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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영업사원이 되었다-273화 (273/339)

273화

“우리 이야기 좀 할까?”

임 사장의 말에 나는 굳이 피할 이유가 없었다.

내가 그에게 숨기는 것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오히려 피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임 사장이었어야 한다.

내 제품을 잡기 위해, 코리아 메디컬에서 제조를 한 것이니까.

“네, 그러시죠.”

나는 굳은 얼굴로 그에게 답한 뒤.

우리는 병원 뒤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임 사장과 이렇게 마주한 건, 코리아 메디컬을 퇴사한 이후 처음이었다.

아니, 독대를 떠나 그를 마주친 것 자체가 처음이었다.

그동안 한 번을 우연히라도 본 적이 없었는데, 하필이면 이 타이밍에 마주칠 줄이야.

아무도 없는 고요한 이곳.

여기는 주차장도 흡연실도 아닌, 그저 좁은 병원 골목이었다.

즉, 병원 관계자나 이곳을 아는 사람이 아니면 올 일이 없다는 말이지.

임 사장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이 으슥한 곳으로 나를 불러 냈고.

이 자리에 우리는 서로를 마주 보고 자리에 멈춰 섰다.

“…….”

그리고 이내 흐르는 정적.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는 정확하게 알지 못했지만.

내게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 고민에 빠진 듯 보였다.

어쨌든 그가 나보다 윗사람이었고, 나이도 훨씬 많으니 대화의 운을 어떻게 띄워야 하나, 라는 표정.

나는 임 사장이 입을 열기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결국 그를 향해 말했다.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예상치 못한 질문이라고 생각했는지, 임 사장의 동공이 살짝 흔들렸다.

“어. 지훈이 너도 잘 지냈고?”

그는 내게 민 대표가 아닌, 지훈이라는 이름을 불렀다.

대표라고 부르기 꺼리는 느낌을 받았지만.

굳이 그에게 민 대표라는 호칭을 불러 달라고 하고 싶지는 않았다.

“네. 근데 행복 정형외과에는 직접 오셨네요?”

“어?”

“다른 병원들은 직원들이 오는 것 같던데, 여기는 사장님께서 직접 오셨길래요.”

“아… 어. 병원장님과 직접 만나야 하니까.”

그는 내게 병원장과의 친분을 강조했다.

이 말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임 사장은 내가 행복 정형외과 병원장의 투자로 JH 메디컬을 차린 걸 모른다는 것을.

그의 말은 내게 눈곱만큼도 타격을 주지 못했고.

나는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답했다.

“네. 근데 저한테 하실 말씀이라도…….”

내 말에 임 사장은 눈썹을 들썩이며 말했다.

“아, 줄기세포 복원 주사 말이야. 그거 영업은 잘되어 가나 궁금해서.”

미묘하게 웃는 듯한 임 사장의 표정에 나는 순간 미간이 찌푸려졌지만.

이내 표정을 풀어내며 그에게 말했다.

“예, 한국에서 NA 바이오 제품을 워낙 기다려 왔잖습니까. 당연히 다들 필요로 하시죠.”

내 말에 임 사장은 한쪽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

“그래? 내가 알기로는 매출이 주춤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내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은 듯한 임 사장.

하지만 그가 시작한 이 신경전에 져 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이 미묘한 신경전의 시작은 내가 아닌, 그가 먼저 불을 지핀 것이니까.

“대체 어디서 그런 이야기를 들으셨을까요?”

“뭐… 나도 이 업계에 워낙 오래 있었잖아. 듣는 귀가 많아.”

“그럼 그분들이랑 좀 멀리 지내셔야겠는데요? 너무 거짓 정보를 주시는 분들이랑 가깝게 지내시면 안 되잖습니까.”

임 사장의 한쪽 눈이 살짝 찡그려졌고.

그는 자신의 아래에 있던 직원이 자신에게 말하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올라오는 한숨을 겨우 눌러 내며 입을 열었다.

“글쎄, 우리 제품이 이제 막 나온 거니까 JH 메디컬 매출이 걱정돼서 그러지. 이러다가 NA 바이오에서 수출한 거 철수할까 봐 말이야. 하하하.”

그의 말에 나는 얼굴이 일그러졌고.

임 사장은 호탕하게 웃으며 내게 말했다.

“농담이야, 뭘 그렇게 얼굴에 티를 내고 그래. 영업하는 사람이.”

나는 입술을 잘근 깨물며 그에게 답했다.

“근데 임 사장님. NA 바이오 제품이 더 뛰어나다는 건 알고 계시죠?”

그는 내 말에 곧바로 입을 열었다.

“그건…….”

나는 서둘러 그의 말을 잘라 내며 말을 이어 갔다.

“아, 그걸 모를 리가 없으시죠. 저희 제품을 보면서, 제조를 하셨을 테니까요. 그럼 더 잘 아시지 않나요. 코리아 메디컬 제품이 저희 제품에 밀린다는 걸요.”

그는 내 말에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네 말대로라면 우리 제품이 왜 팔리겠어. 제품에서 가격 경쟁도 중요한 거야.”

“당연히 그 제품의 질이라면 그 가격일 수밖에 없겠죠. 그래서 저희 제품과 코리아 메디컬의 제품은 비교를 할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내 말에 그는 쓰읍 소리를 내며 말했다.

“근데 상황을 봐. 효과가 작은 제품이어도, 금액이 저렴하니까 환자들이 우르르 우리 제품 선택하는 거.”

“그건, 단순히…….”

임 사장은 내 말을 툭 잘라 내며 고개를 높이 들고 내게 말했다.

“지훈이가 영업은 참 잘하는데, 아직 사업은 멀었다.”

“네?”

“세상 물정 모르고, 영업력 하나 믿고 나가서 회사 차린 애들 말이야. 내가 몇이나 봤을 거 같니?”

그의 말에 나는 점점 얼굴이 일그러져 갔다.

“사장님은 그럼 물건의 효과보다 금액이 더 중요하다, 이 말씀을 하고 싶으신 겁니까?”

내 말에 그는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당연하지. 저렴해서 환자들의 접근성이 훨씬 좋잖아?”

“그건 제품의 질이 떨어지니까, 자연스레 가격도 낮은 거 아닙니까. 저희 제품은 성능 때문에 금액은 비싸도, 코리아 메디컬 제품과는 달리 한 번에 눈에 띄는 치료 효과를 볼 수가 있습니다.”

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어 갔다.

“코리아 메디컬은 그저 장삿속으로 제품을 내놓으신 거 아닙니까? 제가 제품을 보니까, 치료 효과도 엄청나게 미미하던데요.”

임 사장은 내 말에 눈살을 찌푸렸고.

이내 탄식을 내뱉으며 내게 말했다.

“지훈이 너처럼 환자 생각하는 거? 좋다 이거야. 근데 사업은 그런 착한 마인드로는 돈 못 벌어.”

“메디컬 업계에서 물건을 판매하면서. 환자를 생각하지 않으면 대체 뭘 생각해야 합니까? 그저 돈만 좇아가면서 환자 생각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겁니까?”

그는 검지를 내밀어 허공에 흔들며 말했다.

“네가 내 밑에 있던 놈이니까, 그래도 그간의 정을 생각해서 충고하나 할게. 세상 사람들이 말이야. 그렇게 똑똑하지 않아. 그저 눈앞에 보이는 싼 거, 더 싼 거. 이런 거 따지면서 산다고.”

임 사장의 말에 나는 미간을 찌푸렸고.

그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지 몸에 뭐가 더 좋은 치료인지 고민하는 게 아니라, 돈부터 생각하고 고민한다고. 그러니까 네 제품보다 우리 코리아 메디컬 제품이 더 잘 나갈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그거야.”

그의 말에 나는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한때는 내가 믿고 따르던 코리아 메디컬의 임 사장이었는데.

역시 업계에서 손가락 안에 꼽히는 회사는 이렇게 ‘돈’만을 생각하는구나, 라는 생각과 동시에.

그의 말을 가만히 듣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내가 그저 무시하고 넘어간다면, 임 사장은 자신이 맞고, 내가 틀렸다고 생각할 테니까.

나는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

“그러는 분이 저희 물건 총판 따내시려고 했던 겁니까?”

내 말에 그의 눈살이 찌푸려졌고.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을 이어 갔다.

“저희 제품이 원조라서 그러시는 거 아닙니까?”

“그건 내가 NA 바이오 제품을…….”

임 사장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답했다.

“원조라는 건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짝퉁을 만들어도 원조를 찾는 것처럼요.”

“뭐? 짝…퉁?”

“네, 짝퉁이요. 낮은 가격과 미미한 효과의 제품으로 원조를 따라잡으려고 하셨다는 게… 개인적으로는 조금 안타깝습니다.”

그는 내 말에 지지 않고 입을 열었다.

“너 같은 애송이는 장사의 ‘장’자도 몰라. 그런 식으로 장사하면 업계에서 1년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두고 보시면 아시겠죠. 어느 기업이 더 오래가는지, 환자들에게 그리고 메디컬 업계에서 더 선망받는지를요.”

* * *

챙―

왕십리 종합병원의 하 원장과의 술자리.

나와 하 원장은 단둘이 앉아, 서로를 보며 잔을 부딪쳤다.

“크으. 오랜만에 민 대표랑 밖에서 둘이 보네?”

“그러게 말입니다. 원장님이 워낙 바쁘시니까, 제가 번호표 기다리느라 늦었습니다.”

“하하. 내가 모임을 좀 줄여야지, 원.”

나는 그를 향해 엄지를 치켜들었다.

“아닙니다. 저는 원장님처럼 발이 넓은 분들이 부럽더라고요.”

“민 대표도 한 발 하잖아.”

“에이. 원장님 앞에서 명함도 못 내밉니다.”

그는 호탕하게 웃으며 내 빈 잔을 채웠다.

우리는 시답잖은 이야기들을 나누며 술잔을 비워 냈고.

연거푸 몇 잔을 더 들이켠 후에, 나는 그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원장님. 줄기세포 복원 주사에 대해서 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내 물음에 그는 눈썹을 들썩이며 답했다.

“어. 당연하지. 어떤 거, 코리아 메디컬 제품?”

“네.”

내 의도를 단번에 파악한 하 원장은 곧장 입을 열었다.

“음… 우선 환자들 반응이 좋아. 민 대표도 알다시피 거기 제품은 금액이 저렴하잖아.”

역시나.

임 사장의 말대로 그저 금액만을 보고 제품을 결정한 환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그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 제품으로 우리 제품의 효과를 받으려면, 최소 몇십 번은 받아야 하는데 말이다.

나는 안타까운 현실에 한숨을 내쉬었고.

하 원장은 한쪽 눈을 찡긋거리며 말을 이어 갔다.

“민 대표네 제품이 금액이 부담스러운 건 사실이니까. 근데 확실히 코리아 메디컬 제품의 효과가 조금 특이하기는 해.”

효과가 미미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 등의 말이 아닌.

효과가 특이하다는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특이하다면 어떤…….”

“뭐랄까, 환자의 치료 속도가 더딘 게 아니라. 너무 일시적이야.”

“코리아 메디컬 제품의 질이 낮으니까, 효과가 일시적인 거 아닙니까?”

하 원장은 내 말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답했다.

“아무리 그래도 일시적인 이후에는 조금은 나아져야 하는데, 이 제품은 특이하게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오는 느낌이야.”

“…네? 그럴 수가 있는 겁니까?”

하 원장 역시 고개를 갸웃거리며 답했다.

“뭐, 환자가 치료 후에도 관리를 잘 해 주지 않으면, 다시 상황이 악화되는 경우는 많긴 하지. 그런데 코리아 메디컬 제품을 썼던 환자들이 대부분 그렇더라고.”

“확실히 뭔가 이상하기는 하네요.”

내 말에 하 원장은 술을 홀짝이며 답했다.

“그에 반해 민 대표네 제품은 효과가 확실해. 금액이 부담되기는 하지만, 그만큼 치료도 회복도 눈에 띄게 진행되니까. 내가 효과를 자부하면서 권하는 편이지.”

“감사합니다.”

“민 대표네 제품이랑 코리아 메디컬 제품의 각자 장단점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했는데. 코리아 메디컬 제품은 조금 더 써 봐야 할 것 같아.”

나는 지난번 코리아 메디컬 제품에 대해 조사를 하며, 궁금했던 점을 그에게 물었다.

“원장님. 제가 알기로는 그 제품이 다섯 번에서 많게는 열 번 사용하면, 저희 제품 한 번 사용한 것과 효과가 비슷하다고 하던데. 그게 맞는 건가요?”

“음… 나도 그렇게 듣기는 했어. 코리아 메디컬 제품이 시간이 조금 오래 걸릴 뿐이지, 효과는 같다고. 근데 그렇지도 않을 거 같아.”

그의 말에 나는 눈썹을 들썩였다.

“아직 열 번을 사용해 본 환자가 우선은 없어. 맞는 주기가 있다 보니까, 아직 출시되고 열 번을 맞을 수가 없었지. 근데 세 번 맞은 환자는 있는데, 효과가 아직도 미미해.”

그의 말에 나는 코리아 메디컬의 카탈로그를 떠올렸다.

‘하 원장의 말대로라면, 정말 코리아 메디컬에서 조작을 한 부분이… 임상 실험 결과였을까?’

입술을 잘근 깨물며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그것이 조작된 부분이라고 의심은 가더라도, 확신이나 그렇다 할만한 증거가 없었다.

그때.

하 원장이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민 대표, 근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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