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영업사원이 되었다-276화 (276/339)

276화

“그게 대체 뭔데?”

의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한데 모여 휴대전화를 바라보고 수군대기 시작했다.

“뭐야, 이거 줄기세포 복원 주사 기사 아니야?”

“맞아. 이게 갑자기 기사가 떴다고?”

기사를 보며 의사들은 미간을 찌푸렸고.

이내 숨죽인 듯 조용해진 이곳은 각자 기사를 읽기에 바쁜 듯 보였다.

나 역시 의자에 등을 기댄 채 휴대전화를 열었다.

그리고 메디컬 관련 기사 사이트에 들어가자, 메인에 걸려 있는 기사 하나.

[국내 유명 K 메디컬, 신제품 임상 실험에 대한 의혹 피어나…….]

나는 마른 침을 삼키며 기사를 클릭했고.

기사의 내용을 서둘러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최근 국내로 수입 허가가 난 ‘줄기세포 복원 주사’.

그 제품과 비슷한 성능의 제품의 임상 실험 결과가 조작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돼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국내 유명 K 메디컬에서 내놓은 신제품.

정형외과에서 쓰이는 줄기세포와 관련된 제품으로…….

국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은…….

서울의 한 정형외과 교수는 “K 메디컬의 제품은 해당 회사에서 어필한 바와는 전혀 다른 회복 과정을 보이고 있습니다. 분명 임상 실험 결과가 조작된 것임이…….”

또 다른 정형외과 전문의 P 원장도 유사한 의견을 보내왔습니다.

익명을 요청한 정형외과 P 원장은 “K 메디컬에서 안내한 대로 치료를 했지만, 환자의 상태가 전혀 호전되지 않았고. 잠깐 회복이 되나 싶을 무렵, 곧바로 상태가 악화되었습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와 더불어, K 메디컬의 줄기세포 치료 신약 개발에 의문을 품는 전문의들의 소견은 끝이 없었습니다.

(중략)

환자의 인터뷰에서도 마찬가지로…….

이렇듯 환자의 몸에 투입되는 제품에는 아주 작은 거짓도 없어야 한다는 의견이 쏟아졌습니다.

메딕 일보 백승원 기자.]

임상 실험 결과를 반박하며 내용을 오목조목 따지는 기사가 작성되어 있었고.

의사들과 전문가의 소견, 주사를 처방받았던 환자들의 인터뷰까지.

모두 제품의 문제점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기사를 낸 기자는 다름 아닌 백승원.

내 기자 친구였고.

나는 그에게 제보를 하며 기사 발표 날짜를 이야기했었다.

물론 이게 코리아 메디컬을 깎아내리려는 것은 아니었다.

의료 업계에서 이런 짓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을뿐더러.

이 업계가 아니어도 이런 거짓은 당연히 세상 밖으로 나와서 알려져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다만 기사가 터트려질 날짜만 그에게 이야기했던 것이지.

이왕이면 대부분의 의사들이 한데에 모였을 이 시점.

이때 기사가 나온다면, 이 기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최적이었다고 판단했으니까.

그리고 역시나.

의사들은 내 예상과 마찬가지로 학회장이 떠나가라 술렁이고 있었다.

“미친. 코리아 메디컬에서 나한테 사기를 쳐?”

“K 메디컬이면 당연히 코리아 메디컬이지. 국내 줄기세포 복원 주사가 거기 말고 또 있어?”

“그러니까 말이야. 난 그것도 모르고 임 사장만 믿고 발주 잔뜩 했더니만.”

의사들은 단체로 충격을 받은 듯 뒷목을 부여잡았고.

분노를 표출하며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 원장들도 보였다.

하지만 이 상황에도 평정심을 유지하며 차분히 입을 여는 원장들도 보이고 있었다.

“근데 아직 코리아 메디컬에서 입장 발표는 안 했잖아.”

“그렇지. 말 그대로 기사는 의혹이니까. 조금 더 기다려 봅시다. 다들 알잖아요, 대형 회사를 깎아내리려고 기사들이 터지기도 하는 거.”

그들의 말 역시 맞는 말이기는 했다.

너무나 오랫동안 한국에서 1, 2위를 다투는 회사인 코리아 메디컬과 거대 메디컬.

이 두 회사를 꺾기 위해, 작은 메디컬들에서 거짓 제보를 하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이번 제보는 결코 거짓이 아니었다.

제보자가 나였으니까.

물론 백승원에게 내가 가진 자료는 단 하나도 건네지 않았다.

내가 찾은 자료가 거짓된 자료는 아니었지만.

기자인 그가 보다 더 객관적으로 자료를 조사할 거라 생각했기에.

일부러 자료를 첨부하지 않았던 것이지.

그 결과, 백승원도 나와 비슷한 자료들을 찾아냈고.

이렇게 기사를 낸 것이었다.

“에이. 그래도 이건 아니죠. 탁 원장은 제품 써 봤습니까?”

“저는 몇 번 처방 못 했습니다.”

“저는 벌써 몇 주 동안 코리아 메디컬 제품을 사용했어요. 그리고 제가 써 본 결과도 기사와 별반 다름없고요.”

그들은 그렇게 서로의 의견을 내며, 논쟁을 이어 나갔다.

쉬는 시간은 끝난 지 오래였지만.

거대 메디컬 측에서도 그런 의사들을 제지할 생각은 하지 않는 듯 보였다.

거대 메디컬의 오래된 경쟁사인 코리아 메디컬에 대한 좋지 않은 이야기들을 나눠 가는데.

굳이 이야기를 막아설 필요는 없을 터.

더군다나 코리아 메디컬에 논란이 일어난 제품과 경쟁을 펼치고 있는 제품의 판매처가 자신들이었으니까.

서울과 광역시 등에서 내로라하는 의사들이 모두 모인 학회.

학회가 아닌 각자의 병원에서 기사를 접했다면, 각자 지인 의사들에게 전화를 걸거나 소수로 만나 이야기를 나눴을 텐데.

이렇게 다 모인 자리에서 기사가 터지니, 의사들의 입이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그렇게 쉬는 시간이자, 의사들의 논쟁은 두 시간 동안이나 이어졌다.

* * *

같은 시각, 코리아 메디컬 사무실.

“뭐?”

임 사장은 잔뜩 찌푸려진 얼굴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메딕 일보에서 기사가 났는데…….”

“그래서 기사 어디 있어. 당장 가져와!”

그의 말에 임 차장은 기사가 켜진 태블릿 PC를 임 사장에게 내밀었다.

“이거 어떻게 막아야 할지…….”

임 차장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임 사장은 검지를 허공에 흔들었다.

그의 입을 조용히 시키려는 손짓에, 임 차장은 마른 침을 삼키며 입을 닫았다.

그렇게 잠시 동안 임 사장은 기사에 집중했고.

기사를 모두 읽은 임 사장은 잔뜩 찡그려진 얼굴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쾅―!

그리고 그대로 자신의 책상을 주먹을 내리쳤다.

소리에 놀란 임 차장은 몸을 움찔거렸고.

“X발… 미친 것들이 이런 조사는 갑자기 왜 한 거야!”

임 사장은 욕설을 퍼부으며, 임 차장을 향해 소리쳤다.

“이사들 회의실로 모이라고 해.”

그의 말에 임 차장은 고개를 숙이며 물었다.

“지금이요?”

“그럼 뭐 기사 더 터지고 할까?”

“아… 아닙니다. 바로 이사들 모으겠습니다.”

임 사장은 분노가 가라앉지 않는지 붉으락푸르락해진 얼굴로 다시 기사를 읽어 내려갔다.

몇십 분 뒤.

코리아 메디컬 회의실에 모인 직원들.

임 사장과 백 이사, 서 이사, 그리고 임 차장까지.

네 명의 직원은 모두 굳은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백승원 이 기자 누군지 알아봤어?”

임 사장의 말에 백 이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예, 예전에 광주에 있던 기자라고 합니다. 그때도 병원과 메디컬의 리베이트 기사를 냈던 기자더라고요.”

그의 말에 임 사장은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미친… 그 자식이 이 새끼였어?”

임 사장은 한숨을 길게 내쉬며 말을 이어 갔다.

“그때도 리베이트 터져서 병원 영업 잘 못 갔던 거 생각하면 아직도 머리가 아픈데, 하아……. 기자면 그냥 눈앞에 보이는 기사나 쓸 것이지, 왜 이런 걸 파고 X랄이야.”

그는 잔뜩 화가 난 목소리로 소리쳤고.

임 사장의 말에 회의실은 쥐 죽은 듯 아무런 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정적이 흐르고.

임 사장이 숨을 고르던 그때.

백 이사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메딕 일보에 강철중 기자 있지 않습니까?”

그의 말에 임 사장은 입술을 잘근 깨물며 답했다.

“강철중 그 자식, 의료 일보로 옮겼잖아. 임 차장, 너 백 이사한테 전달 안 했어?”

“아…….”

가만히 있다가 불똥이 튄 임 차장.

그는 숨을 참아 내며 입을 열었다.

“강철중 기자가 그래도 메딕 일보에 오래 있었으니까, 제가 연락해서 연결할 윗선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어. 기사가 올라온 지 시간이 좀 됐으니까. 이미 다른 기자들한테도 퍼졌을 거야. TV나 다른 매체로 새어 나가지 않게 확인하고.”

“알겠습니다.”

임 사장의 말에 직원들은 다이어리에 빠르게 메모를 해 나갔다.

그때 서 이사가 임 사장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사장님. 그럼 이제 저희 제품은 어떻게…….”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임 사장은 입술을 잘근 깨물며 말했다.

“어쩌긴 뭘?”

“제품에 임상 실험 결과가 조작됐다고 기사가 난 마당에, 임상 실험 결과를 다시…….”

양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탁 치며 소리쳤다.

“그렇게 발표하면 우리 결과가 잘못됐다는 걸 인정하는 꼴밖에 안 되잖아.”

“그럼 입장 발표를 어떻게 진행할까요?”

임 사장은 양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부여잡은 채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고 있었다.

한참 깊은 생각에 잠긴 듯한 그는 이내 정적을 깨고 입을 열었다.

“다른 방법으로 누르자. 익명의 의사들 누구인지 알아봐.”

“…네.”

임 사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다이어리를 허공에 흔들며 말했다.

“당장 급한 불부터 꺼 보자고.”

* * *

“제가 자신 있게 판매하는 NA 바이오 줄기세포 복원 주사는 방금 설명 드렸던 대로…….”

쫙 빼입은 정장.

신뢰감을 줄 수 있는 네이비 색의 넥타이.

거기에 단정하게 정돈한 머리 스타일.

너무 환한 웃음도, 그렇다고 굳은 얼굴도 아닌.

옅은 미소를 지으며 의사들의 앞에서 발표를 이어 갔다.

사실 겉으로 보여지는 이런 모습을 떠나, 이미 NA 바이오의 줄기세포 복원 주사 제품으로도 신뢰감을 주기에는 충분했다.

더군다나 몇 시간 전, 코리아 메디컬의 줄기세포 복원 주사의 신뢰를 깨트리는 기사가 터졌으니까.

의사들은 아무도 잡담을 하거나, 집중이 흩어진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화면이 뚫어져라 집중하며 내 발표를 들었고.

나는 더욱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와 얼굴로 발표를 해 나갔다.

“이미 사용을 하고 계시는 원장님들이 이 자리에 많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NA 바이오에서 저희 JH 메디컬이 수입을 해 왔고. 그 제품을 거대 메디컬이 판매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미소를 유지한 채 말을 이어 갔다.

“그래서 오늘 JH 메디컬의 대표인 제가 직접 거대 메디컬 학회에 온 이유는, 직접 원장님들을 뵙고 물건에 대해 설명을 드리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발표가 끝이 나자, 학회 안에 꺼졌던 불이 켜졌고.

의사들은 그제야 제품에 대한 이야기를 서로 나누기 시작했다.

“사용해 보시거나, 혹은 이제 사용해 보실 원장님들. 제품에 대해 궁금하신 점 있으실까요?”

내 말이 끝나자마자 두 번째 줄에 앉은 의사가 손을 번쩍 들었다.

“네, 말씀해 주세요.”

“예. 민 대표님도 아시겠지만, 오늘 코리아 메디컬 제품에 대해 기사가 나지 않았습니까. 아무리 발표된 논문이라고 해도 저희가 그 자료를 믿을 수 있는 건가요?”

그의 말에 나는 입꼬리가 스르르 올라갔다.

가장 예상했던 첫 번째 질문이 바로 임상 실험 결과였으니까.

임상 실험 결과에 대해 코리아 메디컬 제품 기사가 터진 만큼.

나는 이미 만반의 준비를 모두 해 왔다.

그리고 앞선 발표에서는 코리아 메디컬 제품과 비교할만한 내용은 전혀, 단 하나도 넣지 않았었지.

나는 마이크 앞으로 입을 가져다 대고 말했다.

“우선 말씀해 주신 대로 임상 실험 결과에 대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메디컬, 이 업계에 계신 분들이라면 모두 알고 계실 NA 바이오.”

나는 자료를 화면에 띄워 말을 이어 갔다.

“임상 실험 결과 발표지를 보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NA 바이오에서는 국내에 제품을 수출하지 않은 지가 벌써 수년에 달했고. 그사이 외국에서는 이 제품으로 완치까지 간 환자는 셀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내 말에 앞의 의사들은 술렁대기 시작했다.

“하긴. 저 제품은 자료랑 다른 점도 없긴 해.”

“맞아, 이미 NA 바이오 제품이 세계에서 유명한 건 사실이잖아.”

“저 제품의 자료가 갑자기 안 맞는 게 더 웃긴 일이지.”

그때, 또 다른 의사가 손을 들고 질문을 던졌다.

“그럼 코리아 메디컬에 있는 제품과 비교한다면, 성능이 어느 정도 차이가 나는지 알 수 있나요?”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미소를 지은 채 입을 열었다.

“음… 오늘 코리아 메디컬 기사로 인해, 비교 질문을 주시는데요. 저는 저희 제품이 코리아 메디컬 제품과 비교를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내 말에 의사들은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치료 목적만 같을 뿐이지. 성분, 용량, 치료 기간, 회복. 모든 게 비교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희 제품은 타 제품과 비교를 할 수조차 없다고 생각하고, 저희 제품에 대해서만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내 말이 끝나자 질문을 했던 의사는 입꼬리를 올렸고.

나는 내 제품에 대해서만 설명을 이어 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