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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영업사원이 되었다-277화 (277/339)

277화

“그럼 이것으로 거대 메디컬 학회 첫째 날 행사를 마무리 짓도록 하겠습니다.”

짝짝짝—

거대 메디컬 직원의 마지막 멘트가 학회장 안에 울려 퍼지자마자 박수가 터져 나왔다.

“고생하셨습니다.”

회사에서 주최한 학회이기에 기간이 정해져 있지는 않다.

당일로 짧게 진행될 수도.

2박으로 진행이 될 수도, 그리고 일주일간 이루어질 수도 있는 것이지.

회사가 정하기 나름인 셈.

하지만 통상적으로는 당일, 혹은 1박 2일로 이뤄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의사라는 직업 특성상, 길어야 2박 주말을 학회에 집중할 수 있을 터.

게다가 1박 2일이라는 기간 동안 학회를 열게 되면, 1박 저녁에는 큰 회식을 하게 된다.

당연히 의사들을 불러 숙박을 제공하기에.

저녁 식사 겸, 술자리를 마련하는 것이지.

“석식은 이곳에서 간단하게 코스 요리를 즐기시고, 추후에 근처 식당으로 안내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진 뒤에, 식사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직원은 단상 앞에 서서 허리를 깊게 접은 후, 무대를 내려갔다.

거대 메디컬에서 준비한 학회는 총 1박 2일.

가장 일반적인 기간의 학회를 마련했다.

직원이 떠난 후, 의사들은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담배를 피우러 가기도 하고.

화장실을 가거나, 각자 모여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나 역시 발표 후, 곧장 자리를 지켰기에 지친 몸을 이끌고 학회장을 빠져나왔다.

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울리는 휴대전화.

지이잉.

여자친구인 김사랑에게서 온 전화였다.

학회 내내 집중하느라 지쳐 표정이 없어진 얼굴은, ‘김사랑’이라는 이름을 확인하자마자 얼굴에 미소가 스르르 번져 왔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빠르게 학회장 뒤편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수신 버튼을 누를 수 있었다.

“여보세요.”

- 자기!

김사랑은 나와의 통화를 기다렸다는 듯 밝은 목소리로 소리쳤다.

“응. 자기 뭐 하고 있었어?”

- 나 지훈이 생각하고 있었지.

“보고 싶다, 사랑아.”

- 힝. 나도…….

그녀는 시무룩한 말투로 말끝을 흐렸고.

이내 탄식을 내뱉으며 말을 이어 갔다.

- 그래서 자기도 내일 학회 끝나야 집으로 넘어와?

“응. 나도 저녁에 원장님들이랑 술자리도 가지면서 이야기 좀 나누려고.”

- 오늘 학회는 끝난 거야?

“어. 조금 전에 끝나서, 이제 곧 저녁 식사하고. 그다음에 술자리 가질 것 같아. 자기 저녁은?”

- 나도 이제 곧 먹어야지.

“얼른 저녁 챙겨 먹어요.”

- 그럴게. 나도 학회 갈 걸 그랬어. 갔으면, 자기랑 밤에 몰래 데이트도 할 수 있을 텐데 말이야.

“근데 자기 오늘 진료가 너무 늦게까지 있었잖아.”

- 웅. 그래서 너무 피곤하기는 해.

“아휴. 우리 자기 힘들어서 어떡해.”

- 어쩔 수 없지, 뭐. 아, 그리고 거기에 우리 병원 주 원장님도 가셨을걸?

“주성천 원장님?”

- 어. 못 만났어?

“아, 못 뵀는데, 이따가 가서 인사드려야겠다.”

- 혹시 내 도움 필요하면 연락하고.

“알겠어. 자기 얼른 저녁 챙겨 먹고 좀 쉬어요.”

- 웅웅. 지훈이는 피곤할 텐데, 조금만 더 힘내고!

“응, 사랑이랑 통화해서 괜찮아. 저녁 먹고 바로 연락할게.”

* * *

학회장 안으로 들어서자 보이는 광경.

동그란 테이블들이 쫙 깔려 있었고.

그 자리 위에는 테이블 매트와 식기류가 세팅되어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미 많은 의사들이 각자 자리를 잡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이 보였고.

나는 빠르게 그들을 스캔하며 행복 정형외과의 주성천 원장을 찾았다.

마치 미어캣처럼 자리에서 고개만 빼꼼 내밀고 주변을 둘러보던 그때.

턱.

“민 대표?”

내 어깨에 손을 올리는 사람.

나는 그 손길에 고개를 쓰윽 돌렸고.

내 뒤에는 다름 아닌, 내가 찾던 주성천 원장이 밝은 미소를 보이며 서 있었다.

“원장님!”

나는 그를 발견하자마자 입꼬리를 올리며, 그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주 원장님, 찾고 있었습니다.”

그는 내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게 물었다.

“나를?”

“네. 행복 정형외과에서 주 원장님 한 분만 오셨다는 이야기 듣고, 인사드리려고 했는데. 어디 계신지 못 찾았거든요.”

그는 호탕하게 웃으며 내게 답했다.

“아이고. 이렇게 의사들이 많은데, 나까지 찾아서 인사를 주려고 했다니까 고맙네.”

“아닙니다. 당연히 인사드려야죠.”

주성천 원장.

행복 정형외과에서 김준수 병원장만큼이나 오래 병원에 머문 의사다.

병원장과 함께 오랫동안 일을 했기에.

병원장은 주 원장을 믿고 의지한다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었었다.

김사랑 원장도, 그리고 행복 정형외과 내에서도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

둘 사이는 꽤 두텁기로 유명했다.

하지만 그도 모르는 사실 중 하나.

바로 병원장이 내게, 그러니까 JH 메디컬에 투자한 것.

그 사실은 주 원장조차 모르는 일이었다.

내가 이곳저곳에 티를 내지도 않았고.

병원장 역시 내게 투자를 한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굳이 숨겨야 할 이유는 없었지만, 이런 일이 알려진다고 해서 좋을 것은 더더욱 없었으니까.

모든 업계가 마찬가지겠지만.

특히나 메디컬 업계에서는 뒷말이 새어 나오기 쉬웠고.

게다가 그 뒷말은 늘 와전되어 돌아다녔다.

그렇기에 병원장과 나는 서로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암묵적으로 입을 닫은 것이다.

“민 대표 자리는 어디야?”

주 원장은 뒤에 쫙 깔린 테이블을 바라보며 내게 물었고.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그에게 답했다.

“저는 밖에 나갔다가 이제 들어와서, 아직 자리를 못 잡았습니다. 원장님은요?”

내 말에 주 원장은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오오. 그럼 나 저기에 자리 맡았는데, 같이 앉지. 거기에 근처 병원 원장들도 와 있고 말이야.”

그의 말에 나는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

내가 그 자리로 가지 않을 이유는 눈곱만큼도 없었다.

밥 먹을 때까지 일해야 하나? 싶은 부정적인 마음은 추호도 없었지.

애초에 학회에 온 이유가 바로 영업을 위해서였으니까.

거대 메디컬을 통해 판매하는 줄기세포 복원 주사.

그것 외에 JH 메디컬은 그저 총판을 내어 주는 회사가 아닌.

제조업체라는 것을 알리고 각인시키기 위함이었다.

내가 코리아 메디컬에서 영업을 하며 많은 의사들에게 눈도장을 찍었고.

그래서 그 의사들은 내가 물건을 판매하는 메디컬 영업맨으로만 알고 있지, 내가 제조를 할 거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었다.

나는 이 기회에 많은 이들에게 내가 물건을 제조하고 있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그래야 추후에 물건을 생산했을 때, 영업을 하기가 쉬울 테니까.

“저야 같이 자리해 주시면 감사하죠.”

나는 주 원장을 따라 그의 자리로 이동했고.

그곳에는 내로라할 의사들이 주 원장 자리 주변에 착석해 있었다.

나는 그들을 향해 허리를 깊게 접으며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JH 메디컬의 민지훈 대표라고 합니다.”

내 인사에 그들은 흐뭇하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반가워요.”

“아까 발표 인상 깊게 들었어요.”

“맞아, 나도. 줄기세포 복원 주사, 거대 메디컬에서 받아서 잘 쓰고 있는데, 오늘 내용 자세히 들어서 좋았어요.”

그들의 환대에 나는 환하게 입꼬리를 올린 채 답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주 원장은 홀로 서 있는 나를 끌어당겼다.

“민 대표도 얼른 앉아.”

“네, 원장님.”

우리는 서로 인사를 나누기 시작했고.

그와 동시에 음식이 하나둘 세팅되고 있었다.

“식사 맛있게 하십시오.”

나는 테이블에 앉은 원장들을 향해 외친 후, 포크를 집어 들었다.

그렇게 잠시 어색함과 더불어 식사를 이어 가던 그때.

“그나저나 코리아 메디컬 제품은 빼야겠죠?”

내 건너편에 앉은 베곰 정형외과의 유태선 원장이 주제를 던졌고.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주변에 있던 원장들 역시 대화에 집중했다.

“아무래도 빼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요. 저희 병원에서도 환자들한테 사용했는데, 영… 차도가 없더라고요.”

“그래요?”

“네. 근데 오늘 기사를 보니까 확신하겠더라고요. 뭐, 저 기사가 퍼지면 환자들도 득달같이 저 제품에 대해서 물을 거 뻔하잖습니까.”

“하긴. 요즘 워낙 환자들이 의사만큼 공부해서 온다니까요?”

그들은 어느새 수저도 내려놓은 채 대화를 이어 갔다.

“오오. 저도 최근에 왔던 리버스 숄더 수술한 환자가 제조 회사를 운운하면서 어디 제품으로 수술하는 게 좋다더라, 라고 하더라니까요?”

그의 말에 의사들은 입을 떡 벌리며 탄식을 내뱉었다.

“그러니까 애초에 코리아 메디컬 제품은 빼 버리는 게 나아요. 놔둬서 좋을 게 없잖아요. 이미 기사가 터졌는데, 처방은 또 어떻게 하겠어요.”

“근데 코리아 메디컬 측의 반박도 들어 봐야죠.”

그렇게 원장들은 코리아 메디컬 제품에 대해 갑론을박을 펼치며 대화를 이어 갔고.

나는 그들의 대화에 참여하지 않은 채, 귀만 쫑긋 세우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 제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유 원장이 나를 바라보며 질문을 던졌다.

“근데 민 대표님은 줄기세포 복원 주사 말고, 또 판매하는 건 없으세요?”

그의 질문이 너무나도 반가웠다.

어떻게 내 회사에 대한 이야기를 뱉을 수 있을까, 타이밍을 찾고 있었으니까.

나는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현재 판매하는 제품은 아시는 것처럼 줄기세포 복원 주사 하나입니다. 원래 회사를 설립하게 된 건, 메디컬 제품을 제조하기 위해서였거든요.”

그들은 내 말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물었다.

“제조도 하시는 거예요?”

“네. 제가 영업사원으로 메디컬 제품을 판매하며, 제품에 대해 부족한 점. 그리고 보완하면 좋을 점들을 몸소 느껴 왔습니다. 그 점들을 참고하여 제품을 제조하면 어떨까 싶은 마음에 제조업에 뛰어들게 됐습니다.”

유 원장은 내 말에 흥미가 가득한 얼굴로 답했다.

“그럼 지금 제조하신 물건이…….”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유 원장의 옆에 앉은 다른 병원 원장이 입을 열었다.

“그래. 무슨 제품이 있어요? 줄기세포 복원 주사 제품이 확실한 것부터, 발표하는 것까지. 충분히 믿을만한 사람 같은데, 민 대표님 제품이면 뭐든 좋을 것 같은데요? 하하.”

“맞네. 제조하는 제품도 회사 따라간다고 하지 않습니까. 제품 믿음직스러울 것 같은데. 어떤 제품이에요?”

오늘 있었던 발표로 인해, 그들은 내게 호의적인 태도로 제조하는 물건에 대해 물었고.

“지금 제조한 물건은 파우더 처리가 된 스플린트입니다.”

“파우더 처리라면, 살과 닿는 면에 진물이 안 생기도록 하는 건가요?”

원장들은 내 말을 듣고 단번에 의도를 파악했다.

그들은 나와는 달리 현장에서 직접 뛰는 사람들이니까.

나보다 그런 물건을 더 필요로 했겠지.

“맞습니다. 제가 영업을 나가게 되면, 가장 많이 판매하는 품목 중 하나가 스플린트였습니다. 그런데 스플린트를 사용하면…….”

나는 제품에 대해 말을 이어 갔고.

한참을 듣고 있던 원장들은 귀를 쫑긋 세우며 물건에 대한 관심을 표출했다.

“진짜 좋은데?”

그렇게 제품 설명을 이어 가는 소리가 테이블을 새어나갔고.

그것을 들은, 옆 테이블에 앉은 원장이 소리쳤다.

“좋은 제품 있으면, 거기만 쓰지 말고 공유 좀 합시다!”

그 원장의 말에 식사 자리는 모두 웃음이 터졌고.

동시에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한 다른 원장들의 원성이 쏟아졌다.

“맞아. 그래서 그 제품이 뭔데요?”

“그래. 파우더 처리된 거면, 비용이 꽤 비쌀 것 같은데. 단가는?”

“비급여 제품인가?”

지금까지 이야기들을 옆 테이블들에서도 들었는지, 질문이 물밀 듯이 밀려왔고.

그 성화에 행복 정형외과 주 원장은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내게 말했다.

“민 대표, 그러지 말고 앞에 나가서 제품 이야기 좀 해 보는 게 어때?”

“네? 지금 말씀이십니까?”

내 말에 유 원장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화에 참여했다.

“그래요. 혹시 제품 사진이나 자료는 없나?”

“아… 자료랑 사진이 있기는 합니다.”

제조하고 있는 제품이기에, 사진 파일도.

그리고 제품에 대한 PPT 자료도 당연히 늘 메일에 준비되어 있었지.

“그럼 앞에서 한 번 보여 줘요.”

유 원장은 손을 뻗어 거대 메디컬 직원을 부르며 소리쳤다.

“한 과장님. 우리 앞에 단상 좀 써도 되죠?”

한 과장은 유 원장의 말에 곧장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마른 침을 삼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생각보다 빠르게 기회가 찾아 왔다.

그리고 그 기회는 준비된 자만이 잡을 수 있는 것이지.

“그럼 잠시 무대 좀 빌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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