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4화
“단가 인하? 그게 바로 저희를 기만하는 일입니다.”
협회장의 말에 의사들이 술렁이며 그를 바라보았다.
“처음부터 코리아 메디컬은 가격 인하를 해 주겠다는 말 한마디도 없었습니다. 몇몇 병원에서 코리아 메디컬 제품을 반품한다고 하고, 보이콧이 선언된 후에야 가격을 인하해 준다고 했던 거죠.”
그의 말에 의사들은 술렁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저는 아직 다른 회사 제품을 찾지 못해, 코리아 메디컬 제품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당장 며칠 전에도 발주를 했는데, 금액은 그대로이더라고요.”
“정말요?”
그의 말에 의사들은 놀란 얼굴로 되물었고.
“네. 그래서 저도 발주 후에 다른 병원에 단가 인하 소식을 듣고, 따지려고 하던 와중에 오늘 협회를 오게 되었습니다.”
“이야. 진짜 기만 맞네요.”
“그러네요. 반품을 하겠다고 해야 가격을 깎아 준다는 것도 웃기는 거 아닙니까?”
코리아 메디컬을 향한 민심은 점점 떨어지고 있었고.
그때, 한 의사가 손을 들고 말했다.
“코리아 메디컬 제품을 그대로 사용할 거면, 전부 반품하는 제스처라도 취해야 쓸 수 있는 거 아닙니까?”
그의 조롱 섞인 농담에 장내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네요. 반품할게, 금액 깎아 주면 그대로 쓰고. 뭐 이런 건가요? 하하.”
어이가 없다는 듯 웃는 의사들.
그렇게 의사들은 코리아 메디컬에 대해 깎아내리며 말을 한참 이어 갔고.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협회장이 이내 입을 열었다.
“저는 반품이고 뭐고, 금액을 깎아 주는 거에 대해서 더 코리아 메디컬에 의심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협회장의 한마디에 웃고 있던 장내 분위기는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의사들은 굳은 얼굴로 이어지는 그의 말을 경청했다.
“그저 저희에게 금액만 조금 낮추면 다시 받겠지, 라는 안일한 마음으로 인하해 준 것도 기분이 나쁠뿐더러…….”
협회장은 앞에 앉은 의사들을 쓰윽 훑어보며 입을 열었다.
“뭔가 이상하지 않으십니까, 여러분?”
“어떤 점이 말이죠?”
“보통 인하를 해 주겠다고 한다면, 기사가 터지자마자 민심을 잡으려 금액을 인하시켰을 겁니다. 단지 떠나가려는 민심, 그거 하나 잡겠다고 손해를 보면서도 금액을 낮췄겠다는 거죠.”
그의 말에 의사들은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반품하겠다는 몇몇 병원에만 조용히, 그것도 몰래 단가를 깎아 준다는 게 의심스럽다는 겁니다. 제품이 이상이 있는 것이 아니다, 반품하지 말아 달라, 라는 제스처가 아닌 거 같다는 거죠.”
협회장은 쓰읍 소리를 내며 말을 이어 갔다.
“입막음용으로, 당장 눈앞의 영업을 위해 급급해서 돈을 깎는다는 건…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정말로 제품에 이상이 있다고요.”
협회장의 말에 바로 앞에 앉은 의사가 놀란 얼굴로 소리쳤다.
“그럼 줄기세포 복원 주사가 정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의 질문에 협회장은 아주 단호한 말투로 미간을 찌푸린 채 답했다.
“네.”
이미 코리아 메디컬 제품에 의심을 품었기에, 인터뷰를 한 의사들도 있었고.
기사까지 났으니, 제품의 효과가 확실하지 않다는 건 대부분의 의사들도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하나로 코리아 메디컬을 버리기에는, 너무나 많은 제품을 의사들이 사용하고 있었고.
단순히 그 제품 하나만 버리면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들을 하고 있었던 모양.
하지만 그들의 마음을 알고 있는지, 협회장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저는 이제 코리아 메디컬의 그 어떤 제품도 믿고 사용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럼 협회장님 병원에서 코리아 메디컬 제품은 전량 반품하시는 겁니까?”
“네. 저는 단순히 이번에 사건이 터진 줄기세포 복원 주사 외에도, 이제 코리아 메디컬의 의료 제품이 안전하다, 효과가 확실하다, 라는 말을 믿지 못할 것 같습니다.”
“협회장님 말씀이 맞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금액을 인하한 게 저희를 만만하게 본 거 아닙니까?”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의사도 대화에 참여했다.
“그러네요. 저도 살짝 의심은 하고 있었는데, 입막음용이다, 라고 생각하니. 돈을 깎아 주니까 고마운 게 아니라, 다른 제품들도 이상이 있던 건 아닌가 라는 의심이 드네요.”
코리아 메디컬과 거래를 이어 갈지 말지에 대한 여론이 극명하게 갈리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대화를 이어 가면 이어 갈수록, 중립을 지키던 의사들은 어느새 코리아 메디컬과의 거래를 끊겠다고 외치기 시작했다.
한참 대화를 이어 가던 장내.
그리고 어느새 이들의 대화는 코리아 메디컬 제품을 사용하냐 마느냐가 아니라.
대체 제품으로 어느 회사를 선택하는 게 좋을까? 라는 주제로 넘어가고 있었다.
* * *
똑똑.
오랜만에 찾은 리본 정형외과.
“네, 들어오세요.”
나는 밝은 얼굴로 문을 열고 그에게 다가갔다.
“강 원장님. 안녕하세요.”
“아이고. 민 대표, 오랜만이네.”
“그러니까요. 저번 거대 메디컬 학회 이후로 너무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셨죠?”
그는 자신의 앞에 있는 의자를 가리켰고.
나는 자리에 앉으며 그의 답을 들었다.
“그럼. 민 대표도 제조는 잘 되어 가고 있고?”
“네. 날짜도 차질 없이 나올 것 같습니다. 안 그래도 오늘 샘플 좀 먼저 드리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그는 내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오오. 그래, 안 그래도 샘플 한번 보고 싶기는 했거든.”
나는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파우더 스플린트 샘플 다섯 개를 건넸다.
강 원장도 지난 거대 메디컬 학회에서 내게 스플린트를 주문했었다.
200개를 발주한 리본 정형외과.
하지만 블루 메디컬에서 나올 첫 생산량이 모든 병원의 발주를 충족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나는 원장들을 찾아, 양해를 구하기로 한 것이지.
“여기 샘플 먼저 드리고, 이건 먼저 사용해 보셔도 됩니다.”
“샘플을 다섯 개나 줘도 되는 거야?”
“그럼요. 파우더 스플린트를 처음 써 보시는 거니까, 몇 개는 먼저 뜯어서 사용법 충분히 익히시면 됩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제품을 하나 뜯어냈다.
“이야. 그때 봤던 것처럼 신기하네. 여기서 파우더 처리를 하는 건가?”
“네. 여기를 눌러 주시면…….”
나는 그에게 설명을 이어 갔고.
“그리고 강 원장님. 제가 파우더 스플린트 때문에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그래. 뭔데?”
“이제 생산이 들어가기 시작했는데, 처음 발주 주신 200개 중에 먼저 100개만 넣어 드려도 되나 여쭤보고 양해를 구하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내 말에 그는 눈썹을 들썩이며 내게 답했다.
“난 또 뭐라고. 그렇게 해.”
대수롭지 않게 내 이야기에 흔쾌히 답을 보냈고.
“감사합니다. 이번 발주만 이렇게 따로 넣어 드리고, 다음 발주부터는 수량 차질 없이 넣어 드리겠습니다.”
“아니야. 민 대표가 생각 잘했네. 발주 받은 병원에 조금씩 나눠서 넣고, 먼저 써 보라고 하는 게 낫지.”
“이해해 주셔서 감사해요.”
강 원장은 입꼬리를 올리며 스플린트를 바라보았다.
“사실 100개 넣어 주면, 나머지 넣어 줄 때까지 충분히 쓸 수 있는 수량이기도 하잖아.”
“그렇긴 합니다만, 그래도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는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서 그거 말하려고 한 거면, 그냥 전화해도 되는데. 이렇게 찾아온 거야?”
“네. 그래도 직접 만나 뵙고 말씀드려야죠. 샘플도 보여 드릴 겸, 원장님 얼굴도 뵐 겸, 겸사겸사 왔습니다.”
그는 호탕하게 웃으며 내게 답했다.
“하하. 그래. 내 얼굴을 보러 왔다니까, 듣기는 좋네.”
그때.
눈에 들어오는 강 원장의 책상.
그의 책상에는 기본적인 제품의 카탈로그가 널브러져 있었고.
나는 그 카탈로그를 쓰윽 훑은 뒤, 그에게 물었다.
“원장님. 제품 바꾸려고 하시는 겁니까?”
내 시선을 확인한 강 원장은 혀를 내두르며 답했다.
“지금 코리아 메디컬 때문에 의사들 다 난리야.”
그의 말에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미 코리아 메디컬에서 줄기세포 복원 주사에 대한 입장 발표를 한 기사를 확인했었고.
임 사장은 의사들을 그저 까 내리는 방법으로 당장 눈앞의 불을 끄기에 급급했었으니까.
그거 가지고 코리아 메디컬 제품을 다른 회사 제품으로 대체하려는 건가?
나는 궁금증을 가진 채 그에게 물었다.
“이번에 기사 난 것 때문에 그러시는 겁니까?”
내 말에 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반품을 하겠다고 하니까, 제품 단가를 인하해 주겠다고 하더라고.”
“강 원장님 병원에요?”
“반품을 요구한 병원 전부에 말이야.”
나는 그 말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전량 단가를 인하한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새로운 제품을 잠깐 싸게 파는 것도 아니고.
이미 한참 거래를 해 온 제품의 단가를 낮춘다는 건.
거의 회사가 끝까지 내몰렸다는 뜻.
단가를 낮춰 팔지 못하면, 큰일이 난다는 뜻이기도 하다.
더불어 반품을 요구한 병원에 단가를 낮춰 준다는 말에도 모순이 있었다.
반품을 요구하지 않은 병원에는 그대로 기존 금액을 받겠다는 이야기니까.
임 사장은 의사들끼리는 서로 가깝고, 경쟁자를 떠나 동료라는 사실을 모르는 걸까?
아니면, 벼랑 끝까지 내몰려 멀리 숲을 내다보는 게 아니라.
당장 눈앞의 나무를 보며, 급하게 불을 끄려고 한 것은 아닐까?
강 원장은 눈썹을 들썩이며 내게 말을 이어 갔다.
“돈으로 입막음하면 끝날 줄 알았나 봐. 근데 그런 입막음이 더 찝찝하잖아. 이랬다가 다른 제품도 이상이 있었던 제품일 거라는 의심이 커진 거지.”
“그래서 다들 거래처를 바꾸려고 하시는 겁니까?”
“응. 괜히 가지고 있다가 다른 제품에도 불똥이 튈까, 손절하는 의사들이 많아졌지.”
강 원장의 말에 나는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진정한 사과가 아닌.
돈으로 당장 앞을 막으려고 한 임 사장.
결국, 그 돈 때문에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모습이 눈에 선명히 보이고 있었다.
* * *
왕십리 정형외과, 하성우 원장 진료실.
하 원장은 오늘도 쉴 새 없이 많은 환자의 진료를 보고 있었다.
똑똑.
“네, 들어오세요.”
그는 굳은 목을 손으로 문지르며, 다음 환자를 불렀고.
“안녕하세요, 원장님.”
하 원장의 진료실에 들어오는 환자를 보며, 그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뭐야, 또 왔어요?”
그의 물음에 환자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원장님. 저 또 다쳤어요.”
“아이고. 조심 좀 하지. 무슨 촬영하다가 다친 건가?”
어쩌다 보니, 하 원장의 단골 환자가 된 배우 진희성.
그는 액션 신을 촬영하다가 종종 몸을 다쳐, 하 원장을 찾았고.
그렇게 그들의 의사와 환자의 인연이 깊어지고 있는 사이였다.
“네. 최근에 와이어 신을 찍다가 살짝 삐끗했는데, 지방 촬영이라 이제 왔습니다.”
“그래도 근처 병원에서 좀 손 봐 둬서 다행이지. 몸 좀 사리면서 일해요.”
진희성은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연기를 하다 보면, 몸을 사리는 게 잘 안 되더라고요. 하핫.”
“그래도 희성 씨 아직 젊은데, 자꾸 뼈를 다쳐서 어떻게 해.”
그는 미소를 지으며 하 원장을 바라보았고.
하 원장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에게 말했다.
“이번에는 아예 입원 좀 해서 쉬다가 가요. 이렇게 연기도 잘하는 배우가 자꾸 다쳐서 오니까, 속상하네.”
그의 걱정 가득한 말에도 진희성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답했다.
“저 며칠 뒤에 바로 또 지방으로 촬영 가요.”
진희성의 말에 하 원장은 눈을 휘둥그레 뜨며 손사래를 쳤다.
“아니. 이 몸으로 어디를 가려고. 또 액션 신 찍는 거 아니에요?”
“이번에는 예능이라, 시골로 가서 어르신들이랑 시간도 보내고. 밥도 해 먹는 그런 힐링 프로그램이라 몸 다칠 일은 없을 거예요.”
“그것보다, 지금 몸이 성치 않으니까…….”
진희성은 활짝 웃음을 보이며 다친 팔을 가리켰다.
“괜찮아요. 속세와 멀어져서 살아가는 프로그램이라. 가서 힐링 좀 하고 오겠습니다. 하하.”
“진짜 희성 씨를 누가 말리겠어요. 근데 가서도 꽤 불편할 텐데.”
“그래서 제가 하 원장님 찾아온 거 아닙니까.”
진희성은 눈을 깜빡이며 말을 이어 갔다.
“근데 원장님. 저번에 저 다리 다쳤을 때 해 주셨던 스플린트 있잖아요.”
“네, 그거 괜찮았어요?”
“괜찮기는 했는데… 제가 그때도 한참 병원을 못 오고, 그걸 계속 차고 있으니까 불편하더라고요. 혹시 더 좋은 제품은 없을까요?”
진희성은 이번에도 한참 병원을 내원하지 못할 거라는 뉘앙스를 풍기며, 하 원장에게 물었고.
“그때도 제일 좋은 스플린트로 했던 건데…….”
이에 하 원장은 자신의 턱을 어루만지며, 생각에 잠겼고.
이내 손가락을 튕기며 소리쳤다.
“아, 그럼 이거 한 번 착용해 볼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