확인하고 재차 입을 열었다.
“희성 배우님, 부담스러우시다면 거절하셔도 괜찮지만. 제가 보답을 해 드리고 싶어서 그러는 거니까. 천천히 생각해 보시고, 괜찮으시다면 그 명함의 연락처로 한 번 연락 주세요.”
“아, 네. 그러겠습니다.”
나는 밝게 웃으며 그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고.
그 역시 내게 정수리를 보이며 머리를 낮췄다.
“그럼 오늘 만나 뵙게 되어 영광이었습니다.”
“저도요. 인터뷰 잘하고 가십시오.”
“네, 앞으로의 활동도 늘 응원하겠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응원하며 헤어졌다.
나는 진희성의 뒷모습을 보지 못한 채, 서둘러 KTS 로비의 카페로 향했고.
“한가람 님?”
잡지 직원으로 보이는 한 여성에게 다가가 입을 열었다.
“네. JH 메디컬 민지훈 대표님 맞으십니까?”
“예.”
내 말에 그녀는 허리를 깊게 접었다.
“기다리게 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그녀는 죄송함이 뚝뚝 묻어나오는 얼굴로 내게 사과를 보냈고.
“아닙니다. 덕분에 방송국에서 시간 보내서 즐거웠습니다. 정말로요.”
나는 미소와 함께 답했고, 그녀는 손을 모은 채 고개를 다시금 숙였다.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죄송해요.”
“정말 괜찮아요.”
“그럼 우선 인터뷰하러 저희 층으로 올라가실까요?”
“네.”
그녀를 따라 잡지사가 속한 층에 올라갔고.
빈 회의실에 들어가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기본적인 질문들이 이어졌고, 나는 준비해 온 대로 그리고 생각한 대로 성심성의껏 답을 했다.
그렇게 몇십 분간 질문과 답이 이어졌고.
“오늘 인터뷰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인터뷰하신 소감 좀 여쭐 수 있을까요?”
한가람의 말에 나는 미소를 유지한 채 답했다.
“음… 먼저 신생 회사인 JH 메디컬에 이런 좋은 기회가 생기게 되어서 너무 감사하죠. 아까 말씀드린 대로 저는 메디컬 영업직으로 오래 근무를 했었습니다. 그 당시에도 이달의 메디컬 잡지는 늘 봐 왔고요.”
“오오. 저희 잡지를 늘 봐 주셨다니, 정말 감회가 더 새로우시겠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이 잡지에 저희 제품이 실릴 거라는 것도, 제가 인터뷰를 하게 될 것도 전혀 예상치 못했죠.”
그녀는 내 말을 빠르게 타이핑하며 질문을 했다.
“참, 그리고 진희성 배우님이 제품을 SNS에서 소개하셨던데 알고 계신가요?”
“네, 저도 그 영상을 봤습니다.”
“진희성 배우님과 관계가 있으신 건가요?”
“아닙니다. 저희 제품을 좋게 봐주시고, 이야기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 꼭 전하고 싶어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 물었다.
“처음에는 홍보인 줄 아는 분들도 많더라고요. 워낙 제품의 좋은 이야기만 하셨으니까요.”
“맞아요. 근데 홍보가 아니라, 직접 사용해 보고 말씀해 주신 거라 저야 감사하고 좋았죠. 덕분에 저희 제품이 널리 유명해졌고요.”
한가람은 밝게 웃으며 내게 말했다.
“제품이 유명해지셨으니, 이제 인터뷰 내용이 잡지에 실리게 되면. 더 많은 메디컬 업계와 병원에 알려지셨으면 좋겠습니다.”
한가람의 말에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네. 저는 꼭 유명해지고 싶어요.”
내 말에 노트북을 바라보고 있던 그녀는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예?”
나는 진중한 얼굴로 그렇게 말한 이유를 설명했다.
“저희 제품도 그렇고, 저희 회사도 말이에요.”
“뭐 당연히 회사가 유명하면 좋은 거지만,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저는 저희 제품을 많은 분들이 써 보셨으면 하거든요. 제가 열심히 일하며 돈을 벌고 유명해지려는 이유는, 회사든 저든 유명해져야 저희 제품을 써 보실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내 말을 인터뷰지로 옮기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고.
나는 그녀를 향해 말을 이어 갔다.
“제가 힘이 닿는 데까지는 환자분들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당연히 돈을 벌고 성공하기 위해서는 의사분들에게 유용한 제품을 판매해야겠지만, 저는 환자분들이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오오. 그렇게 들으니, 새롭네요. 병원에 들어가는 제품의 판매 대상이 의사이기는 하지만, 실제로 사용하는 대상은 환자분들이니까요.”
그녀의 말에 나는 손가락을 튕겼다.
“네. 아픈 분들이 조금이라도 편하고, 빠르게 치유할 수 있는 것. 좋은 질의 제품에 저렴한 가격. 그게 바로 제가 바라는 메디컬 제품입니다.”
한가람은 내 말에 옅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민 대표님,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 있으실까요?”
“앞으로도 JH 메디컬은 환자분들을 위한 제품을 만들도록 노력할 테니, 지켜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희 회사는 이제 시작이니까요.”
* * *
시끌벅적한 술집.
그 술집 테이블 한가운데 앉아 술잔을 부딪치던 사람들.
철커덕—
술집의 문이 열리자 들어오는 사람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준빈아, 여기!”
리본 종합병원의 강준빈 원장.
그는 자신을 부르는 친구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어, 다들 오래 기다렸냐?”
강 원장의 말에 그의 친구 김웅찬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인마. 왜 이렇게 늦게 오냐?”
강 원장은 손을 모은 채 눈을 깜빡였다.
“미안, 병원 정리 좀 하고 오느라.”
“누가 보면 여기서 너만 의사인 줄 알겠네, 우리도 오늘 다 진료 보고 왔거든?”
김웅찬의 맞은편에 앉은 정호민이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고.
“아, 미안해.”
강 원장은 서둘러 상황을 돌리고 있었다.
“늦었으니까 오늘은 내가 쏜다. 뭐해, 얼른 마셔!”
“오오. 그래, 오늘은 강준빈 원장님이 쏘니까, 조용히 마시겠습니다. 하하.”
그들은 그렇게 술잔을 부딪치며 대화를 이어 갔다.
챙—
“야, 그래서 요즘 일은 할 만하냐?”
“뭐 항상 똑같지. 너네 병원은 병원장 성격 여전하고?”
“당연하지. 아주 죽겠다.”
그들은 여느 직장인과 마찬가지로 직장 상사에 대한 이야기로 포문을 열었다.
“그러니까, 나처럼 개인 병원을 차려. 그럼 스트레스 받을 일이 어디 있냐?”
정호민의 말에 강 원장과 김웅찬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답했다.
“너는 인마, 제수씨 잘 만나서 그런 거지.”
“우리 잘사는 와이프 만난 것도 내 능력이야, 이것들아.”
강 원장은 혀를 끌끌 차며 그에게 말했다.
“그럼 오늘 술은 돈 많은 와이프 있는 호민이가 사라.”
정호민은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지갑을 흔들었다.
“그래. 형님이 산다, 맘껏들 먹어라.”
챙—
그들은 내일이 없는 것처럼 술잔을 연거푸 부딪쳤다.
그렇게 빈 술병들이 쌓여 가고.
하나둘 볼이 발그레해질 때쯤.
정호민이 강 원장을 향해 입을 열었다.
“맞다, 준빈아. 나 최근에 사랑이 봤다?”
그의 말에 강 원장은 순식간에 미간을 찌푸렸고.
“뭐? 김사랑?”
“어. 저번에 쇼핑하러 백화점 갔다가 마주쳤어.”
그들의 대화에 김웅찬은 허공에 손을 휘이 저으며 말했다.
“야, 갑자기 왜 여기서 김사랑 얘기를 해. 됐어, 그만해.”
김웅찬의 말에도 강 원장은 정호민을 독촉했다.
“아냐, 해 봐. 그래서 사랑이는 요즘 뭐 어때, 이야기 들은 거 없어?”
강 원장은 질문 후 긴장한 듯 마른 침을 삼켰고.
“사랑이 남자친구 생겼다더라. 이제 관심 꺼, 인마.”
그의 답에 강 원장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야, 내가 언제 관심 가졌다고 그래. 끝난 지가 언젠데!”
“근데 왜 남자친구 생긴 거로 그렇게 발끈하냐?”
“그게 아니라, 내가 뭔 사랑이한테 미련 남은 사람 취급하니까 그렇지.”
강 원장은 얼굴을 붉혔고.
그의 표정을 본 정호민이 눈썹을 들썩이며 말했다.
“그럼 그 남자친구 어떤 사람인지 말 안 해 줘도 돼?”
정호민의 말에 강 원장은 한숨을 짧게 내쉬며 빠르게 답했다.
“…그래서 누군데?”
“메디컬 업계에 있다더라.”
“의사?”
정호민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아닌 것 같던데… 메디컬 영업인가, 뭐 아무튼 의사는 아니었어.”
“뭐야, 별것도 아니네.”
강 원장은 입꼬리를 길게 찢으며 말했고.
가만히 대화를 듣고 있던 김웅찬이 대화에 참여했다.
“근데 말이야. 너네 김사랑네 아빠도 의사인 거 알고 있었어?”
그가 꺼낸 새로운 주제에 강 원장과 정호민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 소리쳤다.
“진짜?”
“뭐야, 김사랑네가 의사 집안이라고?”
김웅찬은 눈을 깜빡이며 답했다.
“어. 나도 최근에 알게 된 건데, 행복 정형외과 병원장이라는 소문이 있더라고. 정확한 건 아닌데…….”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강 원장이 한숨을 길게 내쉬고.
이후 한쪽 입꼬리를 길게 올렸다.
“김사랑 한번 꼬셔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