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7화
“얼른 이것 좀 보셔야겠는데요?”
문지음의 말에 신소율과 나는 동시에 그녀에게로 다가갔고.
그녀의 앞에 켜진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았다.
나는 그 화면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게 뭐지?”
화면에는 배우 진희성이 나온 영상이 틀어져 있었다.
“이 배우 진희성 맞죠?”
내 물음에 신소율은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맞아요. 진희성 진짜 잘생겼다…….”
그녀는 진희성의 얼굴을 보며 입을 틀어막은 채 화면에 집중했다.
TV 드라마나 영화와 가깝게 지내지 않는 나 역시 알고 있을 정도로.
배우 진희성은 꽤 유명한 인물이었다.
연기면 연기, 수려한 외모에 팬들을 향한 마음까지 대단한 것으로 명성이 자자한 배우였으니까.
“근데 진희성을 왜 보여 주는 거예요?”
나는 문지음을 향해 물었고.
그녀는 나와 신소율을 바라보며 영상을 재생시켰다.
“이것 보세요. 진희성 배우가 최근에 라이브 방송을 한 건데요.”
“라이브 방송이요?”
“네. SNS에서 생방송으로 방송하면서, 팬들이랑 그냥 소통하는 건데. 거기서 우리 제품을 착용하고 있었나 봐요.”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영상을 지켜보았다.
- 네, 제가 얼마 전에 다쳐서… 이 제품이 진물도 나지 않고, 너무 좋더라고요…….
영상 속 배우 진희성은 파우더 스플린트를 다친 팔에 착용한 채, 솔직한 후기를 팬들에게 쏟아 내고 있었다.
직원들과 나는 아무런 대화도 나누지 않은 채, 영상이 끝날 때까지 집중했고.
팟—
영상이 끝나자 우리는 입을 떡 벌린 채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이거 완전 우리 파우더 스플린트 제품 홍보 영상 아니에요?”
문지음의 말에 신소율도 공감하듯 고개를 흔들며 답했다.
“그러니까. 이 정도면 간접 광고나 다름없는데요?”
“이 제품을 저 날짜에 착용하고 있는 거 보면, 내가 병원에 샘플 넣어 줬을 때인 것 같은데…….”
나는 날짜를 확인하며 기억을 되짚었다.
“팬들 반응도 장난 아니에요. 무슨 패션 제품도 아닌데, 따라 사겠다는 둥. 어디서 살 수 있냐는 둥.”
“그러네. 이것 좀 보세요, 대표님.”
신소율은 SNS에 자주 검색되는 검색어 목록을 내게 보여 주었다.
“진희성 깁스, 진희성 스플린트, 파우더 스플린트… 진물 없는 스플린트.”
목록은 전부 우리의 제품.
그러니까 진희성과 관련하여 제품이 검색되고 있었고.
그 덕에 우리 제품은 출시와 동시에 유명세를 타고 있었다.
“이게 의료법이 있다 보니, 진희성 배우가 직접 언급은 하지 않았는데. 요즘 인터넷이 워낙 활발하다 보니까. 제품을 다들 찾아서 병원에 오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이렇게 주말 지나자마자 발주가 폭주한 거네요.”
나는 그 위력에 혀를 내둘렀다.
“배우의 한 마디가 이렇게까지 위력을 보여 줄 수 있다는 게 너무 대단한 것 같아요.”
문지음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우리 진희성 씨가 언급한 덕에 이렇게 유명해지고 있는데, 뭐 선물이라도 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녀의 말에 내가 아닌, 신소율이 빠르게 입을 열었다.
“아니지. 이미 항간에 광고 아니냐는 댓글이 보일 정도로 칭찬만 했다던데. 오히려 우리가 진희성 배우와 무언가를 주고받았다는 말이 나오면, 큰일이야.”
“맞네, 오히려 악수가 되겠네요.”
그들의 말에 나는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
“너무 고맙긴 하지만, 이걸로 감사를 표하기가 애매한 건 사실이에요. 덕분에 유명해지기는 했으나, 의료용 제품이니까요.”
나는 진희성의 사진을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 갔다.
“그래도 감사하긴 한데, 감사 인사를 드릴 곳이 있으면…….”
그때.
띠리리리—
띠리리리리—
사무실의 전화기들은 다시금 발주를 위해 울리고 있었고.
우리는 서둘러 모였던 자리에서 벗어나,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 * *
며칠 뒤.
“다녀왔습니다.”
나는 사무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직원들을 향해 인사했다.
“대표님, 오셨어요?”
“네, 별일 없었어요?”
내 물음에 신소율이 일어나 답했다.
“예, 그냥 발주 전화들만 왔어요.”
“알겠어요. 무슨 일 있으면 말해 줘요. 몇 시간은 사무실에 있을 거예요.”
그녀를 뒤로하고 대표실로 향하려는 순간.
신소율이 나를 붙잡았다.
“저… 대표님.”
“네?”
“네?”
“저… 대표님.”
“무슨 일 있으세요?”
신소율의 말에 내가 고개를 가로젓자, 그녀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대표님, 얼굴이 안 좋으신데… 요즘 너무 무리하셔서 그런 거 아니에요?”
나는 그녀의 말에 유리에 비친 내 얼굴을 바라보며, 손으로 얼굴을 만지작거렸다.
내가 얼핏 보기에도 좋아 보이는 안색은 아니었다.
하지만 애써 미소를 지은 채, 그녀를 향해 답했다.
“아, 괜찮아요. 어제 잠을 좀 못 자서 그랬나 봐요.”
“아…….”
“신경 써 줘서 고마워요, 소율 씨.”
“네, 필요하신 거 있으시면 말씀해 주세요.”
“그럴게요.”
나는 대표실로 들어와 곧장 지친 몸을 이끌고 자리에 털썩 앉았다.
“하아…….”
한숨이 절로 새어 나오는 지금.
단 하루도 쉬지 못하고, 몇십 분도 맘 편히 쉰 적이 없는 것 같은 요즘이었다.
물론 점심은 제때 먹었던 적이 언제인가 싶을 정도.
바쁘게 움직이다 보니, 점심은 그저 김밥 한 줄을 차 안에서 이동하며 먹기 일쑤였지.
내가 이렇게 바쁜 이유는 다름 아닌, 파우더 스플린트 때문이었다.
제조업에 들어와 처음으로 내놓은 제조품.
이 제조품이 여러 회사를 거치지 않고.
그러니까 판매의 중간 유통이 빠지기에, 제조사에서 나를 통해 그대로 병원으로 판매가 되는 방식이다.
그래서 중간 유통이 단 한 곳도 없기에, 저렴한 금액으로 병원에 납품할 수 있는 것이지.
그 결과, 내가 생각하던 대로 많은 환자가 보다 더 저렴하게 좋은 제품을 이용할 수 있게 되는 것.
이게 바로 내가 제조업에 뛰어든, 내가 이 업계에 바라던 바이다.
이렇게만 간다면, 장점은 너무나도 많을 수밖에 없다.
유통 업체가 없으니, 당연히 지금처럼 가격이 저렴하다는 것.
나는 종이 위에 적힌 단가를 손으로 툭툭 치며 읊조렸다.
“그렇다고 마진이 적은 것도 아니지. 아니, 오히려 잘 나오는 거지.”
중간에 판매 회사들이 낀다면, 그들에게도 남는 것이 있어야 하기에.
내가 병원에 바로 넣는 금액보다는 저렴하게 줘야 할 터.
물론 그렇게 된다면, 병원에서도 지금보다 높은 금액에 물건을 받아 갈 테지만 말이다.
그렇듯 저렴하게 물건을 제조하고, 내 마진을 남긴 뒤.
병원에 바로 판매하는 장점이 있다.
또 여러 회사가 복잡하게 끼지 않아도 되니, 신경 쓸 일도 없다는 것.
어쨌든 회사와 회사의 거래가 되는 것이기에.
단가를 논하거나, 그들과의 비즈니스적인 관계도 유지해야 할 터.
장점이 뚜렷하게 많지만.
단점 역시 명확했다.
다른 회사가 중간에 끼게 된다면, 그 회사와 내가 연관이 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 회사가 병원에 영업을 하고, 납품 역시 그 총판 측에서 진행할 터.
그러니까 즉, 나는 물건을 제조만 하면 되는 것이고.
총판을 맡게 된 메디컬 회사에서 이후를 책임지고 판매를 하게 된다.
“지금은 제조부터 판매, 납품이 오롯이 내 몫이니까…….”
나는 한숨을 쉬며 힘듦을 홀로 토로했다.
당연히 JH 메디컬이 큰 회사였다면, 이런 점이 단점으로 작용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우리 회사가 제조하고, 우리 회사만이 독점으로 판매를 하는 강점으로 남았겠지만.
아직 JH 메디컬은 규모가 작고.
제조, 영업, 납품 이 모든 일을 하는 게 나 홀로이기에, 단점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지.
아직은 근처 병원들만 관리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적은 수량은 직접 병원에 넣기도 했지만.
많은 수량이 나올 경우, 제조사를 통해 직접 그곳에서 택배를 보내는 시스템을 이용 중이었다.
그 덕에 납품에 대해 아직은 관리가 수월한 편.
하지만 더욱 납품 거래처가 많아지고, 영업의 규모가 커진다면?
이 일을 홀로 감당하는 게 맞을까, 라는 고민에 휩싸였다.
그때.
지이잉.
[발신인 : 051—XXX—XXXX]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휴대전화를 바라보았다.
“051이면… 부산인데?”
그리고는 서둘러 수신 버튼을 클릭했다.
“여보세요”
- JH 메디컬의 민지훈 대표님 전화 맞을까요?
“네, 맞습니다. 혹시 어디서 전화 주셨을까요?”
- 아, 안녕하세요. 부산에 있는 부산 VIP 정형외과에서 연락드렸습니다.
나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발신지에 놀라 입을 떡 벌렸다.
부산 VIP 정형외과.
부산을 대표하는 정형외과 중 한 곳으로.
광주와 서울에서만 근무를 했던 나 역시 이미 익히 알고 있는 병원이었다.
메디컬 업계에 일하는 직원들은 자신이 주로 활동하는 지역이 아니면, 다른 병원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가 없다.
자신이 영업해야 할 동네의 병원도 수도 없이 많으니까.
하지만 각 지역별로 유명한 병원 몇 개 정도는 외우고 있었다.
외우려 애를 쓰지 않더라도, 당연히 알 수밖에 없는 것들이지.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유명한 몇 개의 병원은 당연히 들으며, 일을 해 왔을 테니까.
나 역시 부산 VIP 병원은 광주에서 영업 사원을 하던 시절부터 알고 있던 병원이었다.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유명한 몇 개의 병원은 당연히 들으며, 일을 해 왔을 테니까.
외우려 애를 쓰지 않더라도, 당연히 알 수밖에 없는 것들이지.
나 역시 부산 VIP 병원은 광주에서 영업 사원을 하던 시절부터 알고 있던 병원이었다.
그런데, 그런 병원에서 내게 무슨 일로 전화를 걸었지?
게다가 내 번호와 회사는 어떻게 알아낸 거지?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부산 VIP 병원에서 저한테는 무슨 일로 전화를 주신 걸까요?”
- 물건을 좀 여쭙고 싶어서요.
“네, 물건이라면 어떤…….”
- 파우더 스플린트 제품을 좀 받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그의 말에 나는 다시금 눈을 휘둥그레 뜨며 말했다.
“죄송하지만, 전화 주신 곳이 병원 어느 부서인지 알 수 있을까요?”
병원이 맞느냐 확인차 물어본 것이 아니었다.
전화를 건 쪽이 공급실이라면, 이미 스플린트의 사용법을 자세히 아는 사람일 터.
그리고 그저 병원을 관리하는 부서라면, 제품에 대해 자세히는 알지 못하기에, 나는 상대의 부서가 궁금했던 것이지.
단순히 통화만으로도 이야기가 가능한지 확인을 해야 했다.
- 아, 소개가 늦었네요. 저는 부산 VIP 병원의 우준호 원장이라고 합니다.
그의 말에 나는 놀란 목소리로 답했다.
“병원 원장님께서 전화를 주신 겁니까?”
- 네, 사실은 제가 이 제품이 너무 궁금해서, 주변 지인들을 통해 민 대표님 명함을 좀 받게 되었습니다.
늘 발주 전화는 의사들이 아닌, 공급실에서 오고는 했었다.
물론 내가 병원을 찾아가 영업한다면, 직접 의사들을 만나 발주를 받았었지만.
이후 발주나, 새롭게 물건을 주문하고 싶다면 항상 스플린트를 담당하는 공급실 담당자가 전화를 하고는 했었지.
그런데 우리 제품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이렇게 직접 연락을 주는 의사는 처음이었다.
서울도 아닌, 부산에서 말이다.
게다가 그는 이 제품을 위해 부산에 한 번도 영업을 간 적이 없는 내 명함을 찾아냈다고 했고.
나는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먼저 제품에 관심 가져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원장님.”
- 아닙니다. 좋은 제품 만들어 줘서 제가 고맙죠. 아주 획기적인 제품이더라고요.
그는 호탕하게 웃으며 내게 말했고.
“칭찬 감사합니다. 그럼 저희 제품은 어디서 보신 걸까요? 제가 따로 부산에 영업을 가지는 않았어서요.”
- 아, 환자분들이 오셔서 파우더 스플린트라고 새로 나온 제품이 있다면서 먼저 찾으시더라고요.
“정말요?”
- 네. 저도 놀랐습니다. 기존에 시장에 나와 있는 스플린트들은 늘 똑같지 않습니까. 제품도 종류가 그렇게 많지도 않고요. 근데 이렇게 제품을 지정해서 찾는 환자가 많은 건, 의사 생활하고 처음이었습니다.
부산에 있는 환자들 역시 진희성 SNS로 인한 입소문이 퍼진 모양.
- 그래서 알아보니까, 서울에서 착용한 환자들의 글들이 인터넷에 많이 퍼졌나 보더라고요. 그 글들을 보고, 어찌나 많은 환자가 찾으시던지.
“그렇게 제품을 아시게 되신 거군요.”
- 네. 서울에 지인 의사들한테 물어봤더니, 이미 다들 민 대표님 제품을 사용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부산에서 빨리 받아 보고 싶어 연락드리게 됐습니다.
나는 탁상 위 달력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우선 제가 이번 주에 일정이 다 차 버려서, 부산에 가려면…….”
그는 내 말에 다급히 말했다.
- 아이고. 아닙니다. 부산까지 어떻게 오시겠어요. 우선 샘플만 먼저 택배로 받아 볼 수 있을까요?
“그래도 저희 제품 써 주시는데, 직접 찾아뵙는 게…….”
우 원장은 내 말에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 정말 괜찮습니다. 여기까지 오시면, 저도 죄송하고요. 우선 샘플만 택배로 보내 주실 수 있으실까요?
“그럼… 이번에는 택배로 샘플 먼저 몇 개 보내 드리겠습니다. 얼굴도 안 뵙고, 물건만 드리기가 죄송해서요.”
- 하하. 아닙니다. 오히려 저도 택배로 받으면, 빨리 확인해 볼 수 있어서 좋고요.
“네. 제가 이번 주 중으로 받아 보실 수 있도록 택배 보내겠습니다.”
- 예. 저도 확인해 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대표님.
“감사합니다.”
그렇게 부산 VIP 정형외과의 우 원장과 통화를 마친 후.
나는 더욱 깊은 생각에 잠겼다.
제조만 하느냐, 판매까지 하느냐의 길목에 서 있던 내게.
근교 병원이 아닌, 먼 부산에서까지 연락이 왔다는 사실이 나를 더 고민에 빠지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 제품 하나로 총판을 두기에는, 정말 물건이 하나뿐이었고.
그렇다고 판매, 납품 관리 직원을 뽑기에도.
물건 하나만 보고 뽑아 두기가 애매한 시점.
“…그래. 그냥 내가 조금 더 열심히, 발 빠르게 움직여 보자.”
나는 입술을 잘근 깨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