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1화
“이게 무슨……!”
신소율이 가리키는 잡지 맨 아래쪽.
그곳에는 너무나도 익숙한 물건의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나는 그 사진을 빤히 바라보며 그녀에게 물었다.
“이거 우리 파우더 스플린트 아니에요?”
내 물음에 신소율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파우더 스플린트.”
그녀는 잡지를 내 쪽으로 밀며 말을 이어 갔다.
“여기가 신제품이나 메디컬 제품들 소개하는 곳인데, 저희 제품이 이달의 제품 소개에 떴더라고요. 대박이죠?”
그녀의 말에 나는 입을 떡 벌린 채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달의 메디컬’.
메디컬에 대한 이야기로 꾸려진 이 잡지.
외국 제품들도 소개되고, 메디컬 이슈들이 모인 이 잡지는 내가 광주에서 메디컬 업계에 일할 때부터 알고 있던 잡지였다.
그 당시에는 내가 직접 잡지를 구매하지는 않았지만.
당시 근무하던 회사들에서 매달 구독을 하고 있던 서비스였지.
그리고 이후 모든 메디컬 회사들, 병원에서도 한 곳도 빼놓지 않고 이 잡지를 보고 있었다.
그만큼 이 업계에서는 영향력이 있는 잡지라는 것이지.
하지만 이달의 메디컬 잡지에서 내가 직접적으로 보고 겪었던 제품이 나왔던 적은 몇 년간 거의 없었다.
예전에 코리아 메디컬에 있을 당시.
딱 한 번, 코리아 메디컬의 이야기가 잡지에 실린 적이 있었다.
당연히 코리아 메디컬이 업계 상위권 회사니까 한 번쯤은 나올 법은 했었지.
그 전후로는 단 한 번도 가까운 메디컬 회사나 제품, 병원이 잡지에 실린 적이 없었다.
메디컬이라는 것이 정형외과 메디컬 회사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메디컬도 병원과 마찬가지로 업계의 종류가 많다.
나는 정형외과와 일을 하는 정형외과 쪽 메디컬의 제조업인 것이고.
그와 마찬가지로 내과, 치과, 산부인과, 신경외과 등 메디컬 업계의 종류가 너무나도 많다.
그러니 정형외과 쪽 전문 메디컬 중 탑을 찍고 있던 코리아 메디컬 한 곳만 나온 것도 대단한 일이었지.
그런데 이 잡지에 코리아 메디컬, 거대 메디컬 등 내로라하는 메디컬이 아닌.
내가 차린 메디컬의 제품이 잡지에 실리다니.
내게는 너무나도 영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놀라고 멍한 내 얼굴을 본 신소율은 자신도 감격스러운지 입술을 잘근 깨물며 말했다.
“대표님께서 제조하신 물건이 이렇게 잡지에 실리다니, 저는 진짜 대단한 회사에 다니는 것 같아요.”
그녀의 말에 나는 입꼬리를 올리며 답했다.
“저도 처음 회사를 차린 건데, 이게 다 소율 씨랑 지음 씨 덕분이죠.”
나는 잡지에 실린 맨 아래쪽을 손으로 툭툭 치며 말을 이어갔다.
“아직은 잡지 맨 아래쪽, 잘 보이지도 않는 곳이지만. 다음에는 메인에 실려 봤으면 좋겠네요. 하하.”
그녀는 내 말에 활짝 웃었다.
“우와. 그럼 진짜 대박인데요?”
나는 잡지에 시선을 고정한 채 깊은 생각에 잠겼다.
내가 제조업에 뛰어 들어, JH 메디컬을 차린 지 아직 1년도 되지 않은 지금.
벌써 첫 번째 제조품이 잡지에 실리고, 물건도 생각보다 더 많은 관심을 받고 있었다.
더 열심히 제조업에 온 시간과 정성을 투자해 노력한다면.
JH 메디컬을 유명하게 알리는 것도.
제조업에서 성공하는 것도.
그리 머지않은 미래일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잡지 표지에 보이는 메인 제품.
저 자리에 언젠가는 내 제품이 오르는 날이 올 수 있겠지.
나는 입술을 잘근 깨물며 의지를 불태웠다.
지금보다 더 집중하자…….
메디컬 제조업에서 탑으로 올라갈 수 있도록, 반드시.
* * *
파우더 스플린트의 제조, 판매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듯했다.
블루 메디컬에서 제조하고 물건의 재고를 쌓아 둔 것도.
병원에 영업 후, 물건 납품을 하는 시스템까지.
결국, 고민하던 영업사원과 판매 직원을 뽑거나.
회사에 판매 쪽 파트를 크게 만드는 것은 아직 하지 않고 있었다.
제품이 파우더 스플린트 하나밖에 되지 않기에, 제조가 아닌 판매 쪽으로 파트를 늘리는 게 섣부르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지.
하지만 이대로 사업이 점점 더 커진다면, 당연히 총판을 구하거나 판매 쪽으로 회사를 키워야 할 터.
나 역시 제조 물건이 더 유명해지고 품목이 늘고 판매가 많아져, 판매 쪽으로도 회사를 키우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다.
그게 내가 원하는 메디컬 회사에서의 최종 목표였으니까.
회사에서 직접 물건을 제조하고, 그 물건을 한국에서 유일하게 우리 회사에서만 판매를 하는 시스템.
제조사이자, 총판인 셈이지.
그렇게 만들고 싶지만 아직 회사의 제조 품목이 너무나도 적었다.
이제 하나의 제품만을 만들었으니까.
“몸에서 녹는 플레이트랑 스크류들은 아직 판매까지 가려면, 적어도 몇 달은 걸릴 텐데…….”
나는 일정을 체크하며 쓰읍 소리를 냈다.
그때까지 파우더 스플린트 하나만으로도 회사 유지는 충분히 가능했다.
그 제조품 외에도 내게는 NA 바이오에서 총판을 맡긴 줄기세포 복원 주사의 매출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여기서 안주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현실에 만족하며 사는 게 아니라, 더 큰 꿈을 가지고.
더 많은 제품을 만들어 환자들에게 선보이고 싶었으니까.
나는 턱을 어루만지며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빠른 시간 안에, 또 다른 제품을 하나 더 냈으면 좋겠는데…….”
탁탁—
나는 손가락으로 책상 위의 잡지에 실린 파우더 스플린트를 치며 읊조렸다.
그때.
문득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 하나.
“그래, 지금은 새로운 제품을 내는 것보다 파우더 스플린트에 디벨롭을 해서 제품을 출시하는 게 더 빠를 것 같은데?”
나는 손가락을 튕기며, 종이에 글씨를 써 내려갔다.
“스플린트를 어떤 식으로 발전시키는 게 좋을까……?”
그렇게 나는 한참을 대표실에서 움직이지 않은 채, 새로운 제품을 구상하기 위해 머물렀다.
* * *
“희성아, 우리 다음 주에 병원 가야 하는데, 그 전에 너무 불편하면 내일 해외 출국 전에 빠르게 왕십리 정형외과 다녀올까?”
진희성의 매니저 김 실장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
“아니야. 팔도 이제 거의 다 나았잖아.”
“그래도 너 평소에도 팔 자주 다치는데, 잘 관리해야지.”
“그렇기는 하지만…….”
진희성은 자신의 팔을 어루만지며 말을 이어 갔다.
“게다가 우리 해외 촬영 이번에 짧으니까, 다음 주면 한국 오잖아.”
“그래도 며칠 사이에 네가 불편할까 봐 그렇지.”
김 실장의 말에 진희성은 눈썹을 들썩이며 답했다.
“그때 병원 원장님이 이거 빼도 된다고 하시기는 했어.”
“그럼 병원 가서 스플린트 풀고 해외 촬영갈까?”
김 실장은 누구보다 자신의 연예인인 진희성을 걱정했다.
최근 팔이 다친 후부터 그의 신경은 온통 진희성의 팔뿐이었을 정도.
“아니야. 이게 오히려 차고 있으니까, 팔을 잡아 줘서 그런지 더 안정적이더라고.”
“그래?”
“응. 형도 알잖아, 내 팔…….”
진희성은 말끝을 흐렸고.
김 실장은 그 이야기를 다 듣지 않고도, 무슨 말인지 단번에 알아차린 듯 보였다.
“당연히 알지.”
“그래서 바로 스플린트 빼면, 항상 좀 불편했거든. 근데 이 제품이 안에 파우더 처리가 되어 있어서 그런 건지, 그냥 계속 차고 있어도 물집도 안 잡히고 편해.”
그는 진희성의 말에 한숨을 삼켜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네가 편하다니까 다행인데, 언제라도 불편하면 이야기해. 촬영도 중요한데, 항상 몸이 첫 번째야. 무슨 말인지 알지?”
“네네, 알겠습니다. 형도 몸 좀 챙기면서 일해. 며칠 동안 잠도 못 자고 일하던데?”
“에이. 연기하는 너만 하려고.”
김 실장은 진희성의 어깨에 손을 올린 채, 재차 질문을 던졌다.
“오늘도 팬들이랑 소통하게 라이브 킨다고 했지?”
“응. 곧 하려고. 요즘 계속 바빠서 팬 미팅 못 한 지도 너무 오래됐잖아. 이렇게 라이브 방송으로라도 소통 안 하면 너무 힘들어.”
“맞지. 얼른 준비하자.”
진희성은 미소를 지으며, 차에 올라타 차량 한쪽에 휴대전화를 세팅했다.
“오늘도 차에서 라이브 할 거야?”
“응. 저번에 밖에서 했더니, 주변이 너무 시끄럽더라고.”
“알겠어. 그럼 나 앞에 앉아 있을 테니까, 무슨 일 있으면 말해.”
“그럴게.”
몇 분 뒤.
진희성의 SNS 라이브가 켜지고.
그의 SNS를 팔로우하고 있던 팬들이 하나둘 라이브 방송을 보기 시작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팬들이 들어오는 것을 확인한 진희성은 밝게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그리고 이내 빠르게 올라오는 댓글들.
- 오빠, 보고 싶어요!
- 오늘도 촬영해요?
- 해외 촬영은 내일 가는 건가요?
- 오빠 팔은 좀 어때요, 아직 깁스 하고 있는 거예요ㅠㅠ?
- 팔은 아직 아파요?
- 오빠 팔 괜찮아요?
쉴 새 없이 올라오는 댓글들.
그 댓글들은 온통 진희성에 대한 궁금증으로 가득했고.
그는 웃으며 입을 열었다.
“여러분, 저 기다리고 있으셨구나. 질문이 엄청나게 많네요.”
진희성은 밝은 얼굴로 댓글을 읽어 내려갔다.
“오늘은 광고 촬영 있고, 해외는 내일 가요!”
손으로 댓글을 하나씩 바라보며 말을 이어 갔다.
“그리고 팔은 지금 다 나은 상태에요. 걱정해 줘서 고마워요.”
- 근데 왜 아직 깁스하고 있어요?
- 저번에 그 스플린트잖아요. 왜 아직 안 풀었어요?
- 팔 아직도 아픈 거 같은데ㅠㅠ?
- 오빠, 아프지 마요.
댓글을 본 진희성은 입꼬리를 올리며 팬들의 걱정스러운 마음을 진정시키듯 말했다.
“아, 이건 다 나았는데 교정처럼 하고 있는 거예요.”
진희성은 자신의 팔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제가 예전에도 이쪽 팔을 다쳤었잖아요. 그래서 조금 약한 편인데, 이렇게 계속 스플린트를 차고 있으니까 팔에 무리가 안 가고 잘 잡아 주더라고요.”
어느새 팬들과 소통의 라이브는 또다시 파우더 스플린트로 포문을 열게 되었다.
같은 시간.
그 라이브 방송을 보고 있는 또 다른 누군가.
“어? 이거 우리 제품이잖아?”
JH 메디컬에서 휴대전화를 든 채 소리치는 문지음의 모습.
그녀는 지난번 진희성이 파우더 스플린트를 라이브 영상에서 비친 후, 유명해졌다는 걸 알아냈었다.
그래서 이후 또 진희성이 언급을 하지는 않을까, 라는 생각에 그의 SNS를 팔로우해 라이브를 꾸준히 보고 있던 것이다.
몇 번의 라이브가 있었지만, 오늘 재차 언급이 된 모습을 본 그녀는 서둘러 영상을 저장했다.
그리고는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말했다.
“이러다가 우리 회사 제품 더 유명해지겠는데?”
문지음은 고개를 돌려 비어 있는 대표실을 쓰윽 바라보며 읊조렸다.
“대표님 오시면 빨리 이 영상부터 보여 드려야지!”
* * *
“다녀왔습니다.”
사무실로 복귀를 하며 직원들을 향해 입을 열자마자 내게 달려오는 사람.
문지음이었다.
“대표님!”
“네, 지음 씨. 무슨 일 있어요?”
“아까 또 진희성 배우가 우리 제품 SNS 라이브에서 언급했어요.”
그녀의 말에 나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물었다.
“정말요?”
“네. 이것 좀 보세요.”
문지음은 내게 녹화된 영상을 틀어 내밀었고.
나는 그 영상 속 진희성에게 집중했다.
“여기서 진희성이 팔도 다 나았는데, 교정하는 것처럼 차고 있다고 하면서. 사람들이 저게 교정이 되는 스플린트냐고 엄청 신기해하고 궁금해하더라고요.”
그 말에 나는 순간 손가락을 튕기며 소리쳤다.
“…교정!”
내 말에 놀란 문지음이 몸을 움찔거리며 물었다.
“네?”
“아니, 왜 교정 생각을 못 했지?”
문지음은 눈을 연신 깜빡이며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그녀의 휴대전화를 문지음의 손에 내밀며 활짝 미소를 지었다.
“지음 씨, 알려 줘서 고마워요.”
“아… 네.”
어떤 쪽으로 파우더 스플린트를 발전시키면 좋을까, 라는 생각으로 며칠을 고민했었다.
하지만 내 마음을 사로잡을만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었는데.
이 영상과 문지음의 이야기로 번뜩 떠오르는 생각.
나는 대표실로 발길을 옮기며, 전화를 걸기 위해 주머니 속 휴대전화를 꺼냈고.
그때.
지이잉.
모르는 번호로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고 있었기에, 나는 고민할 것도 없이 수신 버튼을 재빨리 눌렀다.
“여보세요?”
- 민지훈 대표님 맞으실까요?
“네, 그런데요. 어디서 전화 주셨을까요?”
- 안녕하세요. ‘이달의 메디컬’ 잡지사에서 연락 드렸습니다.
“네? 이달의 메디컬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