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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영업사원이 되었다-293화 (293/339)

293화

“당연하죠. 어떤 제안입니까?”

내 말에 최 대표는 눈썹을 들썩이며 내게 물었다.

“지금 생분해 제품 OEM 의뢰 맡긴 업체에서 제조 중 막힌 부분이 있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최 대표와 나는 항상 사적인 대화보다는 제품에 대한 이야기, 사업에 관한 이야기로 늘 대화를 심도 있게 나누고는 했었다.

그와 내 관심사가 늘 같았기에, 이런 대화가 주를 이뤘었지.

그래서 자연스레 내가 목표로 삼고 있는 몸 안에서 녹는 제품.

제조 중인 그 제품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었고, 그렇게 대화 중 제조 과정에 대해서도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몇 달간 제조가 이어지고 있었지만, 얼마 전부터 한 부분에서 제조에 난항을 겪고 있었다.

당연히 외상 수술 재료에 빠삭한 제조 업체와 일을 하고는 있었지만.

아무래도 한국에서 처음 시도하는 제품이다 보니, 순탄하고 빠르게 만들기는 힘들었으니까.

최 대표도 내 이야기에 흥미를 느꼈었고.

내가 얘기했던 부분을 기억하고 있던 모양.

“네, 기억하고 계셨네요?”

“당연하죠. 그거 혹시 해결되셨나요?”

최 대표의 말에 나는 코를 찡긋거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입니다. 제조 회사에서 밤낮없이 연구하고 있기는 한데… 아무래도 쉽지는 않은 것 같더라고요.”

나는 짧은 한숨과 동시에 말을 이어 갔다.

“이게 한국에는 비슷한 제품이 없지만. 해외에는 조금 다른 제품이기는 하나, 비슷한 점을 다루는 제품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곳과 컨택 중인데, 생각보다 어렵긴 하네요.”

내 말이 끝나자 최 대표는 입술을 길게 찢으며 내게 말했다.

“민 대표님.”

“예.”

“제가 도움을 좀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의 말에 나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최 대표를 바라보았다.

내게 제안을 하고 싶다는 말이 제품을 만드는 것에 대해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었나?

하지만 현재 의뢰한 제조 업체에서도 난항을 겪고 있는데, 그걸 최 대표가 도와줄 수 있다는 말에 궁금증과 더불어 놀라움이 가득했다.

“정말요?”

“네. 저번에 말씀해주신 대로 생분해 과정에서 기간이…….”

그는 내가 말했던 제조 업체에서 막힌다는 부분을 길게 풀어 설명했고.

나는 한참이나 그의 말에 집중했다.

그렇게 최 대표의 설명이 끝나고.

최 대표는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제가 그쪽 공부도 했었고, 게다가 제가 외국에 있는 퍼펙트 메디컬에서 오래 근무를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시죠. 근데 퍼펙트 메디컬에서 생분해 제품은 없었던 거로 기억을 하는데…….”

그를 의심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의문이 들었을 뿐.

해외에서도 내가 만들려고 하는 생분해 제품은 존재하지 않았고.

성형외과에서 다루는 녹는 실, 혹은 다른 의료 과목에서 사용하는 비슷한 제품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런 비슷한 제품들이 모두 퍼펙트 메디컬에서 출시가 되지는 않았었다.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를 바라보았고.

“네. 생분해 제품이 퍼펙트 메디컬에서 나오지는 않았지만, 꽤 오래 연구를 했었습니다.”

“아… 몰랐습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내게 답했다.

“그렇죠. 결국은 출시를 하지 못했거든요. 그건 회사 내부 투자에 관련된 이야기라 자세히 말씀드릴 순 없지만. 확실한 건, 제가 생분해에 대해 많은 공부를 했다는 겁니다.”

최 대표의 말에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서 민 대표님께서 말씀하셨던 그 부분. 제가 그 제조 업체와 함께 힘을 합친다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그의 말이 끝나고.

나는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그렇게 해 주신다면 저야 감사하지만…….”

내가 먼저 제안을 하지도 않은 일.

내게 도움을 주겠다고 손을 내미는 최 대표에게 고마움과 함께 의문이 들어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대체 왜지?

왜 내게 이렇게 도움을 주겠다고 하는 거지?

물론 나였어도, 현재 우리 관계를 생각한다면 최 대표를 위해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돕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그도 나와 같은 마음인 걸까……?

내가 고민을 하고 있던 그때.

갑자기 최 대표의 속마음 소리가 들려왔다.

[민 대표라면, 이제 믿고 함께 가도 괜찮을 거 같으니까… 확신을 가지고 도움을 줘도 될 것 같은데? 나와 같은 미래를 꿈꾸는 사람, 이런 믿음이 가는 파트너는 또 만나기 쉽지 않지.]

‘……!’

최 대표의 속마음 이야기에 나는 절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최 대표와 사업 파트너에 대한 의심은 했던 적이 없었다.

다만, 나 홀로 느끼는 건 아닌가, 라는 불안함이 한 스푼 정도는 있었지.

하지만 그의 속마음을 통해 이 생각은 나 홀로 하고 있었다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를 더욱 믿을 수 있게 되었다.

최 대표의 가치관도, 그의 실력까지도 믿음이 갔다.

사업에서 ‘믿음’이라는 단어가 나오기 위해서는 사람과 사람의 신뢰, 그 이상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저 회사와 회사 대표의 친분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이지.

사업으로의 믿음이라 함은 매출, 돈, 성공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게 무슨 믿음이냐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사업에서의 믿음이라는 단어는 그러하다.

단순히 친목을 도모하는 것, 그것과는 견줄 수 없는 것이지.

친분을 바탕으로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매출이 나와 돈을 벌어야 하고.

또 한쪽만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두 업체가 모두 성공적으로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그 믿음이 견고해지고, 비로소 사업 파트너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런 측면으로 바라본다면, 최 대표와 나.

JH 메디컬과 블루 메디컬은 완벽한 사업 파트너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이제는 확신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 * *

똑똑.

“어, 들어와.”

책상 위에 올려진 기다란 명패.

[코리아 메디컬 사장 임정준]

임 사장의 목소리에 닫혔던 문이 열리고, 백 이사가 그를 향해 들어오고 있었다.

“사장님.”

“무슨 일이야?”

백 이사는 자신이 가져온 파일을 그에게 내밀며 말했다.

“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습니다.”

“뭔데?”

하던 일에 집중한 임 사장은 백 이사의 말에도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답했고.

백 이사는 파일을 펼쳐 그에게 종이를 보이며 재차 입을 열었다.

“저희 제조… 계속하시는 겁니까?”

그의 말이 끝나자 그제야 임 사장은 시선을 돌려 그가 내민 파일을 바라보았다.

백 이사가 출력해 온 자료.

판매로 인해 만들어진 매출이 제조에 쏟아부어지고.

그 돈은 그대로 곤두박질처지고 있는 상황의 자료였다.

한마디로 회사 자금이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는 것.

그의 말에 임 사장은 헛기침으로 목을 풀며 답했다.

“새로운 판로를 열려면, 당연히 이 정도는 감수해야지.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야.”

임 사장의 말에 백 이사는 한숨을 삼켜 내며 말했다.

“사장님 말씀대로 크게 투자해야, 큰돈을 벌 수 있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다만, 저희 제조 제품에 연속으로 이렇게 투자하는데 그렇다 할만한 성공이 없어서… 솔직히 불안합니다.”

코리아 메디컬에서 가장 오래 관계를 유지해 온 두 사람.

그렇기에 백 이사는 자신의 의견을 소신껏 어필했고.

늘 그래 왔듯 임 사장은 그의 말을 가볍게 여겼다.

“알아. 근데 백 이사.”

임 사장은 앉은 자리에서 고개를 들어 백 이사를 바라보았고.

“네, 사장님.”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어. 우리 코리아 메디컬이 괜히 국내 탑 기업이겠어?”

그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을 이어 갔다.

“한국에서 탑을 이렇게 오랜 기간 찍고 있다는 건,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게 아니야. 내가 이런 일로 주춤할 리가 없잖아. 세상은 빠르게 바뀌고 있어. 공격적인 투자, 새로운 방안이 필요해.”

“그렇지만…….”

“백 이사는 걱정 말고, 나랑 같이 계속해서 제조에만 힘을 써.”

그는 임 사장의 말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말했다.

“판매 쪽이 원래 제 권한이지 않습니까?”

“이제 판매 라인은 서 이사한테 맡겨 두고, 제조에 힘을 싣자고.”

임 사장은 자신의 계획에 절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 갔다.

“코리아 메디컬… 점점 판매는 줄이고, 제조 쪽으로 갈 생각이야.”

코리아 메디컬의 새로운 방향에 백 이사는 입술을 말아 넣은 채 임 사장의 시선을 회피했다.

그가 대답이 없자, 임 사장은 백 이사를 바라보며 물었다.

“민지훈 제품 잡지에 실린 게 뭐라고 했지?”

“아, 이달의 메디컬 잡지 말씀이십니까?”

“응. 며칠 전에 임 차장이 가져와서 알려 주더라고.”

백 이사는 그의 눈을 바라보며 답했다.

“파우더 스플린트입니다. 민지훈이 만든 제조품도 그거 하나고요.”

임 사장이 고개를 주억거리자, 백 이사가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저희도 소모품 제조 쪽으로 가시려는 겁니까?”

“아니, 그 자식을 뒤따라갈 필요가 뭐 있어.”

그는 입꼬리를 길게 찢으며 말을 이어 갔다.

“그 자식보다 한발 빠르게 움직여야지. 민지훈이 우리 회사에서 아이디어 냈던 제품이 녹는 스크류였었지?”

“네, 맞습니다.”

“그 제품을 누를 만한, 민지훈을 짓밟을 물건을 만들어야지.”

임 사장은 눈썹을 들썩이며 음흉한 표정으로 읊조렸다.

“회사의 용 꼬리 하나가 잘려 나갔다고 해서, 뱀의 머리가 된 그 자식이… 용을 위협하게 놔둘 수는 없잖아?”

그의 말에 백 이사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위협조차 되지 않는 그런 동네 구멍가게 아닙니까?”

“응. 구멍가게에서 좋은 물건이 제조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애초에 그럴 큰돈을 만질 수 있는 위치도 아니고.”

허공을 보고 읊조리던 임 사장은 고개를 돌려 백 이사를 바라보았다.

“백 이사. 우리 자금 끌어올 곳 좀 없나?”

“자금이요?”

“어. 우리도 공격적인 큰 투자를 시작해야지.”

* * *

KTS 방송국.

태어나 방송국이라는 곳에 처음 발을 들인 나는 마치 체험 학습을 온 아이처럼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달의 메디컬 잡지사와의 인터뷰로 인해 찾아온 이곳.

항상 메디컬 회사와 병원이 주 무대인 내게, 방송국은 너무나도 낯설고 생소한 곳일 수밖에.

로비에서부터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입을 떡 벌렸다.

“방송국도 병원만큼이나 정신없는 곳이구나…….”

정장을 차려입은 채로 로비에 있는 카페로 발길을 옮겼고.

이곳에서의 내 복장은 굉장히 낯설어 보였다.

방송국에 출퇴근 하는 사람들의 복장은 생각보다 자유로웠다.

연예인들을 마주치지는 않았지만.

작가, PD 등 방송 관계자들의 복장 중 아직까지 나와 같은 정장은 보지를 못했고.

그래서인지 이곳에서 내 모습은 꽤 이방인 같아 보일 정도.

그때.

지이잉.

[발신인 : 이달의 메디컬 한가람]

오늘 인터뷰를 하기로 했던 잡지사 직원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여보세요?”

- 아, 민 대표님. 저 한가람입니다.

“네, 안 그래도 저 방송국 로비에 도착했습니다.”

- 벌써 오셨습니까?

“예. 생각 보다 일찍 도착해서, 카페에서 시간 좀 보내려고 했어요.”

- 아… 정말 죄송한데, 제가 지금 가는 길인데 앞에 사고가 났는지 차가 막혀서 전화 드렸어요.

“아, 얼마나 걸리실까요?”

- 최대한 빨리 가기는 할 텐데, 앞에 상황 때문에. 한… 10분에서 20분 정도 늦을 것 같아서요. 죄송합니다, 대표님.

“아닙니다. 사고 때문에 그러시는 건데요, 뭐. 그럼 저 로비 카페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조심히 오세요.”

- 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최대한 빨리 가겠습니다.

“예.”

그녀와 전화를 끊은 후, 나는 커피를 주문했고.

멍하니 카페에 앉아 로비의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몇 분이 흘렀을까.

아무런 고민 걱정 없이 휴식을 취하던 그때.

“어?”

방송국에서 밖으로 나가기 위해 로비를 걸어가는 한 사람.

너무나 낯익은 얼굴에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저 사람은……?”

나는 그 얼굴에 홀린 듯 로비로 빠르게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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