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8화
“뭐?”
코리아 메디컬 임 사장은 자신의 앞에 앉은 백 이사를 향해 소리쳤다.
“지금 병원들에서 전부 반품 연락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우리가 금액도 낮춰 준다고 했잖아. 그거 똑바로 안 전했어?”
임 사장의 말에 백 이사는 쓰읍 소리를 내며 말했다.
“전부 사장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전달했습니다.”
“근데 결과가 이렇단 말이야?”
“…네.”
임 사장은 화가 잔뜩 난 듯 입술을 잘근 깨물었고.
서 이사가 백 이사의 말에 덧붙이듯 입을 열었다.
“오히려 단가를 낮춘 게 악수였던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단가를 낮추니까, 의사들 사이에서 의심이 피어난 것 같더라고요.”
임 사장은 서 이사의 말에 미간을 찌푸렸고.
“반품을 하겠다고 하니, 그 병원들만 단가를 낮춰 준다더라부터 시작해서. 나머지 제품도 이상이 있는 거 아니냐는 둥…….”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임 사장이 책상을 세게 내리쳤다.
쾅—!
그 소리에 백 이사, 서 이사, 그리고 임 차장까지 놀라 몸을 움찔거렸다.
“의사협회… 미친 거 아니야?”
그는 분노에 차올라 씩씩대며 말을 이어 갔다.
“내가 그동안 의사협회에 쓴 돈이 얼마고, 지들 위해서 한 짓이 얼마나 많은데. 이제 와서 보이콧을 선언하시겠다?”
임 사장은 화를 이기지 못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고.
“일이 이 지경이 되도록 다들 뭘 한 거야. 꼴도 보기 싫으니까, 다들 나가!”
그 모습에 백 이사가 자리에서 따라 일어나 그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저… 사장님.”
“왜.”
“화가 나신 건 충분히 이해합니다만. 지금 저희가 하루빨리 대안을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임 사장의 고함에도 그 누구도 사장실을 나가는 사람은 없었다.
당장 눈앞에 직면한 위기를 헤쳐 나가야 할 테니까.
백 이사의 말에 임 사장은 한숨을 길게 내쉬며, 분노를 삭이고 있었다.
“하아… 대체 일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꼬인 거야…….”
그는 창밖을 바라보며,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심한 말과 욕을 겨우 삼켜 내고 있었고.
잠시 사장실은 고요한 정적만이 흐르고 있었다.
임 사장은 다시 자리에 앉아 눈을 질끈 감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당장 위기가 닥쳤는데도, 감정적으로만 대할 수는 없을 터.
이내 눈을 뜬 임 사장은 백 이사를 향해 물었다.
“그래서 지금 어떤 병원들에서 반품 요청한 거야?”
그의 말에 백 이사는 재빨리 서류를 내밀었다.
“여기 목록 정리해 왔습니다. 저번에 반품하겠다는 병원들보다 배는 늘었습니다.”
“뭐라고?”
눈썹을 치켜올린 채 목록을 받아든 임 사장은 아랫입술을 잘근 씹었고.
목록의 병원을 하나하나 보던 임 사장이 입을 열었다.
“미친… 이런 작은 병원에서도 반품을 요청한다는 말이야?”
“네. 아무래도 줄기세포 복원 주사의 여파 때문에… 입소문이 난 모양입니다.”
서 이사도 이에 대화에 참여했다.
“맞습니다. 의사협회에서 보이콧 선언을 한 뒤에, 주변 의사들에게까지 입김이 가해지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X발.”
그제야 위기를 한 번 더 실감했는지, 임 사장이 연거푸 한숨을 쏟아 냈고.
백 이사는 자료를 바라보며 말했다.
“제품 제조하는 데 돈 투자가 많이 됐지 않습니까. 근데 투자한 금액만큼 물건 판매가 되지 않았고, 이대로 간다면… 위기 그 이상이 올 것 같습니다.”
코리아 메디컬에는 새로운 대책이 필요했다.
새롭게 제조에 투자했고.
본전을 떠나, 몇 배는 벌겠다 생각한 임 사장이었지만.
본전은커녕, 오히려 적자가 일어났다.
더군다나 그 일로 인해, 기존에 있던 물품들의 반품과 거래처까지 잃게 될 위기에 놓인 코리아 메디컬.
서 이사 역시 자신이 정리해 온 파일을 테이블 위로 내밀며 말했다.
“당장은 업체 대금도 기존 판매로 인한 수익으로 지불 가능하기는 하나, 이대로 계속 간다면… 업체 대금. 그리고 하다못해 월급에 회사 운영 자금까지 위험할 예정입니다.”
임 사장은 자신의 머리를 손으로 꾹꾹 누르며, 읊조렸다.
“새로운 대책… 묘수를 찾아야 해…….”
눈을 감고 고개를 뒤로 젖혀 생각에 잠겼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당면의 위기에 관한 생각보단, 지난날의 위기가 왜 찾아왔는지에 대한 분노만 가득 차 있었다.
“애초에 기사가 난 게 수상해… 나를 저격하고 올린 기사에, 보이콧에…….”
임 사장은 그저 지난 일에서 남 탓을 하기에 급급했다.
그는 잠시 뒤 눈을 번뜩 뜨고, 백 이사와 서 이사가 정리해 온 자료를 바라보며 말했다.
“까딱하다가는 거대 메디컬한테 밀리겠어. 이대로 갈 수는 없지…….”
정형외과 메디컬 업계에서 한국 1, 2위를 다투는 코리아 메디컬과 거대 메디컬.
그들은 모두가 인정하는 라이벌 회사였다.
하지만 앞에 놓인 자료에는 급격히 거대 메디컬에 밀리기 시작한 코리아 메디컬의 내용이 드러나 있었고.
이렇게나 격차가 벌어진 건, 처음이었다.
임 사장은 미간을 찌푸린 채, 고개를 들어 백 이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요즘 거대 메디컬은 좀 어때?”
그의 물음에 백 이사는 한숨을 삼켜 내며 답했다.
“거대 메디컬은 줄기세포 복원 주사 총판을 가져가서 판매 중이지 않습니까. 저희 제품과 비교가 되면서… 그 제품만으로도 매출이 상당해져 있는 상태입니다.”
애초에 코리아 메디컬의 제품이 잘못되어 이 지경에 달해 있지만.
애꿎은 화살은 임 사장의 조카인 임 차장에게로 꽂혔다.
“임 차장, 네가 애초에 민지훈한테 총판 받아 왔으면 이 사태도 안 벌어졌을 거 아니야!”
임 차장은 그의 말에 그저 고개를 숙인 채 답했다.
“…죄송합니다.”
지금은 임 사장을 향해 사과를 할 뿐, 그가 취할 수 있는 자세가 없었다.
“민지훈 그 새끼는 지금 그 줄기세포 복원 주사로만 돈 벌고 있는 거야? 그렇게 회사를 차려 놓고?”
임 사장의 물음에 백 이사와 서 이사는 서로 눈치를 보았다.
둘 다 JH 메디컬의 근황에 대해 알고 있는 모양.
임 사장이 들어 좋을 소식이 아니었기에, 서로 이야기를 떠넘기는 듯했지만.
먼저 눈이 마주친 백 이사가 결국, 입을 열었다.
“민지훈이 이번에 소모품 제조를 했는데, 그게 좀 잘 되는 것 같더라고요.”
“뭔데?”
“파우더 스플린트라고… 물건을 이번에 출시했는데. 반응이 꽤 좋습니다.”
임 사장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소리쳤다.
“그거 우리 회사에 있을 때 냈던 아이디어 아니야?”
“그 제품은 아닙니다.”
임 사장은 눈동자를 빠르게 굴리더니 이내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우리 저번에 회의 때, 제조 아이디어 냈던 목록 있지?”
임 사장의 말에 백 이사는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사장님. 다시 제조에 투자하시려는 겁니까?”
“어. 판매만으로는 더 이상은 힘들어.”
“그렇지만… 이번에 첫 제조품으로 이렇게…….”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임 사장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회사가 더 커지려면, 새로운 것에 계속 도전을 해야 하는 거야. 제자리에만 머물면 성공할 수가 없어.”
임 차장 역시 자신의 삼촌을 말리듯 입을 열었다.
“사장님 그렇지만, 이번 건처럼 잘못되기라도 하면 회사에 손실이 클 것 같은데. 기존처럼 판매에만…….”
하지만 임 사장은 자신의 생각이 너무나도 확고했다.
“아니.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야. 우리 회사도 메디컬에서 판매로 이만큼 올라왔으면, 다른 방향도 나갈 줄 알아야 해. 언제까지 우리가 거대 메디컬과 라이벌로만 있을 수는 없지.”
임 사장은 눈을 찡긋거리며 확신에 찬 얼굴로 말을 이어 갔다.
“우리 회사가 압도적인 1위가 되려면, 새로운 방향성이 필요해. 한 우물만 파면 제자리일 수밖에 없어.”
서 이사 역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에게 말했다.
“사장님, 제조에 투자할 금액은요?”
“아직 우리 판매 병원들 있잖아. 우선 그대로 판매 이어 가면서, 그 수익으로 제조에 투자를 해야 해. 이후 투자금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걱정 말고.”
“…네.”
“이번 주까지 회의 진행해서, 제조 아이디어들 좀 정리해 와.”
“알겠습니다.”
“다들 나가 봐.”
임 사장의 말에 그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사장실에서 나온 백 이사는 서 이사의 어깨를 툭 쳤고.
그렇게 그 둘은 회사 옥상으로 조용히 향했다.
“백 이사님. 민지훈이랑은 아직 연락해요?”
그의 물음에 백 이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가끔 지훈이가 안부 차 연락이 오기는 하는데, 굳이 사적으로 만나면 불편한 사이가 될 것 같아서 연락은 최대한 안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음… 거기는 생각보다 꽤 잘 나가고 있는 것 같던데…….”
서 이사는 담배에 불을 붙이며, 말을 이어 갔다.
“회사에서 이런 식으로 갑자기 일 키웠다가 망하는 거, 한두 번 보는 것도 아닌데. 좀 불안하네.”
그는 하얀 연기를 내뿜었고.
백 이사도 한숨을 내쉬며 그에게 답했다.
“그러게요. 그래도 우리 회사가 동네 구멍가게 같은 회사도 아니고. 한국에서 나름 내로라하는 기업인데, 별일이 있겠습니까?”
“이번에 저 줄기세포 복원 주사 때문에 이 지경까지 왔는데도 모르겠어요?”
서 이사는 입술을 잘근 깨물며 말했다.
“임 사장님이 성급하게만 안 움직이시면, 그래도 승산이 있지 않을까 싶기는 한데. 저도 불안하기는 합니다.”
그들은 허공을 바라보고, 동시에 뽀얀 연기를 한숨과 함께 뿜어냈다.
그 연기에는 그들의 걱정과 불안함이 함께 쏟아지고 있었다.
* * *
“부산 VIP 병원에 물건 들어간 거 확인했어요?”
나는 문지음을 향해 물었고.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네, 오전에 도착했다고 확인했습니다.”
“이상 없이 잘 도착했다니, 다행이네. 그럼 대전은요?”
얼마 전, 부산뿐 아니라.
대전에 있는 큰 정형외과에서도 파우더 스플린트를 찾는 전화가 왔었다.
서울을 포함해, 이제 점점 분포하기 시작한 파우더 스플린트.
“대전은 방금 저랑 연락했는데, 날짜랑 수량 먼저 체크했고. 모레 물건 출고하기로 공장과 연락했습니다.”
이번에는 신소율이 내게 상황을 보고했고.
그녀들의 업무 진행 능력에 나는 미소가 절로 새어 나왔다.
“알겠어요. 바빠도 조금만 힘냅시다.”
“네, 대표님.”
“그리고 소율 씨 잠깐만 내 방으로 좀 올래요?”
“예.”
그녀는 나를 따라 대표실로 향했다.
대표실에 들어오자마자 나는 소파에 앉아, 그녀를 맞이했다.
“여기 앉아요.”
“네.”
내 부름에 노트와 펜을 챙겨 들어온 신소율의 모습.
나는 걱정스러운 표정과 말투로 그녀를 향해 입을 열었다.
“소율 씨, 요즘 힘든 건 없어요?”
“음… 힘든 것보다 회사가 좀 바빠졌으니까요.”
“그렇지 않아도, 그것 때문에 소율 씨를 불렀는데.”
매일 쉬지 않고 울리는 회사 전화.
정신없이 일하는 그녀들을 보았고, 신소율과 문지음의 얼굴은 점점 피곤에 찌들어 가는 게 눈에 들어왔다.
“너무 바쁘면, 직원을 더 뽑아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요. 소율 씨 생각은 어때요?”
“아, 직원이요?”
“네. 바쁘니까 그냥 뽑을까 했는데. 오히려 이럴 때 직원을 뽑으면, 소율 씨나 지음 씨가 신입에게 일을 알려 주는 게 더 벅차지는 않을까 싶어서, 먼저 물어보려고 했어요.”
내 말에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맞아요. 뽑아 주시려고 한 건, 감사한데. 제 생각에는, 지금은 저희 둘만으로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고민을 하기는 했지만.
당연히 직원이 늘어나는 것을 좋아할 줄 알았는데, 그녀의 반응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힘들지 않아요?”
“그렇긴 하지만, 이제 막 제품이 나와서 바쁜 거라. 지금 직원을 뽑는 게 애매하다고 생각해요. 저희 둘이 충분히 해낼 수 있고, 직원 충원은 저희가 너무 힘들 때 말씀드려도 괜찮을까요?”
신소율은 내 제안을 거절하면서도, 전혀 내가 기분이 나쁘지 않도록 이야기했고.
나 역시 그녀의 말에 100%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언제든 회사에 필요하거나 불편한 거 있으면 말해 줘요. 내 사람들 챙기는 데는 뭐든 하고 싶으니까.”
그녀는 내 말에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바빠도 밥은 잘 챙겨 먹고 일하고요. 요즘 소율 씨도, 지음 씨도 너무 힘들어 보여요.”
“네, 그럴게요. 대표님도 몸 챙기시면서 일하세요. 저희 JH 메디컬에서 오래 일하려면, 대표님이 힘내셔야죠.”
나는 활짝 웃으며 머리를 흔들었다.
“그럴게요.”
“그럼 저는 나가서 일 봐도 되죠? 지음 씨 혼자 전화 받고 있을 것 같아서요.”
“네, 그럼요.”
그녀는 밝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인 뒤 대표실을 빠져나갔고.
나는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읊조렸다.
“내가 직원 하나는 진짜 잘 뽑았다니까?”
그때.
지이잉.
주머니 속 휴대전화의 알람이 울리기 시작했고.
[발신인 : 블루 메디컬 최대훈 대표]
나는 발신인을 확인 후,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창 제조하느라 바쁜 최 대표가 이 시간에 무슨 일이지?”
평소 업무 시간에 전화를 잘 하지 않는 그였으니까.
나는 순간 싸한 기분에 서둘러 수신 버튼을 클릭했다.
“여보세요?”
- 대표님, 저 최대훈입니다.
그의 목소리는 아니나 다를까, 꽤 다급했다.
“네, 알고 있습니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 예. 지금 문제가 좀 생겼습니다…….
“문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