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2화
“네? 이달의 메디컬이요?”
나는 수화기에 대고 크게 외쳤고.
- 예, 이번에 저희 잡지에 JH 메디컬의 제품이 실렸는데. 혹시 보셨을까요?
역시나.
이번 달 잡지에 우리 제품이 나왔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고 전화를 건 모양.
“아, 네. 봤습니다.”
- 제품이 워낙 유명해서 저희가 잡지에 실은 건데, 알고 보니 JH 메디컬이 생긴 지 1년이 채 안 된 신생 제조 회사더라고요. 혹시나 제가 잘못 알고 있으면,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아닙니다. 1년이 안 된 회사가 맞습니다.”
그녀는 내 말에 탄성을 내뱉으며 말했다.
- 그런데 어떻게 그런 좋은 제품을 출시하셨는지, 정말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 그래서 말씀인데요, 민 대표님과 같이 새로 제조 회사를 설립하신. 그리고 메디컬 업계에 이제 발을 들이신 분들을 위해 좋은 본보기가 될 것 같아서요.
그녀는 조심스레 말을 이어 갔다.
- 이번에 인터뷰를 요청 드리고 싶은데, 언제 가능하실까요?
말투는 꽤나 조심스러웠지만.
질문은 그렇지 않았다.
그저 가능하냐고 묻는 것이 아닌, 날짜를 묻는 그녀.
이달의 메디컬 잡지의 홍보 효과가 뛰어난 것을 알기에.
그녀 역시 내게는 그저 행운이 찾아온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물론 나 또한 내 물건이 잡지에 조그맣게라도 실리고.
이렇게 그 물건의 회사 대표인 나와 인터뷰를 해 준다는 것이 감사한 것은 사실이었다.
다만, 회사 대표로서 그리고 메디컬 업계의 종사자로서 인터뷰를 한다는 것이 처음이라 긴장이 됐을 뿐.
“제가 아는 대로라면, 잡지 중에 ‘이달의 메디컬인과 만나다’ 그 해당란에 제가 실리는 건가요?”
- 네, 잘 아시네요.
잡지 중 ‘이달의 메디컬인과 만나다’라는 페이지가 있다.
매달 두 명의 메디컬과 관련된 사람을 취재하는 내용으로, 메디컬 회사 관계자.
혹은 의사 등 메디컬과 관련된 사람을 취재해 인터뷰한 내용이 올라오는 것이지.
내가 그동안 봤던 그 페이지의 대부분은 의사이거나, 강단에 서는 강사들이었다.
간혹가다 메디컬 업체 사장들이 나오기는 했으나, 드문 경우였지.
그 자리에 내가 나올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이건 내게 엄청난 기회였으니까.
이번 잡지에 파우더 스플린트가 실렸었고.
그 효과는 미미하기는 했으나, 효과는 확실하게 있는 편이었다.
잡지를 보고 지방의 병원들에서도 연락이 왔으니까.
그런데 훨씬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인터뷰 페이지에 내가 나온다면?
그리고 내가 나와 파우더 스플린트를 홍보한다면, 그 효과는 훨씬 더 극대화될 것이다.
내가 이 기회를 차 버릴 일은 당연히 없었지.
제품 홍보가 기반으로 깔렸지만, 인터뷰를 통해 나는 ‘JH 메디컬’이라는 내 회사를 알리고 싶은 마음이 컸다.
나는 파우더 스플린트를 메인 제품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내가 제조업계에 뛰어든 이유.
공을 들여 지금 제품을 개발하고 있는 이유.
모두 ‘인체 생분해성 제품’ 때문이다.
나는 그 제품이 한국을, 그리고 전 세계를 뒤흔들 제품이라고 생각하고 확신했다.
제품만으로도 혁신적이라고 생각했지만.
출시가 되자마자 온 메디컬계가 집중하려면, 우선 JH 메디컬이 유명해지고 커져야 한다고 판단했다.
어느 분야든 유명해져야, 그들의 행보를 바라봐 줄 터.
제품으로만 유명해지는 데는 아무래도 시간이 걸리니까 말이다.
파우더 스플린트, 그리고 이후 내가 출시할 소모품들은 모두 생분해성 제품의 발판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개발한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이 인터뷰는 JH 메디컬을 잘 알릴 수 있는 좋은 수단이었지.
“저한테 기회를 주신다면, 저야 감사하죠. 신생 회사에 그런 좋은 자리를 마련해 주셔서요.”
- 좋은 제품, 비전이 있는 분들을 인터뷰하는 게 저희 잡지 회사의 방향이니까요.
“그럼 인터뷰는 언제 어디서 진행되나요?”
- 날짜는 다음 주 이후로 저희와 조율해 주시면 되고, 인터뷰는 방송국에서 진행할 예정입니다.
“방송국이요?”
- 네. 저희 잡지사가 최근에 방송사 KTS와…….
그녀는 방송국과 잡지사가 같은 계열사라는 것을 한참 설명했다.
“예,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 그래서 인터뷰 진행은 KTS 방송국에서 진행될 겁니다.
“알겠습니다.”
- 그럼 스케줄 확인하시고, 이 번호로 연락 주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그녀와 전화를 끊은 후.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예상했던 루트대로 탄탄히 흘러가는 것은 아니었지만.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제품과 회사를 알리는 데 도움을 주고 있었으니까.
나는 더욱 회사 발전과 성장을 위해, 조금이라도 나태해질 수가 없었다.
내게는 JH 메디컬이 정상에 올라선 후.
해야 할 일들이 너무나도 많았으니까.
* * *
회사 근처의 프라이빗한 술집.
입구에서부터 직원의 안내에 따라 자리로 이동했다.
테이블들이 모여 있는 일반 술집과는 달리.
모든 자리가 룸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리고 각 방에서 대화가 새어 나오지 않도록, 문이 모두 꽉 닫혀 있었지.
그야말로 사업 대화를 나누기에는 너무나 제격인 곳이었다.
똑똑.
직원은 나를 대신해 문을 두드렸고.
드르륵—
이내 문이 열리고, 나를 반기는 사람.
블루 메디컬의 최대훈 대표였다.
“안녕하세요.”
나는 그를 바라보며 인사했고.
그 또한 앉아 있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내게 다가왔다.
“아이고, 민 대표님. 오랜만에 얼굴 뵙습니다.”
“그러니까요. 잘 지내셨습니까?”
“그럼요. 덕분에 아주 바쁘고 열심히 돈 벌고 있죠. 하하.”
우리는 짤막한 인사와 함께 자리에 앉았고.
“제가 최 대표님 회사 근처로 가려고 했는데, 여기까지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 말에 그는 손사래를 치며 답했다.
“아닙니다. 저희 공장이야 외곽에 있는데, 그 근처에는 대표님 모시고 갈 마땅한 곳도 없거든요. 저도 서울 올라와서 좋은 음식과 술 먹는 게 좋고요. 하하.”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오늘 마음껏 드십시오. 제가 대접하겠습니다.”
그는 내 말에 빠르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휴. 제가 대접해야죠. 저한테 일도 주시는 분인데…….”
물론 내가 최 대표에게 파우더 스플린트 OEM을 의뢰해 물건을 생산하고 있는 위치였다.
따지고 싶지는 않았지만, 누군가 굳이 따져 묻는다면 내가 ‘갑’의 위치라는 것이지.
그렇다고 해서 나는 그에게 대접을 받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추호도 없었다.
내가 그에게 돈을 주고 물건 제조를 맡기지만.
최 대표 덕에 나 역시 완벽한 물건을 판매해 돈을 벌고 있으니까.
그가 아니었다면, 더욱 비싼 가격에 낮은 질의 상품을 판매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아이디어부터 물건 의뢰는 내가 했지만.
그가 제조를 맡아 준 덕에 내가 돈을 벌고 있기에, 나는 그에게 고맙고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나를 위해 함께 힘써 주는 사람들에게는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항상 감사함을 표현하고 싶을 뿐.
“제가 더 감사하죠. 저도 덕분에 이 자리에 있는 거 아닙니까.”
나는 테이블 위, 술이 담긴 고급스러운 병을 들어 그의 빈 잔에 따라 부으며 말했다.
“자, 한잔 받으시죠.”
“예.”
“저희가 너무 바빴던 터라 이제야 한잔을 기울일 수가 있게 됐네요.”
그는 내가 들고 있던 병을 받아, 내게 기울였다.
“그러게요. 이런 자리 너무 좋네요.”
챙—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은 채, 술잔을 부딪쳤다.
그렇게 근황과 파우더 스플린트에 대한 짧은 이야기를 이어 갔고.
술병이 다시금 가득 채워진 후.
나는 그를 향해 입을 열었다.
“최 대표님.”
“네.”
“제가 이번에 새로운 아이디가 하나 있는데, 이런 제품은 어떨지…….”
최 대표는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들고 있던 술잔을 내려놓으며 내게 집중했다.
“어떤 제품 말씀이십니까?”
그의 눈은 반짝이고 있었다.
그를 보면 항상 나와 결이 비슷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같은 미래를 바라보며 달리는 사람.
사담을 나누는 것보다, 메디컬에 관련된 일과 관련한 이야기를 나눌 때 눈이 반짝거리는 인물이었다.
“파우더 스플린트의 반응이 꽤 좋지 않습니까?”
“그렇죠.”
“그래서 저는 이 제품을 디벨롭 시켜서, 다른 제품을 하나 더 출시했으면 해요.”
그는 내 말에 마른 침을 삼키며 눈썹을 들썩였다.
“스플린트지만, 기능이 다른 걸 말씀하시는 건가요?”
최 대표는 내 말이 무얼 뜻하는지 단번에 알아차렸고.
“네. 교정용 스플린트를 만들면 어떨까 싶어요.”
내 말이 끝나자 그는 입술을 움찔거리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오오… 괜찮은데요?”
“이미 시중에는 목, 팔, 다리 등 교정 목적으로 나온 스플린트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 제품들은 말 그대로 시중에서 쉽게, 마트나 인터넷에서 구매할 수 있는 거죠.”
“그렇죠?”
나는 손가락을 튕기며 그에게 말했다.
“저는 치료 회복용, 그리고 자세가 좋지 않거나 디스크 초반의 환자도 사용할 수 있는 교정용 스플린트를 만들고 싶습니다.”
최 대표는 내 말에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답했다.
“기존 시중에 나와 있는 제품들에 비해 프리미엄 같은 느낌이겠네요.”
그의 말에 나는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맞습니다. 효과가 훨씬 뛰어난 제품이죠. 금액대는 당연히 약국이나 마트에 있는 제품들보다는 비쌀 테지만, 효과 역시 월등한 제품을 만들고 싶어요.”
최 대표는 입술을 잘근 깨물었고.
이내 얼굴에 미소가 번져 왔다.
“그러네요. 항상 치료 목적인 제품들의 성분, 성능은 뛰어났는데. 교정용은 꽤 단순했던 것 같아요. 교정용이라는 그 제품을 저희가 새로 써 보시죠.”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그를 바라보며, 나는 술잔을 높이 들었다.
“최 대표님과 함께 사업을 진행할 수 있어서, 너무 좋습니다.”
내 술잔을 보며, 그 역시 내 앞으로 술잔을 가져다 댔다.
“제가 더 감사하고, 좋죠.”
챙—
우리는 다시금 술잔을 부딪쳤고.
또 한 번 블루 메디컬과 새 제품을 만들겠다며 손을 잡게 되었다.
사업 파트너라는 건, 한 명의 희생이 나와서는 안 된다.
상부상조의 관계, 같은 목표를 가진 사람과 만나야 최고의 파트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또 한 명의 사업 파트너를 만나게 된 것 같다.
블루 메디컬의 최대훈 대표.
뛰어난 능력,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그와 오래도록 함께하고 싶었다.
한입에 털어 넣어 버린 빈 잔을 보며, 나는 입꼬리를 올렸고.
최 대표는 내게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근데 민 대표님.”
“네?”
“저번에 말씀하셨던, 생분해성 제품 말입니다. 그 제품은 어떻게 되어 가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그와 메디컬에 관련된 이야기는 시시때때로 나눴던 것 같다.
제조 전문 지식이 풍부한 인물이었기에, 내가 많은 것을 묻기도 했고.
그 역시 기존 지식에 머물지 않고, 늘 새로운 것들을 쌓아 가는 사람이었기에.
내 궁금증과 의문을 풀어 주기 위해 최 대표는 공부를 쉬지 않고 있었지.
이건 내가 부탁을 하거나, 누군가의 의뢰가 아니더라도.
최 대표의 성향이 그러했다.
그래서인지 나와 메디컬 이야기를 나누고 나면, 단순히 대화를 이어 가기 위해 한 말들이 아니라.
항상 그 내용에 대해 공부하고, 알아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녹는 스크류랑 플레이트를 계속 개발 중이기는 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 제품 출시가 조금 빨랐으면 하는데. 아직도 조금 기간이 걸릴 것 같더라고요.”
내 말에 그는 자신의 턱을 어루만지며 내게 말했다.
“저번에 말씀하셨던 부분이 아직 해결되지 않아서 그런 건가요?”
나는 코를 찡긋거리며 고개를 주억거렸고.
최 대표는 팔꿈치를 테이블에 올려 내게로 몸을 기울여 말했다.
“민 대표님만 괜찮으시다면, 제가 제안을 하나 드려도 될까요?”
그의 눈은 확신에 가득 찬 듯 반짝이고 있었고.
최 대표의 제안을 안 들어 볼 이유가 없었다.
나 역시 그의 안목과 뛰어난 능력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당연하죠. 어떤 제안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