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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영업사원이 되었다-278화 (278/339)

278화

화려한 코스 요리가 중단되고 몇십 분가량, 이곳은 JH 메디컬의 학회처럼 변해 갔다.

“오오. 파우더 처리가 된 거, 나도 생각은 했었는데. 제품이 실제로 나왔네.”

“스플린트 단점을 완전히 잡은 제품이면, 괜찮은데?”

“뭐… 아직 물건은 못 봤지만, 줄기세포 복원 주사 판매하는 회사에서 낸 거면 믿을 만하겠네.”

원장들은 내 PPT를 보며 수군거렸고.

나는 새어 나오려는 미소를 꽉 잡아냈다.

“…여기까지입니다. 감사합니다.”

그제야 나는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짝짝짝—

음식을 앞에 둔 원장들은 흡족한 미소를 보이며 손뼉을 부딪쳤고.

“식사 중간에 이렇게 말씀드려서 죄송합니다. 식사 맛있게 하십시오!”

나는 큰 목소리로 소리친 뒤, 서둘러 행복 정형외과 주 원장이 있는 테이블로 다가갔다.

내가 테이블에 다가가자, 주 원장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박수를 보냈다.

“이야. 민 대표 멍석 깔아 주니까, 이렇게 잘하네.”

“하하. 부끄럽습니다. 주 원장님께서 도와주신 덕분에 제품 설명도 할 수 있게 되고, 감사합니다.”

주 원장은 눈썹을 들썩이며, 내 자리를 가리켰다.

나는 자리에 앉으며, 함께하고 있는 테이블 원장들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럼 원장님들, 식사 맛있게 하십시오.”

“그래요. 민 대표도 많이 먹어요.”

“네.”

이내 식사가 이어졌으나 곧바로 원장들은 입을 열었다.

“그래서 제품은 출시가 된 건가?”

유 원장은 접시 위에 올려진 연어를 한입 삼키며 내게 물었고.

나는 수저를 그대로 내려놓으며 답했다.

“아직 정식 출시는 되지 않았지만, 테스트는 모두 마친 상태입니다.”

“그럼 물건을 언제 받아서 사용할 수 있는 거지?”

현재 내게 물건이라고는 샘플 몇십 개뿐이었다.

제조사를 통해 내가 원하는 제품을 얻기 위해 한참을 노력했고.

그 결과 내가 생각하는 제대로 된 제품이 나오기는 한 것이지.

하지만 첫 제조품이기에, 아직 몇백, 몇천 개의 재고를 쌓아 둘 수가 없었다.

그 제품을 모두 판매하면 이익이고.

물론 그 제품들을 재고 소진할 때까지 영업하고 노력해야 할 테지만.

아직 시장 조사, 그러니까 병원에서 의사들과 환자들의 이 제품에 대한 선호도를 파악하기 전이었다.

제품이 팔릴지 안 팔릴지도 모르는데 섣불리 물건을 많이 찍어 낸다면, 그 물건들은 그대로 세상 빛을 보지도 못하고 창고 속에서 재고가 쌓일 터.

그래서 소량을 만들어 병원에 샘플을 돌리거나, 판매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첫 거래인만큼, 제조사에서는 내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다.

아직 기업 대 기업으로 신뢰도가 쌓이기도 전이었을뿐더러.

최소 발주량이 적다면, 제조사에서도 손해일 테니까.

결국, 샘플을 들고 병원에 다니며 원장들에게 어필하는 방법뿐이었다.

그런데 병원에 돌아다니며 영업해야 할 그 긴 시간.

시간 싸움이 될 일이었는데, 이 학회장에서 한순간에 단축시킬 수 있게 된 것이지.

유 원장은 제품에 대해 흥미롭다는 듯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고.

나는 서둘러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물건이 완성은 되어 있습니다. 발주만 주신다면, 다음 달부터 받아 보실 수는 있습니다. 다만…….”

최소 발주량.

제조사에서 원한 첫 최소 발주량은 무려 1,000개였다.

스플린트가 잘 나가는 품목이기에 몇 군데 병원 거래를 트기만 한다면, 1,000개는 많은 개수도 아니었다.

하지만 처음 출시되는 제품을 재고로 떠안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개수였다.

유 원장이 발주를 한다고 해도, 많아야 100개에서 200개 정도일 터.

그리고 애초에 받아 둔 행복 정형외과의 발주량 300개.

합쳐 봐야 500개인데, 남은 재고 500개를 떠안고 발주를 해야 하나 싶어 말끝을 흐리던 그때.

내 뒤 테이블의 원장들이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그래서 다음 달부터 물건이 들어올 수 있다는 건가요? 나도 발주 좀 해 보고 싶은데.”

“어, 나도. 한 번 써 보고 결정해도 되니까.”

그들의 말에 나는 얼떨떨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직 샘플도 제대로 사용해 보지 않았는데, 발주를 한다는 그들의 말에 놀랄 수밖에.

나는 목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그럼 제가 학회 끝나면, 원장님들 뵙고 샘플 보여 드리면 될까요?”

내 말이 끝나자마자 옆에 앉아 있던 주 원장이 손을 번쩍 들었다.

“나는 샘플 말고, 바로 주문할게.”

그의 목소리에 이목이 집중되었다.

이미 행복 정형외과는 내게 300개를 발주하기로 한 상태였으나.

여기에서 그걸 알고 있는 원장들은 없었으니까.

“뭐, 민 대표 믿고 가는 거지. 우리 병원은 300개 발주할게.”

주 원장의 말에 앞에 있던 유 원장은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내게 말했다.

“나도 이번 주에 샘플만 보고, 바로 발주하고 싶은데?”

그리고는 주 원장을 쓰윽 훑어보며 말을 이어 갔다.

“이런 좋은 제품이 새로 출시되는데, 행복 정형외과만 앞서가게 둘 수는 없잖아. 하하.”

유 원장과 주 원장은 이미 친분이 있는 상태였고.

농담 섞인 말투로 견제하자, 주 원장이 웃음을 터트렸다.

“아이고. 우리 병원이 먼저 환자들한테 써 보고, 그때 유 원장이 천천히 따라오지?”

“안 돼. 게다가 스플린트는 하루에도 수없이 나가는 제품인데, 우리도 얼른 새 제품 받아서 써 봐야지.”

그들의 대화에 다른 테이블에서도 관심이 더욱 쏟아졌고.

“우리 병원도 샘플 한번 보여 주러 왔으면 하는데요?”

“맞아, 우리 병원도…….”

같은 업계의 사람들이 모여 있기에.

서로 친분을 쌓고 정보를 공유하면서도, 보이지 않는 은근한 견제의 눈빛들이 곳곳에서 쏟아지고 있었다.

그렇게 내 첫 제조품인 스플린트는 환대를 받으며,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에 사로잡혔다.

어느새 이곳이 거대 메디컬 학회가 아닌, JH 메디컬의 학회가 된 느낌이 들 정도였으니까.

나는 활짝 입꼬리를 올린 채, 원장들과 행복한 저녁을 맞이했다.

* * *

“안녕하십니까.”

학회가 끝나자마자 찾아온 곳.

JH 메디컬 회사도 아니고, 내게 샘플을 요청한 병원들도 아닌.

바로 제조사였다.

파우더 스플린트 샘플 OEM을 맡겼던, 에어 메디컬.

지난주 학회에서 원장들과 밤새 대화를 나눈 결과.

충분히 최소 발주량 1,000개는 넘길 것 같았고, 혹여나 수량이 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재고로 떠안고 있어도 될 정도로 제품에 대한 인기를 입증했었다.

항상 최소 발주량을 줄여 주면 안 되겠냐, 부탁을 하러 이곳에 왔었지만.

오늘은 이전과는 달리 한층 가벼운 마음으로 에어 메디컬 문을 열었다.

커다란 제조 공장을 뒤로하고, 앞에 작게 마련되어 있는 사무실 건물.

나는 사무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며 소리쳤다.

“안녕하십니까.”

내 인사에 자리에 앉아 있던 사무실 직원들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안녕하세요. JH 메디컬… 맞으시죠?”

가장 안쪽 자리에 앉은 직원이 나를 한 번에 알아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에어 메디컬에 샘플 때문에 찾아왔던 게 적어도 열댓 번은 됐기에, 나를 알아보는 모양.

“예, 사장님 안에 계실까요?”

“네, 안에 계셔서 들어가셔도 됩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눈인사를 보낸 뒤, 서둘러 사장실 문을 두드렸다.

똑똑.

“사장님, 안녕하십니까.”

에어 메디컬 사장 박충진.

그는 커다란 중역 책상 뒤에 서서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 민 대표님 왔어요?”

“네. 잘 지내셨습니까?”

박 사장은 사장실 안에 있는 소파로 다가오며 내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그럼요. 민 대표님 오랜만에 얼굴 뵙네요?”

“최소 발주 수량 맞춰서 얼른 물건 뽑고 싶어서, 열심히 영업하고 돌아다녔습니다. 하하.”

내 말에 그는 눈썹을 들썩이며 내게 물었다.

“그 말씀은 오늘 발주를 하러 오셨다는 건가요?”

박 사장은 한쪽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내게 말했고.

나는 입술을 잘근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최소 발주량으로 말씀해 주셨던 1,000개. 그 개수대로 주문을 했으면 하는데요.”

나는 미리 준비해 온 자료를 꺼내 그에게 내밀며 말을 이어 갔다.

“저번에 샘플 받았던 제품 그대로 갔으면 하는데, 포장 자체가…….”

박 사장은 내 말에 경청을 하더니, 이내 쓰읍 소리를 내며 말을 잘라 냈다.

“포장 방법을 바꿨으면 한다는 말씀이시죠?”

내 말을 단번에 알아차린 모양.

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네. 이게 진공 포장으로 해서 주셨었는데, 이동하면서 금방 진공이 풀려 버리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는 포장 방법을 조금 바꿨으면 하는데, 저번에 저희 얘기했던 방법으로요.”

내 말에 그는 자신의 턱을 어루만지며, 얼굴에 짓고 있던 미소를 순식간에 없애 버렸다.

그리고는 내게 몸을 가까이 붙이고 있던 박 사장은 등을 소파에 푸욱 기댔고.

내 눈길을 피하며 생각에 잠긴 듯 보였다.

‘갑자기 이런 태도를 보이는 이유가 뭐지?’

나는 그의 표정과 태도에 고개를 갸웃거릴 정도로 의아했고.

조심스레 그를 향해 입을 열었다.

“무슨 문제가 있을까요?”

“음… 문제는 아니고요. 민 대표님, 죄송한데 저 잠시 화장실 좀 다녀와도 되겠습니까?”

“아, 그럼요.”

박 사장은 옅은 미소를 보이며 자리에서 일어나 사장실을 빠져나갔다.

도무지 알 수 없는 그의 태도.

나는 최대한 업무에서 갑과 을을 지정하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가 ‘갑’이라는 위치에 오른다면, 자신도 모르게 ‘을’에게 갑질을 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그저 사업은 동등한 위치에서 각자의 이익을 위해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영업직이었던 내가 의사들에게 영업을 갈 때에도, 나는 ‘을’의 입장으로 가지 않으려고 최대한 노력을 했었다.

내가 먼저 누가 봐도 을이라는 태도를 보이며 시작한다면, 그들 역시 자신을 충족시켜 주기만을 원할 터.

나는 의사들에게 필요한, 그리고 같은 물건이라면 저렴한 제품을 제공하는 사람.

그리고 의사는 그런 물건을 구매해 주는 사람.

최대한 동등하다고 생각하며 일을 해 왔고.

그래서인지 의사들과도 업무 외적으로도 친분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 같았다.

그저 사람 대 사람으로 대했으니까.

지금 역시 나는 박 사장에게 갑질을 하며 물건을 맡길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나는 필요한 품목 제조를 요청하고.

그는 돈을 벌며 물건을 만드는, 단지 그뿐이었지.

물론 따지고 들어 돈을 내는 사람이 ‘갑’이라고 친다면.

그쪽은 박 사장이 아닌, 나일 것이다.

내가 그에게 돈을 주고 물건 제조 의뢰를 맡기는 것이니까.

하지만 이상하게도 박 사장은 내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것 같지가 않았다.

샘플을 요청하러 오기를 수십 번.

처음 샘플을 의뢰하러 왔을 때도 박 사장은 나를 달가워하지 않았었다.

그게 시장에서 먹히겠냐, 큰돈을 벌 수 있겠냐 등.

걱정 어린 말을 빙자한 불친절한 태도가 있었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에어 메디컬에 의뢰를 맡기는 이유는 단 하나.

물건 때문이었다.

여러 업체를 다니며 샘플을 만들어 봤지만, 이곳만큼 흡족한 제품을 뽑아낸 곳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결국, 지금까지 박 사장과 일을 해 왔고.

최소 발주량 1,000개가 무리하다고 느꼈지만, 그만큼 발주를 할 것이기에 에어 메디컬을 찾은 것이지.

그때.

“아이고.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화장실에 다녀온 박 사장은 눈썹을 들썩이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화장실을 가기 전과 사뭇 달라진 그의 얼굴.

단순히 화장실을 갔던 것이 아닌 듯한 느낌이 들었고.

그 순간.

박 사장의 속마음 소리가 내 귓가에 선명히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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