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1화
“오늘이 아니고, 지난주요?”
놀란 얼굴로 강 원장을 향해 묻자, 그는 눈썹을 들썩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금요일 거의 퇴근할 때쯤에 와서 물건 보여 주더라고.”
“아…….”
코리아 메디컬 물건 출시일이 오늘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아니, 주변에 그렇게 이야기가 돌고 있었지.
그래서 병원에 확인차 왔건만, 이미 수를 쓴 모양.
하지만 그건 내게 크게 중요치 않았다.
그들이 영업을 한다고 해서 내가 그것을 막으러 온 건 아니었으니까.
그저 코리아 메디컬의 물건을 확인하고 싶었고.
그들의 동태를 살피고 싶었을 뿐.
“민 대표가 당연히 알고 있을 줄 알았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알려 줄 걸, 미안하네.”
강 원장의 말에 나는 손사래를 치며 답했다.
“아이고. 아닙니다. 저도 곧 출시라는 건 알고 있었거든요.”
“그래?”
“네. 그래서 물건은 받으셨습니까?”
내 말에 강 원장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 받지는 않았어.”
강 원장은 내게 ‘아직’이라는 단어를 내뱉었다.
그건 즉, 받지 않을 거라는 확신은 없다는 것이지.
이 한마디의 말로 코리아 메디컬의 줄기세포 복원 주사를 대충은 알 수 있었다.
물건이 썩 나쁘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강 원장의 진료실에서 나온 후.
몇 시간 동안 수많은 병원을 돌아다녔지만.
모두 비슷한 반응이었다.
물건을 구입하지는 않았지만, 코리아 메디컬 제품에 대해 꽤 호의적인 편이었다.
그래서 더욱 그들의 제품이 궁금해졌다.
내가 NA 바이오에서 수입을 해 온 물건과 제품의 질이 어느 정도로 비슷한지.
금액은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 말이다.
그러던 중.
왕십리 정형외과 하 원장의 진료실.
그와 역시나 코리아 메디컬의 줄기세포 복원 주사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고.
그는 눈을 깜빡이며 내게 말했다.
“어. 그래서 나 제품 구매했지.”
“정말요?”
“응.”
내게 코리아 메디컬 제품이 출시될 거라고 알려 줬던 사람이 하 원장이었다.
그런데 지금껏 병원을 돌아다닌 결과.
유일하게 코리아 메디컬 제품을 구매한 사람은 하 원장 한 명뿐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하 원장에게 실망감은 추호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에게 반갑고 고마운 마음이 들 정도.
코리아 메디컬 제품을 나 역시 보고 싶었지만, 볼 수 있는 병원이 없었으니까.
“물건은 어떻습니까, 원장님?”
눈을 반짝이며 그에게 묻자, 하 원장은 쓰읍 소리를 내며 답했다.
“아직은 모르겠어. 오늘 처음으로 한 환자한테 썼는데. 이제 막 사용한 거니까.”
“하긴, 이제 막 제품 받으셨으면 아직 정확히는 모르시겠네요.”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응. 아직 이 업계에 줄기세포 복원 주사가 흔하지는 않잖아. 그래서 이것저것 사용해 보고 싶었어. 민 대표한테 미안해하지는 않아도 되는 거지?”
이렇게 말을 하면서도 하 원장은 눈썹을 늘어뜨린 채 말했고.
나는 빙그레 웃으며 그에게 답했다.
“당연하죠. 오히려 저는 이렇게 사용해 보시고 피드백 주시니까 감사한데요.”
미소를 짓는 하 원장에게 나는 말을 이었다.
“원장님께서는 환자를 위해 당연히 여러 제품 비교해 보시는 게 맞는 일이고요. 저한테 미안해하시거나, 전혀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알겠어. 대신 내가 솔직하게 민 대표네 제품 피드백은 해 줄게.”
“예, 감사합니다.”
하 원장의 진료실에서 나오며 받은 코리아 메디컬 줄기세포 복원 주사의 카탈로그.
나는 그 자료를 보며 차에 올라탔다.
저녁까지 돌며 병원 조사를 했지만.
코리아 메디컬은 현재 발에 땀이 나도록 영업을 하는 중이었고.
물건을 구매한 곳은 왕십리 종합병원 한 곳이었다.
물론 내가 돌아본 병원 중에서는 말이다.
그리고 병원에서는 내 제품의 대체품으로 코리아 메디컬의 제품을 선호하는 편은 아닌 것 같았다.
그저 두 개의 제품을 함께 비교하면서 사용하려는 것 같았고.
나는 손에 들린 카탈로그를 빤히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해야 코리아 메디컬 제품을 내가 누를 수 있을까?’
* * *
코리아 메디컬에서 제품을 출시한 후.
벌써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우리 회사의 줄기세포 복원 주사 물건 판매는 거대 메디컬과 광주 메디컬이 총판을 도맡아 판매를 하고 있지만.
그들과는 별개로 나 역시 시장 조사를 하기 위해, 열심히 발로 뛰었고.
병원에서 심심찮게 코리아 메디컬 직원들을 마주쳤었다.
거대 메디컬도 직원의 수가 상당하지만, 그들은 줄기세포 복원 주사만을 바라보며 영업하는 것이 아니기에.
이 제품에만 집중해 영업을 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에 반해 코리아 메디컬은 이제 막 자체 제작으로 출시한 제품이 나왔기 때문에.
그 제품으로만 영업을 하고 있었고.
당연히 수적으로 부족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었다.
병원을 가는 족족, 코리아 메디컬에서 영업을 한 후였고.
이제는 꽤 많은 병원이 코리아 메디컬의 제품을 보유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들이 강점이라고 외치는 것은 단 하나.
우리 제품보다 확연하게 ‘저렴한 가격’이라는 것이다.
금액이 저렴한 만큼, 당연히 품질 또한 낮을 것이지만.
환자들은 당장의 저렴한 금액에 혹해 코리아 메디컬 제품을 선호하고 있었다.
이대로 보고만 있다면, 점점 매출에서 우리 제품이 밀릴 수밖에 없었고.
나는 다른 수를 써야만 했다.
* * *
어떤 방법으로 우리의 제품을 어필하고 판매를 증진 시킬 수 있을까?
나는 이 생각 하나에 사로잡혀 고민에 빠져 멍하니 병원에서 나오던 그때.
고개를 들자, 시야에 들어오는 한 사람.
코리아 메디컬의 백 이사였다.
나는 그를 보자마자 너무나도 반가운 마음에 백 이사에게로 발길을 옮겼다.
“백 이사님!”
백 이사는 내가 코리아 메디컬에 있을 당시.
조 차장과 함께 친분이 두터웠던 선임이었다.
나와 조 차장은 회사를 다니며 백 이사에게 의지를 많이 했었다.
소위 말해 백 이사의 라인을 탔었지.
하지만 퇴사를 한 뒤, 그와의 연락은 자연스레 뜸해질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안부차 연락을 자주 주고받았었지만.
최근 코리아 메디컬에서 줄기세포 복원 주사를 제조한다는 이야기에.
조 차장이 내게 백 이사와 거리를 둘 것을 조언했었고,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에게 연락을 쉽사리 하지 못했었다.
백 이사가 내게 무언가를 캐내려고 하거나, 라이벌 의식을 느껴서는 아니었다.
그저 같은 제품을 판매하게 되는.
그리고 코리아 메디컬이 나를 저격하는 것에 대해 알고 있었고.
혹시나 그런 이유로 백 이사가 나와의 만남을 꺼릴 것 같아 배려를 했던 것이지.
그런데 이렇게 병원에서 마주쳤는데, 굳이 그를 모른 체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보다 반가운 마음이 먼저였으니까.
백 이사는 나를 발견하자마자 놀란 표정을 가장 먼저 지었고.
그 뒤로는 곧장 사르르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지훈아!”
“이사님, 잘 지내셨습니까?”
나는 그에게 허리를 접어 인사하며 물었다.
“그럼. 너도 잘 지냈어?”
“네. 최근에 연락 자주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
“에이. 죄송은 무슨.”
나는 미소를 지으며 시선을 아래로 옮겼고.
그의 손에는 역시나 줄기세포 복원 주사의 카탈로그가 잔뜩 들려 있었다.
그것을 보고 있는 내 시선을 느꼈는지, 백 이사는 황급히 카탈로그를 가방 안으로 구겨 넣었다.
“아… 그……. 내가 지금 바빠서…….”
백 이사는 갑자기 나와의 만남을 불편해하는 것 같았고.
그 이유는 너무나도 명백하게 줄기세포 복원 주사 때문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건 백 이사와 내 사이의 문제가 아니라.
코리아 메디컬의 임 사장과 나와의 문제였기에.
나는 그를 붙잡으며 말했다.
“에이. 이사님, 저 오랜만에 봤는데. 저 그만뒀다고 피하시는 겁니까?”
그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 아니야.”
“너무하십니다. 오랜만에 이렇게라도 마주쳤는데, 커피라도 한잔하시죠.”
나는 그의 팔을 붙잡으며 너스레를 떨었고.
백 이사는 주변을 둘러보며 고개를 잘게 끄덕였다.
“그래. 그럼 병원 로비에 있는 카페 말고, 저기 건너편으로 좀 나갈까?”
그는 혹시나 자신의 메디컬 사람과 마주칠 것을 걱정하는 듯 보였고.
나는 그 마음을 알아차리고 곧장 머리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좋습니다.”
카페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가장 안쪽 인적이 드문 자리로 향했다.
“지훈이는 뭐 마실래?”
백 이사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내게 물었고.
나는 서둘러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제가 사 오겠습니다. 이사님 뭐 드시겠습니까?”
“아니야. 내가 한잔 살게.”
“아닙니다. 제가 마시자고 이사님 열심히 꼬셨잖습니까. 하하.”
백 이사는 내 말에 웃음을 터트렸고.
나는 그를 바라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이사님, 항상 드시던 거로 사 오겠습니다.”
백 이사는 카드를 내게 내밀며 말했다.
“이거로 해. 얼른 받아.”
나는 백 이사의 말에 그의 카드를 받았고.
카운터로 향해 백 이사의 카드가 아닌, 내 카드를 내밀어 결제했다.
잠시 뒤.
커피가 나오자 백 이사는 자신의 휴대전화를 바라보며 내게 말했다.
“뭐야, 내 거로 결제 안 했어?”
“네. 다음에 맛있는 거로 사 주세요. 오늘은 제가 만나자고 졸랐으니, 제가 내겠습니다. 하하.”
“아휴, 지훈이 너도 참. 잘 마실게.”
우리는 그렇게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그동안 못 나눴던 대화들을 펼쳐 갔다.
“그래서 회사는 운영 잘 되어 가?”
“네. 열심히 하고는 있는데, 쉽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이사님은 별일 없으시고요?”
“응. 월급쟁이가 뭐 항상 똑같지.”
백 이사와 나는 시답잖은 이야기들로 오디오를 가득 채웠고.
이야기를 하던 백 이사가 몸을 움직이면서 그의 가방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쿵―
나는 서둘러 떨어진 그의 가방으로 다가가 널브러진 자료를 대신 주워 담았다.
“제가…….”
열렸던 가방에서 떨어진 자료들은 전부 줄기세포 복원 주사의 카탈로그였고.
나는 괜스레 백 이사의 눈치를 보며 말끝을 흐렸다.
황급히 자료를 가방에 넣어 그에게 건넸고.
“…고마워.”
백 이사 역시 내가 그의 자료를 본 것을 확인하고, 말을 아꼈다.
잠시 테이블에는 정적이 흘렀고.
그 고요함을 깨고 백 이사가 나를 향해 물었다.
“그래서 병원에는 영업하러 온 거야?”
“아니요. 그냥 조사차 나왔습니다. 제가 따로 제조는 안 하고, 판매만 하고 있잖습니까?”
“맞네. 그럼 그 제품은 총판으로 판매만 하는 거지?”
백 이사의 질문에 나는 잠시 입을 주춤거렸다.
“…줄기세포 복원 주사 말씀이십니까?”
“응.”
“네, 총판으로 거래처에만 판매하고 있습니다.”
“그렇구나. 아무튼, 그래서 회사 운영이 힘들지는 않아?”
그는 서둘러 말을 돌렸고.
나 역시 백 이사와 민감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원하지는 않았다.
그저 백 이사를 만나 반가웠던 것이지.
그를 통해 코리아 메디컬의 무언가를 캐내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으니까.
우리는 자연스레 대화 주제를 환기시켰다.
“네, 뭐. 근데 이사님 조 차장님과는 자주 만나십니까?”
“조 차장은 몇 달 전에 술 한잔했었지. 다음에 시간 맞춰서 셋이 보자.”
“저야 좋죠.”
웃으며 대화를 이어 가던 도중.
백 이사의 눈빛이 흔들리며, 순간 그의 속마음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지훈이 이놈 예리한데, 우리가 조작한 거 알아차리지는 않았겠지? 괜히 옛정 생각해서 마음 약해지기 전에 일어나야겠다.]