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4화
“민 대표, 근데 말이야…….”
하 원장의 진지한 표정에 나는 그에게 집중했다.
“네?”
“내가 어제 다른 병원 원장들이랑 라운딩을 나갔다 왔거든.”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아, 그래서 아까 오늘 몸이 힘들다고 하셨던 거죠?”
“응. 하하.”
하 원장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 갔다.
“근데 그 병원들도 코리아 메디컬 제품이랑 민 대표네 제품을 사용하거든.”
그의 말에 나는 얼굴에 남았던 미소를 지워 냈고.
올라오려는 술기운을 밀어내며 정신을 차리고 이야기에 집중했다.
“다들 나랑 같은 이야기를 하더라?”
“코리아 메디컬 제품의 효과 말씀하시는 거죠?”
“어. 그래서 다들 그냥 민 대표네 제품을 권유한다는 곳도 있고. 또 그 명동 쪽 정형외과 원장은 아예 코리아 메디컬 제품을 뺐대.”
“벌써 제품을 빼셨대요?”
나는 놀란 얼굴로 그에게 물었고.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어. 입원해 있는 환자한테 코리아 메디컬 제품을 투입했는데, 다음 회진 때 또 아프다고 제품이 제대로 된 거 맞냐, 컴플레인을 걸었나 보더라고.”
“아…….”
“코리아 메디컬 제품이 금액 자체가 높지도 않으니까, 병원에서 그렇게 크게 남는 것도 없고. 전량 반품했다고 하더라.”
우리는 대화를 나누며, 술잔을 부딪쳤다.
그리고는 술잔을 빠르게 입에 털어 부은 후, 읊조렸다.
“그래도 납품한 지 한 달 만에 전량 반품은 빠르긴 하네요.”
“어. 그 제품으로 병원에서 돈 버는 건, 환자가 자주 맞으러 오는 거로 버는 거긴 해서 돈만 보고 병원 운영하는 원장들은 그 제품을 선호하기는 할 것 같아.”
“맞습니다. 제품 한 번 맞으러 오면, 진료비에 부가적인 수입까지 나오기는 하니까요.”
하 원장은 내 말에 머리를 흔들었다.
“그렇지. 부가적인 수입이 크잖아. 환자가 계속 있어야 병원이 돈을 버는 거니까.”
챙―
우리는 또다시 술잔을 부딪쳤고.
순간, 떠오르는 생각에 잔을 테이블에 탁 내려놓았다.
그리고 하 원장을 바라보며 물었다.
“원장님. 저 부탁 하나만 드려도 되겠습니까?”
내 말에 술잔을 내려놓던 하 원장은 눈썹을 들썩이며 답했다.
“무슨 부탁인데?”
그리고는 흥미롭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뭐, 민 대표 부탁이 어렵지 않으면 내가 다 들어주고 싶지.”
“저… 원장님의 소견서 좀 받을 수 있을까요?”
하 원장은 자신의 턱을 어루만지며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우선 내일 병원으로 와.”
“네, 원장님.”
* * *
“감사합니다. 원장님.”
하 원장은 미소를 지으며 내게 자료를 내밀었다.
“민 대표가 말한 대로 몇 군데 병원에서 원장들한테 받은 소견서야.”
그가 내민 봉투를 열자, 내 예상보다 더 많은 장수의 소견서가 담겨 있었다.
“원장님, 이렇게 많이 받아 주신 겁니까?”
“어. 각자 몇 장씩 써서 보낸 것 같더라고. 민 대표도 알다시피 이게 법적 효력이 있는 건 아니야.”
“네, 맞습니다. 그저 원장님들의 주관적인 내용으로 작성해 주신 거니까요.”
내가 그에게 부탁한 건, 코리아 메디컬 줄기세포 복원 주사의 의사 소견서였다.
거창하게 말해 소견서지, 그저 물건에 대한 리뷰와 같은 후기 글이었다.
나는 물건에 대해 공부를 하고 의사들에게 판매를 하는 역할이지, 이 물건을 직접 환자에게 투여할 수 있는 능력이나 권한은 없다.
그래서 코리아 메디컬이 내놓은 자료들을 보며, 그 자료가 맞았다든지 틀렸다든지 알 수가 없었지.
그 정보를 하 원장만을 통해 아는 것이 아니라, 사용해 본 의사들을 통해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싶었고.
하 원장은 흔쾌히 내 부탁을 받아 주었다.
그는 평소 발이 넓고, 주변 의사들과의 친분이 두터웠기에.
손쉽게 소견서를 많이 받아 올 수 있었고.
그 덕에 나는 여러 의사의 의견을 한 번에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이지.
나는 그 종이를 빠르게 훑으며, 하 원장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원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내가 무슨 거짓 정보를 주거나, 정보를 빼돌린 것도 아니고. 있는 사실을 그저 써 준 건데, 뭐.”
“그래도 주변에 원장님들께도 부탁드린 거 아니십니까.”
“에이. 애들은 내 한마디면 네, 네 하면서 해 주지. 하하.”
호탕하게 웃으며 말하는 그에게 나는 쌍수를 치켜들었다.
“역시, 원장님이십니다. 하하.”
“어쨌든, 나도 환자들을 위해서 제품을 사용하고, 치료하는 거니까. 민 대표가 나서서 제품을 알아봐 준다니까 고맙지.”
“그럼 제가 한번 알아보고,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고생해.”
“네.”
나는 그를 향해 허리를 접어 인사한 뒤.
하 원장의 진료실을 빠져나왔다.
차에 올라타 손에 들린 소견서 뭉치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이 자료들은 의사가 판단한 주관적인 의견이다.
다만 여러 의사의 주관이 모인다면, 확실한 힘이 있는 자료가 되겠지.
이걸 어디에 내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내가 보고 코리아 메디컬의 제품에 대해 파악하고 싶었을 뿐.
‘조작’이라는 것이 대체 어디에서 이루어졌는지.
임 사장이 그렇게 외치는 ‘돈’.
그 돈으로 제품의 어떤 점에 장난을 쳤는지 알아내야 했다.
더군다나 환자가 아닌, 돈만을 좇는 그가 잘못됐다는 걸.
동시에 환자를 위하는 내가 옳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
나를 애송이라 칭했던 임 사장에게 누가 더 기업을 잘 이끄는지 보여 줘야 했다.
내가 맞고, 그가 틀렸다는 것을 말이다.
사무실에 도착해 방대한 자료를 한 글자도 빠짐없이 읽어 내려갔다.
앉은 자리 그대로 몇 시간 동안 자료를 확인했고.
그 내용은 모두 한 가지의 공통점을 내놓았다.
코리아 메디컬 제품의 치료 효과가 뚜렷하지 않다는 것을.
하나둘 데이터가 쌓여 가며, 나는 점점 확신할 수 있었다.
코리아 메디컬에서 내놓은 임상 실험 결과.
그리고 카탈로그에서 강조한 낮은 금액에 높은 치료 효과.
이 모든 것이 틀린 정보라는 것.
의심은 점점 뚜렷하게 확신이 되어 갔고.
나는 이 사실을 가지고 어떻게 해야 현명한 것일까, 라는 고민에 다시 사로잡혔다.
* * *
똑똑.
“네, 들어오세요.”
대표실에 문이 열리고, 활짝 미소를 지으며 들어오는 사람.
거대 메디컬의 한 과장이었다.
“민 대표님!”
그녀는 오늘도 환한 분위기를 풍기며 내게로 다가왔다.
“한 과장님, 일찍 오셨네요?”
그녀는 내게 카페에서 사 온 커피를 건네며 답했다.
“네, 안 그래도 JH 메디컬 근처 병원에 영업 가 있었거든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대표실 가운데 있는 소파로 자리를 옮겼다.
“제가 이번에 거대 메디컬이나, 한 과장님 계시는 곳으로 가려고 했는데. 자꾸 움직이게 해서 죄송해요.”
“아니에요. 제가 오겠다고 한 건데요.”
“그래도요. 이거 커피 잘 마실게요.”
그녀는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리고 저도 회사에서 벗어나서 여기 있는 게 더 편해요. 하하.”
“그런가요?”
우리는 웃으며 서로의 안부를 물었고.
사담을 나누며 몇 분의 시간을 보낸 후.
나는 본론으로 들어가기 위해, 자료를 그녀에게 내밀었다.
“한 과장님. 그래서 제가 오늘 뵙자고 한 이유는요.”
“이게 뭐예요?”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게 물었고.
나는 내가 새로 정리한 자료를 그녀에게 보여 주었다.
“코리아 메디컬 물건에 대한 자료에요. 원장님들께서 소견서를 작성해 주신 걸 토대로 제가 정리한 건데, 한 번 읽어 보세요.”
한 과장은 서둘러 내가 내민 자료를 빠르게 읽어 내려갔고.
실시간으로 그녀의 표정은 굳어 가고 있었다.
“헐. 그럼 정말 예상대로 제품에 이상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거네요?”
“네. 직접 임상 실험을 해 보지는 않아서 정확하지는 않지만. 의사들의 소견 내용으로 보면, 제품에 대한 효과가 홍보하는 것과는 너무나도 달라요.”
그녀는 내 말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역시 민 대표님은 달라도 다른 것 같아요.”
한 과장의 말에 나는 눈썹을 들썩이며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코리아 메디컬이 나오고 나서, 저희 제품 매출이 떨어졌잖아요.”
“네.”
“그래서 저는 저희 제품을 어떻게 홍보해야 매출이 다시 오를 수 있을까를 고민했거든요.”
나는 그녀의 말에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
“맞는 일인데요?”
“근데 민 대표님은 본질적인 원인을 찾으셨잖아요. 저 역시 그 점을 의심하고는 있었지만.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어떤 것부터 조사를 해야 할지 감도 안 잡혔거든요.”
그녀는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어 갔다.
“아무튼! 제가 생각한 방법이 하나 있어요.”
한 과장의 말에 나는 흥미로운 얼굴로 몸을 그녀의 앞으로 조금 더 당겼다.
“뭔데요?”
“저희 곧 학회 여는 거 아시죠?”
그녀의 말에 나는 자연스레 눈길이 테이블 위 탁상 달력으로 향했다.
“그러네요. 이때쯤 거대 메디컬 학회 하셨죠?”
메디컬의 학회는 협회에서 이뤄지는 게 통상적인 학회다.
춘계, 추계 등 협회에서 의사들을 대상으로 학회를 열어, 정보를 공유하고 공부하는 것이다.
그런 학회에는 직접 의사들이 학회 비용을 지불하고, 공부를 하기 위해 참여하는 것이지만.
메디컬 업체에서 자체적으로 여는 학회는 이와는 사뭇 다르다.
거대 메디컬처럼 한국에서 큰 메디컬 업체들은 자신들이 의사들을 초청해 학회를 열고는 한다.
일종의 영업 목적인 셈이지.
의사가 학회비를 지불하고 참여하는 것이 아닌.
메디컬 업체에서 의사들을 무료로 초청해 친분을 쌓기도 하고.
자신들의 제품을 소개, 영업하는 것이다.
당연히 의사들을 초청해 대접하는 자리다 보니, 비용이 꽤 드는 편이다.
그렇기에 자주 열지는 못하고, 몇 년에 한 번.
정말 자주 개최한다면, 1년에 한 번 정도 이뤄지는 편이다.
이 학회의 장점은 참여한 의사들이 거대 메디컬에 대해 호의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당연히 비용을 업체에서 부담하고, 의사들은 그저 즐기러 오는 자리기에.
거대 메디컬의 제품을 발주하고, 업체에 대한 이미지가 좋게 굳어지는 것이지.
“네. 작년에는 못 열었거든요. 그래서 올해 주최하는 거라, 이번에 많은 원장님들 초청할 생각이에요.”
그녀의 말에 나는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며 답했다.
“그래서 거기서 저희 제품을 홍보하신다, 이거죠?”
내 말에 그녀는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물론 이미 병원을 돌아다니면서 영업을 했지만. 병원에서 카탈로그를 보면서 말로 설명할 때와는 다를 테니까요.”
“그렇죠. 의사들을 모아 놓고, 영상, 임상 실험 결과, 사진들을 보여 주며 전문적으로 설명하면 확실히 홍보 효과가 더 있겠네요.”
한 과장은 내 앞에 탁상 달력을 끌어당겨 와 날짜를 손으로 찍으며 말했다.
“이날이 학회인데, 민 대표님 이날 시간 괜찮으세요?”
그녀의 말에 나는 눈을 깜빡이며 답했다.
“저요?”
“네. 아무래도 민 대표님만큼 제품을 잘 아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아서요. 물론 저도 충분히 발표하고 홍보할 수는 있지만, 민 대표님께서 직접 해 주신다면 더 좋을 것 같은데…….”
그녀의 말에 나는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내가 거대 메디컬 학회에 가서 직접 발표해야 할 거라는 생각은 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순간.
머릿속을 스치는 좋은 아이디어!
나는 손가락을 튕기며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
“좋아요. 없는 시간도 만들어야죠.”
내 말에 그녀는 양손을 마주 잡고 환하게 웃었고.
나는 그녀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1박 2일이죠?”
“네, 맞아요.”
“그럼 저희 제품 발표할 날짜와 시간, 그리고 오시는 병원 원장님 목록 좀 알 수 있을까요?”
“당연하죠, 잠시만요.”
그녀는 휴대전화를 들어 빠르게 거대 메디컬 직원에게로 문자를 보냈다.
잠시 뒤.
“민 대표님. 자료 지금 메일로 송부해 놨을 거예요.”
“네, 확인할게요.”
한 과장은 앞에 놓인 자료를 바라보며 내게 말했다.
“민 대표님, 그럼 그날 민 대표님이 준비하신 이 자료도 같이 발표하실 거죠?”
코리아 메디컬 제품에 대한 의사들 소견서를 묻는 모양.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읊조렸다.
“아니요. 그보다 더 좋은 생각이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