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2화
【 짝퉁 】
조작?
옛정?
나는 대표실 의자에 기대어 백 이사의 속마음을 몇십 번이고 곱씹었다.
“대체 무슨 조작을 했다는 거지?”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백 이사의 속마음에 머리가 지끈거려왔다.
하루 내내 이 생각만을 하며 보냈으니, 머리가 아파 올 수밖에.
그렇다고 할 만한 해답은 당연히 찾지 못했다.
백 이사한테 조작을 했느냐고 대놓고 물어볼 수는 없는 노릇.
다만 나는 그의 말의 해답을 찾기 위해, 관련 자료들을 모조리 끌어모았다.
책상 위에 올려진 코리아 메디컬 줄기세포 복원 주사의 카탈로그.
그리고 그와 관련된 자료들.
병원을 통해서 얻은 자료와 코리아 메디컬 공식 홈페이지에 올라온 자료.
이와 더불어 몇 가지의 자료들을 더 공수해 책상 위에 촤르르 펼쳤다.
고요한 JH 메디컬 사무실.
직원들이 모두 퇴근을 했지만, 오늘도 여전히 대표실의 불은 꺼지지 않았다.
나는 정신을 다잡으며 자료를 하나씩 훑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저 자료를 읽는다는 생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이 중에 어딘가 이상한, 조작으로 보일 만한 자료를 찾아야 한다.
나는 그들의 제품 금액에 빨간 펜으로 동그라미를 그려 냈다.
“금액이 우리 제품에 비해 확연히 저렴해. 하지만 저렴한 거로 백 이사가 그런 말을 했을 리가 없잖아.”
나는 서둘러 금액표를 옆으로 밀어냈고.
제품에 대한 상세 내용과 임상 실험 결과들에 집중했다.
이 제품으로 치료한 후에 환자의 몸 상태에 대한 자료였고.
그 자료는 우리 제품과는 현저히 다른 그래프를 보이고 있었다.
우리 제품 같은 경우, 한 번 주사를 투여한 뒤.
환자의 몸에서 통증 부위가 치료되는 것이 눈에 띄게 사진에 드러났고.
그에 비례하게 그래프 수치가 수직으로 상승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코리아 메디컬의 제품은 그렇지 않았다.
통증 부위가 치료되는 것이 사진상에 드러나기는 했지만, 그 정도가 미미했고.
당연히 그래프 수치가 상승 선을 그리고는 있지만, 완만한 경사를 그리고 있었다.
“음… 근데 이건 당연한 거잖아?”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그래프를 바라보았다.
“우리 제품에 비해 금액이 저렴하다는 건, 제품의 질 또한 낮을 거라는 거니까.”
입술을 잘근 깨물며 우리 제품과 코리아 메디컬 제품의 그래프를 비교했다.
“코리아 메디컬 제품이 금액도 이렇게 저렴한데, 치료가 우리 제품처럼 잘되는 거면. 그게 이상한 거지.”
아무리 찾아도 쉽사리 발견되지 않는 ‘조작’의 흔적 때문에 한숨이 절로 새어 나왔다.
“설마… 이 그래프가 조작됐다는 건가?”
나는 일말의 의심을 품으며 고개를 갸웃거렸고.
이내 허공에 손을 휘저었다.
“아니지. 아무리 임 사장이 평소에 행실이 안 좋았다고 해도. 그건 말도 안 돼. 환자의 몸에 투여하는 주사인데, 그 제품을 조작했을 리는 없잖아.”
나는 임 사장의 얼굴을 떠올리며 읊조렸다.
“아무리 임 사장이 돈에 눈이 먼 사람이라고 해도, 사람 몸에 쓰는 거에 장난질을 하지는 않았겠지.”
흥분한 채 일어 서 있던 나는, 한숨을 내쉬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래. 다시 처음부터 하나하나 살펴보자.”
그렇게 눈이 빠져라 자료를 본지도 어언 세 시간이 훌쩍 지났다.
아무리 논문을 보아도, 카탈로그를 보아도.
이상한 점은 찾을 수가 없었다.
“임상 실험이 좀 걸리기는 하네…….”
코리아 메디컬에서 내놓은 임상 실험 결과.
그 자료에는 자신들의 주사로 인해 환자가 치료되는 과정을 자세하게 정리해 두었고.
치료되는 과정은 우리 제품보다는 진행 속도가 더디지만.
5번, 10번 투여한 뒤에 환자 상태는 월등히 호전되어 있는 모습을 보였다.
한 번 투여했을 때 미미하게 호전되었던 상태가.
5번째 투여에 급격히 나아진 모습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이렇게 될 수도 있기는 한 건데. 이걸로 조작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지…….”
그 임상 자료로 내가 실험을 해 볼 수 있는 게 아니기에.
나는 그저 의심만을 품은 채, 자료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마음속에 자리 잡아 버린 ‘조작’이라는 한 단어.
그 백 이사의 속마음 소리가 나를 사로잡고 있었고.
나는 결국 대표실에 어둠이 짙게 깔릴 때까지, 코리아 메디컬의 자료를 연구하고 또 연구했다.
* * *
똑똑.
“네, 들어오세요.”
신소율은 대표실 문을 활짝 열며, 다소 굳은 얼굴로 내게 다가왔다.
“대표님.”
“네, 소율 씨. 무슨 일 있어요?”
평소와 다른 그녀의 얼굴에 나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고.
그녀는 입술을 말아 넣은 채, 결재판을 들고 내게로 성큼 다가왔다.
“저희 이번 달 매출 정리한 거 보고드리려고요.”
신소율이 건넨 자료를 받아들었고, 자료를 보기도 전에 그녀의 표정으로 내용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우리 매출 많이 떨어졌어요?”
내 말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임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흐음…….”
나는 서둘러 검은 결재판을 열어 서류에 적힌 내용을 빠르게 훑었다.
지난달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 매출 금액.
“이거 한 달 정리한 거 말고, 날짜별로 정리한 것도 볼 수 있을까요?”
나는 고개를 들어 신소율에게 물었고.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내밀어 자료를 집었다.
“네, 안 그래도 찾으실까 봐 여기 뒷장에 정리해 뒀습니다.”
나는 그녀의 준비성에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역시, 소율 씨라니까요.”
그리고 이내 얼굴에 미소는 순식간에 지워졌다.
신소율이 정리한 매출 그래프.
상승세를 유지하던 매출은 한 날을 기점으로 멈춰 버렸다.
그날은 다름 아닌, 코리아 메디컬의 제품 출시일.
“하아… 딱 코리아 메디컬 제품 나온 다음부터 매출이 줄었네요?”
“네. 그때 살짝 주춤하더니, 요즘은 매출이 줄고 있습니다. 물론 그래도 꾸준히 판매는 되고 있어요.”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고.
신소율은 자료를 보며 내게 말을 이어 갔다.
“광주 메디컬 쪽으로 나간 매출은 그래도 꾸준하게 유지 중입니다. 근데 서울에서는 지난달에 비해 현저하게 매출이 떨어졌고요. 이거 말고 다른 자료 말씀하시면, 정리해 오도록 하겠습니다.”
코리아 메디컬 측에서도 아직 지방까지는 손을 쓰지 못한 모양.
“네, 고마워요. 제가 자료 보고 필요하면 이야기할게요.”
“예.”
신소율이 대표실을 나간 뒤.
나는 자료를 보다가 말고, 서둘러 나갈 채비를 마친 뒤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 * *
“한 과장님, 여기요.”
“안녕하세요. 민 대표님, 오래 기다리셨어요?”
거대 메디컬 한 과장은 빠르게 걸어와 내 앞 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아니요. 저도 방금 막 도착했어요.”
한 과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 말했다.
“코리아 메디컬 때문에 보자고 하신 거죠?”
그녀의 얼굴에도 이미 걱정이 흐르고 있는 것이 눈에 보였고.
나는 입술을 잘근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 과장님, 병원들 영업 상황은 어때요?”
“음… 민 대표님도 아시겠지만, 가격 경쟁에서는 저희 제품이 밀리는 건 사실이에요.”
“네. 애초에 저희는 같은 비교군으로 접하면 안 될 것 같아요.”
내 말에 그녀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저희는 그렇게 생각하지만, 병원에서는 동일한 제품으로 생각하시니까. 그게 걱정이에요. 같은 제품이라면, 환자들은 저렴한 제품을 선호하니까요.”
“그렇죠. 환자분들은 치료도 치료지만, 금액도 무시할 수 없을 테니까요.”
한 과장은 어깨를 들었다 내려놓으며 말했다.
“근데 솔직히 치료 목적이라면, 코리아 메디컬 제품 쓰는 거 너무 아니지 않아요?”
그녀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저희 제품이 물론 코리아 메디컬 제품에 비해 가격이 열 배는 넘게 비싸지만. 그 제품은 열 번을 맞아도 완치는 아니잖아요.”
한 과장의 말에 나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비싸도 한 번에 맞아서 치료를 할 수 있는 건데. 저희도 완치까지는 아니어도, 반영구적으로 치료는 되는데. 코리아 메디컬 제품은 주기적으로 계속 맞아야 하더라고요.”
“그러니까요. 게다가 코리아 메디컬 주사 열 번 맞을 시간이면, 저희 제품 비싸도 한 번 맞고 끝내는 게 훨씬 시간 절약이지 않아요?”
그녀와 나는 우리 제품의 장점에 대해 말을 이어 갔다.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하죠. 제가 아픈 환자라면, 당연히 저희 제품을 선택할 것 같은데.”
“근데 와중에 너무나도 저렴한 코리아 메디컬 제품이 나오니까, 금액에 현혹이 되는 걸까요?”
한 과장과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물론 환자들이 제품을 선택하는 건, 자유지만. 의사가 제대로 제품에 대해 고지한다면, 저는 저희 제품으로 치료할래요.”
그녀는 새침하게 말을 내뱉었고.
나는 피식 웃음을 보였다.
“저도 치료 목적이니까, 저희 제품을 선택한다고 생각하는데. 왜 코리아 메디컬 제품이 점점 매출이 늘어 갈까요?”
한 과장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답했다.
“하아… 진짜 금액이랑 치료되는 걸 보면, 우리 제품이 압승인데. 그쵸?”
“애초에 한국 기술로 NA 바이오 제품처럼 만들지 못해서, 다들 이 제품 수입을 기다려 왔던 건데. 갑자기 코리아 메디컬이 만든 대체품을 사용하고 있다는 게… 참 그렇네요.”
“맞아요. 치료 효과가 이렇게 미미한데. 무슨 좋은 수 없을까요?”
한 과장은 자신의 턱을 어루만지며 말했고.
나 역시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해 입술만을 잘근 깨물었다.
“좋은 수… 생각해 보고 있으니까, 한 과장님도 무슨 일 생기거나, 병원에서 코리아 메디컬 제품 이야기 들으면 바로 알려 주세요.”
“네, 그럴게요.”
* * *
그날 오후.
행복 정형외과 병원장실.
JH 메디컬의 투자자이자, 김사랑의 아버지이자, 병원장인 김준수 원장.
내 회사에 투자해 줬기에, 평소 자주 그에게 들러 회사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네, 그래서 이번에 매출이 조금 주춤하기는 했습니다.”
“그래? 흠… 내가 보기에 그 제품이 NA 바이오 제품을 이길 수는 없을 것 같던데.”
병원장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예,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금액이 저렴하기는 하나, 그만큼 제품의 질 또한 떨어지니까요. 금방 매출 회복하도록 하겠습니다.”
“뭐, 나는 전적으로 민 대표를 믿고 투자한 거니까. 알아서 잘할 거라 믿네. 저번에 말한 소모품 제조도 잘 되어 가나?”
이미 그에게 내가 생각하고 있는 스플린트를 이야기했었고.
그는 큰 흥미를 보였었다.
“그 제품은 제조사들 쪽에서 공정이 까다로워서 달가워하지는 않더라고요. 근데 첫 발주부터 수량을 넉넉히 잡아 오면, 금액적인 부분을 조율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응. 저번에 말했듯이 우리 병원은 그 제품에 대해 호의적이니까, 민 대표가 다른 병원에서도 발주받으면 우리 발주량이랑 같이 제작 들어가면 될 것 같네.”
나는 그에게 허리를 접으며 답했다.
“네, 병원장님께서 발주 주신 물량과 병원 몇 군데에서도 대량 발주를 받아야, 첫 생산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래.”
“항상 믿고 맡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병원장님.”
그는 호탕하게 웃으며 내게 답했다.
“나는 민 대표 자네를 그대로 믿는다기보다, 자네의 실력을 믿어. 항상 내게 그렇게 보답하듯 보여 줬고 말이야.”
그의 말에 나는 미소를 지었고.
병원장은 내게 말을 이어 갔다.
“언제든 늘 그렇게 정답을 찾아가고 있다고 생각해. 내 도움이 필요하다면, 편하게 이야기하고.”
“예, 감사합니다.”
“그리고 우리 행복 정형외과는 코리아 메디컬 줄기세포 복원 주사 납품받지 않을 거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민 대표 경쟁 상대이자, 물건이 좋지도 않은데 내가 받을 리가 있겠나. 하하.”
“병원장님께서 말씀해 주신 대로, 늘 올바른 길로 나아가겠습니다.”
“그래. 바쁠 텐데, 얼른 가서 일 봐.”
훈훈하게 자리를 마무리한 뒤.
나는 병원장을 향해 허리를 접은 후, 병원장실을 빠져나왔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로비로 향하던 그때.
“어?”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는 코리아 메디컬 김 사장과 마주쳤고.
우리는 서로를 마주 보고, 놀란 얼굴로 자리에 멈춰 섰다.
그가 이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는 건, 행복 정형외과 병원장을 만나러 가려던 모양.
나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그의 앞으로 다가갔고.
이에 그는 텅 빈 엘리베이터에 오르지 않고, 내게로 걸어왔다.
“우리 이야기 좀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