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0화
[회사 차리고 나면 결혼하자고 할 줄 알았는데, 지훈이는 나랑 결혼할 마음이 있기는 한 건가?]
김사랑의 속마음 소리에 나는 놀라 눈을 휘둥그레 뜨고 시선을 옮겼다.
당연히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저 ‘결혼’이라는 것에 움찔했다기보다는.
내가 JH 메디컬을 차리고 나서, 결혼을 하자고 할 줄 알았다는 사실이 놀라운 것이었다.
김사랑의 말에 놀란 것은 맞지만, 결혼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거나 싫다는 감정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속마음 소리에 기분은 썩 좋지는 않았다.
미안한 마음이 앞서고 있었지.
나는 아직 결혼할 마음이 없었으니까.
그녀가 좋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단지, 나는 아직 결혼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행복 정형외과의 김준수 병원장.
그러니까 그녀의 아버지에게 투자를 받아 차린 회사였고.
이렇게 차린 회사만 가지고, 그녀에게 당당히 결혼하자고 말을 하고 싶지가 않았다.
내 힘으로 직접 무언가를 크게 일으킨 후에, 결혼을 하고 싶었던 것이지.
나와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는 그녀의 마음을 확인한 지금.
나는 의지에 불타올랐다.
JH 메디컬을 더욱 성공시키고 싶은 마음이 말이다.
하루빨리 JH 메디컬을 내 힘으로 성공시켜, 당당하게 그녀에게 내 마음을 고백하고 싶어졌다.
김사랑이 나와 결혼에 대해 홀로 고민하지 않게.
성공 후 그녀에게 당당히 프러포즈를 하고 싶었으니까.
그녀의 속마음을 들었다고, 김사랑을 바라보며 기다려 달라는 말을 내뱉을 수는 없었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그저 그녀에게 내 마음을 표현하는 것뿐.
나는 김사랑과 눈을 맞추고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사랑해.”
내 말에 김사랑은 배시시 눈웃음을 보이며 머리를 흔들었다.
“나도 많이 사랑해.”
나는 그녀의 얼굴을 보며, 한 번 더 마음에 확신을 가졌다.
성공 후 그녀를 데려오고 싶다고.
내 여자로, 내 사랑스러운 아내로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며, 제주도에서의 깊고 아름다운 밤을 함께 맞이했다.
* * *
다음 날.
제주도에서 함께 맞이한 아침.
우리는 눈을 뜨자마자 제주 바다를 보기 위해 호텔을 나섰다.
호텔에서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이는 푸르른 바다.
“와아. 너무 예쁘다.”
김사랑은 해맑은 미소로 나를 바라보고 바다를 가리키며 소리쳤고.
나는 바다가 아닌, 김사랑의 눈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게. 진짜 예쁘네.”
“뭐야, 왜 나를 보고 말해. 바다 좀 봐 봐. 진짜 예쁘지?”
“사랑이 네가 더 예뻐.”
그녀는 몸을 흔들며 미소를 지었고.
나는 이내 한쪽에 차를 주차하며 말했다.
“그럼 우리 바다 좀 보면서 커피 한잔할까?”
“오오. 좋아!”
김사랑과 나는 바다가 보이는 통유리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여기서 커피 마시니까, 더 맛있는 것 같아.”
“그러게. 게다가 사랑이랑 같이 오니까 더 좋은데?”
“나도.”
우리는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켜고, 앞에 놓인 바다가 아닌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렇게 휴가 와서 여유롭게 있으니까, 너무 좋다.”
그녀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고.
“사랑이도 요즘 많이 바빴지?”
내 말에 김사랑은 한숨을 짧게 내쉬며 답했다.
“그렇지. 내가 저번에 말했나? 원장님 한 분 그만두셨다고?”
“정말?”
“어. 허 원장님이 그만두셨거든.”
나 역시 행복 정형외과의 원장은 모두 알고 있었기에, 그녀의 말에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병원 자체가 바빠졌어.”
“그랬겠네. 허 원장님 환자분들까지 나눠서 진료 봤을 테니까.”
“어. 우리 아빠, 항상 내가 딸이라는 거 쉬쉬했었던 거 알지?”
“응. 일부러 숨기셨었잖아.”
김준수 병원장은 자신의 병원에서도.
그리고 주변 의사나 병원에도 자신의 딸이 김사랑이라는 것을 쉬쉬했었다.
김사랑 원장의 실력이 출중함에도 불구하고.
괜히 뒤에서 병원장의 딸이라, 행복 정형외과에서 한자리하는 것이다는 둥.
그녀가 상을 받거나, 무슨 일이 있더라도.
모든 것이 병원장의 딸이기에 일어나는 일이다, 라는 말이 듣기 싫었을 터.
자신 아버지의 마음을 너무나도 잘 이해하기에, 그녀도 굳이 드러내고 싶어 하지는 않았었지.
“근데 요즘에 아빠가 우리 병원에는 내가 딸이라는 걸, 굳이 숨기지 않더라고.”
“정말?”
“응. 그래서 우리 병원 원장님들은 내가 아빠 딸이라는 거 다 알게 됐어.”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녀에게 물었다.
“지금까지 숨기시다가 갑자기 왜 밝히신 거지?”
“이제 내가 병원에서 그냥 원장으로만 지내는 게 아니라, 나를 더 키우고 싶으신가 봐.”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너무나도 그녀 아버지의 마음이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떠나, 병원장의 마음으로 말이지.
이제 병원장의 나이는 점점 많아지고 있었고.
병원을 물려받을 사람이 필요했을 터.
당장은 아니더라도, 자신이 병원에서 떠나기 한참 전부터 준비는 해야 했을 테니까.
“병원장님이 이제 하나씩 가르치시고 싶으신가 보네.”
“맞아. 그냥 환자들 진료하는 것도 바빠졌는데, 아빠 덕분에 정신없이 시간 보내고 있었어.”
나는 바쁘고 지쳐 있었다는 그녀를 바라보며 코를 찡긋거렸다.
“요즘 고생 많았겠네, 사랑이.”
“응. 그래서 이렇게 자기랑 여행 와서 여유롭게 있으니까 너무 좋아.”
다시금 얼굴에 미소를 띤 그녀.
나는 그 환한 얼굴을 보며,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나도 얼른 자리 잡고, 우리 이렇게 자주 여행 다니자.”
“그러자.”
그녀와 나는 눈으로 사랑을 속삭이며, 커피를 들이켰다.
잠시 후.
휴대전화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
나는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돌려 바다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몇 분이 지나도, 그녀의 고개는 휴대전화를 향해 숙이고 있었고.
그 모습에 나는 테이블을 노크하듯 두드렸다.
똑똑.
테이블을 두드리는 소리에도 그녀는 한껏 집중한 얼굴로 휴대전화를 바라보았고.
“사랑아!”
내 부름에 그녀는 그제야 화들짝 놀란 얼굴로 나를 보았다.
“깜짝아.”
“뭐하길래, 휴대전화만 보고 있어?”
내 물음에 그녀는 조심스레 휴대전화를 내게 내밀었다.
화면에는 주식 그래프가 요동치고 있는 것이 보였고.
“뭐야, 사랑이 주식 해?”
그녀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답했다.
“요즘 주변에 나 빼고 다 주식 하더라고. 그래서 나도 한번 해 볼까 싶어서 시작했어.”
“언제?”
김사랑은 눈동자를 굴리며 답했다.
“음… 이제 한 달 되어 가나?”
그녀는 초롱거리는 눈으로 말을 이어 갔다.
“100만 원 정도 넣어서 시작했는데, 어제는 분명 치킨값은 벌었었거든?”
이내 시무룩해진 그녀의 표정.
나는 그 얼굴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근데 오늘은 그 치킨이 사라졌어?”
내 말에 그녀는 입꼬리를 내린 채 고개를 끄덕였다.
“응. 치킨이 아니라, 스테이크값을 날렸어…….”
속상해하는 그녀의 표정에, 나는 눈썹을 들썩이며 말했다.
“주식 잘 모르면, 안 하는 게 더 나아. 보면서 속상하고, 기분이 업다운 되면 자기가 힘들잖아.”
“맞아. 나랑 안 맞는 것 같아. 나 주식 시작하고, 병원에서도 환자분 나가고 틈만 나면 주식 창 열어서 확인한다니까?”
“맞아. 그거에 따라서 기분이 일희일비하면 안 돼. 자기가 힘들어.”
그녀는 어깨를 들썩이며 답했다.
“100만 원 잃어도 주식 공부 한 번 했다, 싶은 마음으로 넣었는데……. 아무리 그래도 열심히 힘들게 번 돈 100만 원 중에 몇백 원, 몇천 원이라도 잃으니까 너무 속상해.”
입꼬리를 한껏 내리고 내게 토로하는 그녀를 바라보며 나는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주식으로 돈 벌면 너무 행복한데, 100원이라도 잃으면 속상하지. 그래서 주식은 공부해서 사 놓고 자꾸 열어 보면 안 되는 것 같아.”
김사랑은 나를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자기도 주식 해 봤어?”
그녀의 말에 나는 머리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그럼. 난 오래됐지.”
“오오. 어디에 넣었어, 올랐어?”
나는 어깨를 들었다 내려놓으며 답했다.
“음… 나는 사서 그냥 놔두는 거야. 왜냐면 나는 많은 기업에 넣은 게 아니거든. 사람들 따라서 우량주 찾고, 주식에 대해 크게 공부를 하지는 않았어.”
“그럼?”
“나는 실제로 보고 겪으면서 몸소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던 회사들에 내 돈을 넣고 싶더라고.”
내 말에 김사랑은 입을 떡 벌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게 제일 확실한 방법이네. 직접 몸으로 공부한 회사.”
“응. 그래서 진짜 예전에 메디컬 쪽에 몸담았을 때. 그때부터 야금야금 사 모으기 시작했어.”
“그걸 계속하는 중이야?”
“어. 처음에는 재미로 시작했다가, 지금은 의무감으로 매달 사는 중이야.”
김사랑은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내게 윙크를 보냈다.
“자기. 그럼 그 기업 나도 좀 알려 주라.”
그 익살스러운 모습에 나는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안 돼. 이게 지금 돈을 벌고 있는 것도 아니고, 괜히 나 때문에 자기 속상하면 안 되니까.”
“에이. 조금만 넣어 볼게.”
“내가 다음에 오를 것 같다, 싶으면 알려 줄게.”
김사랑은 내 말에 입술을 삐죽 내민 채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그럼 나 그때까지 주식 안 하고 기다려야겠다.”
“응. 우리 그럼 이제 놀러 나갈까?”
내 말이 끝나자마자 김사랑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소리쳤다.
“좋아!”
* * *
며칠간 달콤한 휴식을 보낸 뒤.
회사로 복귀한 이른 아침.
문을 열자마자 나를 향해 인사하는 직원들의 모습.
“대표님, 오셨어요?”
신소율과 문지음을 바라보며 나는 손을 흔들었다.
“네, 좋은 아침입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보는 그녀들의 모습에 미소를 지었다.
“다들 잘 쉬고 왔나 보네. 얼굴이 좋아지셨는데요? 하하.”
내 말에 문지음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잠도 푹 자고. 대표님이 주신 휴가 알차게 쓰고 왔어요!”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신소율도 이에 질세라 입을 열었다.
“저도 가족끼리 휴가 다녀왔어요.”
“잘 보내고 왔다니까, 다행이네요.”
문지음은 눈웃음을 지으며 주먹을 불끈 쥐고 소리쳤다.
“이제 더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대표님!”
그녀의 너스레에 신소율과 나는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아침부터 지음 씨 파이팅 넘치는 모습 보니까, 저도 힘이 나는데요?”
그때.
띠리리리—
일상으로 복귀했다는 게 실감이 나는 벨소리.
우리는 서둘러 각자의 자리로 돌아와 업무를 시작했다.
그렇게 다시 업무를 시작한 지, 몇 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대표실에서 제자리에 앉아 일주일간 밀린 업무를 처리하던 중.
똑똑.
문을 두드리는 누군가.
“네, 들어오세요.”
내 답에 닫혔던 문이 열리고, 신소율이 들어왔다.
“대표님!”
그녀의 손에 들린 책자 하나.
그리고 신소율은 무슨 일인지 다소 격양된 목소리로 그것을 들고 내게 다가왔다.
“네, 무슨 일 있어요?”
내 말에 그녀는 마른 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표님. 이것 좀 보세요.”
그녀가 내 책상에 내민 책자는 다름 아닌, 잡지였다.
“이거 매달 오는 메디컬 잡지 아니에요?”
“네, 맞아요.”
한국의 큰 메디컬 잡지사.
그곳에서는 매달 하나에서 두 개의 잡지를 출간하고는 했었다.
딱 메디컬과 관련된 소식과 내용으로 구성된 잡지.
나 역시 메디컬에 종사하고 있기에, 잡지를 매달 받아보는 중이었지.
잡지에는 외국의 제품들, 국내의 메디컬 회사들의 이야기.
그리고 병원 관련 이야기들이 실렸었다.
나는 잡지를 한 손으로 빠르게 넘겼고.
평소와 별반 다를 것 없는 잡지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신소율에게 물었다.
“잡지에 무슨 소식 있는 거예요?”
내 말에 그녀는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듯 입술을 잘근 깨물며 답했다.
“네. 여기 좀 보세요, 대표님.”
그녀는 몸을 숙여 내 앞에 놓인 잡지를 넘겼고.
이내 손가락으로 한 페이지를 가리켰다.
나는 천천히 그녀의 손가락 끝으로 시선을 옮기던 중.
신소율은 다시금 내게 소리쳤다.
“여기 좀 보세요. 잡지에 대표님이 나왔어요!”
“제가 잡지에 나왔다고요?”
나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그녀의 손끝의 기사를 바라보았고.
그곳을 본 나는 입을 떡 벌리고 소리쳤다.
“이게 무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