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5화
* * *
“이야, 이게 대체 얼마 만이야?”
회사들이 몰려 있는 사이에 작은 한 술집.
오랜만에 만나는 동창이자, 기자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친구 백승원을 만났다.
거의 일 년이 넘는 기간 만에 만났지만, 우리는 어색함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서로를 반가워했다.
“승원아, 잘 지냈어?”
“그럼. 지훈이 너는 얼굴이 더 좋아졌다?”
“하하. 그래? 너도 마찬가지야.”
우리는 주문을 하기도 전부터 대화가 끊이지 않았고.
그는 내게 명함을 내밀며 말했다.
“여기, 나 명함 새로 나왔어.”
[메딕 일보 기자 백승원]
나는 백승원의 명함을 바라보며 말했고.
“이야. 저번에 말만 들었지, 서울까지 올라오고 승원이 출세했네.”
그는 피식 웃음을 보이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그의 손을 바라보며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백승원이 입을 열었다.
“네 명함도 줘야지. 너 이제 대단한 일하더만.”
나는 명함을 내밀며 그에게 답했다.
“대단한 일?”
“너 NA 바이오 제품 수입해 왔잖아.”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나 메디컬 기자다, 인마. 줄기세포 복원 주사 한국에 들어온 거, 내가 기사도 냈는데 모를 리가 있겠냐. 하하.”
백승원은 내 명함을 바라보더니 이내 자신의 명함 지갑에 고이 넣으며 말을 이어 갔다.
“우리 지훈이 대단한 일 할 줄 알았더니, 이렇게 잘 자라고. 내가 다 뿌듯하다.”
“참나, 네가 무슨 내 형이냐. 하하.”
백승원과는 광주에 있을 당시부터 자주 연락을 하고 지냈었다.
광주 WG 메디컬에 있을 때, 백승원이 병원 리베이트에 대한 기사를 내며 나와 자주 연락을 했었고.
그러면서 자연스레 그와 메디컬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친분이 두터워졌던 것 같다.
나는 그를 통해 내가 모르던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백승원은 나와 이야기를 나누며,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를 얻기도 했지.
서로 윈윈 관계라 생각하며 우리는 친구 그 이상으로 관계를 이어 갔다.
“안 그래도 너 회사 차린 거 같아서, 연락해야지 했는데. 갑자기 일이 바빠져서 연락할 정신이 없었다.”
“괜찮아. 나도 바쁘다는 이유로 연락 못 했는데, 뭐.”
백승원과는 가끔 안부 문자를 주고받으며 연락을 꾸준히 이어 갔지만.
광주에서 서울로 올라온 이후로 얼굴은 보는 건 처음이었다.
나는 그를 바라보고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그래도 난 네 소식 기사 통해서 잘 보고 있어. 기사가 올라오면, 음… 승원이 잘 지내고 있구나 하면서.”
“내 기사도 보냐?”
“당연하지. 네 기사 보면서 요즘 메디컬은 이런 트렌드네, 한다니까?”
그는 뿌듯한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역시 내가 기사 하나는 기가 막히게 쓰지. 하핫.”
“광주에서 땀 흘리면서 초보티 팍팍 낼 때도 있었는데, 언제 다 커서 이렇게 서울에서 기자 생활을 하고. 잘 컸네, 승원이.”
내 말에 백승원은 술을 따르며 답했다.
“그러게. 우리 둘 다 성공해서 이렇게 서울에서 보니까, 너무 좋다.”
챙―
우리는 술잔을 허공에서 부딪쳤고.
첫 잔을 마신 뒤 입을 열었다.
“승원이 네가 서울에 올라오게 된 결정적 기사가 리베이트였지?”
“응. 처음에 광주에서 리베이트 기사 하나 낸 후로 점점 전국적으로 리베이트 폭로가 나왔었지.”
백승원이 광주에서 작은 지역 일보에 다닐 때.
리베이트 기사로 인해, 그 작은 파장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고.
그 덕에 TV 공중파에도 리베이트에 관한 방송이 끊임없이 나오던 시기가 있었다.
이후 리베이트라는 검은 뒷돈은 잠시 쉬쉬하는 듯 보였으나.
여전히 암암리에 진행은 되고 있겠지.
백승원은 그 기사를 통해 자신감을 얻어, 이후 공격적인 취재를 이어 갔고.
결국, 서울에 있는 메딕 일보라는 곳으로 이직을 했다고 한다.
“메딕 일보에 친구가 있으니까, 괜히 어깨에 힘 들어간다니까?”
내 말에 그는 손을 허공에 가로저으며 웃음을 보였다.
“에이. 그 정도는 아니지. 하하.”
“왜. 메딕 일보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메디컬 기사 쓰는 곳이잖아.”
그는 내 말에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메디컬 쪽에서 대기업이기는 하지.”
“그럼.”
우리는 다시 술잔을 부딪쳤고.
나는 휴대전화를 바라보며 그에게 말했다.
“요즘 네 기사 점점 많아지더라?”
“어. 열심히 살아야지. 서울에서 죽기 전에 내 집 마련하려면, 죽도록 일해야 해.”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답했다.
“맞지. 근데 어떻게 기사가 그렇게 겹치지도 않고, 꾸준히 나오냐?”
백승원은 눈썹을 치켜들며 몸을 앞으로 당겼다.
“지훈아, 메디컬은 왜 파도 파도 자꾸 뭐가 나오는지 모르겠다.”
“그래?”
“어. 예전에는 정치부나 연예부로 가야 쓸 기사가 많겠다, 싶었는데. 메디컬 쪽에 있으니까, 그 부서 못지않아.”
그는 검지를 뻗어 허공을 쿡쿡 찌르며 말을 이어 갔다.
“사람들이 건강에 관심도 많고, 병원이나 메디컬 업계에서도 자잘하게 많이 일이 터지더라고.”
백승원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이 사는데 아픈 것, 건강에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는 게 사실이니까.
그렇게 백승원과 1년 동안 못 만나서 하지 못했던, 묵은 이야기들을 이어 나갔고.
한 시간가량이 흐른 뒤.
여전히 우리는 소주 한 병을 채 넘기지 않았다.
각자 다음날 출근이 있었고, 오늘은 술을 부어라 마셔라 먹으러 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
나는 그에게 따로 본론이 있었으니까.
“승원아.”
“응?”
“내가 오늘 할 말이 있다고 했잖아.”
그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어, 그래. 안 그래도 뭔가 궁금했는데. 뭐야?”
백승원은 눈썹을 들썩이며 내게로 몸을 당겼다.
“혹시 나한테 정보 줄 거 있어?”
나는 입술을 움찔거리며 눈을 한번 세게 감았다.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는데, 제보 하나 해도 되나 해서…….”
백승원은 마른 침을 삼키며, 소주가 찰랑이는 소주잔을 옆으로 밀어냈다.
“뭐든 괜찮아. 말해 봐.”
우리는 그렇게 소주가 주가 아닌,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테이블 위에 걸리적거리는 것들을 옆으로 밀어냈다.
“너 줄기세포 복원 주사 알지?”
“당연하지. 그거 NA 바이오에서 네가 수입한 것도 알고.”
“우리 제품 말고, 코리아 메디컬 제품.”
백승원은 이 업계에 대해 모르는 게 없었다.
내가 굳이 부연 설명을 하지 않아도, 그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임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 제품이 아무래도 좀 특이해…….”
나는 백승원에게 내가 알고 있는 것들 중.
사실만을 근거로 한 이야기들을 전해 주었고.
의사들에게 받은 자료들은 그에게 건네지 않았다.
그에게 제보를 하는 것이지, 백승원에게 이러이러한 기사를 내 달라 사주하는 건 아니었으니까.
“나는 이 제품을 경쟁자로서 깎아내리고 싶은 마음은 없어.”
“그럼?”
“환자들이 거짓된 정보로, 거짓된 제품을 사용하고 있는 거잖아. 같은 메디컬 업계 종사자로서, 이런 점은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해.”
내 말에 백승원은 눈에 불을 켜고 굳은 얼굴로 답했다.
“내가 원하는 게 바로 그런 거야. 내가 메디컬 기자를 하는 이유가 뭔 줄 알아?”
그는 옆으로 밀었던 술을 입에 털어 부으며 말을 이어 갔다.
“나는 제일 못 된 게, 배고픈 사람, 아픈 사람한테 장난질하는 거라고 생각하거든. 그건… 그냥 못된 정도를 넘은 거지.”
백승원은 의지에 타오르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우선 내가 아는 정보는 여기까지야. 뒷받침할 자료는…….”
우리는 술집 영업시간이 다 될 때까지,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 * *
몇 주 뒤.
거대 메디컬의 학회 날이 밝아 왔고.
한 호텔을 통으로 빌린 거대 메디컬.
입구부터 거대 메디컬의 학회 소식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그리고 그 바로 아래 주최자에 ‘JH 메디컬’이 함께 기재되어 있었다.
“민 대표님!”
입구에서 나를 반기는 한 과장.
그녀는 평소보다 더 단정하게 차려입은 자태로 내게 다가왔다.
“이야. 한 과장님 오늘 포스가 장난 아니신데요?”
내 말에 그녀는 머리칼을 귀 뒤로 넘기며 답했다.
“신경 좀 썼는데, 알아봐 주셔서 기분 좋은데요?”
나는 그녀를 향해 미소를 보낸 뒤.
호텔 로비 밖의 플래카드를 가리키며 말했다.
“한 과장님. 그리고 앞에 주최자에 JH 메디컬도 같이 넣어 주셨네요?”
“그럼요. 저희 발표 때만 와 주실 줄 알았더니, 비용도 투자하셨잖아요.”
“그건 제가 직접 저희 제품을 소개하니까 그랬죠.”
한 과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 말했다.
“그러니까요. 총판을 저희 주신 거라, 어차피 저희 매출에도 도움이 되는 건데. 감사해요.”
한 과장이 내게 학회 발표를 부탁한 뒤.
나는 거대 메디컬 학회에 비용을 투자했었다.
줄기세포 복원 주사가 잘 팔리면,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지만.
본사인 나에게도 도움이 되는 게 당연하니까.
더군다나 발표까지 하러 오는데, 빈손으로 학회에 참여하고 싶지는 않았고.
거대 메디컬 측에 학회에 대해 비용을 찬조하고 싶다고 하자, 그들은 당연히 거절할 리가 없었다.
이미 자신들끼리 준비를 모두 마친 상태에서 내가 돈을 투자한 거니까.
더군다나 거대 메디컬 측에서는 설명회에 인원을 투입하지 않고, 내가 발표까지 하니.
손 안 대고 코 푸는 격이지.
“아닙니다. 거대 메디컬의 매출이 올라가면, 자연스레 저도 매출이 오르는데요. 하하.”
“아무튼, 저희 대표님께서 감사 인사 전하고 싶으시다고 하셨어요.”
“아이고. 안 그러셔도 되는데.”
그녀는 빙그레 웃으며, 내게 말했다.
“총판 주실 때부터 민 대표님 만나 뵙고, 대접하고 싶다고 하셨거든요.”
한 과장은 내게 회의실로 안내를 하며 말을 이어 갔다.
“학회 끝나고, 조만간 제가 자리 만들게요.”
“네, 감사해요.”
호텔 내에 있는 커다란 회의실.
이곳에서는 이미 도착한 의사들이 서로 인사를 나누며, 편한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고.
나 역시 이 속에 합류했다.
“안녕하십니까.”
서울에서 메디컬에 근무하며 한 번쯤은 봤던 의사들은 모두 이곳에 있는 것 같았다.
이미 잘 알고 있는 리본 종합병원의 강 원장, 왕십리 종합병원의 하 원장.
그리고 행복 정형외과의 여러 원장들까지.
김사랑 원장은 개인 일정으로 참여하지 못했지만, 외에 다른 행복 정형외과의 원장들이 학회에 참석했다.
여러 원장들과 안부도 주고받고, 서로 명함을 건네고 받으며 시간을 보냈고.
그때.
“잠시 뒤, 거대 메디컬 학회의 첫 번째 일정이 시작될 예정이오니…….”
단상 앞에 선 거대 메디컬 직원의 이야기로.
우리는 하던 대화를 멈춘 채, 각자의 자리로 이동했다.
줄기세포 복원 주사에 관한 발표는 오후였고.
아직 그 시간까지는 멀었기에, 나는 의사들과 함께 자리에 앉아 거대 메디컬의 학회를 보기로 했다.
* * *
거대 메디컬의 학회는 그들의 지난 행보와 앞으로의 계획을 발표하며 순서를 이어 나갔다.
많은 의사가 보는 가운데서 거대 메디컬의 제품을 설명하고, 그들의 역사를 설명하며.
거대 메디컬의 위대함에 대한 입지가 굳어지고 있었다.
이러한 거대 메디컬의 설명은 코리아 메디컬을 비롯해, 자신들의 경쟁 업체를 겨냥한 발표였다.
거대 메디컬은 코리아 메디컬과 비등비등한 순위가 아닌.
한국에서 압도적인 1위의 자리에 오르는 것이 목표였으니까.
“…감사합니다. 이후 30분의 휴식을 가지신 후, 신제품에 대한 설명회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짝짝짝―
발표가 끝나자 박수가 터져 나왔고.
휴식 시간에 맞게, 의사들은 편히 화장실을 가거나 담배를 피우러 가기도 했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 대화를 나누는 의사들도 보였다.
그때.
“어? 박 원장 이거 봤어?”
“송 원장, 자네 이거 읽었어? 방금 올라온 거야.”
넓은 회의실에 있는 많은 의사들.
그들의 자리 곳곳에서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고.
이내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난 의사들이 수군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